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팬들 사이에는 한때 '메없산왕'이라는 유행어가 있었다. '메시가 없으면 산체스가 왕'이라는 뜻이다.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와 알렉시스 산체스(맨유), 두 선수가 바르셀로나에서 함께 뛰던 2010년대 초반 메시나 부상이나 로테이션으로 자리를 비울때마다 산체스가 바르셀로나의 에이스 역할을 해내던 것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현재 토트넘의 상황은 '케없손왕'이 절실하다. 해리 케인이 없으면 손흥민이 왕이 되어야한다는 의미다. 토트넘은 부동의 간판 공격수 해리 케인이 지난 본머스전에서 발목 인대 부상을 당하며 전력에서 이탈한 것. 케인은 완전 회복까지 6주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한 빨리 복귀하더라도 거의 시즌 종료를 앞둔 시점이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주장이기도 한 케인은 사실상 6월 열리는 러시아월드컵까지 회복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고, 토트넘도 일단 케인을 전력에서 배제한채 남은 시즌을 꾸려가야할 전망이다.
 
올시즌도 리그에서만 24골을 넣으며 프리미어리그 득점 선두에 올라있던 케인의 공백은 토트넘으로서는 큰 타격이다. 리그 8경기를 남겨놓은 가운데 현재 4위 리버풀과는 고작 1점차, 5위 첼시와도 5점차인만큼 아직 안심할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로서 그나마 케인의 공백을 메울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는 것은 역시 손흥민이다.
 
손흥민은 올시즌 각종 대회를 모두 합쳐 43경기에 출전해 18골 9도움을 기록중이다. 최근 4경기에서는 연속 득점을 포함 7골을 몰아치며 절정의 활약을 과시하고 있다.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유벤투스의 벽을 넘지못하고 탈락한게 아쉽지만 손흥민의 페이스는 시즌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오히려 점점 물이 오르고 있다.
 
토트넘은 손흥민의 활약을 앞세워 프리미어리그에서 18승 7무 5패(승점 61)로 3위를 기록하며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티켓이 주어지는 '톱4' 수성의 꿈을 이어나가고 있다. FA컵에서도 8강에 올라있다.
 
손흥민은 과거에도 케인이 부상으로 자리를 비우거나 로테이션이 가동될때마다 종종 최전방 공격수 역할까지 소화한 경험이 있다. 플레이스타일상 케인같은 포스트플레이 능력은 없지만 날카로운 스피드와 돌파력을 바탕으로 수비 뒷공간을 파고는 역습에 능한 것이 공격수 손흥민의 장점이다. 프리미어리그 경험이 쌓이며 동료들과의 연계능력도 점점 향상되고 있다. 기록상으로도 손흥민은 올시즌 케인에 이어 팀내 두 번째로 많은 득점을 올린 선수이자, 총 65번의 슈팅에서 12골로 경기당 슈팅 5.4회에 1골을 득점하며 프리미어리그 전체를 통틀어서도 최정상급의 득점 효율성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상 손흥민 외에 다른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것도 무게감을 높인다. 일단 케인과 비슷한 정통 스트라이커 자원으로서는 페르난도 요렌테가 있지만 올시즌 총 28경기에 출전하여 고작 5골에 그치고 있다. 요렌테가 올시즌 선발출전한 경기는 고작 10번이고 90분 풀타임을 소화한 경기도 단 3번에 불과할 정도로 포체티노 감독의 신임을 얻지못하고 있다. 요렌테는 올시즌이 끝나고 1년만에 토트넘을 떠나 다시 이적할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손흥민의 포지션 경쟁자로 자주 비교대상이 되던 델레 알리, 에릭 라멜라, 루카스 모우라 등은 모두 스트라이커보다는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선수들이며 올시즌 팀내 활약상도 모두 손흥민에게 못미치고 있다. 프로 데뷔 이래 최전방과 2선을 넘나들며 '골잡이'로서의 능력을 증명한 손흥민은 토트넘의 주전 스트라이커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다
 
케인의 부재는 토트넘에게는 분명 위기지만 손흥민에게는 오히려 기회이기도 하다. 손흥민은 그간 꾸준한 활약에도 다소 저평가받은 측면이 있었다. 한창 물오른 골감각을 발휘하던 시기에도 선발에서 제외되거나 일찍 교체되기 일쑤였고 여러 포지션을 넘나들며 궃은 일을 감수하기도 했다. 같은 팀내에 케인이라는 걸출한 공격수가 있다보니 손흥민의 활약상이 상대적으로 묻히는 감도 없지 않았다.
 
케인이 없는 6주간의 시간은 손흥민이 '유능한 2인자' 수준을 넘어 이제는 직접 '1인자'로 인정받기 위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과거에도 종종 케인의 공백을 메운 적이 있지만 당시는 시즌 초중반이었다면 이번에는 시즌 막바지 팀의 일년 농사가 걸려있는 승부처다. 당시 손흥민은 나름 분전하기는 했지만 냉정히 말하면 케인의 빈 자리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의 활약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 손흥민의 위상이나 기대치는 이제 프리미어리그 진출 초기와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손흥민이 과연 케인의 공백을 얼마나 메워주느냐에 따라 토트넘의 올시즌 성적이 달라질수도 있다.
 
또한 손흥민은 자신이 지난 시즌 수립한 한국인 유럽파 시즌 최다골(21골) 기록에도 이제 3골만을 남겨두고 있다. 리그와 FA컵까지 포함하여 최대 10경기 이상 출전기회가 남아있는 만큼 손흥민이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지난 시즌에 이어 2년 연속 20골 이상을 돌파한다면 손흥민을 명실상부하게 유럽 최정상급 공격수의 반열에 올랐다고 평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손흥민은 토트넘과 2020년까지 계약이 되어있지만 벌써 재계약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영국 현지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손흥민이 토트넘에 잔류하든 아니면 다른 구단으로의 이적을 생각하든 올시즌 남은 기간 어떤 활약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진로에도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할수 있다. 지금까지 성적만으로도 빅클럽들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하지만, 현재 유럽 최고 공격수중 한명인 케인의 공백을 대체하고도 손색없는 활약을 보여준다면 손흥민의 위상은 명실상부한 '월드클래스급' 공격수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케인없는 손흥민의 1인자 등극을 위한 첫 시험무대는 FA컵이다. 17일 오후 9시 15분(이하 한국시각) 웨일스 스완지의 리버티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FA컵 8강전 토트넘은 스완지시티와 격돌한다. 공교롭게도 국가대표팀 동료인 기성용이 포진한 스완지시티와의 '코리언 더비'가 성사됐다. 현지 언론은 두 선수가 FA컵에서 나란히 동반으로 선발출전할 가능성을 높게 전망하고 있다. 객관적인 전력은 토트넘의 우위가 예상되지만 최근 강등권을 탈출하며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스완지의 기세도 만만치않다.
 
FA컵은 토트넘이 올시즌 우승을 노릴수 있는 마지막 대회다. 손흥민은 프로 데뷔 이후 함부르크-레버쿠젠-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을 거치며 지금까지 우승과는 유독 인연이 없었다. 손흥민이 케인없는 토트넘을 '소니(SONNY)의 왕국'으로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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