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교를 지나다 보면 한창 중간고사 공부로 바쁜 학생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때도 그랬다. 중간고사 공부로 바쁜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친구와 간단히 식사를 하기 위해 나선 길, TV에서 세월호 침몰 소식을 접했다.

지금도 내 손목에는 'REMEMBER 0416'이라고 적힌 세월호 팔찌가 있다. 가끔 손목에 있는 팔찌를 쳐다볼 때면 여전히 답답하기만 하다. 수백의 유가족이 생겼고, 특별법이 제정되고 특별조사위원회가 꾸려지기도 했다. 그저 흘러가버린 그동안의 참사와는 다른 모습이었지만 결국 바뀐 건 없었다. 아직 진실도 찾지 못했다.

잊지 않겠다고 외치고 또 외쳤지만, 어느새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가슴 언저리 미안한 마음을 조심스럽게 품은 채로. 우연히 학교 근처 치킨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만나게 된 세월호 유가족분이 노란리본 배지를 주셨다. 몇 개 없다면서 주시던 그 배지를 달면서 세월호를 절대로 잊지 않고 알리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처럼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세월호 아이들과 유가족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서, 또한 세월호 참사 이후, 슬퍼하고 분노하며 특별법 제정 서명을 함께하고 많은 집회에 함께 했던 한 명의 국민으로서 세월호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안전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면, 적어도 사람답게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김진열 감독의 영화 <나쁜 나라>

 2015년 12월 3일 개봉한 영화 <나쁜 나라> 포스터.

2015년 12월 3일 개봉한 영화 <나쁜 나라> 포스터. ⓒ 시네마달


"세상에 이렇게 나쁜 놈들이 어디 있냐고, 어디 나라에도 이렇게 나쁜 놈들이 없다고."

세월호 유가족들은 '나쁜 놈'들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중재위원회를 구성할 때도 정치인들은 권력 다툼을 하기 바빴고 국정조사는 답답하기만 했다. "최선이었다", "모르겠다" 등의 말과 거짓말만 판치는 곳을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유가족들은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리기 위해 앞장섰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1000만인 서명 운동. 이례적이었다. 국민 1000만 명이 서명하는 것이 쉽지 않아보였다. 그럼에도 유가족들은 가만히 있지 않고 앞장서서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국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자식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는 부모가 어떻게 가슴에 묻을 수 있냐는 외침이 국민들을 울렸다.

국회에서 노숙 농성까지 진행했지만 정치권은 움직이지 않는 공룡 같았다. 국민들 350만 명의 서명도 모였다. 무려 350만 명이나 되는 국민들이 원하는 특별법이었다. 하지만, 여당과 야당은 싸움만 반복했다. 힘들게 합의를 하더라도 유가족을 배제한 채였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했다. 릴레이로 단식 농성을 진행했고, 방한한 교황을 찾아가기도 했다. 경찰들에게 내동댕이쳐지기도 했지만 청와대로 찾아갔다. 우산조차 쓸 수 없게 하는 경찰들 앞에서 생명을 걸고 특별법 제정을 위해 달렸다.

그렇게 결국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물론 유가족들의 의견은 제대로 들어가지 못했다. 정치권에서 유가족 의견을 묵살한 채로 합의해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가족들의 동의 없는 배보상 기준을 해수부에서 발표하면서 수많은 오해들과도 싸워야 했다.

<나쁜 나라>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약 1년 동안 세월호 유가족과 국민이 싸운 과정을 담았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유가족의 모습과 오로지 권력 다툼만 관심 있는 정치권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다시금, 유가족분들의 외침이 떠오른다. 법적 책임을 제대로 진 책임자가 없는 현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당연히 꾸려져야 할 조사위원회가 생기는 것조차 어려운 현실. 어찌 '나쁜 나라'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김동빈 감독의 영화 <업사이드다운>

 2016년 4월 14일 개봉한 영화 <업사이드 다운>의 포스터.

2016년 4월 14일 개봉한 영화 <업사이드 다운>의 포스터. ⓒ 시네마달


1997년생들은 초등학교 때 '신종 플루' 유행 때문에 수학여행도 가지 못했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더욱 이번 수학여행을 기대했다.

박영우씨는 다른 집과는 다르게 아빠를 좋아했던 딸이 그립다. 외교관이나 판사를 꿈꿨던 딸이 옷을 늘어놓고 골라달라고 하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한복남씨는 수학여행을 보내주게 됐던 기억을 떠올린다. "사정이 어려워 수학여행을 못 보내줄 것 같다"는 엄마의 말에 딸은 해외에서 일하고 있던 아빠에게 전화했다. 한복남씨는 딸에게 "수학여행을 꼭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수학여행을 떠난 딸은 돌아오지 못했다.

제삼열씨, 박영우씨, 김현동씨, 한복남씨 4명의 아빠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세상이 뒤집혀 버렸다. 말 그대로 '업사이드다운'이 돼 버렸다. 다큐멘터리 영화 <업사이드다운>은 4명의 아빠와 변호사, 기자, 심리학 박사, 교수, 탐사저널리즘 센터장 등 여러 명의 전문가의 시각에서 세월호와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를 짚어보는 영화이다.

세월호가 침몰되고 있던 당시, 선내에는 "가만히 있으라"라는 방송이 나왔다고 한다. 그로 인해서 밖에서 사진을 찍던 아이들도 선내에 들어가 대기했다. 차라리 밖으로 나가 물에 빠졌더라면 살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가만히 있으라"라는 방송을 믿고 선내에서 구조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구조는 없었다. 승객들을 구했어야 할 선원들은 사복으로 갈아입고 자신들만 먼저 구조 받았다. 총 28명의 승무원 중 20명이 생존했고 선박직은 15명 모두 생존했다. 승객들은 내버려 둔 채로 말이다.

세월호가 침몰되는 동안, 어째서 아무도 구조하지 못했던 걸까. 세월호 참사 이후 온갖 단체장들이 팽목항으로 모였지만 정작 구조는 없이 시간만 흘렀다. 헬기가 없어서 늦게 투입되고, 잠수사와 잠수장비도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다. 유능한 해군 잠수부들도 투입시키지 않았다. 정작 언론은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냈다.

정부는 언론 플레이만 계속 했다. '에어포켓'이니. '500명의 잠수사'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다. 국민은 제대로 된 책임자 처벌을 원했고 실종자들을 찾아내기를 원했다. 적어도 아이들이 죽은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그러나 정부는 해경을 해체하고, 허수아비 특별법을 제정하고 흉내만 냈다. 진실을 밝힐 것처럼 말이다.

뒤집힌 아빠들의 세상을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는 아빠들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가슴에도 묻지 못한 부모들이 어떻게 앞으로를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12일 새로운 세월호 다큐멘터리 영화 <그날, 바다>가 개봉했다. 진술은 엇갈리고 기록은 사라지고 있다. 이 영화는 지난 4년간의 조사를 바탕으로 밝혀지지 않은 세월호 참사 진상을 밝히려 한다.

세월호 참사 조사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이제라도 달라져야 한다. 그 시작은 진실을 제대로 밝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억울하게 죽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아직도 고통 받는 유가족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수많은 이 땅의 생명들을 위해서라도 밝혀야 한다. 그 시작을 위해, 세월호 4주기를 맞아 이런 영화들에 작은 관심이라도 가져보는 게 어떨까.

세월호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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