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그날 이후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고원인은 오리무중입니다. 그 사이 세월호 참사를 조망한 여러 영화들이 나왔고, 또 나올 예정입니다. <오마이스타>는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이하며 이 사건을 기억하고 다루는 영화들을 차례로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오멸 감독

관객들에겐 <지슬>로 잘 알려진 오멸 감독이 세월호 참사를 다룬 <눈꺼풀>로 관객들과 만난다. 2015년 부산영화제에 상영됐으나 이후 배급사를 찾지못했고, 이제야 빛을 보게 됐다. ⓒ 이정민


참사가 있던 4년 전 그날 무렵, 오멸 감독 역시 다른 쪽에서 고충을 겪고 있었다. 제주 4.3 희생자를 위무하는 영화 <지슬> 이후 그에게도 크고 작은 일들이 있던 때였다. 당시 영화는 예상치 못한 흥행을 거뒀지만 그 수입을 고스란히 바친 차기작 <하늘의 황금마차>는 빛을 보지 못했다. 그 와중에 이명박-박근혜 정부 주도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각종 지원에서 멀어져야 했다. '제주4.3사건을 다룬 진보성향 감독'이란 게 문제였다.

"<지슬>이 잘된 게 제겐 후폭풍이었다"며 오멸 감독이 당시 기억을 회상했다. 그러던 차 접했던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나 힘든 게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라며 오멸 감독은 며칠 간 잠을 이루지 못한다.

"젊었을 때의 실패는 인생의 경험으로 생각하고 극복할 수 있지만 나이가 좀 들었을 때의 실패는 마치 인생의 실패처럼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경제적으로 한참 어려웠을 때 사고 소식을 접했다. '내가 아프다고 얘기할 자격이 있나?' 스스로에게 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사고 이후) 3일 간 지켜보다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은 상태에서 관련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영혼이 잠시 들렀다 가는 섬

그렇게 탄생한 영화가 <눈꺼풀>이다. 저승에 가기 전 영혼이 잠시 떡을 먹기 위해 들른다는 미륵도와 그 섬을 홀로 지키며 떡을 빚는 노인의 이야기.

초고를 완성하자마자 오멸 감독은 지도를 펼쳤다. 참사가 발생한 진도 앞바다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진 정반대 지점을 짚었고, 배가 드나들지 않는 한 무인도를 발견했다. 곧바로 촬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시작 날짜를 기준으로 하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첫 번째 영화가 된 셈이었다. 

 영화 <눈꺼풀> 스틸컷.

영화 <눈꺼풀>의 한 장면. ⓒ 자파리필름


"영화 소개에선 '미륵도'라고 돼 있지만 다른 이름이 있는 섬이다. 공개하면 호기심에 그 섬을 사람들이 찾아갈까봐 밝히진 않겠다. 진도와 반대 방향 끝에 있는 곳이다. 소리 소문 없이 촬영하기 위해 반대 쪽 섬을 찾았고, 그곳에 도착했을 때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너무 흡사해서 준비된 장소라는 느낌을 받았다. 빈 집이 몇 채 있고, 가끔 낚시꾼들이 들렀다 가는 그런 섬이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영화라는 이야기는 유가족은 물론이고 주변에 하지 않은 채였다. 완성 후 이듬해인 2015년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됐지만 그전까지 매우 조심해야 할 영화라는 점을 누구보다 감독은 잘 알고 있었다. "이 참사를 두고 이념싸움으로 몰아가는 과정이 있었다"며 "분명 참사를 다룸에 있어서 조심해야 했고,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하기로 했다"고 오멸 감독은 말했다.

"침몰 이후 생긴 통증이라고 해야 하나. 그 참사에 대해 우리가 전혀 준비된 게 아니잖나. 오락가락 하는 정부의 실체를 알게 됐고, 구조가 실천되지 않는 모습을 생중계로 보면서 기도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3일 차쯤에 모든 게 확실해졌다. '말도 안 되는 참사가 벌어졌구나'. 미친 듯이 글을 썼다. 원고라는 게 쓰고자 해도 안 될 때가 있는데 <눈꺼풀>이란 시나리오는 나도 모르게 미친 듯이 써졌다. 4월 말에 초고가 나왔고 한 번도 수정하지 않고 3개월을 준비해서 8월 초 섬에 들어갔다."

 오멸 감독

ⓒ 이정민


쥐의 정체

이미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지만 감독은 극단 재산을 팔아 카메라를 마련했고, 단출하게 스태프를 모았다. "이 영화가 큰 역할을 하지 못하더라도 그런 어려움은 감수해야 했다"며 오 감독은 "이 영화는 제가 스스로에게 혹은 우리 주변에 질문하고자 만든 것"이라 전했다.

바다와 섬은 누구보다도 오멸 감독에게 익숙하다. 그가 제주 출신이기도 하고, 그간 만든 영화의 상당수가 바다와 제주를 얘기하고 있기도 하다. <눈꺼풀>은 섬을 있는 그대로 바라봤다. 인적이 없는 공간을 채운 뱀과 지네, 풍뎅이, 이름 모를 풀과 나무들. 카메라는 이 생명들을 천천히 훑으며 노인이 떡을 빚는 과정을 대비시킨다.

노인 역의 배우 문석범은 오멸 감독의 데뷔작 <어이그 저 귓것> 때부터 4작품을 함께 해온 베테랑이다. 분위기 자체로 수행자의 기운을 풍긴다. 문석범은 섬을 찾는 여러 영혼들에게 떡을 놓지만, 정작 불청객인 쥐 한 마리 때문에 자신이 아끼는 것들을 잃는다. 

"죽음을 말하기 위해 생명들을 담은 건데 자연스럽게 삶과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더라. 제한된 환경에서 힘들 게 지내겠다는 각오였는데 오히려 그런 환경이 저와 배우, 스태프들을 더 건강하게 만들더라.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게 우리에게 유리한 거였다. 식수를 만들기 위해 절벽을 타고 내려가 암반수를 받곤 했다. 오랫동안 섬을 찾던 한 낚시꾼이 우리더러 어떻게 그 물을 알았냐고 묻더라.

문석범 배우는 제가 하자고 하면 무조건 한다. 이런 작업을 좋아하기도 하고, 그 분의 공연도 제가 직접 연출했었다. 영화에 떡을 먹으러 오는 다른 배우들은 이상희 배우와 남자 고등학생을 빼곤 우리 스태프들이다. 배우들에겐 크게 디렉팅을 하진 않았다. 이야기 속 정서만 교류하려 했지. 우리끼리 그런 말을 했다. 쥐가 제일 연기를 잘했다고..."

 영화 <눈꺼풀> 촬영 당시 현장 사진.

영화 <눈꺼풀> 촬영 당시 현장 사진. ⓒ 자파리필름


 영화 <눈꺼풀> 촬영 당시 현장 사진.

영화 <눈꺼풀> 촬영 당시 현장 사진. ⓒ 자파리필름


이쯤에서 밝히는 영화 속 쥐의 정체. 2015년 부산영화제 상영 당시에도 관련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갑자기 노인 주변에 등장한 이 큰 쥐는 유일하게 노인이 의지하던 라디오를 부수고, 떡을 빚는 도구인 절구를 망가지게 하며, 우물물마저 오염시킨다. 이를 두고 오멸 감독은 '과거 시스템의 붕괴를 상징화 한 것'이라 설명한 바 있다. 

"애초 시나리오에 쥐가 있었다. 섬에 들어가기 전에 3만 원짜리 실험용 쥐를 샀다. 그 쥐를 키워가면서 다른 촬영을 진행했었는데 처음엔 과연 카메라에 잘 담을 수 있을까 걱정도 했다. 그런데 키우다 보니 스태프들과 친해져서 카메라를 무서워하지 않더라. 

절구의 파손은 결국 시스템의 붕괴다. 정성스럽게 떡을 빚던 절구는 우리 앞대에서 만들어진 시스템이잖나. 그걸 파괴한 쥐는 곧 한국의 자본주의를 상징한다. 명확히 MB라고 얘기할 순 없지만, 한국형 자본주의의 핵심은 개인적으로 건설이라고 생각했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 그 선두주자가 현대였지. 

그 현대에서 나온 양반이 대통령까지 됐다. 그러니까 달을 보며 절구를 찧던 한국적 정서는 사라지고 고속성장에 돈을 바라는 자본주의가 등장한 것이다. 우린 그 시스템의 붕괴를 마주할 기회가 없었다. 고속성장을 원한 건 국민들이었고, 그래서 그런 사람을 뽑은 것이니까. 개인적으론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될 때 붕괴를 예감했다. 그리고 박근혜까지 됐을 때 우리나라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나 생각하게 됐다."

위로의 감독, 그리고 바다

그 이명박, 박근혜 정권 하에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어 온 오멸 감독은 그들과 반대로 끊임없이 '바다'와 '위로'라는 화두를 품고 살았다. 제주 출신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오 감독은 자신만의 독특한 미학으로 4.3 희생자와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품고자 했다. 위로의 영화만으로 5년 이상의 세월을 보낸 셈이다. 하지만 <눈꺼풀>은 4년이 되도록 개봉하지 못하다가 이제야 빛을 보게 됐다. 역시 '블랙리스트' 때문이었다.

"이런 작업을 통해 저도 위로를 받는다. 누구는 제게 왜 이런 작업을 계속 하냐고 묻기도 했는데 예술가가 돈 버는 것만 할 순 없잖나. 흥행하기 위해 영화를 찍는 건 아니다.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중간 단계가 있다. 우린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현실에선 실천하지 않는다. <눈꺼풀>이 이제야 개봉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일제시대도 아니고 민주화운동 시기도 아닌데 시대적이라는 단어를 쓰기 참 그렇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눈치를 보게 하는 시대였다. 그래서 저 같은 경우는 더욱 작업을 하려고 했다. 지금 또 다른 세월호 참사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블랙리스트 피해에 대해 정확히 얘기하면 제가 구차해진다. 다만 화가 엄청 났다. 개봉은 물론이고 다른 영화 투자에도 문제가 있었다. 이런 얘길 많이 하신다. 예술가들이 엄살 피운다 혹은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없는 거 아니냐. 근데 보수정권 9년이었잖나. 강산이 바뀌는 시간이다. 특히 예술가는 경제적 문제에선 취약하기에 지원을 받거나 해서 작업을 이어가곤 한다. 동시에 지난 9년 간 일부 예술가는 자본주의에 포섭되기도 했다. 생계를 이어가야 하니까.   

지금의 시스템이 그런 걸 조장하기도 했다. 일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런 의미에서) 정권이 바뀐다고 모든 게 좋아질 수는 없다고 본다. 인생이 바뀌면 태도가 바뀐다고들 하니까. 세월호 참사가 지금 시점에서 어떤 큰 변화를 가져왔듯, 블랙리스트 역시 몇 년 뒤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저조차도 힘겨운 시간을 지나다 보니 영화 자체를 안 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블랙리스트 정책, 성공했다고 본다. 예술가들을 눈치 보게 했고, 적극적인 행위를 막았으니 말이다. 우리가 더 모질 게 그걸 극복하느냐가 숙제고, 그 시행착오를 어떻게 줄일지가 숙제다."

 오멸 감독

ⓒ 이정민


사회의 일원으로서

인터뷰 중 언급한 오멸 감독의 또 다른 세월호 영화는 생존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미 잠수사를 소재로 한 <김관홍> 등의 작업이 공개됐으나 제작사와의 문제로 지지부진 한 상황. 그럼에도 오멸 감독은 "좋든 나쁘든 세월호를 얘기하는 작품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사에 어떻게 대처할지 지표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얘기해야 한다. 물론 조심해야 하는 건 있다. 유가족 마음에 생채기를 주거나 그런 면에서 신중해야 한다. 개인적으론 어떤 식으로든 세월호 이야기는 재생산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치유하려 해도 치유될 수 없는 상처기에 더욱 그렇다.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면 상업영화로도 나오겠지. 하지만 그 전에 이 참사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멸 감독에게 <눈꺼풀>은 질문하는 영화다. 그는 "이 영화를 모든 분이 볼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보신 분들에겐 그동안 망각하거나 멀어졌던 사건을 떠올리며 다시 사람들과 이야기를 시작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오멸 눈꺼풀 세월호 유가족 지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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