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그날 이후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고원인은 오리무중입니다. 그 사이 세월호 참사를 조망한 여러 영화들이 나왔고, 또 나올 예정입니다. <오마이스타>는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이하며 이 사건을 기억하고 다루는 영화들을 차례로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네 개의 주제로 만들어진 세월호추모 영화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의 (왼쪽부터) <이름에게> 주현숙, <상실의 궤> 문성준, <목포의 밤> 엄희찬, <어른이 되어> 오지수 감독.

네 개의 주제로 만들어진 세월호추모 영화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의 (왼쪽부터) <이름에게> 주현숙, <상실의 궤> 문성준, <목포의 밤> 엄희찬, <어른이 되어> 오지수 감독. ⓒ 이희훈


'벌써'라는 말조차 조심스럽다. 진상규명과 사고 관련자 처벌이 아직도 요원한 상태에서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4주기를 앞두고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에선 또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미 2016년과 2017년 '망각과 기억'이라는 주제로 독립영화감독들이 세월호 참사를 다뤘다.

1080일 만에 인양된 뒤 지금은 목포 신항에 거치돼 있는 세월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네 명의 감독이 그래서 의기투합했다. '기억과 트라우마'라는 주제를 안고 각자의 자리에서 만들어 낸 작품이 바로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다. 지난 28일 오후 서울 홍대입구 부근에서 오지수(<어른이 되어>), 주현숙(<이름에게>), 문성준(<상실의 궤>), 엄희찬(<목포의 밤>) 감독을 만났다.

각자의 자리에서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이하며 제작된 영화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 포스터.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이하며 제작된 영화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 포스터. ⓒ 시네마달


감독들은 길게는 4년 짧게는 2년여 동안 유가족 곁에서 영상 기록을 촬영하고, 이전 프로젝트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주현숙, 문성준 감독이 이미 여러 편의 독립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경력이 있는 독립영화인이라면 오지수, 엄희찬 감독은 미디어위원으로 활동하며 현장 기록을 남기다가 처음으로 연출 경험을 하게 됐다.

특히 오지수 감독의 <어른이 되어>에는 참사 생존자인 장애진씨와 반세윤씨, 그리고 오 감독의 친구인 변유경씨가 출연했다. 이들과 동갑인 오지수 감독은 영화에서 내내 자기 고백과 대화의 자세를 취한다. '누군가는 지워버리려고만 하는 기억을 끝끝내 붙잡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가', '이들과 가까워지기도 전에 카메라에 담는 게 옳은 것일까' 등을 자문하는 것을 보며, 인물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의 섬세함이 느껴진다.

 네 개의 주제로 만들어진 세월호추모 영화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의  <어른이 되어> 오지수 감독.

네 개의 주제로 만들어진 세월호추모 영화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의 <어른이 되어> 오지수 감독. ⓒ 이희훈


"촬영 내내 이렇게 찍어도 괜찮은 건지, 제 고백이 어떻게 작용할지 되물었다. 저 역시 참사를 지켜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이후 많은 고민을 했다. 2016년 10월부터 미디어위원회에 참여했을 때가 스무 살이었다. 참사의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오더라. 앞으로 전 나이가 더 들 것이고 자랄 텐데 단원고 희생자 친구들은 그 나이에 머물러 있지 않나. 그러다 2017년 1월, 참사 1000일째가 됐을 때 생존자 친구들을 만났다. 이들이 스스로 세상에 처음으로 걸어 나왔을 때였다. 이 친구들이 발언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으며 많이 울었다. 우린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며 위안 받고 그런 게 있는데 이 친구들은 그런 존재가 상실된 거니까..." (오지수 감독)

그 직후 오 감독은 조심스럽게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들에 대한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요리사가 꿈이었던 장애진씨는 대학에서 응급구조학을 전공하며 구조사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서로의 집에 놀러가 음식을 해먹으며 "친구들의 일상이 우리와 똑같고, 고민 역시 비슷한 20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런 영화를 찍는다고 했을 때 오히려 그 친구들이 고맙다고 말해줬다"고 오지수 감독은 말했다. 

주현숙 감독의 <이름에게>는 참사를 바라봐 온 7명의 인물을 등장시킨다. 나이와 직업, 성별은 저마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세월호 참사로 삶의 변화를 겪은 이들이다. 사고 수습 현장에 나갔던 어민, 전교조 교사, 서촌의 커피공방 사장, 화가 등이 자신만의 고백을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주 감독은 "사회적 참사로서 세월호를 다뤄보자고 생각했다"고 운을 뗐다.

 네 개의 주제로 만들어진 세월호추모 영화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의 <이름에게> 주현숙 감독.

네 개의 주제로 만들어진 세월호추모 영화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의 <이름에게> 주현숙 감독. ⓒ 이희훈


"희생자와 생존자 유가족 분들과 함께 지난 4년간 참사를 지켜봤던 분들도 실제로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유가족 분들과는 (물리적) 거리가 떨어져 있지만 어쩌면 이들 모두가 사건의 당사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을 <이름에게>라고 지은 이유는 참사를 1인칭 화하자는 이유였다. 제목에 각자 자기의 이름을 넣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인터뷰이 섭외에서 운이 좋았던 것 같다. 평범한 분들이면서 참사와 관련이 있는 분이면 좋겠다 싶었는데 직접 뵙고 얘기해보니 다들 참사와 관련해 뭔가를 해오셨더라. 작업하면서 오히려 제가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 (영화 후반부에 항구에 거치된 세월호를 오랫동안 비추는 장면에 대해) 트라우마가 어떤 형체를 갖는다면 세월호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촬영 때 마침 눈이 내렸다. 소복소복 다독여 주는 느낌이었는데 그렇게 우리도 그 트라우마와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4년이라는 시간 이후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자는 의미도 있었다." (주현숙 감독)

바뀌었지만 바뀌지 않은 것들

문성준 감독의 <상실의 궤>는 참사 이후 이젠 안산과 목포, 그리고 진도로 흩어져 활동하고 있는 유가족에 주목했다. 이 중 416가족극단에서 활동 중인 순범 어머니 최지영씨와 세월호 선체조사 과정을 감시 중인 준영 아버지 오홍진씨가 중심인물이다. 영화는 정권이 바뀌었지만 더디기만 한 사고 진상 규명에 대해 유가족들이 성토하고 애를 태우는 모습을 여과 없이 담았다.

"이번 영화 프로젝트의 전체 제목이 '트라우마'지만 그런 무겁고 심각한 용어보단 부모님들의 상실감을 담아 보고 싶었다"라고 한 문 감독은 "안이 텅 빈 세월호, 그리고 자녀를 잃은 부모의 텅 빈 마음이 마치 궤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제목의 이유를 밝혔다. 문성준 감독은 참사 1주기 때부터 영상 기록 작업에 참여해오고 있었다.

 네 개의 주제로 만들어진 세월호추모 영화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의 <상실의 궤> 문성준 감독.

네 개의 주제로 만들어진 세월호추모 영화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의 <상실의 궤> 문성준 감독. ⓒ 이희훈


"지금은 고인이 된 박종필 감독(지난 3주기 프로젝트에 참여)과 촛불집회에 왜 사람들이 많이 나올까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지난 10년 간 쌓인 사회적 문제에 세월호 참사까지 생겼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나오신 게 아닐까. 이후 벌어진 촛불의 중심엔 분명 세월호 문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고 본다. 정권도 바뀌었고 특조위가 꾸려지고 진상규명위원회도 생겼지만 지금까지도 제대로 원인규명이 안 되고 있다. 

(유가족 입장에선)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진 게 없었을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지난 정권까진 암흑 자체였다면 이제야 해빙의 기류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트라우마도 트라우마지만 유가족 분들은 저마다 신체적 아픔을 갖고 있다. 우울증, 혈압,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드러기 등. 이 분들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이 분들이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일까? 결국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다." (문성준 감독)

이에 비해 엄희찬 감독의 <목포의 밤>은 보다 침착한 정서를 품고 있다. 영화는 세월호 인양 이후 수색작업 전반을 지켜보고 감시해온 두 부모의 시선을 담담하게 전한다. 작업 인부들의 아침과 유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밤의 풍경을 대비시키며 영화는 세상의 관심이 거의 사라진 목포의 외로운 모습을 담아냈다.

 네 개의 주제로 만들어진 세월호추모 영화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의 <목포의 밤> 엄희찬 감독.

네 개의 주제로 만들어진 세월호추모 영화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의 <목포의 밤> 엄희찬 감독. ⓒ 이희훈


"3주기다 끝나고 미디어위원 활동에 고민이 있었다. 활동 중 사망하신 분도 계시고, 병이 난 사람도 계셨지만 이대로 그만 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인양이 이슈였던 때였는데 그 이후 상황을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목포에 내려갔는데 밤이 참 아름답더라. 동시에 아침엔 인부들이 작업을 하고 여기저기 흉물스럽게 흩어져 있는 사물들이 있었다. 그 대비를 담으려 했다." (엄희찬 감독)

영화에서 유가족들은 엉성하고 소홀하게 작업하는 인부들에 속이 탄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작업 과정 내 여러 허점을 담았지만, 공개했을 때 유가족 분들에게 불편함이 생길 지점은 편집했다"며 엄 감독은 "우리 활동가들은 기자들과 달리 작업장 내부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는데 작업자들이 유가족 분들 마음처럼 해주지 않았다"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누군가의 비극 아닌 사회적 참사

 네 개의 주제로 만들어진 세월호추모 영화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의 (왼쪽부터) 주현숙, 엄희찬, 오지수, 문성준 감독.

네 개의 주제로 만들어진 세월호추모 영화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의 (왼쪽부터) 주현숙, 엄희찬, 오지수, 문성준 감독. ⓒ 이희훈


네 감독은 공통적으로 참사 이후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었다. 직접 사고를 경험한 당사자들의 트라우마, 사고를 바라보며 연대 및 지지 행동을 해 온 많은 시민들의 트라우마를 카메라에 담아 온 감독들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들을 각자 갖고 있었다"며 "그게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닌 공동의 상처였다"고 고백했다. 그러니까 참사 이후 어떤 기쁜 일에도 쉽게 기뻐하지 않고 슬픈 일엔 둔감해지곤 한다면 세월호라는 단어에 먹먹한 마음이 생긴다면 당신 역시 이 '사회적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셈이다.

깊은 상처일수록 원인이 분명하지 않을수록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법이다. 지금까지 만들어졌고, 앞으로 나올 세월호 관련 영화들에 대해 네 감독들은 일종의 우려를 갖고 있었다. 사건을 다룸에 있어서 이들은 끊임없이 돌아보고 반성하는 태도를 강조했다.

"영화는 곧 자신만의 관점으로 나오는 거라 다큐로든 극영화로든 표현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단순히 소재를 이용만 하려는 게 우려스럽다. (문성준 감독) 

"저 역시 단순히 소재로만 소비하는 걸 보면 화가 많이 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 역시 단순히 영화를 만들기 위해 미디어 위원 활동을 하는 건 아닌지 계속 검열한다. 개인적으론 (세월호 참사를 다루려는)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검열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의심하고 고민하면서 이 사회적 참사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오지수 감독)

"작품을 하며 조심스러운 게 많았다. 이 장면을 담는 게 괜찮을까? 자기검열이 많았다. 미디어활동가와 창작자 사이 중간점을 찾는 게 어렵더라. 제가 놓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영화에 의미를 두기보다 현장에서 같이 함께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게 맞는 것 같다." (엄희찬 감독)

다시 이 질문을 할 때가 됐다. 함께 안타까워했고, 분노했으며, 촛불을 들었다. 사회적 참사로 정의한 이 사건 이후 우리가 어떤 식으로 연대할 수 있을까.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민", "가해자와 피해자로만 나누지 말 것" 등 여러 차원의 전제조건을 감독들은 강조했다. 그리고 이들이 보기에 그 연대 방법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다. 

"거리에서 보이는 리본 하나에 유가족 분들은 힘을 얻는다. 요즘 많이 안 보이는데 함께 연대한다는 의미로 가방에든 휴대폰에든 리본을 달아줬으면 좋겠다." (문성준 감독)

"해외에 사시는 분들도 연대에 대해 종종 질문하시는데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가족 분들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바라보지 말고, 세월호 참사에 대해 진입장벽을 스스로 너무 높게 잡지 않았으면 한다. 어쩌다 한 번 생각이 나서 후원하시는 것도 큰 힘이 될 것이다. 회사, 학교에서든 누군가 세월호 사건에 대해 안 좋게 얘기할 때 그렇지 않다고 한 마디 해주시는 것도 매우 큰 힘이 된다." (엄희찬 감독)

"참사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함부로 얘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쉽게 던지는 말 한 마디로 유가족 분들과 연대자들은 상처받고 힘이 빠진다. 사건에 대해 의심이 간다면 같이 얘기할 만한 사람들과 생각을 나눠보시면 좋겠다. 비난하시는 분들의 공통점이 다들 말은 쉽게 던지면서 대화는 안 하려 하시더라. 제대로 알고자 하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연대의 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지수 감독)

세월호 4주기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 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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