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선임된 영상물등급위원회 7기 위원들. 가운데가 이미연 신임 위원장

지난 26일 선임된 영상물등급위원회 7기 위원들. 가운데가 이미연 신임 위원장 ⓒ 영상물등급위원회


영상물등급위원회(아래 영등위)가 새로 구성되면서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벌어진 '표현의 자유 제한 논란'에 대한 진상규명과 사과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특히 현장 영화인들이 영등위의 중책을 맡으면서 등급 분류 논란이 다소 줄어들 전망이다.

앞서 문화체육관광부는 26일 이미연 감독과 정병각 전주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 남인영 부산 동서대 교수, 곽영진 영화평론가, 서명희 파라마타청소년연합회 이사, 이철원 변호사, 장선화 부산여성단체연합 대표, 정길훈 한국애니메이션제작자협회 이사, 조규상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보도교양특별위원회 위원 등 9명을 임기 3년의 영상물등급위원으로 임명했다.

신임 영등위원들은 당일 첫 회의를 개최해 호선으로 이미연 감독을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부위원장은 정병각 감독이 맡았다.

이미연 영등위원장은 <세번째 시선> <버스, 정류장> 등을 연출했고, <조용한 가족> <반칙왕> 등의 제작에 참여했다. 현재 여성영화인모임 이사로 한국영화감독조합 부대표를 역임한 대표 여성 감독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위원과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소위원회 위원을 거쳤다.

정병각 부위원장은 <코르셋>을 연출했고 현 전주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으로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소위원회 전문위원 및 위원을 역임했다. 영화소위 위원으로 활동하면서는 보수적인 등급 심의에 이의를 많이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등위원으로 선임된 남인영 교수나 곽영진 평론가 등 한국독립영화협회와 영화평론가협회 등에서 활동해 왔다.

<자가당착> 검열 논란, 법원 패소에도 사과 없어

영등위 구성이 변화되면서 지난 정권에서 발생한 표현의 자유 제약에 대한 사과 여부도 관심이다. 대표적인 것이 김선 감독의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에 대한 제한상영 등급 논란이다. 영등위는 박선이 위원장 시절인 지난 2011년 6월과 2012년 9월에 두 차례에 걸쳐 심의와 재심의를 신청한 영화에 대해 제한상영가 등급을 통해 사실상 상영을 봉쇄했다. 이에 이명박 정권을 풍자하는 영화에 대한 검열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법원이 제한상영가 등급을 취소하라고 했지만 영등위는 2심과 대법원까지 가는 시간 끌기로 영화 상영을 긴 시간 동안 막아섰다. 지난 2014년 영등위가 대법원에서도 패소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입은 감독에게는 최소한의 사과조차 하지 않아 "법원의 판결이 난 사안에 대해 영등위가 오만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관련 기사 : "'자가당착' 상영 막은 영등위, 미안하지 않나?").

 지난 2014년 국회에서 열린 영등위 관련 토론회에 참석해 영화계 입장을 이야기했던 이미연 감독(왼쪽)

지난 2014년 국회에서 열린 영등위 관련 토론회에 참석해 영화계 입장을 이야기했던 이미연 감독(왼쪽) ⓒ 성하훈


이미연 감독은 2014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관련 토론회에 참석해 영등위의 태도에 비판적 의견을 드러냈다. 따라서 이런 행태에 관해 사과하지 않은 전임 위원장들과는 다른 태도를 보일지 주목된다.

영등위는 등급분류에서도 끊임없는 논란을 일으켰다. 2014년 7월에는 <미조>에 제한상영가 등급을 내려 '검열기관'이라는 비판까지 들어야 했다. 당시 제작사는 블러(Blur·이미지의 초점을 흐려 뿌옇게 만드는 것) 처리까지 했는데도 또 다시 제한상영가가 나왔다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비슷한 시기 개봉한 김경묵 감독의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역시 청소년들에 대한 이야기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내려 논란이 됐다. 영화 속에 나오는 욕설 등을 문제 삼은 것인데, 심의라기보다는 검열에 가깝다는 주장도 나왔다. 2014년 4월 개봉한 이수진 감독의 <한공주>도 청소년 문제를 다뤘음에도 정작 청소년은 볼 수 없는 등급을 받았다.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감안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보수적인 관점의 심의가 이뤄진 탓이다.

이명박 정권 시절인 2009년 개봉한 영화 <반두비>는 '이명박 대통령을 풍자하는 장면이 많이 들어간 탓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는 평가가 나온 경우다. 당시 영등위의 한 관계자는 "어디선가 연락이 온 후 15세 등급이 청소년불가 등급으로 바뀌었다"며 "전례 없는 경우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등위는 이 같은 사실을 부인하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관련 기사 : <박쥐> 성기 노출은 괜찮고 <줄탁동시>는 안 된다?).

지난 2016년에는 영등위가 등급 심의 전 상영을 이유로 국가보안법 문제를 비판한 <불안한 외출>을 고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이 나오면서 '영등위가 무리한 고발을 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불안한 외출>은 최근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과거 박근혜 청와대가 블랙리스트로 분류한 영화였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영등위 방향 "개선안 마련, 민간심의기구 마련 등 논의해야"

 영상물등급위원회

영상물등급위원회 ⓒ 성하훈


영화계는 '심의보다는 정권의 뜻에 따라 사실상 검열기관 역할을 했던 영등위가 그간 적폐를 제대로 청산하고 필요한 사과와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실무를 주도했던 영등위 관계자들에 대해서도 조사를 통해 필요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등위 쪽 사정을 잘 아는 한 영화계 인사는 "정권의 뜻에 따라 움직인 경우가 많지만 실무에 밝은 고위직들이 영등위를 좌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제도적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번에 선임된 영등위원 중에는 "영등위가 검열적 행정기관으로 존재했다"라고 주장하며 토론회 등에서 민간심의기구 설치 등 영등위 개혁을 주장했던 영화계 인사도 있어, 등급기구의 방향성이 새롭게 설정될지 주목된다. 영화계에서는 과거 지나치게 보수화된 영등위의 심의에 대해 반발과 불만이 많았는데, 이번에 영화인들이 대거 영등위원에 임명되면서 표현의 자유 제약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에 영등위원으로 임명된 한 영화계 인사는 "이전에 논란이 됐던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에 대해서는 영등위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개선안 마련과 일부 영화단체 등에서 주장하는 민간심의기구 전환 등 영등위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문체부 측은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문화 향유권을 보장하면서도 윤리성·공공성 확보와 청소년 보호라는 가치 실현을 위해 영상물등급위원회와 긴밀히 협력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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