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막론하고 공감과 재미를 주는 영화의 리뷰와 함께 연출자의 의도 또는 개개인의 시선으로 만들어지는 의미 및 교훈을 독자들께 전달하고자 합니다. - 기자 말

걷기왕 만복 역을 맡은 심은경

▲ 걷기왕 만복 역을 맡은 심은경 ⓒ CGV아트하우스


얼마 전 길을 걷다가 떠오른 생각이 있다. 하늘을 쳐다본 지 오래됐다는 것이다. 어릴 때는 느긋하게 놀이터에 누워 보기도 하고, 걷다가도 가끔씩 푸른 하늘을 보곤 했었다. 오늘날 우리는 길게 뻗은 정해진 선을 따라 달리는 경주마와 별 다를 바 없다.

사회에선 1등만이 인정받는다. 학교, 회사, 매스컴, 책 등 모두 우리에게 남들보다 앞서야한다고, 적어도 남들만큼은 해야 한다고 외친다. 게다가 남들과 다른 길로 가기라도 하는 날에는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야단법석을 떤다.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언제부턴가 항상 앞만 보기 바빴고, 앞날만 생각하기에 급급했다. 남들과 똑같아지는 것에 집중했다. 그 결과, 제대로 한 것도 없이 공허함만 남았다. 말하자면 시키는 대로 앞만 보고 달렸지만, 낮은 순위로 밀려난 경주마인 셈이다. 아마도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이 꽤나 많으리라 생각한다.

우리에게 남은 방법은 세 가지다. 남들을 따라가려 노력하거나 포기하고 안주하는 것. 마지막 한 가지는 정해진 선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결승선으로 가는 것이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이를 돕기 위해 우리와 같은 기로에 놓인 영화 <걷기왕>(2016) 속 인물을 소개하고자 한다.

순수하고 여유롭던 만복이, 현실적인 지현이

걷기왕 만복 역을 맡은 심은경

▲ 걷기왕 만복 역을 맡은 심은경 ⓒ CGV아트하우스


고등학생인 만복(심은경)은 어릴 적부터 멀미증세가 심해 어떠한 탈 것도 타지 못한다. 심지어 소인 소순이(특별출연으로 안재홍이 내레이션을 맡았다)조차도. 그래서 그녀는 2시간동안 걸어서 등하교를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만복이는 이에 그다지 불만을 갖지 않는다. 그냥 남들 등교하듯이 그녀도 걸어서 갈 뿐이다.

다만 친구들보다 훨씬 느리게. 그녀는 그 긴 거리를 걸어가는 동안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며 손 사진을 찍는다. 손 사진을 찍는 이유가 단지 100번 찍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말을 믿기 때문인 것으로 보아 본래 순수함과 여유로움을 가진 인물인 듯하다. 그러나 그녀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변화한다.

딱히 이렇다 할 특기도 취미도 없던 그녀는 담임선생님의 강력한 추천으로 경보를 시작한다. 담임선생님의 추천이유는 단순히 그냥 잘 걷기 때문이다. 여기서 담임선생님은 학생들을 좋아하고 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인물이다. 다만 깊은 고려 없이 조금만 잘한다 싶으면 학생에게 희망을 주고, 열정과 노력을 외치며 학생들을 몰아붙인다(하지만 어떤 악의도 없고, 강압적이지도 않다). 그래서 만복이의 친구인 지현(윤지원)의 꿈이 공무원이란 이야기를 듣고, 이를 무시하고 다른 열정적인 꿈이 없냐고 되묻기도 한다. 지현이에겐 정시 퇴근을 하여 여유를 만끽하는 공무원의 삶이 꿈이었는데 말이다.

특히, 지현이는 영화 속 인물 중 오늘날 젊은 층을 가장 잘, 그리고 현실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이다. 공부를 잘하는 그녀의 꿈은 명문대 입학이 아닌 공무원이다. 명문대 졸업장으로도 취업은 쉽지 않고, 취업 후에도 만만치 않은 건 매한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안정적인 공무원을 지원하려 한다. 또한 그녀의 꿈처럼 요즘 많은 이들은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을 꿈꾼다. 이를 즐기기엔 다른 직업보단 공무원이 적합하지 않을까. 뿐만 아니라 지현이의 대사를 보면 "힘들어 죽겠는데 왜 참아야 돼요?" 등 주로 현실적이면서도 날이 서있다. 아마도 영화를 보는 대다수는 지현이의 대사 하나하나에 고개를 끄덕이리라싶다.

해맑은 연출 속 묵직한 메시지

걷기왕 만복 역을 맡은 심은경

▲ 걷기왕 만복 역을 맡은 심은경 ⓒ CGV아트하우스


다시 주인공인 만복이를 살펴보자. 경보를 시작한 그녀는 아버지, 담임선생님, 운동부 선배 등 주변 시선으로 인해 점점 압박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보다 높은 성적을 내려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 종일 연습에 매진하느라 발가락도 다치는 등 온 힘을 다해 노력한다. 이렇듯 영화는 순수하고 여유를 즐기던 한 소녀가 주변의 핀잔 등에서 비롯된 압박감으로 인해 어느새 높은 순위에 얽매이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또한 백승화 감독은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 만복이의 심한 멀미 증세라는 신선한 소재와 시종일관 익살스러운 분위기 연출로 보는 이의 웃음을 자아내려 노력했다. 분명 겉으로는 해맑은 분위기를 보이면서도 속에는 상반된 묵직한 메시지가 들어 좋았으나, 이 모두가 무색할 만큼 연출이 진부하다. 게다가 크고 작은 배역을 맡은 몇몇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마저 아쉬웠다.

개인적으로 만복이와 감정교류가 잦은 역할인 운동부 선배, 수지(박주희)의 존재가 가장 아쉬웠다. 처음엔 만복이를 싫어했으나 점점 그녀를 인정하게 되는 감정의 변화에 대한 설명은 지나치게 대충 넘어간 느낌이다. 자신처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며 좋아하게 됐구나 하고 유추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수지 역을 맡은 배우 박주희의 연기력도 아쉬웠다.

영화 <걷기왕>에서 만복이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갖은 노력, 고난, 갈등을 겪는다. 그러다 결국 자신만의 길을 선택한다. 그녀의 선택이 궁금하다면 영화 <걷기왕>을 보길 권한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리라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고 또는 같은 길을 조금 느리게 간다고 채찍질하지 않는 사회가 되길 위해서도.

걷기왕 영화 사회 픽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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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를 꿈꾸는 일반인 / go99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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