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신작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은 '괴생명체'와 한 여인의 사랑을 보여준다. 냉전 시대인 1960년대, 소련과 우주 탐사를 두고 경쟁하던 당시 미국을 배경으로 삼았다. 주인공 엘라이자 에스포지토(샐리 호킨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여성으로, 미 항공우주국 연구센터에서 야간에 시설 청소를 하며 살아간다.

영화는 그녀가 출퇴근 버스에서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 모습을 보여준다. 모자를 접어 창문에 놓고 베개처럼 쓰는 장면에서는 육체노동자의 고단한 일상을 떠오른다. 비록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직장 동료 젤다(옥타비아 스펜서)와 수화로 수다를 떨면서 일상을 공유하는 모습은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과 지극히 닮았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한 장면.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개인의 이야기를 잘 끌어내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흥미와 메시지를 동시에 담으면서도 관객의 관심을 얻으려면, 거창한 주제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공감할 만한 장면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셰이프 오브 워터>는 디테일한 장면까지 충실하게 채워나가는 영화다.

일터에서 먹을 달걀을 삶고, 샤워를 하고, 옆집 이웃이나 직장 동료와 소소한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관객이 등장인물에 이입할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영화의 메시지'에 앞서 관객을 엘라이자의 자리, 그녀가 일하고 살아가며 처할 입장에 직접 처하게 만드는 셈이다.

동시에 장르적 특성을 적절히 드러내는 점도 매력적이다. <셰이프 오브 워터>가 '괴생명체'를 구현하는 방식은 다층적이라 더욱 실감나는데, '인어'와 '양서류'의 중간쯤으로 보이는 존재를 관객에게 직접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시각적인 자극 이후엔 기괴한 울음소리가 이어지고, 엘라이자가 가까이 다가가 그와 의사소통 하는 모습도 스크린에 오른다.

"삶은 부서진 계획의 파편에 불과하다."

'괴생명체'와 여인의 사랑 이야기로 시작된 <셰이프 오브 워터>는 스릴러의 묘미도 담았다. 괴생물체는 미 항공우주국의 실험체로 반입되면서 해부될 위기에 놓이는데, 그와 사랑에 빠진 엘라이자는 그를 구출하기 위해 모험을 감행한다. 그러면서 연구센터의 보안책임자 리차드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와 쫓고 쫓기는 관계가 된다. 둘의 사이가 깊어질수록 위험은 점점 커지고, 이를 바라보는 관객의 긴장도는 줄거리가 진행될수록 높아진다. 영화에 나오는 '부서진 계획의 파편'이라는 문구처럼, 각 등장인물의 목표나 바람이 계속 엇나가는 상황이 이어지며 줄거리의 재미를 더한다.

'소수자'를 소재로 한 '성인용 동화'

<셰이프 오브 워터>의 주요 등장인물은 사회에서 소수자에 가깝다. 주인공 엘라이자는 장애인 여성이고, 동료인 젤다는 흑인 여성이다. 엘라이자의 옆집 이웃인 자일스(리차드 젠킨스)는 백인 남성이지만 성소수자다. 모두 핍박의 대상이고 특히 엘라이자가 사랑하는 괴생명체는 인간이 아니라 아예 실험용 동물처럼 취급된다.

영화의 배경인 1960년대는 인종 차별과 성소수자 혐오가 지금보다 더 짙었던 시기였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도 이를 직접 보여주는데, 흑인들의 시위가 흑백 TV에 나오자 "보기 싫으니 채널을 돌리라"는 대사가 나오는 부분이 예다. 성소수자 자일스가 들르는 파이 가게에서 본인의 성적 지향을 드러내자 "가게에서 나가세요"라는 소리를 듣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속 한 장면.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속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사회적 편견으로 일상에서도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인물들이 서로를 이해하면서 돕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각자 본인의 사정이 있고 나름의 편견이 있던 인물들이 연대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정의'라는 대의에 따르기 위해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곁에 있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나서기 때문이다.

이들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은 늘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권위를 강조하는 보안 책임자 스트릭랜드다. '신은 나 같은 (백인의) 형상을 닮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스트릭랜드는 전형적인 '보수 성향'의 미국인 남성이다. 그는 시종일관 본인의 출세를 위해 주변인을 제물로 삼고자 하고 '신의 섭리에 어긋난다'며 괴생명체를 괴롭힌다.

괴생명체를 사랑하는 엘라이자나 흑인 젤다에게는 장애인을 차별하고 백인 우월주의 발언과 폭력을 일삼는 스트릭랜드가 큰 장애물이자 악당일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혐오의 정치'와 흑인 차별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다시 떠오른 2018년의 미국에서 <셰이프 오브 워터>가 보여준 대립 구도는 더욱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미녀와 야수>의 성인 버전, 하지만 결말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이전에도 주인공의 소수자 성향을 두드러지게 묘사한 영화를 여러 차례 만든 바 있다. 그는 뱀파이어 소재의 액션 영화 <블레이드> 시리즈 중 두 번째 편의 감독을 맡았고, <헬보이> 시리즈도 만들었다. 1편과 3편이 주인공이 '인류를 구하는' 영웅적 면모에 중점을 뒀다면 2편은 '인류와 뱀파이어 무리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뱀파이어 출신 뱀파이어 사냥꾼의 모습을 그렸다.

<헬보이>도 동명의 코믹스 원작 영웅물이지만 주인공의 쓸쓸한 상황을 비중있게 다뤘다. 본인도 지옥에서 온 악마이면서 악당을 무찌르는 헬보이는 이미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인물이고, 동료들도 육신이 없는 영혼이나 초능력자라 괴물 취급 받는 여성이었다.

 영화 <헬보이2:골든 아미>에 등장한 인어 '에이브'의 모습

영화 <헬보이2:골든 아미>에 등장한 인어 '에이브'의 모습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특히 <헬보이>에 등장하는 인어 '에이브'는 <셰이브 오브 워터>의 괴생명체와 생김새가 거의 흡사하다. 다만 <헬보이>에서는 자유롭게 언어를 구사하고 전략을 세우면서 행동하는 존재로 묘사되는데, 공교롭게도 두 생물(?)을 연기한 사람이 미국인 배우 '더그 존스'로 동일인이다.

이런 점을 종합해보면, <셰이프 오브 워터>는 '현대판 <미녀와 야수>'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주인공이 동화 속의 '아름다운 공주'가 아니라 다소 평범한 모습의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여성과 괴물의 나체가 고스란히 스크린에 오르면서 사랑하는 모습까지 담았다는 점에서 <미녀와 야수>의 '성인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는 둘의 육체를 미화하지 않고, 그 자체로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듯이 고스란히 스크린 위에 올린다.

다만 <셰이프 오브 워터>에는 영화와 주로 비교되는 <미녀와 야수>나 <개구리 왕자>와 다른 점이 있다. 해당 동화에서는 괴물의 모습이 '저주'로 묘사되고 '진정한 사랑으로 본래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결말이 등장한다. 하지만 <셰이프 오브 워터>는 '본래의 모습을 되찾으려는 노력'이나 등장인물과 괴생명체의 소수자성이 '저주' 등으로 해석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이 점이야말로 <셰이프 오브 워터>가 2018년에 '옛날 이야기'의 틀을 가져와 세련되게 변형한 포인트이지 않을까. 오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3개로 최다 부문 후보에 오른 <셰이프 오브 워터>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의 관심에 오를지 기대되는 이유다. 이야기가 한층 신비롭게 느껴지도록 돕는 영상미와 분위기와 걸맞은 음악은 덤이다.

영화의 제목 <셰이프 오브 워터>가 뜻하는 것처럼, 영화는 물의 모양이 일정하지 않듯이 사랑의 모양도 제각각이라고 보여준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천차만별이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의 한 장면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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