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불빛이 가득한 뮤지컬 <팬텀> 공연장에 발을 디뎠다. 정교하고 웅장한 무대를 한참 바라보다 극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때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대극장 뮤지컬을 보는 첫 순간이자 '유튜브'로만 접하던 배우 박은태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첫 순간이다. 무릎에 가지런히 올린 두 손을 꼭 모은 채 눈을 크게 떴다.

'은팬텀'의 한음 한음은 시작부터 온몸을 울렸다. 공연이 끝난 뒤 박은태가 무대 위로 걸어나오는 걸 보고 두 손이 새빨갛게 변할 만큼 박수를 쳤다. 이따금 목이 따가울 정도로 환호성을 질렀고 두 볼 가득히 미소를 지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17년의 어느 여름날, 박은태에게 박수를 보내던 난 뜨거운 조명 아래에 서서 박수를 받았다. 그 어느 때보다 기뻤던 나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행복하다'고.

뮤지컬을 좋아한 소녀, 배우 박은태의 목소리에 빠지다

 박은태 배우의 뮤지컬 <벤허> 포스터.

박은태 배우의 뮤지컬 <벤허> 포스터. ⓒ 유하영


초등학생 때 다니던 집앞 종합음악학원에서 나는 '노래 좋아하는 사고뭉치'로 유명했다. 좁은 피아노 연습실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바람에 선생님 옆에 붙들려 꼼짝없이 피아노만 연습하기도 했고, 성악 수업은 일주일에 딱 한 번 있었지만 도저히 성에 차지 않아 몰래 한 번 더 듣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음악학원에서 '뮤지컬'이라는 걸 한다고 했다. 아홉 살의 내겐 대사가 딱 한 마디뿐인 '요정1' 역할이 주어졌고, 넘버는 마지막에 부르는 단체 곡이 전부였다.

10년도 더 지난 지금, 내 대사가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또렷하게 남은 장면이 하나 있다. 따뜻한 조명 아래 친구들과 노래 불렀던 기억, 그리고 박수받았을 때의 간지러운 느낌은 바로 어제 꾸었던 꿈처럼 생생하다. 뮤지컬 <헤어스프레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그리스> 등을 보며 한때 뮤지컬 배우를 꿈꿨던 소녀였던 나는, 비록 배우가 되진 못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뮤지컬을 사랑하는 대학생이 되었다.

신입생 티를 겨우 벗어 던진 2015년의 어느 겨울날, 우연히 '유튜브'에서 들은 한 배우의 따뜻한 목소리에 빠졌다. 뮤지컬 <피맛골 연가>의 넘버인 '푸른 학은 구름 속에 우는데'로 처음 박은태를 만났다. 군더더기 없이 맑고 힘 있는 고음부터 주인공 '김생'의 슬픔과 분노가 그대로 드러나는 굵은 저음까지. 부드러움과 강인함이 공존하는 그의 목소리는 또렷한 발음, 그리고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기나긴 호흡과 만나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입을 틀어막아도 손 틈새로 삐져나오는 웃음은 어쩔 수 없었다. '심쿵'이라는 걸 태어나 처음 느껴본 나는 박은태의 다른 영상들도 찾아봤다. 그리고 헤어나올 수 없는 '은옵(박은태+오빠의 줄임말)'이라는 늪에 본격적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덕질, '나'라는 사람을 바꾸다

덕질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다. '나'라는 사람의 특징을 아예 바꿔버리는 데 이르렀다. 이전에는 아무리 감명 깊은 뮤지컬이라도 여러 번 보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돈을 아끼고 또 아껴 박은태의 뮤지컬 <팬텀>을 두 번이나 봤다. 또 인터넷에서 댓글 같은 건 한 번도 남겨 본 적 없던 내가, '플레이DB'의 박은태 페이지에 '팬의 한 마디'를 작성했다.

개인정보 유출이 무서워 절대 SNS를 하지 않겠다던 나의 다짐도 덕질 앞에 힘없이 무너졌다. SNS 속 신세계를 마주한 나는 정신 차릴 새도 없이 하트를 누르고 있었다. 팬들이 찍은 퇴근길 영상과 사진은 박은태의 더 큰 매력을 보여줬다.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 위 모습과는 전혀 다른 조곤조곤한 말투, 팬들을 쳐다보는 맑고 따뜻한 눈빛, 고운 미소는 그의 목소리에 이은 두 번째 '덕통사고' 구간이다.

이쯤 되면 이 배우에 대한 칭찬은 '콩깍지가 제대로 씌인' 팬의 지나치게 주관적인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박은태는 내가 알기 전부터 이미 많은 전문가와 대중에게 인정받은 '대세 뮤지컬 배우'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황태자 루돌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지킬앤하이드> <프랑켄슈타인> <팬텀> <벤허> 그리고 현재 공연 중인 <닥터 지바고> 등 수많은 공연을 해온 그는 10년 차 뮤지컬 배우다. 그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가지각색이나 항상 빠지지 않는 공통적인 이야기가 있다. 뛰어난 연기력과 압도적인 가창력. 이 두 가지는 그 어느 리뷰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박은태는 이미 누구나 인정하는 톱 뮤지컬 배우임에도 더 나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노블레스 맨> 2018년 3월호 인터뷰에서 그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성악 레슨을 계속 받는다"고 전했다. 항상 어제보다 더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박은태의 노력은, 팬인 나를 계속 변화시켰다.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게 느껴졌던 통학 시간은 하루의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으로 변했다. 과제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 이어폰을 꽂고 <벤허> 커튼콜 영상 속 박은태를 보면 고된 하루의 피로가 스르르 풀렸다. 당시 '은벤허'의 멋짐을 그대로 담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덜덜 떨며 찍은 탓에 선명하지 않지만, 영상을 볼 때마다 말 그대로 '심쿵'했다. 깊은 표정 연기와 절도있는 손짓 그리고 힘 있는 목소리에 가슴이 저릿하고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밝은 미소가 피어났다. 그때 버스 안에서 누군가 무심코 내 표정을 봤다면 실없이 웃는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했으리라. 그렇게 박은태를 향한 덕질은 나를 더욱 밝은 사람으로, 열렬한 뮤덕으로 만들어갔다.    

덕질, 새로운 것에 도전하게 하다

 지난해 10월 11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진행된 뮤지컬 <벤허> 공연 후 퇴근길에서의 박은태 배우 모습이다.

지난해 10월 11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진행된 뮤지컬 <벤허> 공연 후 퇴근길에서의 박은태 배우 모습이다. ⓒ 유하영


언제나처럼 박은태의 노래를 듣고 팬들이 찍은 영상과 사진을 감상한 뒤 행복하게 잠이 든 날이었다. 그 날 나는 꿈속에서 박은태와 듀엣 무대를 함께 했다. 너무 간절한 나머지 꿈에서라도 이루어진 걸까. 깨고 싶지 않은 꿈에서 깬 뒤, 뮤지컬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취업 준비로 바빠질 날이 머지않은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 기회는 그때뿐인 것만 같았다. 꿈에서처럼 박은태와 듀엣을 하는 일은 불가능하겠지만, 그처럼 뮤지컬 무대에 서서 노래를 하고 박수를 받고 싶었다. 어렸을 때 무대에서 느꼈던 간지러운 그 감정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고 '진정한 뮤덕이라면 직접 뮤지컬 한번 해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패기도 넘쳤다. 그 길로 뮤지컬 동아리를 알아봤다. 3학년이 되던 2017년 3월, 극의 시나리오부터 곡까지 전부 대학생들이 창작하는 뮤지컬 연합동아리 '루케테'에서 4기 배우팀의 일원이 되었다. 박은태에 푹 빠진 뮤덕은 그렇게 아마추어 뮤지컬 배우로서의 도전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더 힘들었던 뮤지컬

직접 뮤지컬 무대에 서는 것은, 뮤지컬을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뮤지컬 넘버를 부르는 모습만을 떠올리며 동아리에 들어온 내게 뮤지컬을 '제대로'하는 것은 버거웠다. 우선 쾌활하고 털털한 편인 내가 극 중 기운 없고, 소심한 캐릭터의 역할을 소화해 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태어나 처음 해보는 연기도 발목을 잡았다. "재밌었어요? 재미있었냐구요!" '잔뜩 화가 난 채'로 이 두 마디의 대사를 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것인 줄은 미처 몰랐다. 손짓, 발걸음, 몸의 기울기, 눈동자의 움직임 등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그렇게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인 줄 처음 알았다. 이렇게 하면 자신 없어 보이고, 저렇게 하면 너무 과장됐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공연까지 한 달이 채 남지 않았을 때 '과연 지인들에게 공연을 보러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눈물이 흐를 정도로 힘들 때면 내 최애('최고로 애정 하는'의 줄임말) 박은태를 떠올렸다. 이미 프로인 그도 관객들에게 만족스러운 공연을 선보이기 위해 얼마나 꼼꼼히 캐릭터와 대본을 분석하는가. 또 뮤지컬 넘버들은 얼마나 셀 수 없이 연습하는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단순한 팬심을 넘어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존경스러운 본진(가장 좋아하는 배우를 지칭하는 말)을 향한 덕질은 새로운 도전을 잘 끝마칠 수 있게 한 큰 힘이었다. 그동안 수없이 듣고, 본 박은태의 목소리와 연기는 자칭 신인 뮤지컬 배우에게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연습에 진전이 없을 때마다 박은태와 좋아하는 뮤지컬 작품들의 프레스콜 영상을 반복적으로 보며 손짓과 몸짓, 눈빛을 참고했다.

지난해 8월 17일부터 4일간 공연한 '루케테'의 창작 뮤지컬 <건너편에>는 대략 4개월 동안의 작곡 및 극본 제작과 한달반 가량의 연습 끝에 올린 공연이었다. 물론 수 년간의 제작과 수 개월 간의 연습 기간을 거치는 프로들의 공연과는 비교 대상조차 될 수 없지만 그래도 같은 '뮤지컬'이지 않는가!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또 내가 좋아하는 배우처럼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연기한다는 사실 자체가 힘을 줬다. 그렇게 나의 본진 박은태와, 열정 넘치는 '루케테' 부원들 덕분에 아마추어 뮤지컬 배우로서의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꿈 같았던 뮤지컬 배우로서의 4개월

 지난해 8월 17일부터 20일까지 공연했던 루케테 4기 정기공연 뮤지컬 <건너편에서>의 한 장면이다. 나름 열연을 하고 있다. 아홉 살 때와 달리 대사는 10장이 넘었고 주어진 넘버는 무려 4곡이었다.

지난해 8월 17일부터 20일까지 공연했던 루케테 4기 정기공연 뮤지컬 <건너편에>의 한 장면이다. 나름 열연을 하고 있다. 아홉 살 때와 달리 대사는 10장이 넘었고 주어진 넘버는 무려 4곡이었다. ⓒ 유하영


4일 동안 뮤지컬 배우로 무대에 올랐던 경험은 내 인생에 있어 엄청난 도전이었다. 특히 내게 연기란 전혀 다른 세상의 일이었기 때문에 뮤덕이 아니었다면, 또 박은태의 팬이 아니었다면, 감히 상상조차 못 했을 경험이었다. 4개월간 뮤지컬을 준비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뮤지컬 작품 하나를 올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땀을 흘리는지, 특히 배우들이 얼마나 고된 연습 기간을 거쳐 멋진 무대를 만드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던 어린 날의 막연한 꿈을 잠시나마 이룰 수 있게, 그리고 적어도 공연을 보러 온 지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무대를 보여줄 수 있게 해준 박은태. 그 대단한 배우를 덕질하는 팬인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이제 뮤지컬 배우라는 짧은 꿈에서 깨어난 지 벌써 반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뮤덕과 박은태 '덕후'로서의 일상은 계속되고 있다. 덕질 덕분에 뮤지컬까지 해본 나. 더 밝은 삶을 살아가는 힘인 덕질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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