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포스트>.

<더 포스트>. ⓒ 21세기 폭스사 등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은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 전면 개입의 명분을 만들어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더 포스트>는 이 조작극이 언론에 의해 폭로되는 과정을 다뤘다. 

폭로된 것은 '펜타곤 페이퍼'로 불리는 국방부 1급 기밀문서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역대 미국 정부의 개입 과정을 담은 서류다. 이 문서는 처음엔 <뉴욕 타임스>에 의해 폭로됐다. 하지만 닉슨 행정부가 관련 보도를 금지시키면서, 폭로 효과는 제한적으로 나타났다.

그러다가 <워싱턴 포스트> 캐서린 그레이엄 사장(메릴 스트립 분)과 밴 브래들리 편집장(톰 행크스 분)이 주도한 추가 폭로와 여타 언론사들의 '따라 쓰기'로 닉슨 행정부의 제한 조치는 힘을 상실하고, 미국 사회는 미국 정부의 속임수를 낱낱이 인식하게 됐다. 

그렇게 폭로된 '펜타곤 페이퍼'의 내용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통킹만 사건이다. 통킹만은 베트남 북부와 중국 남부가 만나는 해상 지역이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인 하이난(해남)이 그곳에 있다.

통킹만 사건

 통킹만의 위치. 별표 부분.

통킹만의 위치. 별표 부분. ⓒ 김종성


남베트남 반정부 세력인 베트콩(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 북베트남의 지원 하에 민족통일을 목적으로 일으킨 베트남전쟁. 이 전쟁 와중인 1964년 8월에 발생한 통킹만 사건에 관해, 언론인 리영희는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과의 대담록 <대화>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이 통킹만 사건이라는 것은 미국 군대가 얼마나 치밀하게 허구를 날조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큰 날조 사건이야. 쉽게 말하면, 월맹(북베트남) 수도인 하노이의 외항인 통킹만에서 미국 해군 구축함 매독스호와 터너 조이호가 공해상에서 어느 날 순찰을 하고 있는데, 월맹 어뢰정이 야밤에 그 공해상에서 그 구축함에 어뢰 공격을 가했다는 거요."

미국 정부는 공해상에서 순찰 중이던 매독스함과 터너 조이함을 폭침시킬 목적으로 북베트남 어뢰정이 공격을 시도했다고 발표했다. 그 뒤 미국 정부가 취한 조치는 이렇다.

"미국은 이것이 공해상에서 일어난 미국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전 세계에 발표해요. 이것을 구실로 삼아서 미국 군부와 전쟁주의 세력은 의회 상하 양원에서 월맹에 대한 '대통령의 무제한의 전쟁수행 권한'을 부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어. 말하자면 선전포고 격이지."

통킹만 사건 전에도 미군은 전쟁에 개입했다. 하지만 규모가 1만 6천 명 정도였다. 그나마도 전투부대가 아닌 군사고문단 형식이었다. 그랬다가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전면 개입이 이루어지면서 미군 규모는 최대 50만을 넘게 됐다. 이로써 이 전쟁은 베트남 통일전쟁 차원을 넘어 국제 대전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미국의 아시아 지배권과 관련된 패권 전쟁 차원으로 발전한 것이다.

통킹만 사건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한 책임을 반성하면서 미국 언론인들이 합동으로 기고한 글이 있다. 이 기고문에 약간의 해설을 덧붙여, 손주환 당시 중앙일보 부장대행이 1978년 5월 <관훈저널> 제26호에 실은 글이 '미국 언론은 월남전 보도에 왜 실패했는가'라는 논문이다.

논문은 통킹만 사건이 매독스함과 남베트남 해군에 의해 조작되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1964년 7월 31일이었다. 남베트남 해군이 미군 고속정을 타고 북베트남 영역인 통킹만에 진입했다. 그런 뒤, 북베트남 섬들에 함포 사격을 하고 사라졌다.

북베트남은 공격 주체가 정확히 누군지 파악하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매독스함이 공격할 듯한 태도로 북베트남 영해를 침입하고 상대방의 군사통신을 도청했다. 북베트남이 누구를 공격 주체로 파악했는지 확인할 목적이었다. 매독스함이 확인한 내용이 위 논문에 이렇게 소개돼 있다.

"월맹은 매독스호가 그들 섬에 대한 월남 해군의 공격 행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믿고 있음이 도청 결과 확인됐던 것이다."

 매독스함.

매독스함.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북베트남은 함포 사격의 주체가 매독스호라고 판단했다. 함포 사격 뒤에 매독스함이 출현해 공격할 듯한 태도로 북베트남 영해를 침범했기 때문이다. 북베트남이 자신들을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상황 속에서 미군은 북베트남을 자극할 만한 행동을 했다. 8월 2일에는 매독스함이, 8월 4일에는 매독스함과 터너 조이함이 통킹만에 진입하고 상대방 영해를 일부러 침입했던 것이다. 

그런 뒤에 미국 정부는 "8월 2일과 4일에 미국 구축함이 공해상에서 북베트남의 어뢰 공격을 받았지만 아무 피해가 없었다"고 발표했다. 특히 8월 4일 경우에는 미군 구축함이 반격을 가해 북베트남 어뢰정 3척을 격파했다는 게 미국의 발표였다. 

그런데 8월 4일 밤에는 먹구름과 폭풍우가 매우 심했다. 그래서 육안으로는 아무것도 관찰할 수 없었다. 이런 속에서 매독스함이 통킹만을 운항했다. 운항 뒤에 매독스함 함장은 이렇게 보고했다. 위 논문에 인용된 전문(電文) 보고서다.

"적이 기습을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만 명백할 뿐, 다른 사정은 불확실함. 항공기에 의한 철저한 주간 정찰을 건의함."

북베트남이 미군 함정에 보복 공격을 가할 의사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보고했다. 도청을 통해 그런 의사를 탐지한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정'은 불확실하다고 보고했다. 실제로 공격 준비가 됐는지는 파악되지 못한 것이다. 8월 2일과 4일에 매독스함이 공격을 받은 일이 없으므로 이런 보고를 올린 것이다. 함장은 두 구축함 승조원들의 보고를 취합한 뒤 다시 한번 전문을 발송했다.

"적함과의 접촉이나 어뢰 발사에 대한 많은 보고가 있었으나, 재검토한 결과 의심스러움. 레이더와 전탐실(전파탐지실)의 적함과의 많은 접촉 보고는 악천후와 전탐사들의 흥분에 기인한 것임. 매독스호는 적 어뢰정을 직접 육안으로 확인하지 못했음. 추후 조처를 취하기 이전에 철저한 사태 파악과 검토를 건의함."

먹구름과 폭풍우 때문에 앞도 안 보이고 소음도 심했다. 거기다가 북베트남 영해에 진입한 일로 인해 승조원들의 공포심까지 증폭됐다. 이런 상태로 통킹만을 운항하는 중에 '적함이 근처에 있다'느니 '적함이 어뢰를 발사했다'느니 하는 승조원들의 보고가 올라왔다.

하지만 함장이 검토해본 결과, 사실이 아니었다. 악천후로 인한 소음 때문에, 어뢰가 발사된 것 같은 착각을 했을 뿐이다. 승조원들의 감정 상태도 착각을 유발하는 데 기여했다고 함장은 설명했다. 북베트남의 어뢰 공격은 없었다는 게 함장의 결론이었다. 

사건의 조작

어뢰 공격을 받지 않았으면, 처음부터 보고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매독스함 함장은 어뢰 공격이 없었다는 점을 상세히 보고했다. 처음부터 그런 공격을 기대하고 통킹만에 진입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일으킬 수 있는 대목이다. 상부에서 북베트남의 공격을 기대했으므로 그런 내용을 보고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매독스함 함장의 전문 속에 '재검토한 결과 의심스러움'이란 문구가 있었다. 미군 지도부는 그 문구를 활용했다. 이를 근거로 사건을 조작했다. '의심스러움'은 '북베트남의 공격이 있었다'는 의미로 확대 해석됐다. 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의심스럽다는 현장 함장의 전문을 받은 지 수 시간 뒤 미국의 폭격기들이 월맹을 향해 발진했다."

북베트남 영해를 침범한 미군 구축함들에 대해 북베트남은 공격을 가한 일이 없다. 그런데도 미국 정부는 '북베트남이 공해상에서 미군을 선제공격했지만, 미군이 반격해서 물리쳤다'고 과대 포장했다. '공해상에서 미군이 공격을 당했으니 가만히 있을 수 없으며, 미군이 물리칠 수 있을 정도로 어렵지 않은 상대니 전면적 군사행동을 해볼 만하다'는 분위기를 조성할 목적이었던 것이다.

 베트남 참전 미군. 통킹만 사건 이후인 1966년에 촬영된 사진이다.

베트남 참전 미군. 통킹만 사건 이후인 1966년에 촬영된 사진이다.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통킹만 사건은 정부의 선전과 언론의 보도로 더욱 더 과장되게 확산됐다. 특히 <타임>과 <라이프>가 분위기 고조에 일조했다. 두 매체의 보도 태도를 두고, 위 논문은 "마치 미국의 전함이 격침이나 되었던 것처럼 이 사건을 다루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구축함 승조원들이 영웅시되는 분위기도 나타났다. 북베트남의 불법 공격을 용감하게 물리친 영웅들로 부각됐던 것이다. 그런데 당사자인 승조원들의 반응과 관련해, 위 논문은 "두 구축함의 승조원들을 인터뷰한 몇 안 되는 기자의 한 사람인 요셉 골든은 어느 수병의 얘기를 다음과 같이 인용 보도했다"면서 수병의 얘기를 소개했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타임·라이프)은 앞뒤가 맞지도 않게 그 얘기를 마구 불어 댔더군요. 그들이 그 전투를 묘사한 걸 보니, 마치 남성용 잡지의 무슨 기사 같았습니다. 그 기사가 전혀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여간 불쾌하지 않았습니다. 사태가 그런 식으로 일어나지 않았단 말입니다."

사태는 그런 식으로 일어나지 않았지만, 미국 정부와 언론에 의해 그런 식으로 일어난 것처럼 되어 버렸다. '진상은 그게 아니다'라는 승조원들의 인터뷰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됐다.

미국 정부는 아시아 패권을 지킬 목적으로 통킹만 사건을 확대·재생산 했다. 그리고 더 많은 미군을 증파하고 전쟁 규모를 더 크게 키워 갔다. <더 포스트> 등장인물들에 의해 '펜타곤 페이퍼'가 완전히 폭로될 때까지, 미국 정부는 세계와 자국민을 그렇게 파렴치하게 기만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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