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 미제라블> 스틸 컷.

영화 <레 미제라블> 스틸 컷.ⓒ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촛불로 광화문이 빛났을 때, 그리고 많은 집회 현장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뮤지컬 음악을 꼽으라면 단연 <레 미제라블>의 'Do you hear the people sing?(민중의 노래)'이다. 원래도 유명한 뮤지컬이었지만, 2012년 영화로 큰 성공을 거둔 이후 수많은 혁명 배경의 뮤지컬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됐다.

다른 한편으론 진부하고 낡은 메시지

하지만 정말로 <레 미제라블>이 '진보적'인 텍스트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쉽지 않다. 극을 따라 읽을 때 텍스트에서 도출되는 메시지는 오히려 굉장히 오래된 가치, 혹은 보수적인 가치들이 먼저다. 첫째로 이 서사는 결국 장발장의 인생 이야기이고 그에 맞서는 반동 인물은 자베르다. 서사가 남성 주인공과 남성 반동 인물로 주되게 이끌어지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이 텍스트가 지니는 전체적인 주제는 종교적이고 낡았다.

극중 인물들은 각각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 떼르나띠에 부부는 세속적 가치로 대변되고, 앙졸라를 비롯한 학생들은 혁명·진보적 가치를 상징하며 자베르는 법과 규범의 세계를 의미한다. 그들은 모두 그 시대를 견뎌낸 사람들이었다. 그 인물들 사이에 불쌍한 장 발장이 있다. 기구한 그의 인생은 신부가 선물한 은촛대로 인해 변한다. 은촛대는 장발장이 3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보여주는 변화의 시발점이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하필 은촛대를 준 것이 '신부'라는 점이다. 그냥 보통의 선한 사람이 아니라 신부라는 것. 그가 보여주는 사랑은 단순한 사랑이 아니다. 신부의 선량함은 일종의 종교적 선량함이었다.

장발장이 이후 품고 사는 것은 그 종교적 사랑이고, 이는 그가 2막에서 '브링 힘 홈(bring him home)'을 부를 때 극대화 된다. 애초에 '브링 힘 홈'은 마리우스를 집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하는 노래가 아니던가. 그 뿐인가. 극은 결국 장발장의 죽음으로 끝난다. 장발장은 죽음을 다름 아닌 성당에서 맞이한다. 특히 1985년부터 공연되고 있는 웨스트엔드 프로덕션의 무대에서는 그 은촛대와 십자가가 소품으로 등장한다.

이때, 팡틴과 장발장이 함께 부르는 노래의 가사를 보자. 팡틴은 극 중 '성스러운, 희생적 사랑'을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이었고, 이미 죽은 인물이었다. 에포닌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둘은 성당에서 죽어가는 장발장을 천국으로 맞이한다. 가사는 신에 대한 이야기다.

'And you will be with God.'(네게 신이 함께할 거야.)
'Thank God, thank God.'(신이시여 감사합니다.)
'Lord in Heaven look down on him in mercy.'(천국에 있는 신이 그를 굽어살피지.)

얼핏 봐도 신에 대한 언급이 많은 이 노래는 후에 학생들이 등장될 때 더욱 강조된다. 새 시대를 노래하던 '민중의 노래'를 다시 부를 때 가사는 'freedom in the garden of the Lord'라 노래한다. 이 때 이야기되는 '바리게이트 너머의 어딘가'에서 바리게이트는 현실적 혁명 너머의 어딘가로 읽힌다. 학생들이 죽어가며 꿈꾸던 '새 시대'는 결국 현실의 것이 아니라 신의 것이라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할 것은 직전의 죽은 학생들에 대해 여성들이 부르는 '터닝'이다. 'Nothing changes, nothing ever can' 'Turning, turning, turning'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고 모든 것이 돌고 돌 뿐이다. 극중에서 심하게 강조됐던 <레 미제라블>의 회전 무대가 떠오른다. 회전, 결국 변하지 않고 그 자리를 회전하는 것의 상징. 공교롭게도 장발장이 죽을 때에 회전 무대는 멈춰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회전하기만 하는, 불쌍한 사람의 인생이 끝났기에. 그는 이제 신의 소유기에.

텍스트의 시대, 해석의 다양성

 영화 <레 미제라블> 스틸 컷.

영화 <레 미제라블> 스틸 컷.ⓒ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우리 모두 다 불쌍한 인간들일 뿐이다. 인간 세계의 고통은 끝이 없고 인간의 것으로 이 세계를 나은 곳으로 만들 수는 없다. 모든 고통은 회전할 뿐이다. 너의 고통은 네가 만약 신적인 사랑을 생에 베푼다면 죽음 이후, '천국'에 가서야 끝날 것이다."

어찌보면 <레 미제라블>은 이렇게 해석해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레 미제라블>은 굉장히 진보적인 텍스트로 읽히고 있다. 마치 끊임 없는 투쟁의 상징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우리는 감히 '오독'이라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다른 해석을 시대에 맞게 해석한, 현대적 텍스트 수용의 긍정적 사례로 읽힐 만도 하다. 왜일까?

필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텍스트, 즉 창작자와 수용자 간의 상호 작용을 강조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리라 답한다. '작가의 의도'를 묻는 시험 문제가 비웃음이 된 지는 오래다. 작가의 권위는 해체되고 오늘은 바야흐로 소비자의 시대다. 소비자들이 보이콧 운동을 하고, 창작자에게 조언을 하거나 그 이상으로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시대다. 이는 시대적 흐름이며 한편으로는 긍정적 양상이라고 읽힐 수 있겠다. 우리에게 새로운 해석을 가져다주고 작품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으므로. 작품의 가치를 극대화 할 수 있으므로.

앞으로 등장할 <레 미제라블>의 새 해석들

 영화 <레 미제라블> 스틸 컷.

영화 <레 미제라블> 스틸 컷.ⓒ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레 미제라블>이 가지고 있던 하나의 보수적 측면은 '민중의 노래'와 같은 노래나 앙졸라를 비롯한 학생 캐릭터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쇄신되고 '진보적 텍스트'로 바뀌는 데 일조했다. 이는 광화문에 울렸던 '민중의 노래'와 같이 사회적 선순환으로 나아갔다. '연극은 시대정신적 희망이다'는 말에 비추었을 때 정말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극이 가지고 있는 모든 보수적, 혹은 아쉬운 측면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여성 인물들이 있다. <레 미제라블>에서 보여주는 여성관은 협소하기 짝이 없다. 다른 남성 인물들이 인생을 바꾸는 선택을 하고 누군가를 좇고 혁명을 하고, 혁명과 사랑 사이에 갈등을 하며 입체적인 모습을 보일 때 여성들은 오로지 사랑을 한다. '모성애'와 같은 사랑이거나, 남성 인물에 대한 이성애거나. 서사에서 여성 인물들이 등장하는 비중도 남성 인물들에 비해서 현저히 적다.

이미 30년이 넘은 뮤지컬이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레 미제라블>은 훌륭한 뮤지컬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남성 인물들을 보여주는 뮤지컬로 자리 잡았다. 이젠 여성들도 그 캐릭터를 차지할 때 아닌가. 무대 아래 여성 관객들도 사랑하는 여성 인물들 말고, 다른 드라마를 보여주는 여성 캐릭터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찾고 이입할 수 있을 때가 되지 않았나. 학생들이나 앙졸라가 됐든, 마리우스가 됐든 (마리우스가 여성 배우로 연기된다면 그 급진성은 두 배가 될 것이다), 자베르가 됐든, 그리하여 어느 날은 장발장이 됐든.

 영화 <레 미제라블> 스틸 컷.

영화 <레 미제라블> 스틸 컷.ⓒ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심지어 연극 뮤지컬계는 관객, 혹은 팬덤 특성상 이러한 변화를 더욱 급진적으로 수용할 팬덤이기도 하다. 수많은 남성 인물들을 여성 배우로 '상플'하는 것은 연극 뮤지컬 팬덤에서 그다지 새로운 일이 아니니까. 소비자들도 원하고, 작품을 더욱 풍성으로 할 수 있으며, '피씨함'으로 올바름과 진보성을 지닐 수도 있다. 이 얼마나 커다란 잠재력인가! 이 잠재력 많은 '재해석'은 관객들의 몫이라기보단 결국 창작자들의 몫이다. 작품의 메시지를 관객들이 재정립할 수는 있어도, 캐스팅을 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레 미제라블>은 소설로도, 뮤지컬로도 고전이다. 고전은 오래된 텍스트이지만, 다른 말로는 권위 있는 텍스트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수많은 재해석의 가능성을 가진 텍스트라 말할 수 있겠다. 이미 수많은 재창조를 거친 이 텍스트, 어쩌면 오엑날 이 텍스트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움'일지도 모른다. 다음 <레 미제라블>에서 우리는 이 '새로움'을 볼 수 있을 것인가. 작은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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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까칠하게 공연을 보고, 이야기 합니다. 때로 신랄하게 '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잘 만든 작품에게는 누구보다 따뜻하지 않을까요? / 해외 관극도 함께하며, 잘 만든 서사를 기다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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