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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은 영국계 철학자이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으나 영국 철학계에서 활동하고 인정받는다. 철학 전공자가 아닌데도 논리학・심리학・수학・언어학 분야에서 철학을 펼친 괴짜다. 금세기 최고라는 소리도 듣는다. <비트겐슈타인 회상록>은 그와 가깝게 지낸 지인들이 자신의 과거에 깃든 그의 괴짜스러움을 현재에 재생시키고 있다. 그걸 엮은이는 제자이자 친구로서 유고(遺稿)를 관리하는 러시 리스다. 

나는 읽는 중에 비트겐슈타인을 부러워한다. 이중 국적자로서 맘 내키는 대로 살아 부러운 게 아니다. 건축학・항공학・음악 등의 분야에서마저 전문가 뺨치게 해박함이 부러운 것도 아니다. 지인들이나 학생들에 대해 "억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카리스마적 존재인데도, 그의 임종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달려오거나 고인이 된 그를 생생하게 재현하는 곁이 많은 관계가 부러운 것이다.

<비트겐슈타인 회상록> 표지
 <비트겐슈타인 회상록> 표지
ⓒ 필로소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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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인생의 추수 여부를 헤아릴 수 있는 척도다. <비트겐슈타인 회상록>은 큰누이, 러시아어 개인교사, 또래 교수, 친구 같은 제자 등이 저자가 되어 완성한 비트겐슈타인의 몽타주라 할 수 있다. 어떻게 만나 무엇을 나누었느냐는 각자 다르지만, 그들은 일관되게 그가 안긴 양가적 곤혹감을 증언한다. 직설적으로 가차없이 의견을 날리곤 해 아팠던, 그러나 배려심 깊은 순수함에 매혹되었던 순간들을 쏟아낸다.

그 몽타주는 비트겐슈타인의 일상이 그의 글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철학적 사유, 일상적 탈속성과 엄격함, 영적 추구 등이 비트겐슈타인을 구성하면서 삶 속에서 부단히 발효하고 진화한다. 그 독보적인 삶이 외롭지 않았다니 놀랍다. 저자들은 저마다 구체적 사건과 일화를 곁들여 친구가 많았던 그의 심층적 관계를 예시한다. 그 회상의 객관화가 책읽기의 재미를 더한다.

그 중 철학적 관계의 백미는 러시 리스의 '후기'다. 저자들 간에도 의견이 분분했던 비트겐슈타인의 "고백"에 대해 러시 리스는 비트겐슈타인의 개인적 기록도 들추며 개연성 있게 아퀴 짓는다. "고백"은 비트겐슈타인이 자기의 가식이라 밝힌 오래전 부인(否認) 행위인데, 러시 리스는 스승의 남다름을 익히 아는 제자이자 친구로서 여러 차원을 두루 살펴 치우침 없이 해석함으로써 스승의 철학적 지평을 확장한다.

<비트겐슈타인 회상록>을 덮으며 비트겐슈타인의 삶을 주목한다. 자기와의 약속을 철저히 지켜 평소 허튼 생각이나 헛소리가 없는 점, 육체노동을 중시해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여러 직업에 종사한 점, 누구든 본성대로 살 것을 역설하면서도 절친들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그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심층적 관계를 맺은 점, 늘 철학적 사유 세계에 잠겨 있으면서도 한 번의 대화로 낯선 이들의 마음을 쉽게 사로잡을 만큼 대상에 집중하는 점 등이다.

그러느라 비트겐슈타인은 진정한 의미의 탐미주의자가 되었으리라. 1차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병역면제 대상임에도 자원입대해 험지를 향하고, 전쟁이 끝나 돌아와서는 막대한 재산을 형제들에게 내주고 죽을 때까지 금욕적 생활을 꾸린 자유의지로 스스로를 질료로 삼아 치열하게 연구하며 자유를 구했기에 그에게는 "자아와 초자아 사이의 지각할 수 있는 분열이 없었다."

철학은 삶의 장식이 아니다. 새삼 그걸 일깨운 비트겐슈타인의 향기가 반가운 봄날이다.


비트겐슈타인 회상록

헤르미네 비트겐슈타인 외 지음, 러시 리스 엮음, 이윤.서민아 옮김, 필로소픽(2017)


태그:#비트겐슈타인 회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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