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포스터

▲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지난 2005년 국내에 개봉한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이치카와 다쿠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비의 계절에 다시 돌아오겠다던 약속을 남기고 먼저 세상을 떠난 미오(다케우치 유코 역)와 그녀를 기다리는 남편 타쿠미(나카무리 시도 역), 그리고 아들 유우지(다케이 아카시)의 이야기.

<4월 이야기>(2000),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 <냉정과 열정 사이>(2003) 등과 함께 1990년대 중 후반을 시작으로 약 10여 년간 이어진 일본 멜로 영화 부흥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순수한 사랑과 순애보를 바탕으로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한편, 현실에서 충족되기는 힘들지만,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보았을 법한 상황들로 채워진다. 특히, 도이 노부히로 감독이 연출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영화의 각본을 단순한 사랑 이야기로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사적인 부분을 상당히 잘 표현하여 누군가의 추억을 들여다보는 듯 느끼도록 만드는 데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02.

최근 개봉한 이장훈 감독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앞서 설명한 작품을 13년 만에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국내 멜로 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라 해도 과언이 아닌 배우 손예진과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에서 강인함 속의 부드러움을 보여준 배우 소지섭이 캐스팅되면서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국내 영화 산업에서 멜로 장르의 작품들이 모습을 감추기 시작해 장르의 다양성을 해치던 상황은 물론, 특정 장르에 대한 취향을 충족시키지 못한 관객들의 마음도 해갈해 줄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일본에서 제작된 원작 영화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간다. 부분적으로 인물을 추가하거나 일본식 표현을 한국식으로 변용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오히려 이런 부분들이 원작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에 비해 더 긍정적일 수 있다. 이 작품을 처음 접하는 관객들은 물론 원작의 내용을 기억하는 관객들에게도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스틸컷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스틸컷

▲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스틸컷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03.

영화는 원작보다 더 밝은 느낌으로 연출되었다. 정통 멜로의 결을 벗어날 정도의 각색은 아니지만, 아련한 느낌의 감성은 무게를 줄이고 과하지 않을 정도의 코믹함을 가미했다고 할까? 영화의 도입부에서부터 '구름 나라 이야기'가 담긴 애니메이션을 통해 귀여운 느낌을 전달하고 있고, 원작에서는 단순한 빵집 점원일 뿐이었던 홍구(고창석 역) 역을 각색하여 분위기 전환을 위한 캐릭터로 적극 활용한다.

굳이 비교하자면, 이용주 감독의 <건축학개론>(2012)과 곽재용 감독의 <클래식>(2003) 사이쯤에 위치한 작품 정도로 다가온다.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겠다는 감독의 의도는 이 작품에 특별 출연하는 배우들만 보더라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이 작품에 어떤 배우들이 깜짝 출연하는지는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리메이크 작품의 방향성을 이야기 하는 것은 어쩌면 결국 흥행에 따라 바뀔 수 있는 부분이기에 두 영화의 매력을 놓고 어떤 것이 더 낫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04.

작품의 주인공이었던 타쿠미와 미오, 두 사람의 관계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던 원작과 달리, 수아(손예진 역)와 지호(김지환 역)의 관계, 우진(소지섭)과 지호의 관계 모두에 집중하려는 영화의 시선도 이 작품의 특징이다. 원작과 이 작품 모두 가족과 부부의 사랑 모두 조명하지만, 원작 영화가 부부인 두 사람의 사랑에 더욱 치우쳐 있다면, 이 작품은 가족에 방점이 찍힌다.

어쩌면 이 부분은 타쿠미와 우진, 두 사람의 외부적 상황이 기본적으로 다르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에게 일종의 강박장애가 있다는 것까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 – 이 설정은 원작 소설의 작가인 이치카와 다쿠지의 실제 모습이 반영된 것이다. – 

다만 아들을 홀로 키워야 한다는 사실 외에는 직장 상사조차 낮잠을 즐기며 외부적 스트레스가 크게 주어지지 않는 다쿠미와 달리, 우진에게는 다양한 상황들이 주어진다. 이 지점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최 강사(이준혁 역)라는 인물이며, 그녀가 돌아온 장소를 나무로 메우려는 에피소드도 추가된다.

05.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장훈 감독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는 우진과 수아, 두 사람의 풋풋한 사랑 바깥에 놓인 사랑 이야기들이 모두 함께 두드러진다. 홍구의 사랑을 조명하는 일이 그렇고, 우진을 바라보는 직원의 모습에 강한 질투심을 느끼는 최 강사의 모습까지 말이다. 어린 지호가 자라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모습을 놓치지 않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작품의 밝은 부분 역시 이 지점의 차이에서 기인되는 바가 있다. 이는 현실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더 두드러지며, 회상을 통해 과거의 장면을 이야기 하는 장면에 두 사람이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맡겨 놓는다. 실제로 현실의 장면에서 두 사람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장면이 원작에 비해 축약되어 있기도 하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스틸컷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스틸컷

▲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스틸컷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06.

원작의 작품을 기억하는 관객들에게는 두 작품이 어떤 지점에서 표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지 살펴보는 일도 즐거울 것 같다. 비가 오기를 바라며 창가에 걸어두는 일본의 테루테루 보우즈는 이번 작품에서 네잎 클로버가 되어 아들인 지호의 마음을 대신한다.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한 내러티브에서는 원작에서 축제가 활용되던 것이 아들의 운동회가 되고, 육상 선수로 트랙을 돌던 타쿠미는 우진으로 넘어와 수영 선수가 된다.

다만, 원작과 달리 작품을 관통하는 내용과도 같은 '구름 나라 이야기'를 영화의 시작과 함께 활용한 것은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 원작에서는 동일한 내용인 '아카이브 별'에 대한 애니메이션이 엔딩 크레디트 지점에서 등장한다. – 물론 두 작품 모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이 만화책의 내용이 몇 차례 언급되지만, 전체 이야기를 오프닝으로 활용하는 방식은 작품의 구성을 단순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점에 있어서는 다소 용이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어쩐지 모든 내용이 서두의 애니메이션 내용에 맞춰지는 듯한 느낌이 들고 마는 것이다. 이는 작품 전체에 대한 아쉬움이 아닌 특정 소재의 연출 상 활용에 대한 아쉬움이다. 전작의 답습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07.

그때나 지금이나, 순애보를 바탕으로 하는 정통 멜로 계열의 작품들이 보이는 사랑에는 변하지 않는 속성들이 있다. 지고지순함과 영원한 마음, 그리고 희생. 2005년 일본에서 제작된 작품과 2018년에 한국에서 제작된 작품 사이에도 그 속성들은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비가 그치는 날이 오면 다시 또 한 번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남겨질 아들과 남편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 자리를 쉽게 허물어뜨리지 않은 채 출근길마다 사진을 향해 마음을 전하는 것. 어쩌면 이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그런 마음을 일깨워주고자 다시 한 번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 무비 지금만나러갑니다 손예진 소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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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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