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영남의 힘> 포스터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모던 국악기행 - 강원 영남의 힘> 포스터

▲ <강원 영남의 힘> 포스터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모던 국악기행 - 강원 영남의 힘> 포스터 ⓒ 국립극장


지난해 국립국악관현악단이 판소리 다섯 바탕을 기본으로 한 심청가에, 인당수 물에 빠지는 대목이 있었다. 그 때 성악가가 오페라를 불렀는데 매우 낯설고 곤혹스러웠다. 심청전의 한스러운 대목을 예상했는데, 감정이 배제된 오페라여서 너무 파격적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당시 관객의 환호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몇몇 소수만 나같이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처럼 전통을 재창조하는 작업은 그것을 듣는 사람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힘들다.

며칠 전 뉴스에서 '국악계에 부는 신선한 바람'이라며 그룹 '씽씽'을 소개했다. 펑키 스타일의 가발과 복장 등으로 젊은층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전통적인 판소리를 배우고 있는 입장에서는 낯설지만,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다고 하니 국악계 입장에서는 환영해야 할지 모르겠다. 유튜브에 있는 그들의 공연 중에는 히트수가 150만이 넘는 것도 있다. 부르는 노래는 창작곡도 있고, 전통 가요도 있지만, 창법은 이들의 기반인 경기민요이다. 이것을 방송에서는 전통의 핵심을 놓치지 않는 재창조라고 하였다. 씽씽이 대중들의 국악에 대한 관심을 우호적으로 돌리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4월 13일 국립극장에서 <모던 국악기행, 강원-영남의 힘>을 봤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작년부터 전국을 4개 권역(경기권, 남도권, 강원-영남권, 제주-서도권)으로 나눠 지역 고유의 음색 및 특징을 보여주는 무대의 일환이다. 단순히 지역의 전통 음악만이 아니다. 1부와 2부로 나눠서, 1부에서는 지역의 전통음악을 수려한 영상과 함께 해당 지역의 예능인이 들려주고, 2부에서는 이 원형을 어떻게 재창조했는지 들려준다. 전통과 창조를 하나의 무대에서 보여주는 콘셉트의 무대이다.

1부에서는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정선 아리랑을 불렀던 김형조 명인이 나와서 정선아리랑의 원형을 불러주었다. 이어서 부른 동해안 별신굿은 국립국악원에서 들었던 진도씻김굿과 성주굿과 비교하며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작은 나라에서 굿마다 노래와 장단이 다르다는 게 신기했다. 하지만 별신굿을 들으니, 판소리의 원형인 서사무가로서의 특징을 잘 느낄 수 있었다.  2부에서는 강원도와 영남지역의 음악특징을 바탕으로 3곡을 들려주었다. 첫 번째 곡은 색소폰 연주가 협연으로 나와 피리 삼중주와 멋진 하모니를 이뤘고, 두 번째는 한오백 년을 듣는 듯한 '한, 삶 메나리'였고, 세 번째 곡은 ' 밀양, 아리랑'이라는 노래였다. 밀양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을 모티브로, 치유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노래였다.

이 공연을 예약할 때만 해도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주관하는 행사인지 몰랐다. 단순히 지역별 국악기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옛날 공중파 라디오의 '한국의 소리를 찾아서'와 비슷한 콘셉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던한' 국악기행이었다. 국악관현악단은 '전통국악을 동시대의 현대음악으로 재창작하는' 일환으로 진행한 것이다.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재창조하는 작업은 국악의 전통 또는 핵심을 제외한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씽씽의 공연이나 TV 프로그램 '너의 목소리가 보여(너목보)'에서 불렸던 '쑥대머리'처럼. 혹은 판소리꾼 김준수가 있는 창작그룹 '두번째달'의 이별가처럼 말이다. 유튜브에 올라온 평을 보면, 국악이 이렇게 좋은 노래인지 몰랐다는 댓글이 많다. 노래는 국악을 기반으로 하지만, 악기는 대부분 서양악기이거나, 서양악기와 국악기의 혼용이다.

정선아리랑 예능보유자 김형조 명창 김형조 명창의 평창올림픽 공연 영상 (KBS1 화면 캡쳐)

▲ 정선아리랑 예능보유자 김형조 명창 김형조 명창의 평창올림픽 공연 영상 (KBS1 화면 캡쳐) ⓒ 김용진


공연에서 또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국립국악관현악단 소속 문현희, 안수련 두 악장이 나와 각 곡에 대한 설명을 친절히 해준 점이다. 전문 사회자는 아니지만 전문가 수준을 뽐내듯이 자연스럽게 진행했다. 특히 청중을 배려한 게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진행 큐시트를 읽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줬다. 예전에 국립국악원의 외국인을 위한 국악공연에서 한 방송사 아나운서가 영어사회를 맡은 적이 있다. 그가 큐시트만 읽다가 내려갔던 것에 비하면 악장들의 설명이 듣기 편했다. 아직 사람들에게 낯선 국악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고객에 대한 배려로서 바람직하다고 본다.

공연일인 4월 13일엔 국립국악관현악단 외에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국립국악원 30주년 기념 공연'도 있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국악 창작집단 두 단체가 같은 날 공연을 가진 셈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전통 판소리나 전통 공연이 듣기가 편했다. 국악창작악단 (국악관현악단)의 음악은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아 찾아 듣지 않았다. 하지만 국악을 전공하고 각자 자기의 영역에서 새로운 시도로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있기에 국악의 저변이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제 개인 블로그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모던 국악기행 국립국악관현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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