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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은 장애인들이 기량을 겨루는 국제 스포츠 대회인 동시에 장애-비장애인이 함께 벽을 뛰어넘는 지구촌 메가이벤트로 기획됐다. <단비뉴스>는 장애인(김미나 기자)과 비장애인(유선희 기자)이 공동의 시선으로 대회 이모저모를 취재·보도하고 아울러 무엇이 잔존하는 벽인지를 살펴본다. '보도 과잉'이라 할 정도로 유사한 보도가 쏟아져 나온 동계 올림픽 대신 <단비뉴스>가 패럴림픽을 집중보도하는 이유다. - 기자 말

우리 모두 '담 넘어 남의 일'처럼 잊어 가고 있는 평창 패럴림픽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invisible barrier)이 또 하나 있다.

평창 패럴림픽에 참가한 우리 선수단에는 여자 선수가 네 명뿐이다. 전체 선수단 36명 중 겨우 10%를 겨우 넘는다. 4년 전 소치 동계패럴림픽 때도 여자 선수는 네 명이었다. 평창 동계올림픽 비장애인 선수단 122명 중 여자선수가 46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여자 선수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평창 패럴림픽에 참가한 네 명의 여자선수는 다섯 종목에 출전했다. 좌식 크로스컨트리와 바이애슬론 두 가지 종목에 출전한 이도연(46) 선수, 좌식 크로스컨트리 1호 서보라미(31) 선수, 시각장애인 알파인스키 양재림(28) 선수, 휠체어컬링팀 방민자(56) 선수다. 그나마 얼마 안 되는 선수들의 나이도 상대적으로 높다. 네 사람 평균 나이가 40세로, 비장애인 동계 올림픽대표단 선수들의 평균 나이(25세)에 비교해 높다.

여자 선수 숫자가 적고 나이가 많은 것이 문제는 아니다. 우리 사회 여성의 고위직 승진을 가로막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깨트릴 수 없는' '유리천장'(glass ceiling)이, 우리 장애인 스포츠에는 보이지 않는 '유리벽'(glass wall)으로 숨어 있었음을 보여 준다. '장애'라는 장벽에 '여성'을 짓누르는 '유리벽'이 여성 장애인 선수들을 이중으로 가로막고 있다.

'여성'과 '장애'의 두 가지 벽

한국여성장애인연합회 문애준 대표는 15일 <단비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여성 장애인들에게 동계 스포츠 종목은 일반적으로 보급돼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동계 종목은 장애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 많지 않고 경기 자체에 대한 정보도 제한돼 있어 일반적으로 보급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스포츠에 익숙치 않은 장애 여성들이 동계 스포츠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가 있다"며 "동계스포츠를 낯설어 하고, 그나마 해 보려는 사람들도 소극적인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2017 9월 자료 기준 동계 스포츠 남녀 선수 비율.
 대한장애인체육회 2017 9월 자료 기준 동계 스포츠 남녀 선수 비율.
ⓒ 김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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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현재 대한장애인체육회 장애인 스포츠에 등록된 선수는 1만2202명이다. 이중 여자 선수는 3043명으로 남자선수의 4분의 1 수준이다. 동계 스포츠 등록선수는 총 414명인데 이중 여자선수는 84명으로 전체의 20%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실제 활동하는 선수는 이보다 더 적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애슬론 종목의 경우, 공식적으로 등록된 선수는 없지만 이번 동계패럴림픽에서는 한국 선수 6명이 출전했다. 그중 이도연 선수만 여자다.

문 대표는 "그러지 않아도 관심도가 낮은 패럴림픽에서 여성 선수의 참여 비율은 더 낮을 수밖에 없다"라며 "우리 여성 장애인들은 여성과 장애라는 두 가지 벽을 가진 셈"이라고 진단했다.

올해 마흔여섯 살에 세 딸의 어머니인 이도연 선수는 "2020년 도쿄패럴림픽에도 핸드싸이클 종목에 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마흔여섯 살에 세 딸의 어머니인 이도연 선수는 "2020년 도쿄패럴림픽에도 핸드싸이클 종목에 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 대한장애인체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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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장애인들이 운동을 좋아해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다른 사람에게 스포츠를 하자고 권하고 싶어도 가정 생활에 지장을 주니 할 수가 없어요. 가사와 스포츠를 같이 할 수가 없어 여자 장애인 선수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선수 개인들의 가사나 육아 부담도 여자장애인 선수들에게는 넘어야 할 벽이다.

한국 최초 동·하계 패럴림픽에 도전한 이도연 선수는 장애인 여자 선수가 많지 않은 이유로 '여성'이라는 특수성을 들었다. 세 딸을 키우고 있는 이 선수는 "전지훈련을 가면 한 달가량 집을 떠나 있어야 하는데, 어떤 남편과 가족이 좋아하겠느냐"라고 했다. 동계 스포츠 장비구입과 훈련 비용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다.

"장비를 마련하는 것도 다 개인이 해결해야 하니까 비용이 많이 들어 갑니다. 살림에 큰 부담이 되는 것이지요. (여자 장애인이) 운동을 하고 싶어 해도 남편이 집안일에 전념하라며 포기시키는 경우도 있어요."

일반적인 스포츠 종목에는 실업팀이나 지방자치단체나 기업 등에 소속팀이 많이 있어 장비나 시설 지원은 물론 훈련 등을 지원한다. 하지만 장애인 실업팀은 2016년도 기준으로 20개 종목 62개 팀에 241명이 소속돼 있으나, 전체 장애인 선수의 1.6%만 실업팀에 소속돼 있다.

나머지 대부분의 장애인 선수들은 개인이 장비구입과 시설이용 및 훈련비용을 마련해야 하니까 선수가 많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여자선수는 더 여건이 좋지 않다.

"두려워 말고 도전하세요"

좌식 크로스컨트리 서보라미 선수가 휠체어를 타고 훈련을 하고 있다. 그는 "휠체어가 눈밭 위를 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좌식 크로스컨트리 서보라미 선수가 휠체어를 타고 훈련을 하고 있다. 그는 "휠체어가 눈밭 위를 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대한장애인체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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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연 선수는 하계보다 동계패럴림픽에서 여자 선수의 참여가 저조한 이유로 '추위'를 꼽았다. 동계 패럴림픽 종목은 하계 종목과 달리 전부 눈이나 빙판 위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동계 스포츠는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휠체어를 타고 어떻게 눈밭 위를 갈 수 있을까?' 저도 다쳐서 장애가 생기기 전에 스키도 타고 보드도 탔지만, 장애가 생긴 뒤에는 휠체어를 타고 다시 스키장에 올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했어요. 이런 선입견이 동계 스포츠를 시작하는 데 큰 장애가 되는 것 같아요."

좌식 크로스컨트리의 서보라미 선수는 "처음 선수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대부분의 코치와 감독, 트레이너가 남성들로 돼 있어 그것도 여러 가지로 어려운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여성 감독과 코치 스태프가 늘어나 어려움이 없지만 초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겪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을 누구나 갖고 있는데 직접 해보고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서 선수는 대학에서 우연히 '비장애인과 함께하는 스키캠프' 프로그램에 참가해서 '다시는 못 탈 거라고 생각했던' 스키를 다시 탔을 때 너무 기뻤다고 전했다.

그는 운동을 시작하고 싶어 하는 장애인 여성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고 했다.

"다치고 나서 제일 후회스러웠던 게 다치기 전에 왜 이것저것 다 못 해봤을까. 왜 난 하지 않겠다고 뒷걸음쳤을까. 그게 가장 후회스러웠거든요. 하고자 하는 게 있다면 두려움을 넘어 다 도전해봤으면 좋겠어요. 그 결과가 실패든 성공이든 간에."

장애인 선수에게 나이는 벽이 아니다

방민자 선수는 컬링 경기에서 가장 먼저 투구하는 '리드'를 맡고 있다.
 방민자 선수는 컬링 경기에서 가장 먼저 투구하는 '리드'를 맡고 있다.
ⓒ 대한장애인체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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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애인 스포츠 선수에게는 나이가 장벽이 될 수 있지만 장애인 선수에게는 높은 벽이 아니다.

10살 아들을 둔 올해 마흔여섯의 이동하 선수는 휠체어 컬링 국가대표팀의 '귀여운 막내'다. '오벤저스'라 불리는 휠체어 컬링 국가대표팀의 정승원(60)·방민자(56)·서순석(46)·차재관(46)씨보다 나이가 적다.

나이가 가장 위인 정승원 선수와는 14살 차이가 난다. 장애인 스노보드 최석민 선수는 50세에 패럴림픽에 출전했다. 평창 패럴림픽에 참가한 우리나라 선수들의 평균 연령은 36세쯤 된다. 지난 2월 열린 동계 올림픽의 우리나라 국가대표의 평균 연령은 25세다.

대한장애인체육회 홍보부 오주영 과장은 "중간에 사고 등으로 다쳐 장애인이 돼 운동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 나이 많은 선수가 많다"라며 "입문하는 시기가 비장애인에 비해 10년 이상 늦어져 평균 연령이 높다"라고 말했다.

지난 3월 2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된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대회 대한민국 선수단 출정식에서 참석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이명호 회장(중앙),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정진완 총감독(회장님 왼편),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배동현 선수단장(총감독 왼편)의 모습이 보인다.
 지난 3월 2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된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대회 대한민국 선수단 출정식에서 참석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이명호 회장(중앙),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정진완 총감독(회장님 왼편),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배동현 선수단장(총감독 왼편)의 모습이 보인다.
ⓒ 김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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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장애인생활체육회 안지훈 운영총괄팀장은 "시·군·구 등 지방자치단체나 장애인체육회 등을 중심으로 장애인 스포츠에 관심을 두고 시설과 훈련 지원 등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안 팀장에 따르면 성남시의 경우 최근 3년 동안 남녀 장애인 선수 비율이 8대 2에서 6대 4 정도로 여성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회 문애준 대표는 "여성 장애인들이 생활체육을 보다 많이 접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이 많아 지면 여자 장애인 선수들의 경기 출전도 많아 지고 우리 사회의 장애에 대해 보이지 않은 벽도 많이 허물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이 만드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페럴림픽, #휠체어컬링, #크로스컨트리, #바이애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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