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 포스터.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여기 3대 가족이 있다. 헤로인 상습 복용으로 양로원에서 쫓겨난 할아버지는 15살 손자에게 '가급적 많은 여자와 자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의 아들 리차드는 <9단계 성공의 법칙>으로 강의를 하고 책도 팔아 대대적인 성공을 꿈꾸지만 쉽지 않다. 리차드의 아내 쉐릴은 그런 리차드를 못마땅해 하면서도 기대를 거는 한편, 집안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다. 저녁은 매일같이 닭튀김이다.

쉐릴의 남동생 프랭크는 자칭 '전미 최고의 프루스트 학자'다. 사랑을 잃은 게이인 그는 전미 최고의 프루스트 학자 자리를 빼앗기고 자살 시도 끝에 살아 돌아왔다. 리차드와 쉐릴의 큰 아이 15살 드웨인은 공군사관학교를 갈 때까지 9개월째 묵언수행 중이고, 작은 아이 7살 올리브는 똥똥한 배와 특출날 것 없는 외모를 지녔지만 유독 미인대회 출전에 집착한다.

각기 너무 다른 개성을 지닌 6명은 이런저런 이유로 올리브가 겨우겨우 출전하게 된 '미스 리틀 선샤인' 대회를 향해 함께 간다. 대회가 열리는 곳은 캘리포니아, 그들이 사는 앨버커키에서는 너무나도 먼 거리가 떨어져 있다. 여유가 안 되니 비행기로는 갈 수 없고 결국 그들은 폭스바겐 마이크로 버스로 1박 2일의 여정을 떠난다. 이 개성 있는 가족의 여정은 순탄할까?

가족 로드 무비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의 한 장면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2006)은 완벽한 가족 로드 무비이다. 100분의 러닝타임 중 20여 분을 캐릭터 설명에 투자하고, 60여 분을 가족의 여정에 투자하며, 20여 분을 미스 리틀 선샤인 대회에 투자한다. 즉,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들의 미스 리틀 선샤인 대회를 향한 여정이다.

로드 무비에는 사람을 설레게 하는 무엇이 있다. 목적이 불분명하거나 없을 때보다 분명한 목적이 있을 때 더 다양하고 깊은 재미를 느낄 수 있는데, 이 영화는 그 기대에 완벽히 부합한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인지한 상태에서 출발한 여정이기 때문이다. 우린 그들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무조건 이 콩가루 가족을 한데 뭉치게 하면서 너무 진지하지도 너무 코믹하지도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건 연출이나 연기보다 각본이 좋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구성요소 중에서 각본이 가장 훌륭했다.

코미디와 페이소스, 두 마리 토끼 다 잡았다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의 한 장면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작년에 개봉해 호평 받았던 영화 <빌리 진: 세기의 대결>의 감독 커플이기도 한 조나단 데이턴과 발레리 페이스 부부는 광고, 뮤직비디오, 다큐멘터리를 찍다가 이 영화로 유명세를 떨쳤다. 그들의 특기는 몇 편 되지 않는 연출작에서 알 수 있듯, 코미디와 페이소스를 결합한 드라마인 듯하다.

각각의 개성이 너무 뚜렷해 굳이 하나로 합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콩가루 가족을 한데 합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들이 힘을 합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터져야 한다. 그 일의 과정은 제법 진지하지만 코믹하고 그 결과에는 은은히 풍기는 페이소스가 묻어 있다.

영화는 6명 모두에게 관심을 두고 사려 깊게 들여다본다. 처음에는 일일이 보여주다가, 리차드와 쉐릴, 할아버지와 올리브, 프랭크와 드웨인으로 짝을 짓는다. 마지막에는 그야말로 멋지게 한데 뭉친다. 뭉치지 않아도 가족은 가족이라고? 물론이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가족이 서로가 서로를 위해 뭉치는 건 좋아 보인다.

너무나도 웃겨서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되는 타이밍을 지나, 자신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타이밍이 도래한다. 그러고 나서는 나를 돌아보고, 나의 가족을 돌아본다. '우리도 여행 한 번 떠나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때 묻지 않은 위안을 선사하다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의 한 장면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미스 리틀 선샤인>은 우리 삶을 그대로 담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캐릭터들이고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여행이다. 또 온갖 문제에 직면하면서도 어떻게든 헤쳐나가는 건 우리 모두의 삶이 아닌가. 또 <미스 리틀 선샤인>은 우리 삶을 완벽히 반영한 것은 아니다. 우리 삶은 언제나 코믹하지도 않고 페이소스를 뿜어내지도 않는다. 아주 가끔, 아주 순간적으로 그럴 뿐이다. 영화는 그 한순간을 포착해 확대재생산 해냈다.

그래서 우린 이 영화에서 어떤 교훈이나 인생에 두고두고 남을 만한 메시지를 얻지 못할 수 있다. 충분히 그럴 만한 요소가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대신 힘들 때나 우울할 때 뭔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언제고 찾을 만하다. 그때마다 <미스 리틀 선샤인>은 때묻지 않은 위안을 선사할 것이다. 그 여운이 길지는 않을지라도.

이혼, 파산, 자살, 좌절, 죽음, 실패에 직면한 이들의 모습. 프랭크가 존경해 마지않는 완벽한 패배자 프루스트의 삶. 그리고 영화가 주는 위안도 적절하다. 프루스트는 진짜 직업을 가져본 적도 없이 짝사랑만 한 동성애자로,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을 20년에 걸쳐 썼다. 하지만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의 작가로 칭송받고 있다.

그런 그가 말년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힘겨웠던 시절들이 삶에서 가장 좋았던 시기'라고 했다고 한다. 그게 자신을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반면 행복했던 시절에는 아무것도 배운 게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 개념이자 우리에게 수줍게 보내는 유일한 메시지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영화 자체로 의미다운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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