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나의 아저씨>가 드디어 첫 방송을 통해 베일을 벗었다. '힐링 드라마'라는 설명 때문에 밝은 분위기의 로맨스 코미디를 기대한 시청자들은 깜짝 놀랐을지도 모른다. 전에 없던 어두운 분위기의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남자 주인공 박동훈(이선균 분)은 '그저 그런' 삶을 사는 40대 남성으로, 집에는 무능한 형제들과 자신만 바라보는 홀어머니가 있다. 여자 주인공인 이지안(이지은 분)의 상황은 더 우울하다. 가진 건 하나도 없는데 빚은 산더미고, 나이든 할머니까지 부양해야 한다. 얼굴에는 핏기가 하나도 없고, 눈 밑에는 어둠이 내려앉았다.

지안은 회사 일이 끝난 후 식당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손님들이 남긴 음식을 비닐봉지에 챙겨와서는 불 꺼진 방안에서 입안에 욱여넣는다. 이때 사채업자 이광일(장기용)이 찾아온다. 광일은 허락도 없이 지안의 집에 들어오고, "너 어디서 일은 하냐?"고 빈정대며 돈을 요구한다. 허락 없이 내 공간에 들어오는 거 싫어한다는 지안의 말에 광일은 '싫어하는 걸 또 말해보라'며 '그것만 하겠다'고 응수한다.

문제는 그 다음 장면에서 등장했다. 다음날 집에 돌아온 지안이 자신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광일을 제지하자, 광일은 지안의 배와 입 등을 수차례 가격한다. 이 장면에서 등장하는 대사는 이렇다.

"네 인생은 종 쳤어, 이 X아. 질질 짜면서 죽여달라고 빌어봐라, 이 미친 X아."

해당 장면이 논란이 되자 포털사이트와 유튜브에 있던 예고편 영상은 모두 삭제됐다.

'좋아해서' 때린다고요?

 21일 첫 방영된 <나의 아저씨>에는 이지안(아이유)이 이광일(장기용)에게 폭행을 당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21일 첫 방영된 <나의 아저씨>에는 이지안(아이유)이 이광일(장기용)에게 폭행을 당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 tvN


더 큰 문제는 극 중 이광일이라는 캐릭터의 설정이다. tvN 공식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인물 설명에 따르면, 그는 "지안을 괴롭히는 맛에 사는 사채업자"로, "그녀의 다른 빚까지 사서 끊임없이 지안 주변을 맴돈다." 그가 지안을 괴롭히는 이유는 더 가관이다. "지안이 자신을 보게 만드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광일이 이지안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좋아하고 있어서 괴롭힌다는 전개를 암시하는 부분이다.

이광일 역을 맡은 장기용은 드라마 시작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광일은 나쁜 남자"라며 "속으로는 남모를 아픔을 지닌 캐릭터"라고 말했다. 제작진 측도 폭행 장면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이들의 관계가 회차를 거듭하며 풀려갈 예정이니 긴 호흡으로 지켜봐 달라"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광일은 잠깐 지나가는 '악당'이 아니라 의문의 사연을 가진, 외적인 매력을 갖춘 캐릭터로 등장한다. 이들의 관계가 회차를 거듭하며 풀려간다는 사실은 더 문제적이다. 드라마가 진행되며 광일의 '남모를 아픔'이 공개되면 이 폭행이 정당화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나쁜 남자'도 좋아한다는 이유로 여자를 피가 나도록 주먹으로 때려서는 안 된다. 시청자들이 이 장면이 '데이트 폭력'을 연상케 한다고 비판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해당 장면이 데이트를 하는 도중이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때린다'라는 생각이 데이트 폭력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이 방송통신위원회에 민원을 넣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누리꾼들은 "그러면 조폭 영화에서 칼 맞는 장면은 안 불편하냐"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폭 영화에서 등장하는 칼부림은 남성성을 과시하고 위계를 짓는 장면이지 '나쁜 남자'가 애정을 표현하는 장면이 아니었다.

남성에게는 관대하고, 여성에게는 납작한 서사

 극 중에서 이광일(장기용)은 '지안이 자신을 보게 하기 위해' 지안을 괴롭히는 인물이다.

극 중에서 이광일(장기용)은 '지안이 자신을 보게 하기 위해' 지안을 괴롭히는 인물이다. ⓒ tvN 홈페이지


<나의 아저씨>에 등장하는 불균형한 젠더관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 드라마가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몰았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이든 남성과 어린 여성'의 로맨스물 제작 소식이 쏟아져 나오던 지난해 말부터, 이 드라마는 '중년 남성의 판타지를 재현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남자 주인공 박동훈은 어린 자녀가 있는 유부남으로, 회사의 경리 직원인 여자 주인공 이지안과의 관계에서 서로 삶의 구원을 얻는다. 시놉시스에 따르면 그는 지안을 통해 '나이 마흔다섯에 처음으로 발견한 길가의 꽃이 된 기분'을 느낀다. 그의 아내는 무슨 잘못이냐고? 그래서인지 아내 강윤희(이지아)는 첫 화부터 '비윤리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동훈의 회사 대표이사이자 대학 후배인 도준영(김영민)과 바람을 피우는 것이다. 동훈의 감정에 대한 '실드'가 가능해지는 부분이다.

조연 인물들의 입체성에도 차이가 난다. 동훈의 형인 상훈은 아내가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자며 악악대지만", "그래도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는" 캐릭터다. 아내인 애련에 관해서는 "여자 나이 45세. 거울도 보기 싫어지는 타이밍"이라는 묘사와 함께 "고가의 명품으로 품위 유지"를 못해서 남편을 닦달한다는 식으로 서술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 드라마에 등장하는 장면을 보면 이 관계에 무책임한 것은 남편 상훈이다. 그는 자신의 딸 결혼식에서 동생 기훈과 짜고 축의금을 빼돌리려다 아내에게 걸린다. 그리고는 예식장 비상구에서 경찰서에 가자는 아내에게 오히려 "내가 오백은 해주지 않았냐"며 큰소리를 친다. 실제로는 무능할 뿐 아니라 딸에 대한 염치도 없는 아버지지만, 인물 설명은 마치 그가 우악스러운 아내에게 눌려 사는 인물처럼 그렸다.

삼 형제 중 막내인 기훈(송새벽)의 러브라인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천재 감독으로 반짝 주목받았지만 지금은 하는 일이 없는 백수로 등장한다. 그의 러브라인 상대는 최유라(나라)로, 기훈의 영화에 참여하던 3개월 동안 너무 구박을 받아 말을 더듬게 되고, 트라우마가 생겨 연기를 계속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20여 년 만에 만난 기훈와 사랑에 빠진다니, 이쯤 되면 이 드라마 속의 연애 관계는 '괴롭힘'을 전제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화려한 배우와 실력 있는 제작진으로 화제를 모았던 <나의 아저씨>는 첫 회가 방영된 다음 날 곧바로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뒤덮었다. 폭행 장면에 대한 논란도 있었을 것이고 드라마 자체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도 있었을 테지만, 어쨌든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제작진들은 비판을 귀담아듣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남은 회차 동안은 보다 섬세한 연출을 기대한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중 한 장면

드라마 <나의 아저씨> 중 한 장면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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