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의 가사들이 간직한 심리학적 의미를 찾아갑니다. 감정을 공유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의미까지 생각하는 '공감'을 통해 음악을 보다 풍요롭게 느껴보세요. - 기자 말

드디어 한국에도 #ME TOO(미투)가 상륙했다. 여기저기서 아픈 기억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성폭력은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에서 명백히 정신적 외상(trauma)의 원인이 되는 사건으로 분류된다. 성폭력의 경험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자신의 외상을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성폭력은 외상 중에도 사람관계에서 의도적으로 일어난 것이기에 더 충격적이며, 잘못된 사회적 통념으로 인해 위로받아야 할 피해자가 오히려 수치심을 느끼기에 더욱 괴로운 상처다.

지난해 4월 발표된 아이유의 '이름에게(작사 아이유, 김이나 작곡 이종훈)'는 외상을 겪은 모든 사람들에게 바치는 노래다. 미투운동을 비롯해 외상을 겪은 후 상처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이웃들에게 어떻게 함께 해줄 수 있는지 '이름에게'를 들으며 살펴본다.

트라우마를 경험한다는 것

아이유 '이름에게'를 열창하는 아이유.

▲ 아이유 '이름에게'를 열창하는 아이유. ⓒ 원더케이


'이름에게'에는 세 명의 '나'가 등장한다. 한 명은 외상을 겪기 전의 '행복했던 나'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외상을 겪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회복하려고 애쓰고 있는 스스로를 '돌보는 나'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상처로 인해 여전히 힘들고 숨고 싶은 자아인 '상처받은 나'이다.

첫 소절에서 '돌보는 나'는 외상 이전의 '행복했던 나' 즉, '꿈에서도 그리운 목소리'를 애타게 부른다. 하지만, 외상은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특히, 아는 사람에 의해 자행되는 성폭력과 같은 외상은 세상과 사람에 대한 신뢰를 한 순간에 잃게 한다. 때문에 외상을 겪기 이전과 이후의 나는 결코 같을 수 없다. 그래서 사건을 겪기 전 행복했던 나는 '이름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나를 되찾고 싶어 애가 타 계속 그 이름을 불러본다. 하지만, '돌보는 나'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외상 이전의 해맑고 신뢰로 가득찼던 나는 돌아오지 않는다. 대신 아픈 마음인 '글썽이는 그 메아리만 돌아'오고 지금의 나는 상처받기 전 순수했던 나의 모습을 기억 속에서만 꺼내보며, '그 소리를 나 혼자서 들으면서' 슬퍼할 수밖에 없다.

2절의 첫 소절에서 '돌보는 나'는 '상처받은 나'를 만난다. '어김없이 내 앞에 선 그 아이'는 외상을 겪은 사람에게 수시로 떠오르는 상처받은 나의 모습이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상처받은 나는 그런데 '고개 숙여도 기어이 울지 않는다.' 이는 외상의 생존자들이 자신의 상처를 맞닥뜨리기 어려워하며, 때로는 상처를 기억 저편으로 숨겨버리고 억압하거나 부인하려는 심리상태와 맞닿는다.

특히, 성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잘못된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자신의 아픔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상처를 억압하고 그로인해 불안, 분노, 우울, 강박 등 다양한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상처받은 나'를 바라보는 '돌보는 나'는 안쓰럽고 답답하다. 하지만, '상처받은 나'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여전히 쉽지 않다. 도와주고 싶어 손을 내밀면 오히려 부담스러워하며 숨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유는 '안쓰러워 손을 뻗으면 달아나. 텅 빈 허공을 나 혼자 껴안아'라고 노래한다.

함께 있어 주는 방법

과연 어떻게 하면 이 지독한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도록 도울 수 있을까?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처를 꺼내보아야 한다. 숨겨진 상처는 꽁꽁 숨어 있다가 점점 더 곪아간다. 때문에 외상으로 인한 상처를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아픈 경험을 인정하고,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과정이다.

아마도 미투 고백을 한 많은 여성들은 그 결심하기까지 자신의 아픈 경험을 다시 꺼내들고, 지워질 수 없는 경험으로 인정하는 아픔을 겪어 냈을 것이다. 또한 이야기하는 순간에도 두렵고, 불안하고, 화나는 여러 감정들로 인해 매우 힘이 들었을 것이다. 이 과정은 '깨어질 듯이 차갑고' '에어질 듯이 아픈' 일이다. 이럴 때 도울 수 있는 방법은 그냥 손을 꼭 잡아 주는 것이다.

외상 경험에 더 자세히 묻지도 말고, 함부로 조언도 하지 말자. 그저 손 꼭 잡고 끝까지 함께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아이유가 '이번에는 결코 놓지 않을게. 아득히 멀어진 그날의 두 손을'이라고 노래하듯 말이다.

다음은 외상으로 상처받은 이들에게 꼭 필요한 말을 해주는 것이다. 외상을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특히 성폭력의 피해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심리적 경험이 바로 죄책감이다. 가부장적 사회의 잘못된 시선 때문에 자신들이 피해자임에도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 들려줘야 할 말이 바로 "괜찮아,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이다.

'이번에는 결코 잊지 않을게 한참을 외로이 기다린 그 말을'에서 '그 말'이란 바로 이것이다. "괜찮아,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곁에 있는 누군가가 반복해서 이렇게 격려해주게 되면, 외상으로 상처받은 이는 차츰차츰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이 말을 내면화 시켜 '돌보는 나'가 '상처받은 나'에게 "괜찮아"라고 이야기 해주게 된다. 더 나아가 '상처받은 나'가 스스로가 "괜찮아,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게 될 때 드디어 트라우마로 인한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외상 후 성장을 향하여...

 아이유

아이유 ⓒ 페이브엔터테인먼트


외상을 치유해 가는 과정은 참으로 고통스럽고도 멀고 험한 길이다. 왜냐하면 치유의 과정에서 외상 이전의 '행복했던 나'를 떠나보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지나간 나의 꿈, 가치관, 믿음 등을 떠나보내는 것은 과거의 나와의 영원한 이별이며, 상실에 준하는 아픔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아이유는 '끝없이 길었던 짙고 어두운 밤사이로 조용히 사라진 네 소원을 알아'라고 슬프게 노래하며 외상 이전에 가졌던 나의 꿈, 세상에 대한 신뢰, 사람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음을 받아들이고 애도한다.

하지만 외상을 겪었다고 해서 다시 행복해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심리학의 많은 연구결과들은 인생의 믿음과 가치관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한 후 보다 나은 자신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외상을 겪은 사람들은 외상의 상처를 극복한 후 자신이 보다 강해지고, 친밀한 관계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보다 영적으로 성숙해졌다는 보고들을 하고 있는데 심리학에서는 이를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라고 한다. 즉, 외상으로 이전의 '행복했던 나'의 상태로 복원될 수는 없지만, 외상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더 강해지고 보다 성장한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상 이전의 '소원'이 사라진 것을 인식한 아이유는 이어서 '오래 기다릴게 반드시 너를 찾을게'라고 노래한다. 이는 아픔을 모르던 시절의 꿈은 떠나보냈지만, 대신 이 상처를 극복하고 보다 나은 나를 찾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런데 외상을 극복하고 성장으로 나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사회적 지지'이다.

가족, 친구, 가까운 이웃, 직장 동료 등 자주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격려와 지지는 외상을 경험한 사람들이 무너진 세상에 대한 신뢰를 다시 세우고, 새로운 꿈을 찾아 나서는데 꼭 필요한 에너지다.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있을 때, 외상의 생존자들은 끝날 것 같지 않던 이 아픔이 언젠가 끝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성장'을 인식하며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아이유가 '보이지 않도록 멀어도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이라고 노래하듯 말이다.

고백한, 그리고 잊혀진 '이름'들을 응원하며

지금 많은 외상이 드러나고 있다. 직접적인 피해를 당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여성주의 관점에서는 성폭력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불안한 채 생활하는 것 역시 간접적인 성폭력으로 보기도 한다. 한국 사회의 여성이라면 누구나 어두운 밤 길 공포를 느끼고, 사람이 붐비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주변을 경계해 본 경험이 것이다.

또한, 힘 있고 권력을 가진 자가 힘없는 자를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 역시 거의 없을 것이다. '미투'는 가부장적 위계질서 안에서 형성된 힘 있는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문화가 만들어 놓은 폐해가 집약된 상처다. 미투뿐만이 아니다. 세월호, 각종 화재와 폭발 등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낸 재난들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노래를 마무리하며 아이유가 읊조리는 '수없이 잃었던 춥고 모진 날 사이로 조용히 잊혀진 네 이름'은 우리 사회의 문제들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으면서도 조용히 고통을 견뎌낼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이름들을 상징한다 할 수 있다.

미투의 경험,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각종 재난들은 우리 모두의 상처이자, 우리 사회의 트라우마이기도 하다. 우리가 함께하며, 피해자에게 '괜찮다'고 말해줄 때, 더 많은 용기 있는 개인들이 목소리를 내며 자신을 위한 치유작업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용기 있게 성장을 향해 나아가는 개인들과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연대하고 힘을 내 '멈추지 않고 몇 번이라도 외칠 때' 뿌리 깊은 가부장적 사고와 이로 인한 폭력들이 언젠간 끝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우리 사회 역시 미투는 물론, 각종 재난의 아픔을 딪고 일어서 '외상 후 성장'을 일궈낼 수 있을 것이다. 고백된, 아직 고백하지 않은, 그리고 조용히 잊혀지고 있을지 모르는 가부장제 위계질서하의 많은 피해자들의 '이름에게' 응원을 보낸다.

이름에게

꿈에서도 그리운 목소리는
이름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아
글썽이는 그 메아리만 돌아와
그 소리를 나 혼자서 들어

깨어질 듯이 차가워도
이번에는 결코 놓지 않을게
아득히 멀어진 그날의 두 손을

끝없이 길었던 짙고 어두운 밤 사이로
조용히 사라진 네 소원을 알아
오래 기다릴게 반드시 너를 찾을게
보이지 않도록 멀어도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으로

어김없이 내 앞에 선 그 아이는
고개 숙여도 기어이 울지 않아
안쓰러워 손을 뻗으면 달아나
텅 빈 허공을 나 혼자 껴안아

에어질듯이 아파와도
이번에는 결코 잊지 않을게
한참을 외로이 기다린 그 말을

끝없이 길었던 짙고 어두운 밤 사이로
영원히 사라진 네 소원을 알아
오래 기다릴게 반드시 너를 찾을게
보이지 않도록 멀어도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

수없이 잃었던 춥고 모진 날 사이로
조용히 잊혀진 네 이름을 알아
멈추지 않을게 몇 번 이라도 외칠게
믿을 수 없도록 멀어도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으로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아이유 이름에게 #미투 트라우마 가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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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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