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 오멸 감독의 단편 영화 '파미르' 한 장면.

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 오멸 감독의 단편 영화 '파미르' 한 장면. ⓒ JTBC


<파미르>는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단편 영화다. 이 영화를 만든 오멸 감독은 앞선 2013년에 제주도 4.3 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아래 <지슬>)로 국내외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다. 감독의 이름은 생소하지만, 이 단편적인 사실로 우리는 이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아주 조금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을 통해 제작 및 방영되었고, 그렇기에 더 많은 대중들에게 세월호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영화의 전반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수학여행 당일, 세준(김정환 분)과 성철(류성록 분)은 집 앞에서 만나 함께 등교한다. 그러나 하교길에 오른 건 성철뿐이었다. 성철은 세준이 생전에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파미르를 향해 떠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남겨진 자전거의 의미

 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 오멸 감독의 단편 영화 '파미르' 한 장면.

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 오멸 감독의 단편 영화 '파미르' 한 장면. ⓒ JTBC


이 영화에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영화 도입부부터 홀로 남겨지는 세준의 자전거다. 이 영화에서 클로즈업 숏은 오직 자전거를 포착할 때만 사용된다. 클로즈업이 해당 사물에 대한 강한 암시를 의미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의미가 깊다.

수학여행을 떠난 후, 주인을 잃고 홀로 남겨진 자전거는 그 자체로 '상실의 기표'다. 영화는 자전거를 뒤로하고 떠나는 두 사람의 모습을 슬로우 모션으로 잡고, 이윽고 홀로 남겨진 자전거를 타임 랩스(타임 랩스: 카메라를 한 자리에 고정한 채, 최소 하루 이상의 시간을 빠르게 보여주는 기법)로 포착한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장면은 모두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기에 천천히 흘렀고, 세월호 이후의 시간은 눈 깜짝할 새 흘러가 버렸다.

타임랩스에서 점점 녹이 슬고 바스라져 가는 자전거는 세월호를 은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성철로 하여금 죽은 세준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배는 침몰해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지만 자전거는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다. 그럼에도 성철이 그 자전거를 회수하지 못했던 것은 죽은 세준과 함께 물 속에 수몰된 것과 마찬가지로 살아갔기 때문이다.

성철은 세준이 생전에 가고 싶어 하던 '파미르 고원'의 꿈을 대신 이루어 주고자 한다. 우리에게도 생소한 장소인 '파미르 고원'은, 고등학생 신분의 세준에게는 더욱 이룰 수 없는 욕망처럼 보였을 것이다. 혼자 남겨진 성철에게도 '세준'을 향한 그리움은 결코 충족될 수 없다. 그렇기에 성철은 세준을 대신할 꿈을 이루어 주기 위해, 파미르 고원을 향해 떠나야만 한다.

 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 오멸 감독의 단편 영화 '파미르' 한 장면.

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 오멸 감독의 단편 영화 '파미르' 한 장면. ⓒ JTBC


영화는 파미르 고원을 기점으로 1부와 2부로 나누어진다. 성철은 세준의 자전거를 이끌고 먼 이국, 파미르에 도착하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성철이 자전거를 끌고 다니나, 사실은 그 자전거(세준)가 성철을 파미르로 이끈 것처럼 보인다. 세준은 아직 죽음에 머물러 있지만 성철은 살아있는 사람이기에 멈춰 있을 수 없다.

성철은 웃통을 벗은 상태로 자전거와 함께 강에 뛰어든다. 성철은 그 차가운 물에서 죽은 세준과 동일시 되는 것처럼 보인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성철은 이미 그날 이전의 성철이 될 수 없다. 파미르에서 강에 몸을 던진 성철은 산 자로서 새 출발을 할 수 있을까.

파미르 고원에서 만난 아이, 왜 돌을 던질까

 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 오멸 감독의 단편 영화 '파미르' 한 장면.

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 오멸 감독의 단편 영화 '파미르' 한 장면. ⓒ JTBC


파미르 고원에서 성철은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 성철은 자전거 사고로 의식을 잃었고 눈을 떠보면 어떤 부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말이 통하지 않지만 남자가 내비치는 호의가 달갑다. 반면 남자의 아들은 자신에게 돌을 던지며 적대시 한다. 이에 남자는 머리를 맞아 피가 흐르는 성철을 집에 데려가게 된다. 그곳에서 남자는 '얼마 전에도 성철 같은 남성이 왔었고, 아들과 친해질 무렵 홀연히 떠나버려 아들이 성철을 경계하는 것'이라 말해준다. 하지만 이국에서 말이 통하지 않으니 성철은 알아들을 수 없다. 성철은 자신에게 계속해 돌을 던지는 아이에게 맞받아 돌을 던진다.

그런데 갑자기 화면이 바뀌고 사고를 당한 채 누워있는 성철이 보인다. 낯선 부자와의 만남은 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하다. '성철 같은 남성'이 왔었고 떠나갔다는 말은, 성철의 단짝인 세준이 이곳에 왔었고 금세 떠나갔다는 의미일까. 세준의 영혼이 성철 보다 먼저 파미르에 왔다가 남자의 아들을 만나고 간 것일까. 확실한 것은 성철은 이제 영영 세준을 다시 마주할 수 없다는 점이다.

 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 오멸 감독의 단편 영화 '파미르' 한 장면.

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 오멸 감독의 단편 영화 '파미르' 한 장면. ⓒ JTBC


2부의 도입부에서 파미르 고원 한복판에 성철이 돌을 던진다. 그리고 성철의 꿈에서도 남자의 아들이 돌을 던졌다. 이때 두 사람이 돌을 던지는 이유는 떠나간 사람에 대한 분노다. 하지만 떠나간 사람은 죄가 없으니 그들의 행동은 합당하지 못하다. 오히려 그 분노는 떠나감을 막지 못한 자신에게 대한 원망이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했더라면 이별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후회감은 돌의 형태로 자신에게 날아온다. 어쩌면 이는 성철 자신에 대한 원망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 꼬마는 성철 자신이고, 따라서 스스로 자해하는 형국이다.

파미르에 다녀온 이후 성철은 성공적으로 상실을 극복했을 지도 모르겠다. 성철은 꿈에서 깨어나기 직전, 꼬마(남자의 아들)에게 이렇게 한탄했다. "갈 거라고. 간다고." 이 말을 들은 꼬마는 언덕 너머로 사라지고, 성철은 꿈에서 깨어난다. 만약 그 꼬마가 죽은 세준을 놓지 못하는 성철을 대변하는 것이라면, 그 꼬마를 떠나 보내면서 성철은 비로소 상실을 딛고 일어나게 되는 게 아닐까.

불친절하다고? 이 영화의 진짜 목적은

 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 오멸 감독의 단편 영화 '파미르' 한 장면.

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 오멸 감독의 단편 영화 '파미르' 한 장면. ⓒ JTBC


혹자는 이 영화가 세월호 사건의 진행과 결말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영화란 사건을 친절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일면 합당하다. 만약 세월호 참사의 전말을 잘 모르는 외국인이 이 영화를 본다면, 깊게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분명 세월호 참사는 한국인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참사에 공감하지 않으려 한다. 영화는 사회 문제를 스크린 위에 재현해 공감을 이끌어 내는 힘이 있다. 그런 점에서 <파미르>는 '반대편의 어떤 사람'을 위해 마련된 것일 지도 모르겠다. <파미르>는 우리와 사건을 공유하지만 의견이 다른 이들을 설득하는 과정에 있다. 진실을 마주하고도 외면한다면 감정에 대한 전달이 가장 큰 설득력을 지닌다.

만약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름답다면 그것 또한 영화 미학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파미르>는 충분히 아름다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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