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은 작곡가 박춘석의 기일이었다. 여덟 해 전인 2010년에 여든의 삶을 마감한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대중음악 작곡가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인물이었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 중이었던 1999년에 대중가요 작사·작곡가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설문조사에서도 박춘석은 43명의 추천을 받아 20세기 최고의 한국 대중음악 작곡가로 선정된 바 있다. 이미자와 패티김을 아우르는 폭 넓은 음악 영역과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이어진 경이로운 히트의 연속을 생각해 보면, 그러한 결과는 사실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1957년 간행 <박춘석 작곡집>에 실린 박춘석 사진.

1957년 간행 <박춘석 작곡집>에 실린 박춘석 사진. ⓒ 연합출판사


이처럼 생전에 이미 최고 작가로 선정되었고 사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추서받기도 한 박춘석이었지만, 그의 음악 활동에 대한 진지한 연구는 지금까지 의외로 치밀하지 못한 편이다.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박춘석의 첫 번째 작품에 관한 내용. 2010년 타계 당시 부고 기사나 기타 관련 기록을 보면, 거의 대부분 그의 작곡 데뷔작을 <황혼의 엘레지>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박춘석의 첫 작품이 그러한 기존 통설과 달리 <맘보 아리랑>이라는 곡이었다는 사실이 최근 발굴된 새로운 자료를 통해 확인되었다.

20세기 최고의 작곡가, 그의 데뷔작은

1963년 최양숙의 녹음으로 크게 히트한 <황혼의 엘레지>는 당초 1955년 백일희의 노래로 처음 발표되었다. 박춘석이 1930년생이니, 스물다섯 나이에 신진 작곡가로 첫 곡을 냈다고 쳐도 그다지 어색할 것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박춘석은 1949년에 이미 피아노 연주자로 활약하고 있었으므로, 이후 6년 동안 아무런 작품 발표가 없었다는 것은 사실 매우 의문스러운 점이다. 이번에 확인된 박춘석의 데뷔작 <맘보 아리랑>은 바로 그 의문을 해소시켜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1949년 공연 광고에 서울스윙킹밴드 멤버로 소개된 박춘석. 아랫줄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에 이름이 보인다.

1949년 공연 광고에 서울스윙킹밴드 멤버로 소개된 박춘석. 아랫줄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에 이름이 보인다. ⓒ 동아일보


이번에 옛가요사랑모임 유정천리에서 발굴, 공개한 <맘보 아리랑> SP음반은 럭키레코드에서 제작한 것이다. 1949년에 현인의 데뷔곡 <신라의 달밤>을 첫 음반으로 발매한 럭키레코드는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일시 음반 제작을 중단했다가 1952년 무렵부터 활동을 재개한 것으로 보이는데, <맘보 아리랑> 음반은 1953년에 발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음반 뒷면에 수록된 <추라도 사랑>이 1953년 12월 간행 노래책에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맘보 아리랑>을 부른 가수가 페기리라는 점도 이 곡이 <황혼의 엘레지>보다 먼저 발표되었음을 알려 주는 증거이다. 페기리와 백일희는 실상 같은 사람으로, 본명은 이숙희이고 팝송 가수로 활동하게 되면서 미국의 유명 가수 페기 리(Peggy Lee)의 이름을 그대로 따 예명으로 사용했다. 이후 유사한 발음을 한자로 표기한 백일희(白一姬)로 예명을 바꾸었으므로, 페기리 이름으로 발표된 <맘보 아리랑>이 백일희 이름으로 발표된 <황혼의 엘레지>보다 앞선 작품이라는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맘보 아리랑> SP음반 딱지.

<맘보 아리랑> SP음반 딱지. ⓒ 럭키레코드


시기가 앞서는 확실한 다른 작품이 추가로 발견되지 않는 이상 박춘석의 작곡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맘보 아리랑>은, 발표 당시 크게 히트한 곡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충분히 흥미로운 내용을 안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우선 맘보라는 외래 요소와 '아리랑'이라는 전통 요소가 버무려진 점이 그렇다.

맘보 도입 초기라 그런지 특유의 리듬감이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라틴음악과 민요 소재가 결합하는 <맘보 아리랑>의 방식은 이후 1950년대 내내 한국 대중가요의 주요 유행 경향이었다. 그리고 피아노 연주자로 대중음악 활동을 시작한 박춘석의 작품답게 피아노 반주가 두드러지게 들리는 것도 <맘보 아리랑>에서 눈여겨볼 만한 점이다. 또 박춘석은 곡뿐만 아니라 <맘보 아리랑> 가사까지 직접 써서 데뷔작부터 이미 작사가로서 면모를 보여 주었는데, 이 역시 그의 이력에서 충분히 주목받을 만한 점이다.

<맘보 아리랑> SP음반은 오랜 세월을 거쳐 오는 동안 심하게 마모되어 음질이 썩 좋지는 않은 편이고 일부가 파손되기도 했으나, 다행히 곡을 감상하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는 상태이다. 유정천리에서는 현재 디지털 복원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며, 3월 하순까지 작업을 마무리한 뒤 오는 29일에 국악방송 프로그램 <음악의 교차로>를 통해 복원된 <맘보 아리랑>을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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