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필버그의 신작 <더 포스트> 포스터

스필버그의 신작 <더 포스트> 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그들의 거짓말, 이젠 끝내야 해요."

스티븐 스필버그의 신작 <더 포스트>에서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톰 행크스)가 캐서린 그레이엄 회장(메릴 스트립)에게 건넨 말이다. <더 포스트>는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의 역할을 기록한, 이른바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미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 내부에서 벌어진 일을 그린 영화다.

지난 1971년 6월 <뉴욕타임스>가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하기 시작하면서 미국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2016년 10월 JTBC '뉴스룸'이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의 태블릿PC를 보도하면서 온 나라가 들썩인 걸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그만큼 <뉴욕타임스> 보도는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여기서 잠깐 '펜타곤 페이퍼'가 어떤 문서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펜타곤 페이퍼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부터 1968년 5월까지 미국이 인도차이나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기록한 문서다. 베트남 전쟁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가 작성 총 책임을 맡았고, 유출자인 대니얼 엘스버그는 작성 과정에 참여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구도가 형성되면서 베트남에 눈길을 꽂기 시작했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은 베트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1960년대 들어오면서 개입을 노골화했다.

케네디 행정부가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고 옛 소련과 화해하면서 잠시 발을 빼려는 모양새를 취하기는 했다. 그러나 케네디는 암살 당했고, 이후 들어선 린든 존슨 행정부는 1964년 통킹만 사건을 구실로 군사력을 동원했다. 이 같은 과정을 집대성한 보고서가 바로 '펜타곤 페이퍼'인 것이다.

보고서엔 미국이 베트남에서 절대 승리를 거둘 수 없다는 추론이 담겨 있었다. 결국, 미국은 패배할지 뻔히 알면서 젊은이들을 베트남에 보낸 셈이다.

벤 브래들리 편집국장은 특종을 놓친 데 아쉬워한다. 그러면서 인턴 기자를 보내 뉴욕타임스의 동향을 파악해 오라고 지시하는가 하면, 기자들을 모아 놓고 문제의 보고서를 입수하라고 독려한다. 벤 백디키언 기자(밥 오덴커크)는 문서 유출자가 대니얼 엘스버그(매튜 리스)임을 직감한다. 벤 기자는 수소문 끝에 대니얼 엘스버그와 접촉해 펜타곤 페이퍼를 수중에 넣는다.

벤 브래들리로 분한 톰 행크스의 연기는 이제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느낌이다. 이미 톰 행크스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캐치 미 이프 유 캔> <터미널> <스파이 브릿지> 등 앞선 네 작품에서 스필버그와 호흡을 맞췄다. 그래서인지 연기는 더욱 자연스러워 보인다. 톰 행크스는 이야기의 흐름이 결정적인 국면으로 치달을 때 마다 명대사를 작렬시키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캐서린 그레이엄 역을 맡은 메릴 스트립의 연기도 늘 그랬듯 한치의 군더더기 없이 완벽하다.

배우들의 연기와 달리 이야기가 주는 긴장감은 다소 떨어져 보인다. 적어도 도입 부분만 보면 이 영화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그러나 느슨해 보였던 이야기는 중반을 넘어가면서 짜임새가 촘촘해진다. 종이 신문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장면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스필버그, 언론 본연의 존재 이유 파고들다

 <더 포스트>는 펜타곤 페이퍼 보도를 둘러싼 논란을 그리면서 언론의 존재이유를 묻는다.

<더 포스트>는 펜타곤 페이퍼 보도를 둘러싼 논란을 그리면서 언론의 존재이유를 묻는다. ⓒ CJ엔터테인먼트


사실 '펜타곤 페이퍼' 보도가 미국 현대사에 미친 파장은 익히 알려져 있다. 스필버그는 잘 알려진 역사를 다시 들추지 않는다. 그보다 언론 본연의 사명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의 주제의식은 벤 브래들리 편집국장과 캐서린 그레이엄 회장, 그리고 주변인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논쟁 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브래들리 편집장은 보고서를 손에 넣자 아예 자신의 집에 편집국을 차려놓고 분석에 들어간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닉슨 행정부는 후속보도를 막고자 <뉴욕타임스>를 법원에 제소한다. <워싱턴포스트>가 문서를 보도한다면, 마찬가지로 정부의 압력에 직면할 위험이 컸다.

마침 <워싱턴포스트>는 뉴욕 증시 상장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혹시라도 기소라도 당하면 투자자들이 빠져나갈 위험이 컸다. 더구나 캐서린은 '펜타곤 페이퍼'의 작성을 지시한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브루스 그린우드)와 관계가 두터웠다. 자신의 결정에 따라 회사는 물론 인간관계의 끈까지 끊어질 위험이 높은 상황이었다. 예상대로 로버트 맥나마라는 캐서린에게 보도하지 말라고 설득한다.

닉슨 행정부는 '펜타곤 페이퍼' 보도로 인해 국가안보가 위태로워졌다며 <뉴욕타임스> 보도를 막으려 했다. 맥나마라도 마찬가지 입장이었지만 닉슨과 살짝 결이 달랐다. 맥나마라는 캐서린에게 자신이 기획한 보고서임을 시인했다. 그리고 문제의 보고서가 훗날 학술연구를 위한 자료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맥나마라는 캐서린에게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설득한다. 왜 그랬을까? 이제 인용할 맥나라마의 대사에서 그 답이 보인다.

"닉슨은 개자식이야. 그 자는 대통령의 권한을 총동원할 것이고 당신을 끝장낼 방법이 있다면, 맹세코 그 방법을 찾아낼 거요!"

<워싱턴포스트> 이사진 역시 보도를 꺼린다. 그 이유는 맥나마라와 비슷하다. 즉, 정권에 밉보이면 투자자들이 빠질 것을 우려했다는 말이다.

캐서린은 고뇌를 거듭한다. 결단을 앞둔 시점에서 캐서린은 벤 브래들리 편집국장에게 의견을 묻는다. 브래들리의 입장은 확고하다. 기자들 역시 "보도 안 할 거면 기사는 뭐하러 쓰냐"며 브래들리를 거든다. 캐서린은 결국 보도를 지시한다.

정부는 '국가안보'란 명분을 전가의 보도인양 휘두르며 더러운 비밀이 세상에 알려지는 걸 막으려 한다. 한편 거칠게 말하면, 언론은 정보를 파는 기업이다. 만약 정부와의 관계가 우호적이지 못하면 언론은 생존이 위태로워진다. 그럼에도 언론은 정부의 잘못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게 언론이 존재이유다. 아래 인용할 벤 브래들리 편집장의 대사는 언론의 존재 이유를 말해준다.

"우리가 하지 못한다면 누구에게 책임을 묻겠어요? 우리가 보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지게 됩니다. 국민이 지게 된다고요!"

이 영화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캐서린 회장은 남성 임원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다. '펜타곤 페이퍼'의 보도 여부를 두고 경영진과 일선 기자들이 갑론을박하는 와중에서도 경영진들은 캐서린을 홀대한다. 그럼에도 캐서린은 이사진들의 편견에 굴하지 않고 결단을 내린다. 벤 브래들리의 아내 토니는 남편에게 캐서린의 결단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풀이해준다.

"그들은 캐서린을 없는 사람처럼 대했어요. 이런 일이 오래 이어지면 원래 그런 거구나 느끼게 되죠. 자신의 인생과 평생 몸담아온 회사를 걸고 이런 결정을 내린다는 건 그야말로 그녀의 용기라고 생각해요."

40년 전 이야기지만 오늘에도 낯설지 않아

 영화 < 더 포스트>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도 시사점이 적지 않다.

영화 < 더 포스트>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도 시사점이 적지 않다. ⓒ CJ엔터테인먼트


이 영화는 정확히 47년 전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전혀 낯설지 않다. 우선 미국 정부는 당시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1971년 닉슨 행정부가 언론을 옥죄고, 대니얼 엘스버그를 매도했듯, 2013년 오바마 행정부는 국가안보국(NSA)의 전방위적 도청행각이 들통나자 내부고발자인 에드워드 스노든 검거에 혈안이 되다시피 매달렸다. 또 베트남전 당시의 기억을 거울 삼아(?)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침공을 감행하면서 정보를 세심하고도 강력하게 통제했다.

우리 언론 생태계를 떠올리면 더욱 참담하다. 지난 5일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는 각 언론사 간부들이 장충기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에게 보낸 문자를 공개했다. 이 문자 속엔 1등 기업 삼성이 언론을 어떻게 주무르고 있는지, 그리고 언론사 간부가 삼성의 '입안의 혀'처럼 군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심지어 <문화일보> 광고국장은 "그동안 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왔다. 저희는 혈맹"이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정치권력 못지않게 강한 힘을 휘두르는 게 자본 권력이다. 이에 언론은 자본 권력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런 구실을 해야 할 언론이 재벌기업 임원에게 '혈맹' 운운하는 건 언론의 존재이유를 무색케 한다.

영화는 마지막에 워터게이트 장면을 끼워 넣으며 막을 내린다. 이 장면은 '신의 한수'라고 생각한다. 닉슨은 <뉴욕타임스>에 이어 <워싱턴포스트>까지 펜타곤 페이퍼 보도에 나서자 두 신문들의 취재를 전면 거부한다.

실제로 닉슨은 낙마하는 그 순간까지 언론과 대립관계에 있었다. 결국 닉슨은 자신이 출입 금지시켰던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에게 결정타를 맞고 퇴장했다.

이 같은 사실을 감안해 볼 때 <더 포스트>의 마지막 장면은 언론을 무시했던 닉슨 대통령의 말로를 시사하는 은유로 읽힌다. 틈만 나면 언론과 난타전을 벌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로를 예언한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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