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사건과 강정 해군기지 사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비념> 포스터

제주 4.3 사건과 강정 해군기지 사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비념> 포스터 ⓒ 인디스토리


'비념'의 뜻은 굿보다 규모가 작은 의식인 '비손'의 제주도 방언이다. 제주도 고유의 영혼을 달래는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비념이 등장하기도 하고, 비념에 쓰이는 음악도 영화 곳곳에서 흐른다. 원혼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동네 집에서 모여 고유의 의식을 치른다. 비념의 장면은 신성하기도 하면서 흥미롭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영화 <비념>(2012)은 제주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반공주의를 이유로 국가가 무차별적인 살인을 저지른 제주 4.3 사건과 지난 2011년 제주 강정마을에서 벌어진 해군기지 논란을 다룬다. 4.3 사건 당시 군대는 민간인까지 진압하고 사살했다. 극악무도한 사건이었지만 당시 공포 분위기 속에서 역사는 은폐되고 왜곡되었다.

은폐하고 감췄던 아픈 역사

 제주 4.3을 다룬 영화 <비념>의 한 장면.

제주 4.3을 다룬 영화 <비념>의 한 장면. ⓒ 인디스토리


이승만 정부부터 군부 독재정부 때까지 4.3 사건은 의도적으로 축소되었고 세상에 없는 역사로 치부되었다. 민주화 운동 당시 진상 규명에 대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김대중 정부는 "20세기에 일어난 일을 21세기로 넘길 수 없다"며 4.3 특별법을 제정했다. 이후 제주 4.3진상조사보고서가 정식으로 정부의 보고서로 채택되면서 고통의 역사가 공식적으로 발언의 기회를 얻게 됐다.

은폐하고 감춘다고 해서 명백한 가해 행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사건의 피해자와 목격자가 여전히 삶을 영위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공식 문서는 없지만 끊임없이 살아있는 증언들이 나왔다. 아주 오래된 일이지만 그날의 기억을 잊을 수 없었던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었다.

그날의 기억을 품고 있는 한 명 한 명의 사람들을 영화는 만난다. 그들의 이야기는 4.3 사건이라고 간략하게 치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모두는 다른 슬픔과 아픔들을 지닌 채로 살아가고 있었다. 고통은 오랜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로는 치유되지 않는다. 실제로 그들과 죽은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 국가가 지금까지 했던 노력은 거의 없었다. 사건을 통해 고통 받은 사람들은 스스로 감내해야 했고, 억울한 사연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채로 끙끙 앓고 지내야 했다.

"누구에게 뭐 하소연 할 데도 없고, 말을 섣불리 꺼내면은 위험하고. 아버지 어머니가 그때 당시에 도피 가족이라는 명분으로 희생당했으니까. 나도 뭐 그런 말을 많이 들었는데 폭도새끼."

눈 앞에서 살인이 벌어졌지만, 총을 쏘는 군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무장하지 않은 수많은 민간인들도 사살의 대상이었다. 죽음을 운 좋게 피한 사람들도 사건 이후에도 그저 가족, 친지라는 이유로 쫓겨 다녀야 했다. 실제로 사건이 벌어지고 오랜 시간이 흘러서도 희생자의 가족들은 지속적인 감시를 당해야 했고, 삶 속에서 여러 가지 제약 조건을 달고 살아야 했다.

국가는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제주 4.3을 다룬 영화 <비념>의 한 장면.

제주 4.3을 다룬 영화 <비념>의 한 장면. ⓒ 인디스토리


사건을 겪고 기억하는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다. 정부에 낙인 찍힌 사람들은 제주도 내에서 환영받지 못한 존재로 되면서 고향을 떠나기도 했다. 실제로 영화는 일본에 건너간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며, 고향이 타향이 돼야만 했고 타향이 고향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사정을 듣는다. 그들은 한국에서 보낸 참혹한 기억들을 곱씹으며 애통해했다.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하는 일은 과거를 반추하면서 원혼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국가가 의도적으로 외면한 역사였지만, 그들은 아주 선명하게 기억하면서 자신들의 방식으로 원혼을 달래주는 일을 평생 수행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더해서 유해를 찾지 못했다는 죄책감마저 지울 텐가? 영화는 국가에 질문하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말을 건다.

자연스럽게 현재로 거슬러 오면서, 제주도는 해군기지 설립이라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한다. 국가가 국민을 일방적으로 쫓고, 사람들이 살았던 마을을 파괴하는 모습이 몇십 년 흘렀지만, 국가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았음을 폭로한다. 기지 설립을 위해 폭파한 구럼비바위는 제주도에서 영혼이 깃든 신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신성하게 여긴 구럼비바위의 파괴는 무참한 역사의 반복이다. 국민을 보호하지 않고, 진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을 제주도민들은 또 한 번 지켜봐야만 했다.

 제주 4.3을 다룬 영화 <비념>의 한 장면.

제주 4.3을 다룬 영화 <비념>의 한 장면. ⓒ 인디스토리


영화는 오랜 시간을 경유한다. 그 속에서 현재 제주도의 사계절 풍경도 중간중간 등장한다. 내가 알던 제주도이기도 했고, 내가 알지 못하는 제주도이기도 했다. 그곳에는 아름다움과 슬픔이 총체적으로 공존하고 있었다. 제주도는 영화를 보는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고, 나는 제주도의 눈을 오랫동안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증언하는 사람들 속에서 역사는 빚어진다. 영화는 증언자들의 말을 또렷이 새긴다. 과거를 직시하면서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의 것들을 만지작거린다. 원혼을 달래주는 몫이 죽음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4.3 사건을 구체적으로 바라보면서, 자신의 방식으로 비념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치유마저도 그들이 알아서 해야 한다고 할 수는 없다. 다층적인 노력으로 훼손된 역사를 사실에 입각해서 재건해야 하며, 4.3 사건을 끌어 안고 사는 사람들의 치유에 대해서 우리 사회는 함께 생각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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