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죽이기>의 한 장면

<앨리스 죽이기>의 한 장면 ⓒ 인디다큐페스티발


성추행을 당했으나 8년이 지나 증거는 없고 기억만 남았다. 상황을 복기하면 할수록 확실해지기보단 희미해져 가는 사건. 이게 기억으로 변할 때까지 영화를 만들어보기로 하면서 다큐멘터리 한 편이 제작된다. <관찰과 기억>은 제목 그대로 관찰했던 순간과 기억을 재구성하는 작품이다

미국에서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고 있는 신은미씨가 어느 날 남편과 함께 북한 여행을 다녀온 후 그 과정을 <오마이뉴스>에 연재한다. 분단된 체제에서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한국시민단체의 초청으로 열린 토크콘서트를 통해 여행담을 나누는데 종편의 왜곡보도가 시작된다. 그의 발언은 뒤틀리고 보수단체의 시위가 벌어지면서 경찰의 수사도 받게 된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비난하는 상황에서 사회적 관심도 높아간다. 다큐멘터리 영화 <앨리스 죽이기>의 카메라는 밀착취재를 통해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와 함께 보수언론의 왜곡보도의 실태를 고발한다. 냉전체제에 기생하려고 하는 한국 사회의 민낯이다.

침몰한 지 1080일 만에 목포신항으로 온 세월호. 그 날부터 유가족들은 작은 조각 하나도 소중히 살피며 선체 수색과정을 지켜본다. 그곳의 낮과 밤을 고요히 들여다본다. 목포 신항의 아름답고 고요한 밤은 낮에 세월호를 직접 마주하는 유가족의 고통을 상쇄시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본 밤은 낮과 다른 형태의 고통이었다. <목포의 밤>은 그 낯과 밤에 대한 기록이다.

약자를 비추는 독립다큐

 18회 인디다큐페스티발 포스터

18회 인디다큐페스티발 포스터 ⓒ 인디다큐페스티발


18회 인디다큐페스티발이 22일 개막한다. 봄을 여는 영화제로 대표되는 인디다큐페스티발은 한 해 가장 먼저 열리는 독립영화제면서 최근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다룬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상영해 주목받는 영화제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는 상당히 불편해하는 영화제 중 하나였다. 이 때문에 지원 예산이 지난 9년 동안 삭감되는 기조가 이어졌다. 한겨울 삭풍을 버텨내는 마음으로 꼿꼿하게 버텨왔는데, 지난해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올해 비로소 '봄을 여는 영화제'로서 의미가 강화됐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사회를 보는 독립다큐의 시선은 변함이 없다. 미투 운동과 종북몰이, 세월호 등은 올해 인디다큐페스티발의 열쇠 말을 이루고 있는 주제들이다. 여기에 성소수자와 밀양 송전탑 및 성주 사드, 장애, 청년 재개발, 국정원의 선거 개입 등이 더해진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다큐멘터리 카메라의 시선은 다양한 곳에서 그늘진 모습을 담았고, 이슈가 되고 있는 현장을 찾아 끈기 있게 카메라를 고정시켰다. 올해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상영되는 47편의 다큐멘터리들은 우리 사회가 더 돌아봐야 하는 구석진 곳에 대한 영상보고서다.

올해 상영되는 작품들 중에는 지난해 주요 국내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다큐멘터리들이 눈에 띈다. 부산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대상과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수상한 박배일 감독의 <소성리>와 전주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수상작인 박문칠 감독의 <파란나비효과>가 대표적이다. <말해의 사계절>이나 <밀양, 반가운 손님> <강정 인터뷰 프로젝트> 등에는 밀양과 청도의 송전탑 반대 운동과 성주 사드 배치 문제, 질긴 싸움을 이어가는 제주 강정마을에 대해 끈질기게 문제제기하려는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의지가 담겨 있다.

이마리오 감독이 10년 만에 내놓는 <더블랙>은 주목되는 다큐들 중 하나다. 월드프리미어로 첫 공개되는 영화는 2012년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사건과 함께 2013년 연말 서울역 고가도로에서 분신한 이남종 열사의 뒤를 따라가는 영화다.

이승민 평론가는 "<더블랙>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다루지만, 사람을 놓치지 않는다"며 "묻히고 지워진 고 이남종씨를 시발로 영화는 그의 죽음을 다시 기리면서 전체적인 액자의 틀로 이남종씨를 불러올 뿐 아니라 탐사저널리즘의 형식으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담는다"고 설명했다.

 이마리오 감독 <더블랙>의 한 장면

이마리오 감독 <더블랙>의 한 장면 ⓒ 인디다큐페스티발


도시 재개발과 청년

도시 재개발과 청년도 올해 인디다큐페스티발의 시선이 향하는 부분이다. 재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곳을 중심으로 살던 사람들과 사회의 변화상을 담아내거나, 청년세대의 고민 등이 담겼다.

라야 감독의 <집의 시간들>은 서울 끝자락 둔촌주공아파트, 즉 재건축으로 없어지게 될 아파트 단지의 이야기다. 이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평소와 같은 집과 동네의 풍경, 그리고 소리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문제의식보다는 대단지 아파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보내온 시간의 기억에 초점을 맞춘 다큐멘터리다.

<도망치는 것은 비겁하지만 도움이 된다>는 서울에 올라온 지 10년이 되는 청년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이야기이고, <해피해피쿠킹타임>은 우울함을 이겨내기 위해 애쓰는 미래가 불학실한 젊은 예술가의 하루다.

<나를 위한 변명>은 변명은 지난해 첫 대선을 치른 세대에 대한 이야기다. 촛불과 탄핵으로 이어진 한국 사회의 굵직한 변화를 겪은, 스무 살 남짓 된 젊은 청년들의 평범하고 소소한 기억들이 소환된다.

올해 개막작은 <관찰과 기억>, 성소수자 문제를 소재로 한 <퀴어의 방>이다. 18회 인디다큐페스티발은 22일 목요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29일까지 8일간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 개최된다. 영화상영 외에 국가와 밀양·성주, 액티비즘 다큐 등을 놓고 감독과 관객들 간의 깊이 있는 대화 시간도 마련된다.

인디다큐페스티발 독립다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