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60%의 득표율을 얻은 소도시에서 작은 컴퓨터 가게를 운영하는 J는 어느 해 어버이날, 노란 카네이션을 단 남자 버스 옆자리에 앉게 된다. 그 남자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한 J는 버스를 타는 내내 잊고 싶었던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영화 <오, 사랑> 시놉시스 중)

아들 건호가 다니는 대학교의 MT까지 따라가는 김광배씨는 참으로 극성스런 아빠다. 그의 눈에 아들 건호는 아직 철없는 고등학생이다. 하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건호는 김광배씨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건호는 죽었고, 우석대학교 상담심리학과에 영혼입학을 하였다. 그럼에도 김광배씨에게 건호는 말썽꾸러기 고등학생인 상태로 영원히 살아있다. (영화 <초현실> 시놉시스 중)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초현실>(2017) 한 장면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초현실>(2017) 한 장면 ⓒ 김응수


지난 3월 IPTV를 통해 동시에 공개된 김응수 감독의 <초현실><오, 사랑>은 세월호를 기억하는 영화다. <초현실>(2017)이 세월호 참사로 인해 아들을 잃은 유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라면, <오, 사랑>(2017)은 여행 중 세월호 유가족으로 추정되는 의문의 남자를 만나면서 세월호의 기억을 떠올리는 중년 남자의 고백을 담았다.

김응수 감독의 자기 고백적 내레이션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오, 사랑>은 세월호 참사 당시 배가 침몰하는 장면을 TV 화면을 통해 하염없이 지켜보기만 해야했던 한 시민의 시선에서 세월호를 바라본다. 세월호 참사는 사고로 인해 가족을 잃은 유가족, 생존자뿐만 아니라 대다수 국민들에게 트라우마로 기억되는 아픈 기억이다. 한때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것에 많은 용기가 필요하던 때가 있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서명에 참여하면 나와 내가족에게 엄청난 불이익이 뒤따를 것만 같았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은 연락을 완전히 끊은 한 친구에게서 세월호를 잊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 세월호 유가족은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그 말이 매우 폭력적으로 들렸다. 지금도 세월호하면 세월호를 잊고 싶다는 그 친구의 말이 떠올라 비수처럼 꽂힌다.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유가족들은 나보다 이 말을 더 많이 듣고 살았을 것이다. 이제 그 정도 했으면 되었으니 그만 잊어라. 옛 말에 자식은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지만,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단원고 학생 유가족들은 자식을 가슴에 묻은 사람들이다. 아무리 세월호 진실 규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유가족들과 슬픔을 나누려고 노력한다고 한들, 그들의 심정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노란 카네이션을 단 남자와의 만남 이후 세월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 한 시민의 이야기를 다룬 <오,사랑>(2017) 한 장면

노란 카네이션을 단 남자와의 만남 이후 세월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 한 시민의 이야기를 다룬 <오,사랑>(2017) 한 장면 ⓒ 김응수


세월호를 잊고 싶지는 않았지만, 세월호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진상 규명 중인 세월호를 두고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었다. 노란 카네이션을 달았던 남자와의 만남 이후 <오, 사랑>의 J는 그날부터 자신의 가게에 노란 리본을 달았다. 노란 리본을 떼지 않으면 거래를 끊겠다는 몇몇 고객의 항의도 있었지만, J는 개의치 않았다. J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하늘나라로 떠난 단원고 학생들과 비슷한 나이의 아들을 두고 있다. J의 소원은 피아노를 계속 치고 싶어하는 아들에게 제대로된 피아노를 사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J는 자신의 생계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노란 리본을 계속 달기로 한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세월호 참사 추모의 숲과 팽목항을 방문한다. 노란 카네이션을 단 남자를 만나기 전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초현실>에 등장 하는 김광배씨는 한시도 아들을 그의 품에서 떠나 보내지 못한다.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김광배씨의 아들은 여전히 18살 철부지 고등학생이다. 그런 아들이 영혼입학을 통해 대학생이 된다고 한다. 김광배씨가 아들을 대신하여 대학교 MT에 참석한 몇 시간을 기록한 영화는 내레이션이나 인물 간의 대사 대신 자막으로 아들을 영혼입학 시킨 김광배씨의 심경을 대변한다.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초현실>(2017) 한 장면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초현실>(2017) 한 장면 ⓒ 김응수


김광배씨는 아들이 성인이 되지 않았으면 바란다. 성인이 되면 부모의 품에서 영원히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김광배씨에게는 아들이 어른이 되어 자신의 곁을 떠났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초현실>은 김광배씨가 세월호 유족이고, 그의 아들이 세월호 참사 때 목숨을 잃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김광배씨의 팔목에 차고 있는 세월호 기억 팔찌를 통해 그가 세월호  유족임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노란 카네이션을 단 남자와의 만남 이후 세월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 한 시민의 이야기를 다룬 <오,사랑>(2017) 한 장면

노란 카네이션을 단 남자와의 만남 이후 세월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 한 시민의 이야기를 다룬 <오,사랑>(2017) 한 장면 ⓒ 김응수


<오, 사랑>과 <초현실>은 기존 세월호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세월호 참사 진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작품은 아니다. 대신, 에세이적 방식을 통해 세월호를 잊고 있었던 부끄러움을 고백하거나(<오, 사랑>) 죽은 아들을 가슴 속에서 떠나 보내지 못하는 유가족의 일상을 보여주는 방식을 통해(<초현실>) 세월호에 대한 망각에 저항하고, 세월호를 끊임없이 기억하고자 한다. 극장 개봉 대신, IPTV 등 온라인 개봉 형식으로 세월호에 관심있는 관객들과 적극적으로 만나려는 시도 또한 신선하다. 세월호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그리고 세월호 진상 규명에 지지와 힘을 보태는 것. 그것이 세월호 참사 당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지금까지도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이야기를 유가족과 일반 시민의 시선에서 각각 바라보는 <초현실>과 <오,사랑>은 IPTV, 온라인 VOD 등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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