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가 세상을 흔들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을 드러내고 피해를 폭로하자, 오랜 기간 지위와 유명세를 이용해 여성들을 억압하던 이들의 추악함도 세상 밖으로 드러났다. 폭로 그 후. 가해자 몇 명을 축출하면, 여성들은 성폭력의 위험에서 자유로운 세상에서 일할 수 있을까? <오마이뉴스>는 미투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자말]
"법으로 해결되지 않고 기대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니까 개인이 자신의 존재를 걸고 폭로하는 것이다. 서지현 검사의 '미투'가 사람들에게 큰 기폭제가 된 건 '저 정도의 권력과 지위 그리고 수사기소권을 가진 검사조차도 뉴스룸에 앉아야 이야기를 들어주는구나'라는 인식이 있었다고 본다. 검사가 나와 앉아 있으면 말 다 한 것이지 않나?" (여성학자 권김현영)

"법으로 해결되지도 않고 기대할 것도 없다." 지난 3월 <오마이뉴스>가 문화예술계 내 여성 종사자 100여 명을 대상으로 자체적으로 실시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10명이 넘는 여성들이 '미투 운동'의 해결책을 묻는 질문에 성범죄 처벌 강화라고 답했다. 이는 다수의 여성들이 현재 일어나는 성범죄를 법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여긴다는 신호일 것이다. 

<오마이뉴스> 실태 조사에 참여한 한 여성 종사자는 이렇게 되물었다.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폭로가 아닌 어떤 방식으로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법은 너무 미미하고 가해자가 법망을 피해갈 수 있는 가능성이 많고 고발한 여성은 사실을 이야기했음에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에 걸리고 대중에게는 꽃뱀으로 낙인 찍히게 됩니다. 그렇다면 피해자에게는 어떤 선택지가 있을까요?"

 미투

미투ⓒ pixabay


피해자들이 이름과 얼굴을 드러내고 대중들 앞에 나서서 자신의 성폭력 사실을 고백하는 것에는 위험이 따른다. 하지만 몇몇 피해자는 그 결정을 선택했다. 이것은 지난 100일 가까이 벌어진 '미투 운동'의 흐름 중 하나다. 다수의 피해 여성들은 법적 분쟁을 1차적인 대응으로 택하지 않았다. 대신 이들은 개인 소셜 미디어나 언론사 제보를 통한 폭로를 택했다.

소위 "법적 해결"은 가해자의 언어가 되고 말았다. 피해자들이 나서서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며 '미투'를 말할 때 가해 지목인들은 "수사에 철저히 임하겠다"든지 "법적으로 해결하겠다"든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물론 사과를 하거나 자숙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해 지목인들은 법의 이름을 빌려 사건을 해결하고자 한다. 최근 폭로된 많은 성폭력 사건 또한 법적 분쟁 중이거나 대응을 준비 중이다.

<오마이뉴스>는 성폭력 사건을 담당했던 변호사들과 성폭력 사건에서 법률 지원을 담당했던 여성단체들의 목소리를 듣기로 했다. 논의 중인 성폭력 관련 법 개정 등 쟁점 현안에 대해 이들의 생각을 물었다.

"비동의 간음"

‘#Me Too 이 싸움의 끝은 우리가 바라는 세상과 닮아 있을 것’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337개 단체 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출범 기자회견에 참석해 성차별, 성폭력 근절을 촉구하는 카드섹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Me Too 이 싸움의 끝은 우리가 바라는 세상과 닮아 있을 것’한국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337개 단체 회원들이 지난 3월 1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출범 기자회견에 참석해 성차별, 성폭력 근절을 촉구하는 카드섹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유성호


많은 전문가들이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을 변화시키기 위해 '비동의 간음'에 대한 법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근본적으로 강간죄의 개념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 형법 제297조(강간)가 고쳐져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의원은 그간 형법상 '폭행 또는 협박'으로 돼있던 강간의 결정 요인을 '동의'로 바꾸자는 취지의 개정 법안을 지난 3월 20일 발의한 바 있다.

현재까지 형법 조문에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단순히 동의하지 않는 강간만으로는 처벌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성폭력 피해자가 죽을 힘을 다해 저항하지 않고서는 '강간죄' 성립이 되지 않았다.

이 조문을 개정해 "명백한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사람을 간음한 자는 5년 이상 유기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으로 바꾼다는 것. 펜실베니아주립대학교 강인규 교수는 10차례에 걸친 <오마이뉴스> 칼럼(http://omn.kr/omvr)을 통해 강간의 기준을 '항거'에서 '동의'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 변호사는 "해당 법 개정이 필요하긴 하지만 한국 사회가 '비동의 간음'이라는 개념에 대해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는지 모르겠다. 한국 남자들이 손 잡을 때 '나 손 잡아도 돼?' '키스해도 돼?' 이렇게 명시적인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건데 우리 사회가 과연 그럴 수 있는 사회일까?"라고 자문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한국 사회의 문화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피해자 대리인을 맡고 있는 오선희 변호사는 <오마이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최근 발생하는 성폭력 범죄의 해결 방식에 대한 고민을 전해왔다. 

"성폭력 범죄는 특히 한국 사회가 가진 모든 부분의 모순이 표출된 형태라 다루기 어렵다. 힘과 여성, 권력, 성에 대한 태도까지 결부돼 일어나는 문제다. 또 상대적으로 은밀하게 일어나는 범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강간을 당해도 피해자들은 똑같이 반응하지 않는다. 강간 후 신고하는 사람도 있지만 웃으면서 일하러 가는 사람도 있고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 성폭력 사안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성폭행 의혹' 안희정 전 도지사, 고개 숙여 사과 정무비서와 자신이 설립한 연구소 여직원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을 받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9일 오전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서 재조사에 앞서 국민들에게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성폭행 의혹' 안희정 전 도지사, 고개 숙여 사과정무비서와 자신이 설립한 연구소 여직원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을 받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지난 3월 19일 오전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서 재조사에 앞서 국민들에게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유성호


"법정에서 벌어지는 2차 가해"

그동안 유명 연예인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많이 맡아온 이은의 변호사의 경우 법 개정을 하면 좋지만 지금 있는 법이라도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변호사는 "있는 법도 활용하지 못해 범죄자를 그냥 풀어주고 있다"면서 "현행 법으로도 충분히 단죄 가능한 사건이 검사나 판사의 가치관 속에서 달리 해석돼 성폭력 형량이 낮아지게 된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 변호사는 "생색내기 쉬운 법 개정도 말할 수는 있는데 진짜 피해자를 울리는 건 법정에서 벌어지는 2차 가해다"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성폭력 피해 당사자가 법정에 서서 자신의 피해를 직접 호소해야 한다는 점이 문제다. 또 피해자를 신문하는 과정에서 검사들은 피해 사실을 자극적이거나 노골적으로 묘사하거나 '네가 달리 행동하면 성폭력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거 아니냐'는 식으로 말을 해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기도 한다.

여러 차례 성폭력 관련 재판을 방청한 경험이 있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 또한 마찬가지를 지적했다. 이 소장은 "아직도 법정에서 검사가 2차 가해에 해당하는 질문을 하고 있지 않나. 법만 개정돼 해결될 게 아니라 담당자들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변호사는 "성폭력 판결 역시 남자 검사나 남자 판사에 의해 형량이 정해진다"며 "가해자가 속한 집단에 피해자가 호소를 해서 가해자 집단으로부터 판단받아온 거다. 그런 부분에 대한 자성이 필요하다"고 꼬집기도 했다. 

공소시효와 사실 적시 명예훼손

눈 감은 이윤택 예술감독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열린 성추행 사실에 대한 사과 기자회견에서 사과의 말을 하기에 앞서 눈을 감은채 생각에 잠겨 있다.

▲ 눈 감은 이윤택 예술감독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지난 2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열린 성추행 사실에 대한 사과 기자회견에서 사과의 말을 하기에 앞서 눈을 감은채 생각에 잠겨 있다.ⓒ 이정민


'있는 법을 제대로 활용하면 된다'는 생각은 성폭력 범죄에 한해 공소시효를 폐지하자는 주장이나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폐지하자는 주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윤택 피해자의 공동 변호인단 중 한 사람인 김혜겸 변호사는 "공소시효를 폐지하기 보다 현재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일부 죄에 대해 공소시효의 적용을 배제시키고 있는 것을 확대시키거나 시효의 기한을 최대한 늘리는 방향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다. 공소시효를 처음 도입한 기존 취지가 있고 이를 무시하기는 어렵다는 것.

의원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오신환, 이언주, 윤종필 의원 등은 성폭력 범죄 관련 공소시효를 늘리는 법안을, 권칠승·신상진 의원 등은 성폭력 범죄일 경우 공소시효를 적용 배제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한편, 최근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없애달라는 청와대 청원을 넣으면서 해당 법안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이들은 사실에 따라 성폭력 피해 주장을 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이 될 수 있으니 이 법을 폐지해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성폭력 사건을 오래 담당했던 변호사들은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폐지하는 건 "위험하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공적인 사안의 경우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도록 법 자체를 보완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처벌되는 범위를 지금보다 좁게 해석해 공익 제보자들의 숨통을 틔워주자는 거다. 다른 변호사는 한국의 경우 다른 나라에 비해 인터넷 강국이고 그에 따른 인접성이 가까워 피해 정도가 클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없애는 것은 위험하다고 전했다. 이와 제310조 '위법성 조각 사유'를 확대하자는 이혜훈 의원안이 궤를 같이 한다.

이밖에도 김혜겸 변호사는 "고소를 할 때 형사 소송에서는 가명 조사가 가능하나 민사 소송을 진행하게 되면 무조건 실명으로 절차를 진행한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할 수 있도록 변경돼야 한다"고 전했다. 보통 많은 성폭력 사건의 경우 형사와 민사 소송이 같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형사 소송만 가명 조사가 된다면 실질적으로 그 취지가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는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익명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미투'는 (    )를 바꿀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함께해야 할 시간 '미투' 세계 여성의 날인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여성의 날 민주노총 전국 여성노동자대회에서 주최 측이 참가자들과 시민들에게 나눠주기 위한 미투 배지가 진열돼 있다.

▲ 지금은 우리가 함께해야 할 시간 '미투'세계 여성의 날인 지난 3월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여성의 날 민주노총 전국 여성노동자대회에서 주최 측이 참가자들과 시민들에게 나눠주기 위한 미투 배지가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이밖에도 <오마이뉴스> 실태 조사에 참여한 대중문화계 여성들은 '남녀임금차별금지법' 등을 제안했다. 관련 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남녀고용평등법 제8조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이미 존재하지만 현장에서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이런 문제 의식을 배경으로 이미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는 '페이미투(Pay METOO)'라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주장하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할리우드에서도 '페이미투'를 주장하는 연대가 활발하다.

얼마 전 개봉한 <어벤저스:인피니티워>에서 '닥터 스트레인지' 역할로 사랑받은 베네딕트 컴버베치는 지난 9일 영국 라디오타임스 인터뷰에서 "여배우들의 출연료가 남성들의 출연료와 동등하지 않을 경우 배역을 맡지 않겠다고 말하는 게 옳다"고 답한 바 있다. 같은 날 열린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심사위원장이자 배우인 케이트 블란쳇은 "여성들이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더 많이 진출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런 식의 발언과 연대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문화가 바뀌고 그에 뒤따라 법개정이 수월해진다.

실제로 성폭력 사건을 담당한 여러 변호사들은 여성 연대를 통해 법적으로 미비했던 부분이 보완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김혜겸 변호사는 "사법부도 바뀌어 나가기 위해 노력 중이고 이전에 비해 성범죄 처벌 수위가 높아지긴 했으나 아직 타국에 비해 낮은 편으로 점차 인식이 바뀌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투 운동'으로 인해 용기를 낸 피해 여성들이 성폭력 관련 판례를 많이 쌓으면 결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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