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저녁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 열린 18회 인디다큐페스티발 개막식

22일 저녁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 열린 18회 인디다큐페스티발 개막식 ⓒ 성하훈


군사독재의 암흑기를 넘어선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한국영화는 르네상스를 맞았다. 부산국제영화제가 표현의 자유를 넓혔고, 작가주의 감독들이 해외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독립영화전용관 개관은 한국영화의 바탕을 튼실하게 만드는 장치가 됐다.

이게 악화된 것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였다. 이른바 좌파청산을 앞세운 정권의 편향된 인식은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문화를 실력이나 능력이 아닌 좌우의 관점으로 보던 이명박 정권에게 표현의 자유를 넓혀가던 영화 대부분은 그저 청산 대상일 뿐이었다.

이명박 정권의 친위대라 불렸던 '문화미래포럼'이라는 단체는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끊임없이 논란을 일으켰다. 이명박 정권은 이들의 논리를 바탕으로 특히 국내영화제들과 독립영화를 공격했다. 2009년 부산영화제를 좌파라며 공격했는데, 표적은 당시 이용관 집행위원장(현 이사장)이었다. 당시 광우병 촛불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강제로 쫓겨났을 거라는 게 이용관 이사장의 회고기도 하다.

국내 영화제들도 마찬가지였다. 영화제는 낭비성 행사라는 관변 토론회가 열렸고, 예산 삭감의 빌미로 활용됐다. 마음에 안 드는 곳은 정권의 힘으로 손봐주겠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모든 지원금은 삭감됐고 해마다 줄어들었다. 그들은 빚까지 내며 독립영화제를 개최했고, 부당하다는 항의는 그저 묵살되기 일쑤였다.

감사원의 칼은 한국독립영화협회 등 영화단체들에게로 향했다. 잘 운영되던 독립영화관과 영상미디어센터를 공모라는 형식을 빌려 자격도 일천한 자들에게 넘겨주며 빈사상태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비리와 부정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당시 독립영화 감독들은 몰상식한 탄압에 맞서 카메라 대신 펼침막을 들고 1인 시위나 항의 집회를 열었다. 영화인들은 영화진흥위원회와는 공동으로 '2010년 서울독립영화제'를 주최할 수 없다고 밝힌 뒤 자체적으로 영화제를 꾸렸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티겠다는 의지였다. 슬로건은 '毒립영화 맛좀볼래'. 독하게 싸우겠다는 영화인들의 의지였다.

이후 독립영화제의 자금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고, 그 체감 또한 상대적으로 컸다. 그렇다고 굴복하지는 않았다. 영화인들은 빚잔치를 해가며 영화제를 열었고, 영화를 통해 불의한 세상에 대한 저항을 선언했다. 꺾이지 않겠다는 의지는 도드라졌다.

혹독한 탄압 겪었던 독립영화

구속된 이명박, 동부구치소로 압송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서 동부구치소로 압송되고 있다.

▲ 구속된 이명박, 동부구치소로 압송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서 동부구치소로 압송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지난 22일 저녁 서울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 18회 인디다큐페스티발의 막이 올랐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은 이명박 정권의 옥죄기로 지원 예산이 크게 삭감되면서 9년간 어려움을 겪은 대표적 독립영화제 중 하나다. 봄을 여는 영화제이면서 한 해 가장 먼저 시작하는 독립영화제라서 의미가 크다.

지난해 정권교체 이후 열린 첫 행사지만, 이 땅의 약자들을 향한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시선은 변함이 없었다. 감독들은 장애인들의 처절한 절규를 담았고, 세월호가 누워있는 목포에서 묵묵히 현장을 지키며 기록했다.

그리고 그날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됐다. 개막식이 끝난 이후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절차가 진행됐지만, 이명박 정권 등장 이후 어려움을 이겨내고 버텨오던 인디다큐페스티발에게는 개막 축하 선물이 됐다.

하지만 과거 이명박 정권이 자행한 영화계 유린은 아직 진상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아쉽게도 검찰이 밝힌 혐의 중엔 '좌파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문화예술계 탄압'에 대한 부분은 들어있지 않다. 이명박 정권의 뒤를 이은 박근혜 정권이 블랙리스트를 통해 정교하게 탄압한 사실은 드러나고 있지만, 그 출발과도 같았던 이명박 정권의 문화예술계 탄압 실체는 아직도 미궁에 빠져 있다.

 2010년 이명박 정권 당시 조희문 영진위원장에게 영상미디어센터와 독립영화관 공모 결과 백지화를 요구하며 항의시위를 하고 있는 영화인들

2010년 이명박 정권 당시 조희문 영진위원장에게 영상미디어센터와 독립영화관 공모 결과 백지화를 요구하며 항의시위를 하고 있는 영화인들 ⓒ 성하훈


'부정 심사 논란'이 제기된 2009년 독립영화관과 영상미디어센터의 공모는 행정 법원이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부정 심사 논란까지 빚으며 자격과 역량이 떨어지는 사람들 혜택을 준 결과는 결국 성과 없는 예산 낭비로 귀결됐다.

영화계에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 진상조사를 넘어 이명박 정권 당시의 문제에 대해서도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블랙리스트의 시작은 이명박 정권으로 봐야하기에 확실하게 과거를 정리하려면, 지난 일이라고 해도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현재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는 활동기간이 연장된 상태이나, 4월말이면 이마저도 끝난다. 처음 시작을 외면한 채 중간 부분인 박근혜 정권 블랙리스트만 조사하는 건 아쉬움이 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을 계기로 이에 대한 고민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당시 문화예술계를 유린하는데 일조한 인사는 22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을 배웅하기 위해 자택을 찾았다. 그의 주군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여전히 잘못에 대해 반성이나 사과도 없는 태도는 영화계 인사들에게 씁쓸함으로 남는다.

이명박 구속 독립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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