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악원 서초 30년 기념공연 <성주야 성주로구나> 포스터

국립국악원 서초 30년 기념공연 <성주야 성주로구나> 포스터 ⓒ 국립국악원


군 제대해 복학했던 1991년 2학기, 전공과목을 가르쳤던 다니엘 키스터 신부님과 인연을 맺었다. 어느 날 신부님을 뵈러 사제관에 갔는데, 어려운 책(한자가 가득 적혀 있는)을 들고 나에게 읽어달라고 하셨다. 전통 굿에 대한 책이었고 동해안 별신굿 내용도 있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외국인 신부님이 왜 이런 책을 읽는지 신기했고 책을 읽어 드리면서도 나도 잘 모르는 부분을 읽어드리게 돼 어쩐지 찜찜했던 기억이 난다.

지난 6일 국립국악원에서 <성주야 성주로구나(이하 성주야)>라는 공연을 봤다. 홈페이지에는 '성주굿 음악을 통한 신명의 무대'라고 소개돼 있었다. 나는 성주굿이 '진도 씻김굿'처럼 굿의 일종이거니 하고 공연을 예약했다.

한국인인 나보다 전통굿에 대해 더 잘 아셨던 교수님

이 공연을 보면서 왜 27년 전의 키스터 신부님이 생각났을까? 인터넷에서 '다니엘 키스터'와 '전통 굿'이라고 검색하니, 키스터 신부님의 논문인 '별신굿의 미학성(Aesthetics of Pyolshin-kut)'이라는 논문이 나왔다. 한국무속학회에 2000년에 등재된 논문이다. 초로에 접어든 지 오래인 교수님은 한국의 전통 굿에 관심을 가지고 굿판이 벌어지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셨던 것으로 기억난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다. 한국인인 나는 굿에 대하여 무지했는데, 외국인이 한국의 전통을 더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당시 나는 우리 것에 무지한 데 대해서도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국립국악원이 서울 서초에 온 지 30년을 기념해 민속악단이 준비한 <성주야>는 우리나라 각 지역(경기, 서도, 남도)의 성주굿을 선보였다. 이를 통해 30년간 무사 안녕한 국립국악원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의 100년의 번창함을 기원하고, 국민들과 기쁨을 같이 하고자 만든 자리였다.

굿판도 자주 보고 들어야 흥이 나고 익숙할 터인데, 경기굿과 서도굿은 처음 보는 것이라 마치 외국 공연을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잠시 시선을 돌려서 주위를 보니 젊은이들은 흥겹게 즐기기보다 구경꾼처럼 관조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나이 많은 분들은 흥이 나서 박수를 치면서 참여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우리 전통문화 굿과 멀어진 현실

 지난 6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애서 민속 굿 공연 <성주야 성주로구나>가 진행됐다.

지난 6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애서 민속 굿 공연 <성주야 성주로구나>가 진행됐다. ⓒ 김용진


우리는 어느새 굿과 너무 멀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지난 1월초에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굿 공연이 있었다. 당시 관객들의 무병장수를 빌어주는 대목에서 굿을 공연하는 사람이 "저는 진짜 무당이 아닙니다"라는 말을 해야 할 만큼 코미디 같은 상황도 있었다. 천 년이 훨씬 넘게 이어져 온 굿판이, 아니 수천 년 넘게 이어져 온 샤머니즘은 어느새 미신으로 전락했다. 마치 서양에서 들어온 유일신을 믿으면 좀 더 개명한 것이고 무당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아직 미신에 빠진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을 우리는 받는다. 생각해보면 무당은 제사장이었고 옛날 제정일치 시대에는 제사장이 가장 존경을 받고 위엄을 가진 사람이지 않은가.

<성주야>는 우리 굿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줬다. 타악기인 큰북(대고)과 15명이 장구(설장구)를 치면서 문을 연 공연은 경기굿과 서도굿에 이어 그나마 익숙한 남도굿에서 어깨가 들썩거렸고, 대동굿과 마지막 사물놀이패의 판굿으로 절정에 빠질 수 있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흥보가의 '집터 잡아주는 대목', 사자놀이, 광대의 줄타기 놀이 등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장기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화려한 무대였다. 성악단과 기악단이 경기굿과 서도굿, 그리고 남도굿의 창과 음악을 배워서 멋지게 들려주었다. 무당처럼 폴짝폴짝 뛰기도 하고, 화려한 복장을 갖추어 멋있게 춤을 추며 사라져 가는 전통 굿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주는 공연이었다.

공연 중 주위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보면서, '어머니를 모시고 올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지만, '성주야'를 보셨더라면, 어린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아무래도 굿을 보고 자란 어른 세대와 내 옆에 있던 대학생과는 받아들이는 게 달랐을 것이다. 국립국악원이 앞으로도 세대를 잇는 멋진 징검다리를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용진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성주야 성주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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