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뮤지컬 <삼총사>의 밀라디, 서지영 지난 3월 28일 서울 한전아트센터 로비, 뮤지컬 <삼총사>에서 '밀라디' 역으로 트리플 캐스팅된 배우 서지영을 만났다. 한때 아토스와 연인 사이였으나, 모함으로 인해 작위와 토지를 빼앗긴 후 프랑스 왕가와 아토스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과거를 잊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 뮤지컬 <삼총사>의 밀라디, 서지영 지난 3월 28일 서울 한전아트센터 로비, 뮤지컬 <삼총사>에서 '밀라디' 역으로 트리플 캐스팅된 배우 서지영을 만났다. 한때 아토스와 연인 사이였으나, 모함으로 인해 작위와 토지를 빼앗긴 후 프랑스 왕가와 아토스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과거를 잊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인물이다. ⓒ 곽우신


"밀라디를 너무 오랜만에 만났어요. 제가 너무 사랑하는 캐릭터예요. 4~5년 전 성남아트센터에서가 마지막이었죠. '또 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안녕!' 하고 나왔는데, 그 후에 할 기회가 없었으니까. 제가 <잭 더 리퍼> 공연도 많이 했는데, 일본 요코하마에서 폴리와는 제대로 인사했거든요. 그런데 밀라디와는 제대로 '굿바이'를 못한 거죠. '아, 이대로 밀라디와는 영영 이별인가' 싶었어요.

10주년 기념으로 참여하게 되니까 '밀라디를 정말 예쁘게, 아름답게 연기하고 보내줄 기회가 생겼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냥 기쁘더라고요. 마지막 공연이 가까이 오면 너무 슬플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잘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뻐요."

지난 2009년 초연 이후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뮤지컬 <삼총사>. 공연계의 스테디셀러로서 오랫동안 사랑받은 작품이다. 지난 3월 16일 서울 한전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이번 <삼총사>는 10주년을 맞아 '신구 조화'를 강조했다. 새롭게 합류한 캐스트의 활약도 눈에 띄지만, 초연 때 사랑받았던 엄기준·유준상·신성우·민영기·김법래 등 베테랑이 오랜만에 칼을 쥐고 노래한다. 오는 5월 27일에 서울 공연을 마치고 지방 순회공연이 예정되어 있을 만큼 관객으로부터 호평받고 있다.

<삼총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반가운 베테랑이 한 명 더 있다. 밀라디 역의 트리플 캐스팅 중 가장 관록이 있는 배우 서지영. 재연 때부터 2013~2014 시즌 성남아트센터 공연까지 매번 참여했던 그는, 2016 시즌에는 함께하지 못했다. 서지영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던 밀라디, 하지만 10주년을 맞아 제대로 '안녕'을 고할 기회를 잡았다. 지난 3월 28일, 한전아트센터 2층 테라스에서 배우 서지영이 겪고 버텨온 시간을 잠시 엿볼 수 있었다.

아토스를 향한 밀라디의 마음

뮤지컬 <삼총사>의 밀라디, 서지영 지난 3월 28일 서울 한전아트센터 로비, 뮤지컬 <삼총사>에서 '밀라디' 역으로 트리플 캐스팅된 배우 서지영을 만났다. 한때 아토스와 연인 사이였으나, 모함으로 인해 작위와 토지를 빼앗긴 후 프랑스 왕가와 아토스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과거를 잊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 다시 밀라디를 맡은 느낌 "아무래도 성숙한 건 좀 있고요. 나이가 들었으니까, 그때보다도. 성숙미가 있는 건 좋은데, 체력이 딸려서…. (웃음) 나이는 어떻게 속일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무대에서 했는데, 이제는 그걸 구현하려면 더 힘을 써야 하는 느낌적 느낌이 있는…." ⓒ 곽우신


뮤지컬 <삼총사>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이다. 본래 체코에서 올라온 작품이었으나, 이를 라이선스 공연화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각색에 들어갔다. 원작에서 취사선택된 대목도 다르고, 갈등의 주요 원인도 바뀌었다. 본래 작품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원 작곡가의 다른 노래도 가져오고, 아예 없는 노래를 새로 작곡하기도 했다. 캐릭터 간 비중도 재조정하면서 한국 버전의 <삼총사>가 새롭게 탄생했다. 무엇보다 작품을 무대 위로 구현하고 오랫동안 관객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데는 배우의 공이 크다. 동시에 그 배우를 성장시키는 데도 <삼총사>는 크게 기여한 작품이다.

"제가 공연을 1994년부터 했어요. 꽤 오래됐잖아요? 수많은 작품을 했었고, 그중에서 제일 오래 한 캐릭터가 폴리하고 밀라디일 거예요. 연출님이 늘 밀라디에 대해서 '우아미를 잃지 말라'고 강조했어요. 저도 대본을 처음 봤을 때 그게 먼저 떠올랐고요. 이 여자는 귀족 출신의 여자이고, 자기 사명감이 있잖아요. 밀라디 덕분에 무대에서 '애티튜드'를 갖는 걸 많이 배웠어요. 그 애티튜드를 배웠기 때문에 폴리를 하면서도 우아미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단지 일차원적으로 복수에 눈이 먼 여자 캐릭터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바라봐줬기 때문에 관객들도 사랑해줬던 게 아닐까. 그렇게 접근하려고 노력하면서 저도 배우로서 성장하는 데 굉장히 큰 도움을 줬죠."

'가스코뉴 지방에서 파리로 올라온 촌뜨기 달타냥이 총사대의 주축 멤버 삼총사(아토스·아라미스·포르토스)와 함께 함정에 빠진 왕을 구한다.' 뮤지컬 <삼총사>의 주요 골격이다. 콘스탄스가 주인공 달타냥과 이제 막 피어나는 예쁜 사랑을 보여주는 캐릭터라면, 밀라디는 '총알도 칼로 튕겨내는' 전설 아토스와 애증의 감정선을 가지고 가는 인물이다. 한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모종의 이유로 모함을 받은 밀라디의 가문은 몰락한다. 그리고 그 몰락의 과정에는 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원리원칙주의자 아토스도 포함되어 있다.

밀라디는 이에 큰 배신감을 느끼고, 추기경 리슐리외 그리고 추기경의 근위대장인 쥬샤크와 함께 복수를 계획한다. 이는 자신의 가문을 무너뜨린 왕실을 향한 복수이자, 그 앞에 서있던 아토스에 대한 복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죄책감에 시달리는 아토스는 밀라디가 음모의 한 축일 거라 끝까지 믿지 않고, 밀라디 역시 결정적인 순간에 아토스의 피를 보지 못한다.

뮤지컬 <삼총사>의 밀라디, 서지영 지난 3월 28일 서울 한전아트센터 로비, 뮤지컬 <삼총사>에서 '밀라디' 역으로 트리플 캐스팅된 배우 서지영을 만났다. 한때 아토스와 연인 사이였으나, 모함으로 인해 작위와 토지를 빼앗긴 후 프랑스 왕가와 아토스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과거를 잊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 아토스들과의 호흡 "유준상 배우랑 신성우 오빠는 너무 많이 해서, 이제 눈빛만 봐도 알아요. 호흡을 많이 했으니까 편한 게 당연하죠. 무대에서 잠깐 어긋나도 금방 다시 돌아갈 수 있고, 이런 것들이 너무 편해요. 김준현 배우하고는 <잭 더 리퍼> 때 앤더슨과 폴리로 만났는데, 늘 준현 배우도 친했던 동생이니까. 불편하다든가 부담스러운 건 건 전혀 없어요. 다만 호흡적인 면에서 두 사람에 비해서는 맞출 게 좀 있긴 하죠. 공연 전에, 요긴 요렇게 하고, 저긴 저렇게 하자라고…. 그런데 그게 또 재밌어요. 저 사람들은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고 들어왔는데…. (웃음) 좀 다르긴 하지만 셋 다 너무 멋있어요." ⓒ 곽우신


"아토스가 방에 침입해 들어왔을 때 끝내 못 찌르잖아요. 죽일 수도 있고, 해를 끼칠 수도 있는 건데 그걸 못하거든요. 아토스는 자기 일에 너무 충실했고, 밀라디는 그런 아토스의 모습이 서운하고 섭섭하고 배신감을 느낀 거죠. 하지만 자신들의 일 때문이 아니라 남 때문에 헤어진 거잖아요. 살면서 아버지 원수를 갚고, 집안 복수를 해야겠다는 마음은 있지만, 아토스가 마음에 늘 걸렸을 것 같아요. 정작 만났을 때, 칼을 코앞에다가 대고도 찌르지 못하고 물러나는 마음이, 사랑이 남아있지 않고서는 하지 못할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아토스가 솔로를 할 때는, 그 절절함이 느껴져요. 제가 그다음에 노래를 불러야 해서 감정조절을 좀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아토스의 솔로를 바라보고 있다가 창문을 뛰어내릴 때면 눈물과 콧물이 너무 많이 나와서 고생을 그렇게 해요. 어쩔 수 없는 감정인 것 같아요. 밀라디도 이 사람을 너무 많이 사랑했기 때문에, 배신감도 너무 많이 들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에 밀라디가 달타냥에게 '복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고 말해도, 저는 그걸 '가서 아토스한테 밀라디 살아있다'고, '나 찾아달라'고 전해달라는 말로 해석했거든요. 그냥 가버리면 밀라디가 죽은 줄 아니까요. 그래서, 아토스가 '제 여자를 지키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떠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아토스는 왕실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데, 총사대장을 맡겼는데도 그걸 잠시 보류하면서까지 밀라디를 찾아 나서잖아요. 그건 아토스의 마음에도 변화가 있었다는 얘기니까요."

밀라디를 떠나보내며

뮤지컬 <삼총사>의 밀라디, 서지영 지난 3월 28일 서울 한전아트센터 로비, 뮤지컬 <삼총사>에서 '밀라디' 역으로 트리플 캐스팅된 배우 서지영을 만났다. 한때 아토스와 연인 사이였으나, 모함으로 인해 작위와 토지를 빼앗긴 후 프랑스 왕가와 아토스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과거를 잊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 공연은 함께 만드는 것 "타이틀이 <서지영>이라고 해도, 그 공연에서 타이틀 롤인 ‘서지영’만 돋보이면 재밌지 않잖아요. 다른 역할들이 다 받쳐주고, 같이 호흡해줘야 공연이 산다고 생각해요. <삼총사>는 삼총사와 달타냥까지 사총사의 이야기인데, 그 안에서도 여자 캐릭터가 돋보일 수 있어요. 제 욕심만으로 하려면 모노드라마 하면 되겠죠. 전체적인 공연에서 얼마나 어우러지는 캐릭터를 내가 하느냐에 따라서 관객들이 좋아해 주시는 거지, 저만 돋보이자고 제 욕심만 부리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해요." ⓒ 곽우신


커튼콜 때 등장하는 아토스와 밀라디는, 극 중에서 감정의 결실을 보지 못한 한을 씻듯이 마냥 행복하고 다정해 보인다. 관록과 신뢰에서 나오는 배우 간의 케미스트리가 그래서 더 특별하다. 발랄한 분위기의 작품인 만큼, 배우들은 객석을 떠나는 관객의 가슴에 감정의 여운을 남기기보다 시원하게 다 털고 갈 수 있게끔 배려한다. 2018년 <삼총사>를 끝으로 밀라디에서 잠정 은퇴하는 서지영. 정말로 이번이 마지막인 걸까. 그는 다 털고 갈 수 있을까.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웃음) 여자 배우 입장에서는 그런 면에서 섭섭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해요. 외국 같은 경우에는 <그리스>를 해도, 샌디를 40대 중반의 배우가 하더라고요. 우리나라는 남배우가 나이가 좀 있더라도 상대역은 어려야 한다는 공식이 있는 것 같아요. TV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남자 배우들은 역할이 굉장히 많은데, 여자들은 <삼총사>만 해도 배역이 두 개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오디션이나 학생들 보면 여자들이 되게 많거든요. 그만큼 경쟁도 치열할 뿐만 아니라, 맡을 수 있는 배역도 적어요. 여자 배우들이 겪어야 할 일이고, 싸워야 할 일이죠.

배우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는 게 당연한 거라고도 생각해요. 장단점이 있죠. 여자 배우들도 배우 생활을 잘하고, 그 시기를 잘 견뎌내면 할 만한 역할들이 꽤 있어요. 저는 후배들에게 '잘 견디라'고 말을 해주고 싶어요. 배우라면 내가 '연기하고 싶은 맛'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배역을 맡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비슷비슷한 역이어도, 배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요. 그래서 저도 그런 본보기가 되려고 많이 노력해요. '아, 나도 저 나이가 돼서, 저 선배처럼 무대에서 저렇게 연기해야지, 저렇게 노래해야지'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무대를 계속 지키고 싶어요. 저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 위에서 살아있는 선배 배우가 되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사명감도 좀 들고."

뮤지컬 <삼총사>의 밀라디, 서지영 지난 3월 28일 서울 한전아트센터 로비, 뮤지컬 <삼총사>에서 '밀라디' 역으로 트리플 캐스팅된 배우 서지영을 만났다. 한때 아토스와 연인 사이였으나, 모함으로 인해 작위와 토지를 빼앗긴 후 프랑스 왕가와 아토스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과거를 잊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 스스로 꼽는 장점은 '진심' "제 장점은…. 제 진심인 것 같아요. 선배 배우들이 진심을 다하지 않았다 이런 말이 아니고요. 저는 그 캐릭터를 덮어 쓸 때 늘 서지영이 나오거든요. 그게 안 나올 순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없다면, 그건 가식적인 연기니까요. 언제나 제 마음을 온전히 담으려고 노력했고, 대사 하나 노래 하나할 때도 거짓으로 그 감정을 내보인 적도 없고요.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일거예요.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배우는 없으니까요. 그렇게 늘 최선을 다하는 진심이 조금 통하지 않았나 싶어요." ⓒ 곽우신


2010년 말에 처음 밀라디를 만나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여기까지 왔다. 관객들의 머릿속에 밀라디라는 배역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배우가 아마도 서지영이지 않을까. 이렇게 밀라디와 인사하고 나서도, 나중에 다른 배우들이 소화하는 밀라디를 챙겨서 보고 싶다는 그. 오랫동안 한 인물을 입고 대변한 사람으로서, 이 옷을 넘겨받아 입을 후배들에게 혹시나 당부하고 싶은, 조언하고 싶은 게 있을 것도 같다.

"같이 하는 (안)시하하고 (장)은아한테도 그렇게 얘기해줬어요. 밀라디에게 접근할 때 고민이 많다고 털어놨을 때, '밀라디는 고귀한 가문에서 자라난 기품을 가지고 있는 여자이다. 집안이 한 번 몰락했다고 해도, 그 기품까지 몰락하면 안 된다. 그걸 너희가 무대에서 지켜달라'고 해줬어요. 앞으로 밀라디를 하실 배우분들께서도 그걸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자칫하면 그게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인데, 여자가 몰락해서 비참하고 천해 보이는 거랑 몰락했지만 그걸 꼿꼿이 지키는 모습은 완전히 다르거든요. 이 여자가 가지고 있는 마음을 잊지 말고, 그 꼿꼿함과 자기만의 생각을 관철하는 의지를 버리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많이들 밀라디를 악녀로 보시지만, 악녀라고 하더라도 관객이 이해할 수 있는 악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얼마나 그러면 저럴까?', '나도 네 마음을 이해하겠다'와 같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캐릭터가 되어야 해요. 왜냐하면,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거든요. 사람이 나빠지기까지의 이유가 있을 것 아니에요. 이 두 시간 반 동안 밀라디가 나오는 장면이 그렇게 많지 않아도, 그걸 다 보여줄 수는 없어도, 나올 때마다 그 삶의 이유를 안고 나오는 것과 아예 벗어버리고 나오는 건 많은 차이가 있거든요."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뮤지컬 <삼총사>의 밀라디, 서지영 지난 3월 28일 서울 한전아트센터 로비, 뮤지컬 <삼총사>에서 '밀라디' 역으로 트리플 캐스팅된 배우 서지영을 만났다. 한때 아토스와 연인 사이였으나, 모함으로 인해 작위와 토지를 빼앗긴 후 프랑스 왕가와 아토스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과거를 잊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 서지영의 자기 관리 "제가 딱히 다른 특별한 걸 먹거나, 특별한 걸 하면서 관리하는 건 아니에요. 술은 입에 안 대고, 담배는 원래 못 피웠고, 커피도 아예 안 마셔요. 인순이 선생님이나 패티 김 선생님 같은 가수분들 뵈면, 나이가 있는데도 성대가 ‘쨍쨍’하시잖아요? 그런 면에서 존경스럽더라고요. 그 나이가 돼도 저렇게 노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많이 느껴요. 그래서 열심히 관리하고 있어요." ⓒ 곽우신


밀라디와 이별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서지영의 밀라디와 안녕이라는 뜻이지 배우 서지영의 안녕은 아니다. 밀라디라는 옷을 벗어도, 서지영은 계속해서 다른 옷을 입어가며 배우로서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초연과 재연에 모두 참여했던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세 번째 시즌에도 함께하기로 했다. 그 이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서지영은 무대 위에 서 있을 것이다. 무대만큼 배우로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에, 그는 무대를 끝까지 지키고 싶어 한다. 그건 '선배' 여자 배우로서의 사명감 덕분이기도 하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관객에게 보답하는 길이기도 하다.

"무대에서 행복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저희는 늘 긴장하는 직업이잖아요. 우리끼리도 그랬어요, '불치병 같다'고. '왜 이렇게 오래 해도 떨리지? 이건 고칠 수 없는 병인가 봐'라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만큼 공연 직전에 너무 떨리거든요. 그런데 그런 긴장감 속에서 사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하고 싶단 말이에요. 하면 행복하단 말이에요. 이걸 놓을 수가 없는 거예요. 내가 무대를 떠나면 이 행복이 없어질 텐데, 얼마나 불행할까. 저는 그 행복을 계속 느끼면서 살고 싶어요. 매일 많은 작품을 하지 않더라도, 나이가 들면 들수록 무대에 서는 횟수가 줄어들더라도, 끝까지 무대 위에 서서 제가 느끼는 행복을 관객분들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늘 감사하면서 살고 싶고요.

엊그제도 어떤 팬이 꽃다발을 주면서, 카드에 가득 글을 적어 줬어요. <프랑켄슈타인> <밑바닥에서> <벤허>를 다 봤대요. 지망생인데, 제가 롤모델이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하는 <삼총사> 밀라디를 너무 보고 싶었는데, 이번 캐스팅 보고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는 표현이 쓰여 있었죠. 그걸 보면서 '내가 뭐라고 이 분이 이렇게까지 나에 대해서 좋아해 주시고 감동해주시나' 했어요. 굉장히 벅찼어요. '진짜 더 열심히 잘하고, 잘 버티고 있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뮤지컬 <삼총사>의 밀라디, 서지영 지난 3월 28일 서울 한전아트센터 로비, 뮤지컬 <삼총사>에서 '밀라디' 역으로 트리플 캐스팅된 배우 서지영을 만났다. 한때 아토스와 연인 사이였으나, 모함으로 인해 작위와 토지를 빼앗긴 후 프랑스 왕가와 아토스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과거를 잊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 창작자에게 드리는 당부의 말 "공연을 올리는 분들도 조금 더 신중하게 올렸으면 좋겠어요. 공연 보다 보면 속상한 작품도 있거든요. 저는 <빌리 엘리어트>를 진짜 사랑하는데, 또 이런 공연은 연일 매진쳤으면 좋겠고요. (웃음) 좋은 공연은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삼총사>도 여기까지 오는데 많은 과정을 거쳤어요. 한 번 하고 마는 공연이 아니라, 계속 되어질 수 있도록, 오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신중하게 잘 만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 곽우신


지난 몇 달간, 많은 관객이 무대에 실망했다. 그토록 사랑했던 무대의 뒤편이 사실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환멸을 느끼고 공연장에 발길을 끊은 관객도 많고, 발길을 끊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가슴에 상처를 안고 있는 관객도 많다. 그러나 더 좋은 공연계를 만드는 데 필요한 과정일 것이다. 배우 서지영도 그래서 공연계 그리고 공연계를 넘어선 미투를 지지하고 응원한다. 선배 배우의 한 사람으로서, 여자 배우의 한 사람으로서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상처받은 관객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는 아주 잠깐 울먹이며 "정의는 반드시 살아있다"고 말했다.

"언제 터져도 터졌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제가 이 계통에 있으면서 20년 동안 수없이 많이 봐 왔었고 용기를 내준 사람들에게 너무 고마워요. 문화계만이 아니라 전 사회적인 문제니까요. 전반적인 문제를 끄집어내고, 그런 사람을 벌 받게 하고, 일침을 가하면서 다시는 그런 일을 못 하게 하도록 하는 건 좋은 일이죠. 지금까지 들춰진 사람들은 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저희 <삼총사> 문구가 '정의는 살아있다'라잖아요. 저는 그 말을 평생 믿고 살았거든요. 정말 나쁜 짓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친 사람은 시간이 걸릴 뿐이지 언젠가 벌을 받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살았기 때문에 전 '정의가 살아있다'는 걸 믿어요. 이 일로 인해, 그렇게 나쁜 짓 한 사람들은 다 벌을 받고 우리나라에서 사라져야 해요. 그리고 서로서로도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아무 생각 없이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는 굉장한 상처가 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 아무 생각 없이 하지 않아요.

제가 직접 당한 게 없어서 함께 '미투'를 하지 못할 뿐이지, '미투'에 대해서는 '위드유'로 지지하고 있어요. 계속 '좋아요'를 누르고 있고, 여자 배우로서 마음으로 항상 동참하고 있어요. 상처받으신 관객들께는, 같은 배우 입장에서 너무 죄송해요. 그래서 더 책임감 있게 열심히 공연하려고요. <삼총사>가 힐링하기 좋은 극이니까, 저희 작품을 보고 '정의는 반드시 살아있다'는 걸 조금은 느끼고 가실 수 있도록…."

뮤지컬 <삼총사> 포스터 뮤지컬 <삼총사>에서 밀라디 역에 트리플 캐스팅된 서지영 배우 버전의 포스터.

▲ 밀라디를 사랑한 이유 “밀라디가 굉장히 한이 많잖아요. 복잡미묘한 심리를 가진 여자거든요. 어떨 땐 자신도 자기 마음을 이해하기가 힘들 정도로 복잡해요. 복수에 대한 감정을 뿌리부터 깊이 갖고 있기도 하고요. 리슐리외를 죽이고, 아토스를 끝까지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표현하면서 재밌기도 하고, 어렵기도 해서 너무 좋았어요. 매력적이잖아요. 여자 배우로서 무대에서 표현하기에 참 좋은, 많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그런 매력 때문에 밀라디를 사랑했어요.” ⓒ ㈜메이커스프로덕션/㈜킹앤아이컴퍼니


유준상과 서지영의 인연



많은 작품에서 많은 배우와 인연을 맺은 서지영. 배우 유준상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3월 20일 진행된 <삼총사> 프레스콜에서, 배우 유준상은 나이와 관계된 질문을 받자 '혼자' 죽지 않고 배우 서지영을 은근슬쩍 끌어당겼다.

"(웃음) 그러니까요! (유)준상씨가, 원래 저보다 딱 한 살 아래거든요. 그런데 제일 처음 만났을 때 호칭 정리를 하는데, 제 친구들하고 다 친구를 먹었다는 거예요! '얘도 내 친구, 쟤도 내 친구'라길래 '아, 그래? 알았어?' 하면서 친구가 된 거죠. (웃음) 저는 처음에 빠른 생일인 줄 알았어요. 2월생이거나 뭐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무슨 뭐 적는 게 있어서 보니까 11월생인 거예요! 제가 12월생, 준상씨가 11월생, 학번도 한 학번 차이가 나거든요. '아니, 뭐야? 완전 1년 차이 나잖아?!' 그러니까 그때는 '아이~, 다 친구야. 다 친구' 이러더니! 나이를 먹으니까 한 살이라도 더 어려 보이고 싶나 봐요. 저보고 자꾸 '언니, 언니' 해요! '누나'라는 소리는 안 나오고 '지영 언니, 지영 언니' 이래요. '왜 인제 와서 그러냐?'고 제가…. (웃음)

옛날부터 공연을 같이 많이 해서, 이번에는 그러더라고요. '<프랑켄슈타인> 땐 누나였다가, <벤허> 땐 엄마였다가, 이번엔 애인…. 또 만나네요.' (웃음) 워낙 편하게 해주니까요. 무술 감독이나 안무 감독이 와서 '이걸 어떻게 맞출까요. 이렇게 할까요, 저렇게 할까요'라고 하면 '지영씨 하는 대로 다 맞춰. 지영씨가 제일 편해'라고 준상씨가 말해요. 그게 저는 너무 좋죠. 그만큼 오래 했다는 뜻이잖아요. 상대역도 많이 했었고, 굉장히 친한 친구 같은 느낌이 들어요. 진짜 오래된 남자 사람 친구? 되게 어릴 때부터 봐온 친구.

세월이 드니까 친구가 나은 것 같아요. 준상씨한테 누나 소리 들으면 조금 징그러울 것 같고…. (웃음) 저희 연출하고도 워낙 친해요. 연출님하고 오히려 애인이라 그래, 두 분이. 한 번 만나면 둘이 수다의 장을, 아주 그냥, 집에를 못 가게 해. (웃음) 이제는 좀 가족 같죠. 못 보면 서로 섭섭하고 그래요. 이번에 <프랑켄슈타인>을 같이 못 하게 돼서 너무 서운해요. 이번에 사정이 있어서 준상씨가 참여를 못 하거든요. <삼총사> 연습 때 제가 '이럴 거야?' 그러면서 따졌더니 또 '언니~ 내가 너무 안타깝네. 내가 <프랑켄슈타인>을 못 하니 너무 안타까워' 그러더라고요. 대신 '<프랑켄슈타인>도 10주년에 초연 배우들끼리 하면 너무 재밌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어휴, <프랑켄슈타인> 10주년 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는데, 노래를 다 가성으로 부르지 않는 한…. 내가 못할 듯?' 막 그랬죠. (웃음)"

2014년에 초연 공연을 올렸던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2023년에 10주년을 맞는다. 앞으로 5년 남은 셈. 무대를 사랑한 선배 배우로서, 자기 관리를 꾸준히 해온 이 배우들이 10주년 공연에서 제 역할을 해낸다면 그것만으로도 기념비적인 무대가 되지 않을까. 그날을 감히 상상해 본다.


삼총사 밀라디 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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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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