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동네 등산모임에서 내 나이 두 배쯤 되는 이웃의 이야기가 꽤 오랜 시간 마음에 남아있다. 모습도 몸뚱이도 서서히 늙어 가는데 내 마음은 늙지를 않아서 가끔은 서글프더란 이야기.

몇 해가 흐르고 곱절이던 나이차가 점점 좁혀지듯 '같이 늙어간다'는 말이 익숙해질 때쯤 '마음과 몸의 나이가 달라서 가끔은 서글프더라'는 그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내 마음에도 종종 응용되곤 한다.

꽃피던 스무 살 내 앞자리가 1에서 2로 바뀔 때도 실상은 뭐 특별할 거라고는 없었고, '반오십'이라는 스물다섯에도 그저 사회생활에 적응하느라 자연스러웠고,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10년째 부르던 (스무 살 때부터 애늙은이처럼 주구장창 불러왔더랬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서른이 되던 해에 계란 한판을 선물받아도 누구보다 금방 나이라는 숫자에 적응하곤 했었다.

서른셋이었던 작년까지도 '삼땡'이라 스스로 위로하고, 예수님까지 모셔와 33이라는 숫자에 잘 적응하고 버텼던 나였는데...

무술년 새해 2018년, 룰라의 '3, 4!'를 급하게 갖다 붙여봐도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 숫자 34살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올해 생일 케잌에 초를 두 번 붙였다. '올해부터는 마음 나이에도 촛불을 밝혀 주리라' 마음먹으며 공식 나이 34살과 내가 생각하는 내 마음 나이 17살! 에 두 번 불을 밝히고, 생일축하 노래도 두 번 불렀다.

생일축하케잌  올해는 신랑이 직접만든 깁밥으로 케잌을 대신했다.

▲ 생일축하케잌 올해는 신랑이 직접만든 깁밥으로 케잌을 대신했다. ⓒ 김태리


생일 케잌 마음 나이에도 촛불켜주기

▲ 생일 케잌 마음 나이에도 촛불켜주기 ⓒ 김태리


그러고 보니 내가 생각하는 마음 나이와 실제 나이가 딱 곱절이다.

하루라는 날에 주어진 24시간, 일년 12달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는 물리적 시계를 멈출 수는 없어도 내 마음의 시간 만큼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여전했던 열일곱에 잠시 멈춰두고 싶다. 친정 엄마랑 대화 끝에 아웅다웅하다가도 금방 또 미안해서 울컥하고, 사과하고 싶어지는 내 모습에서 '철없던 내가 철들었구나'라고 느낄 때, 젬뱅이인 살림살이도 주부 5년차라 조금은 속도가 붙고, 나름의 요령이 생길 때 '아, 나도 제법 어른이 되었구나' 생각하며 뿌듯함과 동시에 왠지 모를 서글픔 혹은 재미없음.

서서히 나도 늙어가는 것이겠지...

믿고 듣는 인디가수 '커피소년'이 새 봄 싱글을 발표했다.
지금 거기에 있어요 커피소년 싱글

▲ 지금 거기에 있어요 커피소년 싱글 ⓒ 김태리


정말 딱 '커피소년'다운, '커피소년'스러운, '커피소년'만의 따뜻한 음성으로 생활밀착형을 넘어 마음밀착형 가사의 두 곡이 담겼다.

01. 지금 거기에 있어요.
02. 서서히

'커피소년' 만의 특색있는 곡소개를 함께 보자.

커피소년 싱글 '지금 거기에 있어요'  2번 트랙 '서서히' 곡소개 중에서

▲ 커피소년 싱글 '지금 거기에 있어요' 2번 트랙 '서서히' 곡소개 중에서 ⓒ 김태리


노래를 반복하며 듣다 나의 지난 10년을 돌아봤다. 스물 넷에서 서른 넷, 앞자리 숫자만 바뀌었을 뿐 모습도 마음도 서서히 조금씩만 변했을 뿐 나는 여전히 나인데... 앞으로의 10년을 상상해 보았을 때 왠지 그 속도가 조금은 빠를 것 같아 내 나이 44살의 모습은 정말 서서히 왔으면 하고 생각해보았다.

앞자리 숫자는 다시 한 번 바뀌겠지만 노래 속 가사처럼 눈에 익도록 서서히 늙어가길. 서서히 사라지길 내워놓고 비워내는 내가 되길.

기사의 마무리는 2번째 수록곡 '서서히'의 손글씨로 대신한다.

커피소년 - 지금 거기에 있어요. 직접 쓴 손글씨 - 김태리

▲ 커피소년 - 지금 거기에 있어요. 직접 쓴 손글씨 - 김태리 ⓒ 김태리


다시는 오지 않을 오늘을 뜨겁게 살아내고, 격렬히 행복하며 그렇게 우리 마음 오래도록 소년, 소녀이길.

로스팅뮤직 커피소년 그냥거기에있어요 서서히 노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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