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항쟁을 다룬 조성봉 감독의 <레드헌트> 포스터.

제주 4.3 항쟁을 다룬 조성봉 감독의 <레드헌트> 포스터. ⓒ 하늬영상


1997년 10월 14일 2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던 부산 남포동의 아카데미 극장. 한 다큐멘터리 영화의 상영이 끝난 후 관객들의 표정은 무거웠다. 관객들과의 만남을 위해 감독이 등장하자 박수가 쏟아졌다. 당시 최고의 화제작으로 관심을 모았던 영화 <레드헌트>가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제주 4.3 항쟁을 다룬 <레드헌트>는 학살의 기억을 쏟아내는 피해자들의 모습이 중심을 이룬 영화다. 통일 정부 수립을 원했던 제주 민중들의 투쟁과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미군정, 이승만 정권의 야만성을 폭로하는 작품이다. '제주 4.3'이라는 이야기가 금기시되던 시절, 영화를 통한 문제제기였고 진실규명을 향한 외침이었다.

관객과의 대화는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영화에 대해 공안 수사기관이 이적표현물로 조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감독에 대한 수배령이 곧 떨어지거나 비공개적으로 수배를 받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작용한 탓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감독은 상영 후 관객들 앞에 나타나 당시 이용관 한국영화프로그래머(현 이사장)의 진행으로 관객들과 일문일답 시간을 가졌다. 

4.3 영화의 신호탄

 <레드헌트>에 나오는 1948년 자료화면.

<레드헌트>에 나오는 1948년 자료화면. ⓒ 하늬영상


<레드헌트>의 영화사적 의미는 긴 시간 감춰졌던 4.3의 진실을 대중적으로 끄집어냈다는 데 있다. 4.3 영화의 신호탄이었다. 1999년에는 <레드헌트2: 국가범죄>가 만들어졌고, 이후 고 김경률 감독이 2005년 4.3 항쟁을 소재로 한 첫 극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을 완성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영화를 완성한 그해 연말 안타깝게 타계했다.

2013년 오멸 감독의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은 4.3 항쟁을 미학적으로 승화시켰다. 김경률 감독의 뜻을 잇는 의미를 제목에 담았는데, 높은 작품성으로 선댄스영화제 대상은 물론 부산영화제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흥행에도 성공을 거두며 4.3 비극에 대한 관심을 끌어 올렸다. 2012년 임흥순 감독의 <비념>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연결고리로 상처 입은 제주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낸 다큐로 제주의 아픈 역사를 아울렀다. 문재인 대통령은 3일 4.3 70주년 추념식에서 이들 감독과 작품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때로는 체포와 투옥으로 이어졌던 예술인들의 노력은 4.3이 단지 과거의 불행한 사건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임을 알려 주었다"고 평가했다.

정치 사회적 분위기가 4.3을 왜곡하고 오도하던 시절 <레드헌트>의 출발은 모험과도 같았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상영을 하는 것 자체가 순탄하지 않았다. 1995년 부산에 하늬영상을 만든 조성봉 감독은 5.18 광주항쟁을 주제로 한 영화를 제작하려다 5.18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방향을 바꾼다. 민간인 학살에 대해 문제의식이 많았던 감독이었기에 4.3이나 5.18은 비슷했다.

1996년 촬영에 들어간 <레드헌트>는 촬영과 편집을 바로하는 방식으로 만들어 1년 정도의 기간에 완성됐다. 이후 1997년 3월에 개최된 2회 서울국제다큐멘터리 영상제에 출품했다. 당시 삼성영상사업단 주최한 행사였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예심을 통해 본선에 진출 시켜놓고 공식 경쟁에서 철회시킨 것이다. 당시 천안문 사태를 다룬 <태평천국의 난>이 중국대사관의 항의로 심의가 철회됐는데, 영화제 심의에 대한 기준이 불명확한 상황이기는 했으나 예민한 소재에 대한 검열이나 다름없었다.

본선 진출에 기대감을 갖고 있었던 조성봉 감독은 낙담했으나 당시 상황에서는 별 도리가 없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로 인식했다. 쓰린 마음을 달랠 뿐이었다. 그러나 당시 다큐관계자들 입장에서는 도무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노동자뉴스제작단 대표였던 김명준 감독과 독립영화협의회 낭희섭 대표 등이 강력하게 문제제기를 했다.

 영화 <레드헌트>의 한 장면

영화 <레드헌트>의 한 장면 ⓒ 하늬영상


이 과정에서 당시 주최 측은 절충안을 제안했다. 영화 시작할 때 자막으로 '이 다큐는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넣자고 한 것이다. 하지만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다큐의 특성을 부인하는 문구는 치욕적이었다. 감독은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런 식으로 상영을 구걸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후폭풍은 강하게 이어졌다. 심사위원과 자원봉사자들이 사퇴하고 폐막일 수상자가 수상을 거부하면서 행사는 얼룩졌다. 이 여파는 다음해까지 이어지며 1998년에는 행사 자체가 열리지 못했다. 이후 1999년 감독에게 정중한 사과를 하고 작품을 제대로 상영하는 것으로 매듭지어졌다. 조성봉 감독은 "당시 프로그래머 역할을 했던 큐레이터가 제주 출신으로 사학을 전공한 분이었는데, 아버지가 서북청년단 출신이라고 했다"면서 영화와 묘하게 연관성이 있었던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국가보안법 이적표현물이 될 뻔한 영화

부산영화제 상영 후 3개월 뒤 내사를 벌이던 경찰은 1998년 1월 감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경찰은 '감독이 적어도 사회주의자이고 그래서 북에서 주장하는 똑같은 논리로 4.3항쟁을 미군정과 이승만의 분단정책에 반대해서 봉기한 정당한 항쟁으로 표현했다'면서 영화를 '이적표현물'로 규정했다.

연행 48시간이 지나자 경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감독은 동시에 영장실질심사를 청구하는 것으로 맞대응했다. 결론은 불구속이었다. 감독은 영장담당 판사 앞에서 "4.3사건이 정당한 항쟁이었고, 학살의 책임이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에게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게 "본인이 이미 혐의사실을 인정하고 있고, 증거 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없다"고 판단되면서 불구속 수사로 진행된 것이었다.

이는 또 다른 논란으로 작용했다. 앞서 1997년 10월 인권영화제에서 <레드헌트>를 상영한 당시 서준식 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이 11월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영장실질심사 없이 구속됐기 때문이었다. 영화를 만든 사람은 불구속이 됐는데, 상영한 사람은 구속된 것이었다.

서울지법 서부지원은 1999년 9월 "영화와 시나리오를 검증한 결과 사회 통념상으로 미뤄볼 때 이적표현물로 판단키 어렵다고 결론지었다"며 서준식 위원장의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2003년 5월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면서 <레드헌트>는 국가보안법의 이적표현물 굴레에서 벗어났다. 4.3 항쟁의 진실을 드러내는 과정은 이토록 험난했다.

 1일 오후 서울 대한극장에서 열린 <독립영화 시(詩) 봤다> 행사에서 윤중목 시인(왼족)의 사회로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조성봉 감독(우측). 가운데는 이산하 시인.

1일 오후 서울 대한극장에서 열린 <독립영화 시(詩) 봤다> 행사에서 윤중목 시인(왼족)의 사회로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조성봉 감독(우측). 가운데는 이산하 시인. ⓒ 성하훈


1999년 만들어진 <레드헌트2: 국가범죄>는 5.18 광주학살과 4.3 항쟁의 양민 학살을 연계시키면서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는 국제적으로 공소시효가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레드헌트>를 통해 4.3 항쟁으로 촉발된 학살범죄의 개요과 희생자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전달했다면, <레드헌트2: 국가범죄>는 남은 사람들의 한을 조명한다. 미군정의 책임을 강조한다.

뱃속에 품은 아이와 함께 죽창에 찔려 고통스럽게 죽어간 동서의 이야기. 어릴 적 어머니가 죽던 모습을 잊지 못한 채 평생 아픔으로 간직하고 있는 자매, 어린 나이에 군경에 의해 죽은 동생들을 생각하며 눈물짓는 노인의 모습 등은 학살의 참상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군인과 경찰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가족의 이야기를 전하며 오랜 한을 풀어놓는 모습은 회한으로 가득차 있다.

조성봉 감독은 1일 오후 대한극장에서 열린 <독립영화, 시(詩)봤다> 행사에 참석해 두 작품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오랜 시간이 흘러 두 작품이 연이어 상영된 직후 관객들에게 인사한 조 감독은 "보수정권 집권기간 동안 제주 4·3 항쟁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많이 줄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 들어 여러 환경이 바뀌었다"면서 4.3의 정신을 승화시키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감독의 지적대로 이명박 정권 초기에는 앞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진상조사를 통해 규명된 4.3 항쟁의 진실을 또 다시 '좌익 폭동'으로 되돌리려 했다. 4.3 기념식은 2014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으나,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단 한 번도 관련 행사에 참석하지 않고 외면했다. 그나마 여러 감독들이 영화를 통한 진실 찾기 노력에 뛰어들면서 대중에게 4.3의 실체를 제대로 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레드헌트>는 4.3항쟁 70주년인 4월 3일 저녁 인디스페이스에서도 상영되며, 오는 7일에는 서울 성북구에 있는 아리랑시네센터에서 <레드헌트> <레드헌트2: 국가범죄>를 연속 상영한다. 이후 역사문제연구소 배경식 부소장과 조성봉 감독의 대화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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