"인간은 이토록 슬픈데, 주여, 바다는 너무도 푸르릅니다."
 

일본의 작가 엔도 슈사쿠의 문학관에 있는 '침묵의 비'에 적힌 문구다.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은 숨어 지내던 기독교인들이 발각돼 탄압받던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배교를 강요받던 이들은 고통스러워하며 신을 찾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바다는 푸르기만 하다'는 말은 침묵하는 신을 보는 이들의 애타는 마음이 담긴 말일테다.

영화 <눈꺼풀>은 '신'에 대한 이야기다. 오멸 감독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사흘 만에 시나리오를 썼다. 그는 종교인이 아니지만, 세월호를 보며 믿지도 않고 누군지도 모르는 신을 붙잡고 기도했다고 한다. 신이 있다면 저들을 구원해달라고. 역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시신 수습이 막 시작될 때 즈음, 그는 다섯 명의 단촐한 스태프들과 남해의 한 무인도에 들어가서 촬영을 시작했다. 바다에서 건져 올려지는 죽음을 바라보며 그는 절구에 쌀을 빻고 떡을 지었다. 영화를 촬영하는 행위 자체가 제사였던 셈이다.

화면 바라보는 미륵불, 무릎에는 세월호가...

 미륵도에 사는 노인은 섬에 찾아오는 이들에게 떡을 지어 먹인다.

미륵도에 사는 노인은 섬에 찾아오는 이들에게 떡을 지어 먹인다. ⓒ 영화사 진진


영화의 첫 장면은 푸르른 바다다. 감독은 노인의 주름진 얼굴 같은 바다를 지루하리만큼 길게 보여준다. 평화롭게 파도치는 바다의 왼쪽 아래 구석에는 노란 구명보트 한 척이 헤엄치고 있다. 보트는 애써 흔들리면서도 결코 화면 가운데에 닿지 못하고, 파도에 부딪히며 오랜 시간 화면 끝에 머문다.

섬에는 남루한 옷차림의 노인이 살고 있다. 노인은 온통 바위뿐인 섬을 오르내리고, 속곳 차림으로 바다를 헤엄치며 뭔가를 잡기도 한다. 그의 방에는 전화기가 하나 놓여있는데, 전화벨이 울리는 것을 보는 노인의 표정은 복잡하다. 전화를 받으면 떡을 만들기 시작한다. 젊은 낚시꾼 한 명이 찾아와 제기에 차려진 떡을 먹고, 그는 곧 투명하게 사라진다.

어느 날, 파랗고 잔잔하던 바다는 무서운 검은 파도를 몰고 요동친다. 노인은 불안해하며 바다를 바라보다 어디론가 전화를 걸지만 상대는 응답하지 않는다. 한바탕 태풍이 지나간 후 노인은 또다시 불길한 전화벨 소리를 듣는다. 한참을 주저하다가 전화를 받은 그는 '떡집입니다'하고 대답하고, 한참을 듣다 알겠다며 전화를 끊는다.

그는 다시 떡을 만들기 시작한다. 낚시꾼에게 먹일 떡을 만들 때와는 다르게 쌀을 두 가마니나 지고 힘들게 산을 오른다. 이번에는 떡을 먹일 사람이 아주 많다는 이야기리라. 그러는 와중에 섬에 선생님과 두 명의 학생이 도착해 작은 항구에서 대화를 나눈다.

"선생님, 우리 여기 왜 온 거예요?"
"떡 먹고 가려고."
"난 떡 싫은데."
"그래도 먹고 가자. 먼 길 가는데."

노인은 노인대로 떡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쉽지 않다. 어디선가 까만 쥐 한 마리가 나타나서는 노인의 라디오를 부쉈기 때문이다. 화가 난 노인은 절굿공이로 쥐를 내려치지만, 쥐는 도망가 버리고 절굿공이는 부서진다. 쥐는 계속 도망치다 우물에 빠져버리고, 노인은 바닷가에 잠겨있던 미륵불상을 들고 와 그걸로 다시 쌀을 찧기 시작한다. 그러다 결국 절구도, 돌부처도 깨져버린다. 노인은 그 모습을 허망하게 바라보다가 깨진 절구를 우물로 던진다.

절구는 깊은 바다로 떨어지며 섬을 이루고 있는 바위들을 차례로 부순다. 기저에 균열이 일어난 섬 전체가 흔들리면서, 섬 아래 누워있던 커다란 바위가 일어선다. 바위는 미륵불의 형상을 하고 있고, 미륵불의 무릎에는 가라앉은 세월호가 놓여있다. 미륵불은 절구가 만든 공명을 듣고 깨어나 눈을 뜬다. 그리고는 화면을 오랫동안 지켜본다. 건너편에 놓여있는 관객은 그 눈을 피할 도리가 없다. 눈을 감지도 못하고, 기괴하고 두렵고 슬픈, 미륵불의 눈을 한참 동안 바라보게 된다. 영화는 이렇게 끝이 난다.

 4월 11일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오멸 감독은 '절구를 던져 미륵을 깨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4월 11일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오멸 감독은 '절구를 던져 미륵을 깨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 이은솔


"신도 여기에 책임이 있다"

오멸 감독은 '눈 감고 있는 미륵을 깨우고 싶었다'고 말한다. 지난 11일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그는 영화를 만든 의도에 대해 설명했다. 미륵은 500년 후에 중생을 구원하러 나타난다는 부처다. 그러나 비극을 맞이한 이들에게 수백 년 후의 구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들에게 간절한 것은 지금 당장의 구조였다.

감독은 세월호 참사 당시 누군가에게 그들을 구원해달라고 빌었지만, 신은 응답하지 않았다. 외면당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하고 싶은 말은 '신도 여기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절구를 던졌고 미륵불의 눈을 띄웠다. 미륵불은 눈을 떠야 한다. 우리도 눈을 떠야 한다. 당신도 떠야 한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대답 없는 신과 눈 감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리 없이 외친다.

물론 눈을 뜬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영화에는 눈꺼풀이 없는 달마대사의 이야기가 나레이션으로 등장한다. 참선을 하던 중 졸음이 쏟아지자 눈꺼풀을 베어내고 다시 참선을 했다는 이야기다. 눈을 감지 않기 위해서는 눈꺼풀을 벨만큼의 의지가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어느덧 4년이 지났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오래되었다고, 이제 다 끝난 일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4년 동안 눈꺼풀을 베는 심정으로 고통을 직면하고 싸워왔다. 또 어떤 종교인들은 안산에서, 목포에서, 광화문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기도와 제의를 올렸다. 4월 15일, 안산 합동분향소에서는 마지막 기도회가 열린다. 이 행사를 주관하는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하는 기도회'는 "이것이 '마지막 예배'인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예배'"라고 밝혔다.

정부 합동분향소는 곧 철거된다. 잊는 것은 쉽고, 기억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잊어버리려고 할 때마다, <눈꺼풀>을 본 관객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오래도록 떠올리게 될 것이다. 세월호가 던지는 이 거대한 물음을 듣고 눈을 뜬 미륵불은, 관객을 바라보며 다시 묻는다. 당신은 눈을 뜨고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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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과 언론을 공부하는 여성 청년. 페미니즘, 노동, 철거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읽고 쓰는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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