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 건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 건물. ⓒ 권우성


과거 MBC 경영진이 아나운서들의 성향을 분류해 관리한 '블랙리스트' 문건이 발견됐다.

MBC 내부 감사를 통해 드러난 해당 문건은 '아나운서 성향 분석'라는 제목의 파일로, 2013년 12월 최아무개 아나운서가 당시 편성제작본부장이던 백종문씨(아나운서국 관할 임원)에게 보고한 것이다.

최 아나운서는 32명의 아나운서국 직원을 노조 활동 성향에 따라 '강성', '약 강성', '친 회사적 성향' 등 3단계로 분류했다. 문건은 '강성'은 '왕따, 패거리 짓기 등 언론노조 복귀지침 준수자'로, '약 강성'은 '복귀지침을 준수하진 않지만 상황에 친 언론노조 성향', '친 회사적 성향'은 '파업 이전과 동일하게 조직에 복귀 적응하고 있음'이라며 분류 기준을 설명했다.

 '아나운서 성향 분석' 파일에 담긴 아나운서 성향 분석표. '강성'과 '약 강성'으로 분류된 아나운서들은 부당 전보, 방송 배제 등의 피해를 당했다.

'아나운서 성향 분석' 파일에 담긴 아나운서 성향 분석표. '강성'과 '약 강성'으로 분류된 아나운서들은 부당 전보, 방송 배제 등의 인사 피해를 당했다. ⓒ MBC


MBC 측은 해당 문건의 활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메일 발신일 이후 '강성'과 '약 강성'으로 분류된 아나운서들의 실제 인사발령 결과를 조사했다. 그 결과 '강성'과 '약 강성'으로 분류된 13명의 아나운서 중 5명은 업무 배제 등 차별을 받다 퇴사했으며, 4명이 아나운서 업무와 무관한 부서로 발령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그 중 일부 아나운서들은 업무에서 배제하도록 임원회의에서 직접 언급됐다. 문건 작성 당시 휴직 중이라 분류 대상에서 빠진 손정은 아나운서에 대해서도 '반드시 배제하라'는 지시가 확인됐다. 또, 안광한 전 사장이 당시 아나운서 국장에게 '특정 아나운서들을 빼면 인력을 줄 수 있다(신입을 충원해주겠다)'고 지시한 사실도 드러났다. 

또, 안광한 전 사장의 '특정 조합원은 소송을 감수하고라도 퇴출시켜야 한다'는 발언 등 전직 임원들의 부당 노동 행위사례도 추가로 확인됐다. 김민식 PD의 드라마 연출을 문제 삼거나, <진짜 사나이> 제작진이 요청한 아나운서 섭외가 예능본부장 선에서 거절된 일, 임원들의 언론노조 탈퇴 요구 지시 및 독려 등이다. 친 사측 노조인 제3노조에 대해서는 "제3노조 위원장 김아무개 기자가 소외되고 있다. 제3노조 세력 구축이 중요하므로 조용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당시 보도본부장의 발언과, 해당 김아무개 기자의 취재원 인터뷰 조작 관련 조사를 막아야 한다"는 발언이 공개됐다.

이에 앞선 지난해 8월, 언론노조 MBC본부는 파업 돌입을 앞두고 카메라 기자들의 충성도와 노조 참여도를 4등급으로 분류한 '카메라기자 성향 분석표' 파일을 공개했다. 이 파일을 작성한 것으로 확인된 한 카메라기자는 "개인적으로 작성한 문건일 뿐"이라고 해명했으나, 이후 이 블랙리스트 분류에 따라 실제 인사가 이루어진 것이 확인됐다. 문건의 존재가 알려진 직후에는 관련자 전원이 사내 인트라넷에 접속해 메일을 대량 삭제한 사실이 추가로 밝혀지기도 했다. 

MBC 박영춘 감사는 이러한 결과를 2일 MBC 경영진에 설명했으며 '아나운서 블랙리스트' 관련자 2인과 '카메라기자 블랙리스트' 관련자 4인에 대한 징계를 요청했다. 박영춘 감사는 오는 5일 열리는 방송문화진흥회 정기이사회에도 참석해 감사 결과를 공개 보고할 예정이다. MBC 측은 "감사 결과를 바탕으로 필요한 검토조사를 마친 뒤 사규에 따라 조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알렸다.

'강성' 분류된 신동진·허일후 아나운서 "예상은 했지만..."  

신동진 MBC아나운서 '손석희, 박원순 인터뷰 했다고 사측 압력' MBC아나운서 27명이 김장겸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 사퇴를 촉구하며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앞에서 ‘방송거부-업무거부 돌입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2년 파업 당시 한국아나운서협회장을 맡았던 신동진 아나운서가 손석희 JTBC사장(MBC출신), 박원순 시장, 해직언론인 등을 다룬 협회지 ’아나운서 저널’을 보여주며, 이 내용을 이유로 사측의 압받을 받아야 했다고 폭로했다. 업무거부에 돌입한 아나운서는 변창립, 강재형, 황선숙, 최율미, 김범도, 김상호, 이주연, 신동진, 박경추, 차미연, 한준호, 류수민, 허일후, 손정은, 김나진, 서인, 구은영, 이성배, 이진, 강다솜, 김대호, 김초롱, 이재은, 박창현, 차예린, 임현주, 박연경 이상 27명.

▲ 신동진 MBC아나운서 '손석희, 박원순 인터뷰 했다고 사측 압력' 2017년 8월 22일 MBC 아나운서들의 ‘방송거부-업무거부 돌입 기자회견’에서 2012년 파업 당시 한국아나운서협회장을 맡았던 신동진 아나운서가 사측의 압박 내용을 폭로했다. ⓒ 권우성


이용마 기자, 파업콘서트 깜짝 등장 "김장겸은 물러나라" 25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언론노조MBC본부 주최 ‘MBC 파업콘서트 - 다시 만나도 좋은 친구’에 복막암으로 투병중인 이용마 해직기자가 깜짝등장해 김민식 PD, 허일후 아나운서와 함께 “김장겸은 물러나라”를 외치고 있다.

▲ 이용마 기자, 파업콘서트 깜짝 등장 "김장겸은 물러나라" 허일후 아나운서는 2017년 MBC 파업 기간 내내 현장 마이크를 잡았다. 위 사진은 지난 10월 25일,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언론노조MBC본부 주최 ‘MBC 파업콘서트 - 다시 만나도 좋은 친구’에서 이용마 기자와 김민식 PD 등과 함께 “김장겸은 물러나라”를 외치는 모습. ⓒ 권우성


<오마이뉴스>는 '아나운서 블랙리스트' 문건에 '강성'으로 분류된 신동진, 허일후 아나운서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 심경을 물었다. 두 사람은 2012년 파업 이후 부당 전보와 방송 배제 등을 겪어야 했다. 두 아나운서는 "(이런 문건이 있을 거라) 예상은 했었지만, 실체를 확인하니 마음이 착잡하다"고 입을 모았다. 

신동진 아나운서는 처음 문건을 접하고는 "심장이 떨렸다"고 말했다. 문건의 작성 시기는 2013년 12월. 신 아나운서가 아나운서 업무와 무관한 주조정실 MD로 발령 난 건 2014년 4월이다. 파업 당시 신동진 아나운서는 "피구 경기 도중 배현진 아나운서의 다리를 맞혔고, 일주일 뒤 갑자기 인사 발령이 났다"며 일명 '피구 대첩'을 폭로하기도 했다. 신 아나운서는 "문건 작성 이후 호시탐탐 타이밍만 노리고 있었을 텐데, 덜미가 됐던 것 같다"면서 허탈한 심정을 토로했다.

허일후 아나운서는 "문건 작성 시기를 보니 미래전략실로 부당 전보 당했다가 막 돌아왔을 때더라. 계속 알 수 없는 이유로 방송에서 배제되던 시기라 뭔가 있구나 예상은 했다. 막상 확인하니 분노보다는 황당하고 씁쓸하다는 마음이 더 크다"고 했다. "지난 6년간의 고통이 고작 이런 문건 하나 때문이었구나"하는 허탈함 때문이다.

허 아나운서는 "파업 직전 카메라기자 블랙리스트가 공개됐을 때, 아나운서국 역시 MBC 내에서 가장 망가졌던 조직이니 이런 문서가 있지 않을까 싶긴 했다"고 말했다. 경영진이 일개 아나운서들의 성향을 일일이 파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어떻게 세세하게 파악해 전보 조치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카메라 기자 블랙리스트와 같이, 이번 아나운서 문건도 아나운서국 내부에서 작성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건 작성자 최아무개 아나운서는 이번 주 '휴가' 

문건 작성자로 확인된 최아무개 아나운서는 제3노조 위원장을 역임했다. 지난 2017년 2월에는 상암 MBC 사옥 앞에서 열린 태극기 집회 연단에 올라 지지 발언을 했으며,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고 쓰인 팻말을 든 '일베 스님' 정한영씨와 함께 사진을 찍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신동진 아나운서는 "당시 아나운서 국장(신동호 아나운서)도 감사국에 가서 조사를 받았는데 문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더라. 일개 사원이 국장을 건너뛰고 편성본부장에게 문건을 보냈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꼬집으며 "블랙리스트 문건은 국장 주도 하에 작성됐고, 당시 보직 부장들도 당연히 알았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허일후 아나운서 역시 "이전에 카메라기자 블랙리스트 문건 작성자가 드러났을 때도 사측은 '개인의 일탈'로 몰고 갔다. 하지만 블랙리스트 문건 내용이 그대로 인사에 반영됐다. 누군가의 지시가 없었다는 것, 개인의 일탈이라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곧 인사위원회가 열릴 예정이다. 인사 조치는 당연한 일이고, 중대한 반헌법적 범죄인 만큼 범법 행위는 그에 합당한 법적 책임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최 아나운서는 이번 주 일주일간 휴가를 내 회사에 출근하지는 않은 상태다. MBC 관계자는 "최 아나운서는 블랙리스트 문건 작성과 관련해 이미 감사를 받았으며, 오늘(2일) 그 결과가 공표된다는 사실을 알고 휴가를 신청한 게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일개 사원이 상부 지시 없이 문건 작성? 말 안 돼" 

MBC아나운서 27명 업무거부 선언 MBC아나운서 27명이 김장겸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 사퇴를 촉구하며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앞에서 ‘방송거부-업무거부 돌입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2012년 파업 이후 발생한 막무가내 부당노동행위, 야만적인 갑질 행태를 구체적 사례를 폭로하기도 했다. 업무거부에 돌입한 아나운서는 변창립, 강재형, 황선숙, 최율미, 김범도, 김상호, 이주연, 신동진, 박경추, 차미연, 한준호, 류수민, 허일후, 손정은, 김나진, 서인, 구은영, 이성배, 이진, 강다솜, 김대호, 김초롱, 이재은, 박창현, 차예린, 임현주, 박연경 이상 27명.

▲ MBC아나운서 27명 업무거부 선언 2017년 8월 22일, MBC아나운서 27명이 김장겸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 사퇴를 촉구하며 연 ‘방송거부-업무거부 돌입 기자회견’ 모습. ⓒ 권우성


신동진 아나운서는 "지난 12월 아나운서들이 사무실로 복귀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들이 한 사무실을 쓰고 있다. 가해자들은 오히려 '법적으로 할 테면 해봐라' 하는 분위기고, 피해자들은 당당하게 나오는 가해자들의 모습에 매일 고통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신 아나운서는 "구성원들이 방송에만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길 바란다. 사규대로, 법대로, 가해자들에 대한 징계와 처벌이 조속히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허일후 아나운서는 "제3노조는 국정원 문건에 나온 대로 본부노조(언론노조 MBC본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노조이고, 최 아나운서는 그 노조의 공동 위원장이었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 아나운서는 '제3노조 탄압', 혹은 '불법 사찰' 프레임을 들고나올 것"이라고 예측하며, "감사실에서 법적 자문을 얻어 사내 업무 메일의 특정 단어를 필터링해 열람한 것이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주장한다고 해서) 그들이 법적 책임을 면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허 아나운서는 "언론 탄압의 가해자였던 이들이 자꾸 언론 탄압의 피해자인 양 구는 모습에 매우 불쾌함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그는 "블랙리스트는 MBC 안에서만 존재했던 게 아니었다. MBC뿐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곳에서 이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철저한 조사와 합당한 처벌이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노조 MBC본부 "감사 결과에 따라 관련자 추가 고발할 것"

MBC아나운서 28명 '신동호 고소' 김범도, 신동진, 차미연, 허일후, 손정은, 강다솜, 이재은 등 언론노조MBC본부 소속 아나운서 28명이 16일 오후 서울 서부지방검찰청에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을 ’아나운서 퇴출, 배제, 부당전보 등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했다.

▲ MBC아나운서 28명 '신동호 고소' 지난 2017년 10월 16일, 김범도, 신동진, 차미연, 허일후, 손정은, 강다솜, 이재은 등 언론노조MBC본부 소속 아나운서 28명이 서울 서부지방검찰청에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을 ’아나운서 퇴출, 배제, 부당전보 등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했다. ⓒ 권우성


감사 결과가 공표된 2일, 언론노조 MBC 본부도 즉각 성명을 내고 "지난 8년 MBC를 흔들고 오염시킨 블랙리스트의 몸통은 바로 김장겸, 안광한, 김재철, 백종문, 권재홍, 이진숙 등 범법 경영진이라는 사실이 문건으로 확인됐다"면서 "블랙리스트는 경영진이 직접 기획, 지시, 실행, 점검까지 한 행위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늘 발표된 블랙리스트 범죄는 빙산의 일각"이라면서, "이는 노동조합 활동을 탄압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자행한 실정법 위반 행위일 뿐만 아니라, 공정방송을 요구하는 MBC 구성원들을 격리, 배제, 해고하려 한 반헌법적 범죄행위"라고 규정했다.

MBC 노조는 "이는 2010년 이명박 정부가 국가 정보기관을 동원해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 방안' 문건을 작성하고 실행한 방송 장악의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면서, 사측에 더 엄정한 추가 감사를 요구했다.

또한 "감사에서 밝혀진 새로운 증거들에 입각해, 블랙리스트 범죄와 부당노동행위 관련자들에 대한 추가 고발 등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댓글2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