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작가협회에서 ‘SBS <뉴스토리> 작가 부당해고 규탄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13일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작가협회에서 ‘SBS <뉴스토리> 작가 부당해고 규탄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 김윤정


"개편 때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일자리를 잃는 작가들의 모습을 수도 없이 봤습니다. 일방적인 해고 문화를 해결하기 위해 표준계약서가 도입됐는데, 방송사는 오히려 이 계약서를 근거로 '해고'가 아닌 '계약 종료'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13일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작가협회에서 열린 'SBS <뉴스토리> 작가 부당해고 규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작가들은 이번 작가 부당해고의 원인으로 표준계약서 도입 취지에 어긋나는 독소 조항을 넣어 변용한 SBS 보도본부를 규탄했다.

'방송작가 집필 표준계약서'는 문화체육관광부(아래 문체부)와 한국방송작가협회, 지상파 방송사들이 약 3년 동안 함께 법률적 검토와 합의를 거쳐 만든 것으로, 문체부는 올 1월부터 각 방송사가 이 표준계약서를 기초로 방송작가들의 계약 문화를 정착시키도록 권고했다. 그간 구두계약만으로 방송프로그램 원고를 집필해온 작가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집필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난 1월 말, <뉴스토리> 작가들은 계약기간 두 달짜리 계약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받았다. 짧게는 15년, 길게는 20년 넘게 작가 생활을 해온 이들이지만 계약서 작성은 대부분 처음. 그동안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계약서 없이, 구두계약 형태로 일했기 때문이다. 계약서에는 '계약기간 중 개편 등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는 계약이 즉시 종료될 수 있다'는, '표준계약서'에 없는 변형 조항도 있었다.

"'상생' 위해 도입된 표준계약서 근거로 해고라니..."

해고 작가들의 법률 대리를 맡고 있는 공익법무법인 공감 김수영 변호사는 "이는 표준계약서 도입 취지에 어긋나는, 정면으로 반하는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표준계약서는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작가들의 안정적인 노동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방송작가, 방송사, 제작사가 18차례 회의를 거쳐 만든 것인데, 가장 중요한 내용 중 하나인 계약 종료에 대한 부분을 임의 변경했다는 것이다. 김수영 변호사는 "(SBS의 변용 계약서는) 표준계약서의 상생 정신을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해당 계약서에는 저작권과 관련된 독소 조항도 있었다. 문체부 권고 표준계약서에는 "저작권의 귀속은 저작권법 등 관련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되어 있지만, <뉴스토리> 작가들이 받은 계약서에는 "작가의 원고에 따라 제작된 프로그램에 대하여 방송권, 2차저작물 및 편집저작물 작성권 등 모든 저작재산권은 방송사에 귀속된다"고 쓰여 있다.

김미지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는 "막연히 계약서가 도입되면 우리에게 보호막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작가협회에 등록만 하면 가질 수 있던 저작권마저 방송사가 가져가버리는 계약서 사인을 요구받게 됐다"며 황당해했다.

김미지 이사는 "방송사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변형한 계약서를 내밀면 개인들은 속수무책 서명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며 "방송사 내 여러 비정규직 직군 중 작가들을 시작으로 계약서가 도입되고 있는데, 이런 식이라면 왜곡된 구조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단지 <뉴스토리> 작가들만의 문제가 아닌 만큼, 이번 일을 계기로 잘못된 방송가 관행을 바꾸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 문제 비판하는 시사 프로, 작가 부당해고는 다루지 않는다"

 SBS <뉴스토리>

SBS <뉴스토리> ⓒ SBS


해고 작가들은 부당한 계약서를 받고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작성을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한 해고 작가는 "처음 계약서를 받고 문제 조항을 발견하고도 강력하게 수정을 요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계약서를 보여주고 사인을 요구한 사람이 이들과 업무 관계로 직접 얽혀있는 부장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작가 경력이 오래된) 우리도 어려운데, 막내 작가나 서브 작가들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면서, "방송사는 업무로 얽혀있는 사람에게 계약서 사인을 시키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해고 작가는 "SBS 측의 설명대로 <뉴스토리>가 지난 연말부터 개편 준비를 해왔다면, 마침 도입된 표준계약서를 작가들을 쉽게 해고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한 게 아닌가하는 추측도 든다"고 말했다.

해고 작가들은 "그동안 시사프로그램을 하면서 비정규직 문제나 노동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숱하게 다뤄왔다.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이런 일이 닥치니 방송사는 이런 이야기를 다뤄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우린 필요가 없어지면 언제든 버려도 되는 물건이 아니다. 작가들에게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자행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약자들의 목소리를 담고 사회문제점을 고발하는 시사프로그램을 제작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하며, "프로그램은 여러 비정규직 구성원들이 함께 노력해 만들어진다. 우리도 함께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뉴스토리> 작가들의 대량 해고가 알려진 이후, 사측은 해고 작가들과의 면담을 통해 "일단 프로그램에 복귀한 뒤 계약기간과 개편을 논의하자"는 입장을 전했다. 하지만 작가들은 ▲SBS 보도본부의 책임 인정과 공식 사과 ▲이번 사태에 대한 조사와 책임자 징계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에 사측은 "제작진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면서 "계약서에 명시된 3월 30일 계약을 종료하고 그에 따라 3주 간의 불방 제작비를 사규에 따라 지급하겠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지상파 4사(SBS KBS MBC EBS) 구성작가협의회는 "이번 사태로 방송계 '을'의 권리 보장을 위해 만든 표준계약서가 방송사 입맛대로 변질되거나, 오히려 법의 테두리 안에서 방송작가들을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목도했다"면서 SBS에 깊은 유감을 표했다. 이어 "SBS 보도본부의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방송4사 구성작가협의회 회원 일동은 부당해고로 공석이 된 <뉴스토리>팀의 대체작가로 결코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뉴스토리 작가 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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