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의 <블랙 팬서>가 휩쓸고 간 자리는 다양한 한국영화들이 채웠다. 같은 제목의 일본영화를 리메이크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홀로 200만 관객을 넘긴 가운데 이창희 감독의 웰메이드 스릴러 <사라진 밤>과 심은경을 주연으로 내세운 사극코미디 <궁합> 등이 뒤를 따랐다. 야외로 나들이를 나서는 사람이 많아지고 각급 학교가 개학을 맞이하는 3월이 극장가엔 비수기로 꼽히지만 비교적 다양한 영화가 각축을 벌인 한 달이었다.

연중 가장 관객이 들지 않는 달로 꼽히는 4월은 도리어 작은 영화들에게 기회가 되고 있다. 대형 배급사들이 기대작을 내놓길 꺼리는 상황에서 규모는 작지만 저마다의 매력을 갖춘 다양한 영화들이 멀티플렉스 상영이라는 귀한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할리우드와 한국은 물론 세계각지의 다채로운 작품이 도전장을 내밀어 목말랐던 영화팬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아래 4월 기대작 다섯편을 가려뽑아 소개한다.

[하나] <레이디 버드>

 <레이디 버드> 속 크리스틴(좌)와 단짝친구 줄리(우)

<레이디 버드> 속 크리스틴(좌)와 단짝친구 줄리(우)ⓒ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노아 바움백의 연인이란 꼬리표를 떼고 당당히 젊은 여성감독으로 자리를 확고히 한 그레타 거윅의 신작이다. 노아 바움백의 작품으로 그레타 거윅의 이름을 널리 알린 <프란시스 하>가 뉴욕이란 대도시에서 고군분투하는 젊은 여성의 성장을 그렸다면 <레이디 버드>는 그녀가 고향을 떠나오기 전까지의 이야기라 할 만하다.

고향을 떠나 자신의 고향을 부인하는 여자, 그녀에겐 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 감독 스스로가 성장한 새크라멘토를 배경으로 그녀 스스로가 청소년기에 느낀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내려 노력했다는 평가다.

몇몇 대도시를 중심으로 산업이 발전하고 외곽에서 태어나 중심으로 향하려 발버둥치는 청년들이 넘쳐나는 오늘 이 세상에선 그레타 거윅과 레이디 버드가 느꼈을 묘한 감정으로부터 위안과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들이 결코 적지만은 않을 듯하다.

연기자로 인정받은 감독답게 그레타 거윅은 연기자들의 역량을 영화 가운데 한껏 끌어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녀는 토론토 영화제 기간 중에 잠깐 만난 동년배 배우 시얼샤 로넌을 일찌감치 레이디 버드를 연기할 적임자로 점찍고 오랜 기간 공을 들였다고 밝혔다. 최근 몇년 간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젊은 재능 시얼샤 로넌에게도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기대된다.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전할 말 많은 그레타 거윅 감독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면 4일 극장을 찾으라.

[둘] <눈꺼풀>

 영화 <눈꺼풀>의 한 장면

영화 <눈꺼풀>의 한 장면ⓒ 자파리필름


시민의 열망으로 정권이 바뀌고 비로소 오랜 과오를 청산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문밖에서 연일 들려오는 놀랍고 반가운 소식을 듣자면 마치 새 세상이 열린 듣도 하지만 귀를 기울이면 과거의 상처는 여전히 상처로 남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참사도 선체가 인양돼 목포항에 엎어져 있는 지금까지 그와 같은 상처로 많은 이들 가슴에 깊게 패여 있다.

제주 출신으로 제주도가 안고 있는 상처를 돌아보고 치유하는 영화를 찍어온 오멸 감독의 <눈꺼풀>은 세월호 침몰 참사로 받은 상처를 마주하는 무거운 작품이다. 타인의 상처는 물론 자신의 상처까지도 대하는 법을 잊어버린 듯한 한국사회에서 오멸 감독의 영화는 더욱 중한 의미를 지닐 것이라 확신한다.

2015년 열린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CGV 아트하우스상을 수상했다. 제작된지 무려 4년 만에 대중 앞에 선보이는 귀한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길 바란다. 12일 개봉.

[셋] <달링>

 영화 <달링>의 한 장면

영화 <달링>의 한 장면ⓒ (주)팝엔터테인먼트


오랜만에 찾아온 정통 실화멜로 <달링>이 12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난치병으로 전신마비 환자가 된 로빈 캐번디시가 아내 다이애나의 헌신으로 어려움을 극복한다는 이야기를 부부의 아들이자 영국의 정상급 영화제작자 조나단 캐번디시가 영화화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시리즈로 부러울 것 없는 성공을 거머쥔 조나단 캐번디시의 숙원으로 그가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을 이 영화 한 편에 집중했다고 알려졌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감독이다. 조나단 캐번디시가 이 프로젝트의 장으로 선택한 건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골룸, <혹성탈출> 시리즈의 시저 역할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특수효과 전문 연출자이자 연기자인 앤디 서키스다. <호빗> 시리즈와 <혹성탈출> 시리즈 등에서 특수효과 팀을 지휘하며 공공연히 영화연출에 야망을 드러내온 앤디 서키스에겐 제 역량과 가능성을 링 위에 올릴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주가 높은 청춘스타 가운데 하나인 앤드류 가필드, 최근 연기에 물이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클레어 포이가 주연한다.

[넷] <살인소설>

 영화 <살인소설>의 한 장면

영화 <살인소설>의 한 장면ⓒ (주)스톰픽쳐스코리아 , 페퍼민트앤컴퍼니


규모보다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정통 스릴러가 25일 관객을 찾는다. 포르투갈 최대 국제영화제로 매니악한 장르영화를 발굴하는 것으로 알려진 제38회 판타스포르토 영화제에서 감독주간 작품·감독상을 수상하며 명성을 얻은 <살인소설>이 바로 그 영화다. 앞서 이 영화제에서 인정받은 한국영화로는 판타지아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김지운의 <조용한 가족>, 심사위원 특별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은 김기덕의 <섬>, 역시 심사위원 특별상과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윤종찬의 <소름> 등이 있다.

고립된 별장에서 벌어지는 불가해한 범죄극이 부패한 현실정치와 절묘하게 아우러져 주는 쾌감이 상당하다는 평이다. 6월 지방선거를 두달 앞둔 4월 개봉해 작은 영화의 역전극을 이뤄낼 지 관심이 쏠린다.

김진묵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으로 오만석, 지현우가 주연했다.

[다섯] <당갈>

 영화 <당갈>의 한 장면

영화 <당갈>의 한 장면ⓒ (주)NEW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을 통해 이루려는 부모는 제법 흔하다. 하지만 레슬링 세계챔피언이란 꿈을 딸을 통해 이루려는 아버지는 그렇게 흔하지 않다.

<세 얼간이>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로 한국에서도 빛나는 명성을 쌓은 인도의 대표배우 아미르 칸의 출연작 <당갈>은 아버지의 비틀린 꿈이 좌충우돌 끝에 성취돼 가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린 코믹극이다. 아들을 통해 못이룬 꿈을 성취하고야 말겠다던 전직 레슬링 선수 마하비르 싱 포갓(아미르 칸 분)의 야망이 딸만 넷을 내리 낳으며 좌절되는 듯 보였지만 우연히 딸들의 폭력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특훈에 돌입, 마침내 국제대회에 진출해 우승을 차지한다는 이야기를 줄거리로 했다.

놀랍게도 영화는 인도에서 일어난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인도 최초의 여자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지타 포갓과 그녀의 아버지 마하비르가 주인공으로 인도 시골마을의 편견과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딛고 챔피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렸다. 이들은 2010년과 2014년 영연방 레슬링대회에 출전, 금메달을 획득했다.

전직 레슬러였던 주인공 역을 위해 아미르 칸이 무려 28kg을 증량했고 1000대 1이 넘는 경쟁을 뚫고 선발된 딸 역에는 파티마 사나이 샤크, 삼아 말호 트라가 출연했다. 무려 두 시간 반에 달하는 장편영화로 발리우드의 영화적 역량이 집중됐다는 평이다. 인도에서 2016년 개봉해 발리우드 역대 최대 흥행작으로 등극했으며 중국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마침내 한국에 상륙했다.

제목인 <당갈>은 인도어로 레슬링이란 뜻이다. 25일 개봉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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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간직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 어플 '소모임'서 영화&책 모임 '블랙리스트' 운영, 팟캐스트 '블랙리스트: 선택받지 못한 놈들' 진행, 빅이슈 '영화만물상' 연재 / 인스타 @blly_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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