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김민재 첫골 기쁨 1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K리그1. 서울에 첫 골을 넣은 김민재(왼쪽 두번째)가 김신욱 등 동료 축하를 받고 있다.

▲ 전북 김민재 첫골 기쁨 1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K리그1. 서울에 첫 골을 넣은 김민재(왼쪽 두번째)가 김신욱 등 동료 축하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축구는 오랫동안 '대형 수비수 부재'라는 딜레마에 시달리고 있다. 공격수로는 손흥민(토트넘), 미드필더로는 기성용(스완지),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등 유럽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는 선수들이 다수 활약하고 있지만 수비수로는 국제무대에서 지금 이 선수가 한국축구의 간판이라고 자신있게 내세울 만한 정상급 선수가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과거에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수비수라면 '아시아 최고의 리베로'로 불리우던 홍명보가 있었고, 측면 수비수로 잉글랜드와 독일 등 유럽 빅리그에서 당당히 주전으로 활약한 이영표가 존재했다. 이들은 대표팀에서도 10년 이상 장기간 활약하며 사실상 수비진의 리더 역할을 담당했다. 이밖에도 곽태휘, 김동진, 이정수, 차두리 등 월드클래스까지는 아니어도 국제무대에서도 어느 정도 실력을 인정받은 우수한 수비수들을 꾸준히 배출해왔다.

월드컵 본선같은 큰 무대에서 상대적인 약체인 한국축구가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안정된 수비는 필수다. 월드컵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둔 2002년에도 한국의 최대 강점은 탄탄한 수비조직력이다. 홍명보-김태영-최진철이 이끄는 '강철의 스리백'을 중심으로 좌우 윙백에 이영표-송종국, 수비형 미드필더에 김남일-유상철의 더블 볼란치가 포진한 수비라인의 안정감은 지금도 다시 보기 힘든 조합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때 유럽 무대서 활약하던 수비수들의 전멸

현재의 대표팀에는 과거처럼 수비진의 무게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중량감 있는 선수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대표팀 수비진이 국내파와 아시아리거로만 채워진 것은 2002년 이후 처음이다. 공격수나 미드필더와 달리 수비진은 '유럽파'가 아예 전무하다. 홍정호(전북), 박주호(울산), 윤석영(가시와), 김진수(전북) 등 한때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던 수비수들도 지금은 전멸한 상태다.

물론 2014 브라질월드컵의 경우처럼 유럽파 선수들을 다수 보유했다고 반드시 좋은 성적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유럽파를 배출하고 있는 다른 포지션에 비하여 한국 수비수들의 경쟁력이 아직 세계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제는 그나마 대표팀에 뽑히고 있는 수비수 자원들도 확실한 안정감을 보여주는 선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축구대표팀에서 꾸준히 발탁된 장현수(도쿄), 김영권(광저우), 김기희(시애틀), 권경원(텐진), 김주영(허베이), 홍정호 등 공교롭게도 '중앙 수비수' 자원들이 대부분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이며 대표팀 수비불안 장기화의 원인으로 거론된다.

대표팀은 월드컵에서 독일, 멕시코, 스웨덴 등 객관적인 전력에서 우리보다 전력이 크게 앞선 강팀들을 상대해야한다. 손흥민, 황희찬, 김신욱 등 공격수들이 대체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지만 세계무대에서 한국이 공격력으로 상대를 압도하기는 어렵다고 봤을 때 현재의 수비로 과연 월드컵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우려가 큰 게 사실이다.

중앙수비라인에 희망으로 떠오른 전북의 김민재

대표팀 중앙수비라인에 그나마 희망으로 떠오른 것은 전북의 괴물신인 김민재다. 지난해 혜성처럼 등장하여 전북과 대표팀의 주전급으로 발돋움한 김민재는 최근 A매치 때마다 욕을 먹기 일쑤인 대표팀 수비수 중에서 팬들의 폭풍 비난을 피해간 몇 안 되는 선수다.

아직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190cm의 탄탄한 체격에 베테랑 못지않은 침칙함과 집중력까지 겸비하여 한국축구에 오랜만에 나타난 대형수비수 재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본적인 플레이스타일은 전성기 곽태휘를 연상시키는 파이터형 수비수에 좀더 가깝지만, 장신임에도 준수한 스피드와 킥력까지 갖춰 향후 경험만 더 쌓으면 빌드업형 수비수로 진화할 가능성도 있다.

대표팀에 오랜만에 복귀하는 홍정호 역시 주목할 선수다. 홍정호는 지난해까지 중국리그 장쑤 쑤닝에서 활약했으나 중국의 외국인 선수 쿼터제 변경으로 설 자리를 잃고 주전경쟁에서 밀리며 대표팀에서도 한동안 제외됐다. 올해 겨울 이적시장에서 전북의 유니폼을 입으며 K리그로 돌아온 홍정호는 꾸준히 경기력을 끌어올렸고 1년여 만에 대표팀 복귀에 성공했다.

2014 브라질월드컵 주전 센터백 출신이자 독일 분데스리가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활약한 풍부한 경험이 홍정호의 최대 장점이다. 김민재, 김진수, 이용 등 소속팀 동료들이 모두 대표팀에도 발탁되며 호흡 면에서 안정감을 기대할 수 있다. 또 다른 주전 센터백 자원인 장현수와도 각급 대표팀에서 함께 발을 맞춘 경험이 많다.

좌우풀백, 수비형 미드필더 주인 못 찾아

하지만 그동안 대표팀의 수비불안은 단지 중앙 수비수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좌우 풀백과 수비형 미드필더 역시 아직 확실한 주인을 찾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신태용호의 풀백 라인은 좌측에 김진수-김민우, 우측에는 최철순-이용으로 구성됐다. 이번에 발탁된 이용을 제외하면 모두 신태용호에서 꾸준히 호흡을 맞춰온 선수들이지만 크게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다고 하기는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측면 풀백 등의 신체조건이 세계무대 기준으로 떨어지고 몸싸움에도 그리 능하지 않다보니 측면 공격에 강점이 있는 팀들을 만날 때 고전한다는 것.

대표팀 풀백중 최장신인 이용이 겨우 180cm이고 나머지는 모두 단신들이다. 대표팀은 그동안 측면에서 올라오는 상대의 크로스를 적절하게 제지하지 못하여 실점위기에 놓인 적이 많았다. 월드컵 본선에서 만날 독일이나 스웨덴은 모두 신체조건이 우수한 팀들이다. 코너킥같은 세트피스 상황에서는 공중전에 대한 부담이 가중된다.

또한 한국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던 2002년이나 2010년에는 각각 김남일과 김정우라는 강력한 수비형 미드필더가 있었다. 수비라인 앞에서 포백을 보호해줄 수 있는 투쟁심과 왕성한 활동량을 보유한 수비형 미드필더의 존재는 현재의 대표팀에게 필수적이다.

그동안 기성용이 포지션상 수비형 미드필더로 분류되지만 엄밀히 말하면 후방에서 빌드업을 전개하는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에 가깝고 수비수로서의 대인마크나 활동량에 강점이 있는 선수는 아니다. 그래서 대표팀은 항상 기성용의 수비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파트너를 필요로 했다.

대표팀 중앙 미드필더 자원으로는 구자철과 정우영, 이창민 등이 있지만 이들은 모두 공격적인 성향에 더 강점이 있는 선수들이다. 기성용과 함께 출전시켰을 때 과연 최상의 역할분담과 시너지효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대표팀에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할 만한 카드에는 박주호와 고요한이 있다. 두 선수 모두 멀티플레이어로서 풀백이 주 포지션이지만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경험이 있다. 왼쪽 풀백이 주포지션인 박주호는 기성용과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 중앙의 더블볼란치로 함께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신태용 감독은 이번 대표팀 명단에서 박주호를 미드필더로 발탁했다. 고요한은 단 1경기 뿐이지만 지난해 콜롬비와의 평가전에서 4-4-2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하여 왕성한 활동량과 대인마크 능력을 과시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신태용 감독은 이번 3월 유럽원정에서 북아일랜드 폴란드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있다. 사실상 월드컵 최종엔트리 발표를 앞두고 마지막 시험무대로 평가받는 경기다. 무엇보다 최정예멤버가 소집되는 이번 유럽원정에서는 신태용 감독이 본선을 앞두고 그동안 지적되었던 수비불안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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