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신의 아이들

작은 신의 아이들 ⓒ ocn


지난 3일 첫 방송한 OCN 주말 드라마 <작은 신의 아이들>은 지난해 같은 채널에서 방송된 <구해줘>의 속편처럼 시작되었다. 사이비 종교 집단에 의해 자행된 집단 학살극, 그리고 그 현장에서 도망쳐 나온 부녀. 세월이 흘러 김단(김옥빈 분)은 경찰이 되었지만, 그녀를 규정하는 건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환각'과도 같은 예지력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찾아온 '비이성적인 감각'으로 혼돈스러워 하는 그녀에 대비되어 등장한 인물은 오로지 '팩트'만을 신봉하는 천재 형사 천재인(강지환 분).

감각과 이성의 대비라는, 이 남녀 형사의 모습은 일찍이 <엑스파일> 이래 미스터리 스릴러 범죄 수사극에서 익숙한 구도로 여겨졌다. 또한 그들이 함께 마주한 사건은 최근 장르물의 '클리셰'에 가까운 연쇄 살인마에 대한 것이다.

그렇게 <작은 신의 아이들>은 익숙한 갖가지 장르물의 설정을 뒤섞어 놓은 듯한 모양새로 시작되었다. 처음엔 캐릭터에 온전히 녹아들지 못한 듯한 배우들의 연기가 진부한 익숙함을 포장하기엔 조금 모자랐다. 그래서일까? <작은 신의 아이들은>은 좀처럼 2%대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했고, 4회에 이른 현재까지도 반등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1회 2.540%, 4회 2.861% 닐슨 코리아 수도권 유료 플랫폼 가구 기준).

하지만 이런 초반의 뻔한 설정과 아직 무르익지 않은 배우들의 연기만을 가지고 <작은 신의 아이들>을 예단하긴 이르다. 3, 4회 극 초반을 이끌던 '아폴로'의 죽음과 함께, 뻔하고 뻔한 연쇄살인이란 그림자가 걷히면서 <작은 신의 아이들>이란 드라마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폴로, 뽀빠이, 그리고 별

무속의 영향력 아래 놓인 말단 경찰 김단과 천재 형사 천재인이 함께 수사하게 된 한상구(김동영)의 연쇄 살인 사건. 수사 과정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불협화음을 내며 익숙한 장르물의 구도를 보여줬다.

한상구는 여성들을 납치·살해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지만, 경찰이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풀려나게 된다. 그가 경찰서를 나가게 되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것을 영적으로 예감한 김단은 총까지 꺼내들며 그를 막아보려 했지만, 결국 그는 유유히 경찰서 문을 빠져 나가게 된다. 그렇게 빠져나간 한상구에게 희생된 첫 번째 인물은 천재인의 여동생이었다.

천재인 동생 사망 이후 2년여의 시간이 흐르고 두 사람의 처지는 노숙자(천재인)와 형사(김단)로 역전된다. 두 사람은 대한그룹 백도규 회장의 외동딸 백아현(이엘리야) 실종 사건의 끝에서 다시 한상구와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다시 등장한 한상구는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이야기는 정체불명의 인물 '아폴로'를 소환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잠시 등장한 과거 한 장면. 담벼락 앞에 선 세 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그 아래 '아폴로, 뽀빠이, 별'이라고 커다랗게 적는다. 죽어가던 한상구는 김단을 '별'이라 부르면서 자신을 '아폴로'라 불러 달라고 했고, 마치 김춘수의 시 '꽃'처럼 김단이 그를 '아폴로'라 불러주자, 연쇄 살인범 한상구는 간 곳이 없이 그녀의 눈 앞에 피 흘리며 죽어가는 어린 '아폴로'가 나타난다.

이외에 드라마에 대해 다른 기대를 갖게 한 건, 실종 피해자로 알려진 백아현의 알 수 없는 행동들이다. 실종 128일 만에 돌아온 백아현은 시종일관 침묵을 유지하다, 살인사건이 한상구와 연관돼 있다고 폭로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천재인에 의해 자신의 진술이 거짓임이 드러나 위기를 맞지만(한상구가 '둘 중 한 사람만 살려주겠다'고 하자, 백아현은 다른 피해자 최은유를 칼로 찌른다), 한상구가 죽음을 맞으면서 풀려난다. 그렇게 당초 지난번과 비슷한 '사이비 종교'를 소재로 한 것 같았던 <작은 신의 아이들>은 '사이비'의 폐해 속에서 희생된 '아이들'을 불러오며 비로소 살을 붙여가기 시작했다.

또 한상구가 죽어가며 언급했던 '뽀빠이'에 대한 의문과 함께 주하민(심희섭) 검사의 존재 또한 관심을 가질 만하다. 그는 수사를 위해 방문했던 교회에서 비웃음을 터트리거나, 한상구의 시신 화장터에서도 슬픔인지 연민인지 모를 표정을 지어 의문을 자아냈다.

주하민 검사가 천재인과 김단의 맞은편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작은 신의 아이들>이란 드라마의 구도가 흥미진진해지기 시작한다. 아폴로와 뽀빠이와 그리고 사라진 별이란 아이들이 도대체 과거 '사이비 종교 집단'에서 어떤 일을 겪었으며, 그 일이 어떻게 오늘의 사건으로 이어지게 되었는지 그 '사연'이 궁금해지도록 만든다.

천재인과 김단

 작은 신의 아이들

작은 신의 아이들 ⓒ ocn


극 초반, 이성을 넘어서는 그 무엇에 대해서도 믿지 않으려는 천재인 형사와 자신에게 시시때때로 나타나는 '무속의 기운'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없는 김단의 대비는 익숙하지 않았다. 첫 만남부터 한상구 사건으로 어긋나던 두 사람이 시간이 흘러 역전된 형사와 노숙자의 관계로 마주하면서 비로소 사연도 한 걸음 깊어졌다.

강지환이 자신의 눈 앞에서 죽어간 동생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언더 커버' 노숙자가 된 천재인 역할에 조금씩 녹아들고 김옥빈 또한 사명감 혹은 연민으로 한 발씩 내딛는 모습을 감성연기로 소화하면서 극 초반의 불협화음을 잊게 만든다.

그리고 비로소 호흡이 제대로 맞아가는 두 사람이 동생이 파헤치던 사건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찾아간 섬. 왁자지껄한 섬 인심 너머로 풍기는 그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두 사람은 때론 코믹하게, 때론 진지하게 조화를 이루며 사건의 중심으로 한 발짝 들어갔다. 이후 아직은 맛보기였던 '과학'과 '무속'의 콜라보도 본격적으로 펼쳐질 듯하니, 그 지점 역시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된다.

<작은 신의 아이들>은 사이비 종교 집단을 다루지만, '종교'에, 혹은 '믿음'에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핵심에 있는 사람들이 종교를 도구로 어떤 권력을 형성해 왔는지, 그 권력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도구화시켜 희생해 왔는지를 갖가지 사건을 통해 풀어나가고자 한다.

그저 연쇄 살인범인 줄 알았던 한상구가 알고보니 어린 시절 그 '사이비 집단' 속에서 '농락'을 당한 트라우마의 희생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듯, 섬으로 간 천재인과 김단은 그곳에서 '사이비 종교 집단'이라 쓰고, '권력'이라 읽어야 할 어둠의 실체, 그 허울을 한꺼풀 또 다시 벗겨낼 것이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와 그걸 풀어가는 소재의 면에서 <작은 신의 아이들>은 마치 '잘 차려진 코스 요리'와도 같다. '전채 요리' 하나가 어설프다 하여, 이 풍성한 식탁을 외면하기엔 아까운 작품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작은 신의 아이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