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슬> 포스터.

영화 <지슬> 포스터. ⓒ 영화사 진진


올해는 '제주 4.3 항쟁' 70주년이다. 1948년 제주도 각지에서 남로당을 주축으로 한 무장대가 남한 단독 정부 수립 반대와 조국 통일, 완전한 민족해방 그리고 경찰과 서청의 탄압 중지 기치를 내걸고 봉기를 일으켰다. 이는 5.10 총 선거까지 이어졌는데, 제주도는 5.10 총선거를 거부한 유일한 지역이 되었다.

선거 이후 제주도에서의 문경과 무장대의 대립은 더욱 첨예해졌다. 같은 해 8월 15일 남한 단독 정부가 수립되고 제주도에 대한 강경 진압 수위를 높여간다. 제주도 근해에 소련 선박 또는 잠수함이 출현했다는 소문을 조작해 대대적인 토벌전을 준비했다. 정부는 10월 "해안선 5km 이외 지역에 통행금지령을 내리고 그곳에 있는 사람은 폭도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포고문을 내리고, 11월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한다. 곧 '초토화작전'이라 불리는 진압이 시작된다.

잠정적으로 1954년 9월에야 끝난 이 참사는, 보도연맹 학살 사건과 더불어 대한민국 정부가 벌인 최악의 자국 민간인 대량 학살 사건이자 제주도 최대 최악의 비극이다. 우리 모두 이 사건의 진실을, 이 사건의 성격을 잘 알고 있어야 하고 또 끊임없이 새겨야 한다. 거기서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수많은 사람들은 학살을 당해야 했을까. 이제 와서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제주 4.3 항쟁을 배경으로 하다

 영화 <지슬>의 한 장면.

영화 <지슬>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지난 2013년 개봉한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는 제주 4.3 항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1948년 10월 '섬 해안선 5km 밖인 중산간지역의 모든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고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과 계엄령 선포로 시작된 '초토화 작전' 때문에 도망쳐 산으로 피신한 사람들과 계엄군 이야기를 다룬다.

마을 사람들은 왜 도망가야 하는지 모르지만, 어디로 도망가야 하는지는 잘 안다. 불과 몇 년 전에 끝난 일제강점기 때에도 무수한 위협으로부터 도망 다녔고 무수한 죽음을 뒤로 한채 살아남은 그들이었다. 하지만 해방 이후, 자국 정부의 위협은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다.

산기슭의 아무도 모를 굴 속으로 피신한 마을 사람들은 내일 모레 곧 나갈 것이니 걱정할 필요 없이 조금만 참자고 서로를 다독인다. 그러며 평소 정겹고 살갑게 나누던 이야기를 이어가고 도망나올 때 가지고 온 '지슬(감자를 뜻하는 제주도 사투리)'을 사이좋게 나눠먹는다. 또 누군가는 마을로 내려가야 한다는데, 기르고 있는 돼지들에게 밥을 주어야 하고 편찮으신 어머니를 모시고 와야 하며 어디로 간지 모를 순덕이를 데리고 와야 한다.

한편 계엄군들에게서도 인간군상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상사는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중사는 매일 칼을 갈며 돌아가신 어머니의 '복수'를 하겠다고 빨갱이 죽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상병은 상사의 말 한 마디에 아무렇지도 않게 민간인을 죽이고 후임들에게 죽기 싫으면 폭도를 잡아 죽이라고 윽박지른다.

와중에 일병은 자신들이 여기 와 있는 건 폭도 때문이 아니고 명령 때문이라며, 자신들이 잡아 죽이는 이들은 폭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그들이 죽이려고 하는 이들이 민간인이라는 걸 이성으로 직시하고 있다. 신병도 이 일병의 생각에 동조한다.

웰메이드 작품 <지슬>

 영화 <지슬>의 한 장면.

영화 <지슬>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영화 <지슬>은 제주 4.3 사건을 다룬다는, 영화 외적인 요소보다 웰메이드 작품으로서 들여다 봐야 한다. 그런 작업이 선행되고 나면 영화를 보는 눈에, 영화를 보는 생각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전체적으로 신이 많지 않다. 롱테이크를 쓰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 대부분 마을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데 할애한다. 영화적 기법을 영화의 주제와 조화시키는 형태라고 보는데, 거대 비극 속에서도 인간성을 져버리지 않고 '유머(humor)'를 발산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 유머는 나아가 영화에서 종종 묻어나오는 동화적인 분위기에 활기를 더한다. 이는 다시 영화적 기법으로 이어져 아름다운 '미장센'이 탄생한다. 영화 전체가 흑백인데, 롱테이크와 함께 정적인 구도가 더욱 빛을 발한다.

영화는 마을 사람들과 계엄군 사이를 '인간'과 '비인간'의 구도로 보여준다. 거기에는 이데올로기 대립도 없고 합리성도 없다. 오로지 광기만 있을 뿐이다. 광기에 대응하는 건 광기도 총도 무력함도 아닌 유머뿐이다. 그리고 '지슬' 즉, 감자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 '기억의 전쟁'을 이어가다

 영화 <지슬>의 한 장면.

영화 <지슬>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한라산 일대에 잠복한 350여 명의 무장대를 소탕하기 위해 제주도 중간산 마을 초토화 명령을 내렸다는 것은 믿기 힘든 사실이다.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더라도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당연할 진데, 자국 민간인 학살을 어떻게 정부가 명령했을까.

백번 천번 만번을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는 이 사건. 이제 와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왜곡되지 않은 기억을 후세에 이어주는 것밖에 없다. 70년 전 그때 그곳의 기억을 온전히 가진 피해자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일각에서는 민간인을 학살한 이승만 대통령을 옹호하고 피해자들을 '빨갱이 폭도 분자'라고 손가락질 하는 이들이 있다.

'기억과의 싸움'이라고 했던가. 이 싸움은 단순히 네 편, 내 편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진실의 문제고, 진실을 전달하고 알리는 문제다. 그래서 이 싸움은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 올바른 진실이 후세에 전해지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지슬 제주 4.3 사건 민간인 학살 비극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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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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