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래빗 홀>의 포스터.

영화 <래빗 홀>의 포스터. ⓒ 프리비전 엔터테인먼트


조용하고 한적한 교외의 큰 집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는 베카(니콜 키드먼 분)와 하위(아론 에크하트 분). 하지만 그들에겐 불과 8개월 전 큰일이 있었다. 네 살 된 아들 대니가 달려가는 개를 따라가다가 차에 치여 세상을 등진 것이다. 그들은 애써 밝은 척 괜찮은 척 하고 비슷한 일을 당한 부부들 모임에 나가 위안을 받으려 한다.

쉽지 않다. 아니, 너무 어렵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베카는 대니에 대한 흔적을 지워나가며 과거를 뒤로 한 채 나아가려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하위는 매일같이 대니의 살아생전 동영상을 보며 과거에서 위안을 찾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차이 때문인지 그들 사이는 알게 모르게 점점 벌어진다.

문제만 일으키던 베카의 여동생이 임신을 해 남자친구와 함께 엄마 집에 머물게 된다. 한편, 베카 하위 부부와 절친했던 데키 릭 부부, 하위와 릭은 여전히 잘 만나고 대니를 포함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지만 베카와 데키는 연락이 끊긴 상태다.

베카는 다른 사람이 아닌 대니를 치인 장본인 학생 제이슨을 만나 위안 아닌 위안을 받고자 하는데, 아들을 잃었던 엄마와 아이를 갖게된 여동생과는 계속 부딪힌다. 하위는 모임에서 알게된 개비를 만나 동질감에서 오는 위안을 받고자 한다. 여기서 방식의 옳고 그름은 의미가 없다. 그들은 서로 각자만의 방식으로 위안을 찾아야만 하는 것일까?

죽음이라는 아픔

 영화 <래빗 홀>의 한 장면

영화 <래빗 홀>의 한 장면 ⓒ 프리비전 엔터테인먼트?


영화 <헤드윅>, <숏버스>를 통해 자못 파격적인, 그만의 언어로 고민을 드러내고 편견을 부수고자 했던 존 카메론 미첼이 영화 <래빗 홀>을 통해서 '아픔'을 말했다. 아픔을 대하고 견디고 이겨내는 방식을 고민하고 또한 편견을 부수고자 한다. 지루하다 할 만큼 정적인 대응일지 모르지만, 죽음이라는 아픔을 대하는 방식으론 파격적이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 가족을 잃는다는 것, 살아갈 날이 창창한 나의 자식을 잃는다는 것. 죽음에 차등이 있일 수 있겠냐마는, 남겨진 이가 가장 아픈 건 아마도 자식 잃은 부모의 사례가 아닐까. 영화는 죽음에 관한 최고 수위의 아픔을 받고 견뎌내야 하는 한 부부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누구나 누군가를 잃지만 이런 류의 끔찍한 상실을 겪어본 이는 많지 않다는 것과 그로 인해 이 영화를 완전한 몰입 하에서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것과 그럼에도 상실의 아픔을 공유하고 그 이상의 위로와 위안 없이도 그 자체로 더할나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것을 미리 말해둔다.

자식 잃은 아픔에 대항하는 방식

 영화 <래빗 홀>의 한 장면

영화 <래빗 홀>의 한 장면 ⓒ 프리비전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자식 잃은 아픔에 대항하는 두 부부의 방식 차이를 우리에게 내보인다. 베카가 미래지향적이고 하위가 과거지향적이어서, 베카는 대니의 흔적을 지우려 하고 하위는 지니려고 하는 것일 수 있다. 베카가 과거의 인연을 끊으려 하면서 자신 안으로 천착해 들어가려고 하는 반면 하위는 과거의 인연을 계속 이어나가며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동질감 어린 위안을 받고자 한다.

한편, 현재 대니는 떠나고 없다. 베카는 대니의 흔적을 지움으로써 도망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이슨이라는 아픔의 가장 큰 축을 대면하는 용기도 보인다.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아주 잘 알지만, 그걸 인정하는 것과 그를 만나서 대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차원이 다른 차이가 있다. 그녀의 행동은 정녕 위대하다.

하위가 보이는 행동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또한 지극히 일반적이고 인간적이다. 누구라도 자식을 상실하면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도망치고 싶다. 아니, 도망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상실의 때 이전으로 돌아가버리고 마는 것이다. 제이슨과 마주하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두려움이다. 그의 모습에서 또 다른 내가, 또 다른 우리가 보인다.

영화는 말한다. 그럼에도 베카와 하위는 모두 힘들다고 말이다. 위대한 베카와 일반적인 하위 모두 이 속절없는 상실과 아픔과 슬픔 앞에서 한없이 힘들다고 말이다. 과연 이 앞에 '어떻게'를 붙일 수 있을까. '어떻게 이 아픔을 이겨내야 하는가' 따위의 물음이 존재할 수 있을까, 존재하는 게 맞긴 할까.

영화가 건네는 답

 영화 <래빗 홀>의 한 장면

영화 <래빗 홀>의 한 장면 ⓒ 프리비전 엔터테인먼트?


답을 주진 않지만, 아니 답을 줄 수 없지만, 답을 찾아보자. 제목에서 찾을 수 있고, 뜻밖에 베카 엄마의 경험에서 묻어나오는 무심한듯 진정어린 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영화 내내 스치듯 지나가는, 제이슨이 그리는 만화책 '래빗 홀'.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래빗 홀을 통해 가게 된 그곳에 나의 다른 버전이 존재한다는 내용이다.

고통은 베카와 하위 부부를 단 한 순간도 놔두지 않을 것이다. 출구는커녕 작은 빛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있는 것처럼 그들은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이 영화를 통해서만이 아니더라도 단언할 수 있지만, '래빗 홀'에 대한 상상이 순간이나마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건 분명하다. 영화가 건네는 답 아닌 답이다.

베카 엄마에겐 아들이 있었다. 서른 살에 헤로인 과용으로 죽은 아들이. 베카에게 '아들의 죽음'이라는 동질감으로 비교하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려 하지만 반감만 살 뿐이다. 그럼에도 '아들의 죽음'이 주는 치명적 아픔은 같은 것, 베카는 엄마에게서 위안을 받는다. 그녀의 말이 영화가 건네는 또 다른 답이 되지 않을까.

"언제부터인가 견딜 만해져. 결국은 밖으로 나와 주머니에 넣고 다닐 작은 조약돌만 하게 되지. 때로는 잊어버리기도 해. 그러다 또 문득 생각나서 보면 거기 있는 거야. 그래, 그런 거야. 끔찍할 수도 있지. 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니야. 그건 뭐랄까, 아들 대신 너에게 주어진 무엇, 그냥 평생 가슴에 품고 가야 할 것, 그리고 사라지지 않는…. 그렇지만 사실, 괜찮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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