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라진 밤>의 김강우.

배우 김강우가 스릴러 영화 <사라진 밤>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 킹엔터테인먼트


어린 여성과 사랑에 빠져 아내를 살해하고, 그 시체가 사라지자 전전긍긍 하는 남자. 배우 김강우 입장에선 위험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사라진 밤>에서 김강우는 대학 교수이자 제약회사 임원으로 분했다.

스페인 원작 영화가 있었고, 막상 출연 제안과 함께 받은 시나리오를 읽었음에도 진한 역에 대한 확신이 가지 않았다고 그는 고백했다. 그러던 그가 전격 출연을 결정했고, 국내 극장가에서 오랜만에 스릴러 장르가 빛을 볼 수 있었다.

패기와 신뢰감

영화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라는 닫힌 공간을 배경으로 했다. 이 중 진한은 사라진 아내 시체 때문에 만 하루 동안 전전긍긍하며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는 인물. 김강우는 "시나리오만 보면 건조하고 기능적으로 끝나는 인물인데 그 정도면 제가 참여할 이유가 없었다"고 운을 뗐다.

"걱정이 많은 게 사실이었다. 한정된 공간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것도 주저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정말 날고 긴다는 감독님들도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룰 때 산으로 가는 경우가 꽤 있었지 않나. 그렇게 주저하고 있을 때 제작사 쪽에서 이창희 감독(<사라진 밤>의 연출)의 예전 단편 영화들을 보내주셨다. 더욱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였는데 유머도 캐릭터도 다 살아있더라. 

신인감독임에도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내를 해하게 생긴 인물을 구상할 때 절 첫 번째로 떠올렸다더라. 그런 이미지가 있길 바랐나 보다(웃음). 하지만 전 반대로 보이고 싶었다. 냉정해보이지만 내면은 아이 같은 사람. 물론 용서받지 못할 악인이다. 그럼에도 이 캐릭터에게 연민이 느껴지게끔 하고 싶었다. 그 점에 중점을 두려 했다."

 영화 <사라진 밤>의 한 장면.

영화 <사라진 밤>의 한 장면. ⓒ 씨네그루


영화상엔 친절하게 설명되진 않지만 김강우는 스스로 진한의 과거를 만들어 갔다. 왜 나이 많은 여성 설희(김희애)와 결혼까지 하게 된 건지, 왜 그런 파국으로 치닫게 됐는지 등 말이다. "재능 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더 나은 권력을 얻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다가 말년이 좋지 않은 경우가 우리 주변에 종종 있다"면서 "진한 역시 설희를 택하면서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설희와 살면서 어느 순간부터 진한은 포기하면서 살았을 거다. 자신의 생각과 주장이 묵살 당하고는 했으니까. 제자가 진한에게 '교수님은 꿈이 있어요?'라고 묻는 장면이 있는데 이 대사를 감독님께 요구했다. 꼭 듣고 싶은 말이자, 진한을 건드리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그가 원했던 게 뭐였지? 그 순간 확 무너지는 것이다. 설희 입장에선 단지 이상적인 멋지고 어린 남편이 있으면 완벽한 삶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흔히 말하는 쇼윈도 부부지."

진한과 오작두 사이

김강우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유독 스릴러 장르와 연이 거의 없었다. 한창 스릴러 영화 붐이 일었을 때도 그는 다른 장르에서 활약하곤 했다. "스릴러를 싫어하는 건 아닌데 왜 안 들어왔을까요"라며 그가 재치 있게 반문했다.

"많은 스릴러 영화가 나왔었는데 그만큼 위험하기도 했다. 이 장르가 한창 흐름을 탔을 땐 다들 좀 비슷해 보이기도 했고. <사라진 밤> 역시 일반적인 스릴러 문법이었다면 안 했을 것 같다. 이건 애초부터 범인을 밝혀놓고 그 과정을 즐기는 영화라 제 입장에선 신선했다. 

사실 이창의 감독님을 현장에서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않긴 했다(웃음). 현장 스태프들이나 몇몇 배우 분들이 좀 불안함을 보이기도 했는데 감독님 본인도 아신다. 영화 완성 후 시사 때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와, 감독님 다시 봤어요!'라고들 하더라. 그럴 만한 게 현장에서 배우들이 다시 찍어 보자고 해도 안 찍고 그러셨거든. 편집본에서 10분도 안 날렸을 것이다. 그만큼 딱 필요한 것만 찍었고, 자신이 있었던 것이지."

 영화 <사라진 밤>의 김강우.

ⓒ 킹엔터테인먼트


공교롭게도 김강우는 현재 MBC 드라마 <데릴사위 오작두>에도 출연 중인데 작품 캐릭터와 지금 영화의 그것이 정확히 상반된다. 세련되면서도 차가운 진한과 순박하면서도 이타적인 작두의 모습을 팬들 입장에선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것.

"<사라진 밤> 개봉이 3월이 될지는 몰랐다(웃음). 영화를 찍을 땐 또 드라마가 제작 단계도 아니었으니까(웃음). <사라진 밤>은 오로지 작품만 봤다면 <데릴사위 오작두>는 캐릭터만 봤다. 마음이 가는 캐릭터였다. 드라마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인물이었지. 근래 밝은 드라마가 드물었고, 관계자분들은 제가 코미디 연기를 한다는 것에 희소성이 있다고 보신 것 같다. 

(농촌 청년을 표현하기 위해) 옷장에서 입지 않는, 버리기 직전의 옷까지 꺼내서 고민하곤 한다. 작두가 참 마음에 드는 게 요즘 사람들이 남의 삶에 굉장히 관심이 많잖나. 그러면서 자기 삶과 비교하고, 한탄하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동시에 남에겐 또 친절하지 않다. 오작두는 자기 삶에 집중하고, 남을 배려하는 인물이다. 사실 이게 맞는 태도지 않나? 오작두가 지금의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비쳐질지 궁금하다. 어느 순간 이런 사람들이 비정상인 것처럼 취급 받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작두의 가치가 지지받길 원한다."

배우의 사명

수 년 전 영화 <돈의 맛> 당시 그가 했던 말을 상기시켰다. 그때 김강우는 기자에게 "배우는 시대의 거울인 만큼 늘 공부하고 돌아봐야 한다"며 소신을 드러낸 바 있다. 여전히 그 말은 그에게 유효했다.

"제가 배우 일을 처음 시작할 때 가슴에 새긴 문장이 그것이다. 어려울 것 같은데 동시에 쉽기도 하다. 어떤 배우들은 연기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결국 작가나 감독은 지금 시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배우는 그걸 잘 담아내는 거울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과 삶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항상 공부해야 한다고 본다."

인터뷰 말미, 그는 영화계가 비수기인 지금이 좋다고 털어놨다. "흔히 말하는 텐트폴(큰 예산을 들인 흥행 기대작) 영화가 없기에 여러 영화들을 볼 수 있는 시기"라며 "물론 이 시기에 제 영화가 개봉하면 또 다르긴 하다"고 웃어보였다. 그의 말대로 <사라진 밤>은 분명 쏠림현상이 심한 한국영화계에선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 작품이다. "지인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보시고 추리하는 즐거움을 느끼시길 바란다"고 그가 당부했다.

 영화 <사라진 밤>의 김강우.

ⓒ 킹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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