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영화 <7년의 밤> 포스터.

영화 <7년의 밤> 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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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영화 <더 포스트> <레디 플레이어 원>를 선보인 스티브 스필버그 감독처럼 다양한 장르 모두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감독도 있지만, 한 장르나 소재에 특화된 감독도 있다. <쏘우> 시리즈의 제임스 완 감독은 공포, 스릴러 장르의 대가라 불리며, <걸어도 걸어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의 작품을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족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재능을 보인다. 영화 < 7년의 밤>을 연출한 추창민 감독은 어떨까?

나는 아직 추창민 감독이 그 경계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놓치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의 작품을 연출했던 초창기에는 멜로, 드라마 장르에 새로운 인재가 나타난 게 아닐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그가 보여준 사극에서의 재능 역시 모자람이 없었다. 6년 만에 그가 들고 나타난 영화 < 7년의 밤>은 스릴러 장르로 정유정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 어쩌면 또 한 번의 도전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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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추창민 감독의 스릴러는 '절반의 완성' 정도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장르를 떠나 그의 모든 작품에서 강점이라 생각되는 스토리의 짜임새는 이번 작품에서도 초반부와 중반부를 아울러 밀도 있게 쌓여간다. 특히 영화를 이끌어가는 두 인물 최현수(류승룡 분), 오영제(장동건 분)의 캐릭터 설정과 행동의 근거가 촘촘하게 잘 마련되어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조연 안승환(송새벽 역)과 최서원(고경표 역)의 역할이 축소된 것도 사실이지만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으며 적절한 역할을 해낸다.

다만 주변 인물의 역할을 축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많은 이야기들이 수평적으로 나열되는 것은 몰입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보인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의 과거가 장면을 통해 설명된다. 현수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후반부까지, 그의 행동에 의문을 갖게 된다면 바로 이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느끼게 하지만 다소 늘어지는 부분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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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7년의 밤> 스틸 컷.

영화 <7년의 밤> 스틸 컷. ⓒ CJ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영제의 딸 오세령(이레 분)의 죽음을 중심축으로 크게 두 가지 흐름을 따라 전개된다. 그녀의 죽음을 통해 그릇된 소유욕과 이에 대한 복수를 진행하고자 하는 영제의 이야기가 하나. 사고로 인해 세령을 다치게 만든 것도 모자라 잘못을 숨기기 위해 살해한 뒤 영제의 복수 아래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현수의 이야기가 또 다른 하나. 두 이야기 사이에 승환과 현수의 아들 서원이 놓여있다.

극을 이끌어가는 현수와 영제가 서로 완전히 다른 환경에 놓여 있다는 점은 서로 충돌했을 때 사건을 발생시키는 요인이 된다. 이는 두 사람이 보이는 그릇된 부성애의 차이에도 영향을 준다(영제가 보여주는 것은 부성애라기보다 소유욕에 불과하지만 동일한 표현에 놓는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 두 차량이 나란히 속도를 내는 장면에서 영제는 꼼짝도 하지 않고 현수만 안달하는 부분 또한 두 사람의 차이를 선명히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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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직전의 차량 내부 장면에서 영제가 서원에게 털어놓는 이야기에는 그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모든 단서가 있다. 아내가 자신을 벗어나기 위해 딸까지 홀로 놔둔 채 도망쳤고 이를 증명하는 녹음 파일을 직접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자신을 좋아하게 되었을 것이라 이야기하는 장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현재의 상황과 무관하게 자신의 의지대로 소유해야만 하는 어긋난 소유욕을 설명하는 대사다. 딸의 죽음을 두고 복수를 하려는 이유도 우리가 이제껏 봐왔던 의도와는 조금 다르다.

그가 보여주는 것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상실감과 슬픔에 대한 복수가 아닌, 내 것을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잃어버리게 한 것에 대한 복수다. 그의 복수가 당사자인 현수가 아니라 그의 아들인 서원을 향했던 까닭이다. 그러니까 그의 진짜 폭력성은 가학을 넘어 대상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사유화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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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현수의 부성애는 아들이 자신을 닮지 않기를, 자신이 아버지를 닮지 않기를 바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내인 은주(문정희 역)를 때리기 전 자신을 바라보는 아들의 눈빛에 무너지는 것은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받은 폭행의 기억을 닮아버린 자신을 떠올렸기 때문이며, 수문을 열면 마을의 모든 사람이 수장된다는 이야길 듣고도 아들만을 살리고자 했던 것 역시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물론 과거의 상처나 트라우마로부터 발생되는 결정이라고 해도 행위는 비이성적이고 결정적인 손실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현수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아들에게 모든 것을 고하는 현수의 말대로 그 선택은 아버지라는 존재로서 할 수밖에 없었던 선택일지도 모르겠으나, 그 모든 무게 역시 서원에게 남게 되리라는 것을 외면한 대가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영화 <7년의 밤> 스틸 컷.

영화 <7년의 밤> 스틸 컷. ⓒ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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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에 비해 역할이 축소된 승환은 그 비중이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수와 영제, 두 인물의 연결고리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작품 속 물리적 위치 상으로도 두 사람의 중간에 서 있는 인물이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세령을 외면한 것으로 그 죽음에 간접적 영향을 끼친 인물이기도 하다. 또 그로 인해 반대로 서원에게는 손을 내밀 수 있었던 인물이 바로 승환이다. 세령의 요청을 거절한 이유가 이전의 영제의 행동 때문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영제는 현수에게 복수가 아닌 도움을 승환을 통해 준 셈이다. 영화 속 마을 사람들 모두가 수장된 마을이 있는 댐을 기피하려고 하는 것과 달리 계속해서 그 속을 들여다보는 승환의 행동 역시 어떤 의미를 갖는다. 자신이 외면했던 과거가 낳았을지도 모를 비극을 결코 외면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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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창민 감독은 적어도 작품 속 인물들이 서로의 다른 입장에서 부딪치는 장면을 잘 이해하고 표현하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전작에 비해 다소 헐겁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이번 작품 < 7년의 밤>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이 지점이다.

그래서일까?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무속과 주술적 요소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을이 수몰될 것을 예견하는 무녀의 역할이나 죽은 세령을 위해 치러지는 굿과 같은 요소들이 이 영화에 꼭 필요해서라기보다는 이러한 장르에 마땅히 삽입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구성된 장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외부적인 장치로부터 긴장감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의 심리에 더욱 몰입할 수 있는 연출이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으로도 충분하지만 조금 더 욕심을 내고 싶은 정도의 아쉬움이다.

영화 무비 7년의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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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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