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연극계의 어두운 단면을 들춘 '미투 운동'과 전 국민을 들뜨게 한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뜨거운 한 달이었다. 두 사건은 가뜩이나 볼 영화가 많지 않은 늦겨울, 한국 극장가엔 치명타로 작용했다. 2018년 2월 극장을 찾은 관객은 약 1500만 명으로 2012년 2월 1300만 명 이후 같은 기간 가장 낮은 관객수를 기록했다.

마블 기대작이었던 영화 <블랙 팬서>는 5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모았고 영화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골든 슬럼버> <그것만이 내 세상> 등 여러 한국 영화가 100만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분전했으나, 대부분의 신작은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2월 한 달 100만 관객을 넘긴 영화는 위 4편이 전부였다.

오는 3월엔 작품성과 흥행성을 겸비한 좋은 영화가 여럿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들 영화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린 가운데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일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다. 3월 4일로 예정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후보로 올라 있는 영화들은 수상을 통해 흥행에 탄력을 받기를 기대하고 있다.

3월엔 과연 어떤 영화가 빛을 보게 될까. 아래 다섯 편의 기대작을 가려뽑아 소개한다.

[하나] <플로리다 프로젝트>

 플로리다 프로젝트 포스터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포스터 ⓒ 오드


간만에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품격있는 할리우드 영화 한 편이 한국 관객을 찾는다. 전미비평가위원회(NBR) 올해의 영화 TOP10에 선정되며 기대를 모은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바로 그 영화다. 전 세계 아이들이 한 번쯤 찾기를 희망하는 디즈니랜드 맞은편에 조성된 모텔촌을 배경으로 이곳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아이들의 삶을 따뜻하게 그렸다는 평이다. 커져만 가는 빈부격차와 부족한 사회안전망이란 그늘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희망을 모색해나가는 <플로리다 프로젝트>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는 관객이 많은 이유다.

북미 개봉은 한국보다 넉 달 앞선 지난해 10월이며 수입배급사는 2018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맞춰 올 3월 7일 개봉을 확정 지었다. 조연으로 출연한 명배우 윌렘 대포가 남우조연상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으며 유력한 수상후보로 관측된다.

감독인 션 베이커는 1971년생으로 할리우드에서 비교적 젊고 재능 있는 연출자로 알려져 있다. 2008년 작 <프린스 오브 브로드웨이>, 2015년 작 <탠저린>으로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호평받았다. <프린스 오브 브로드웨이>는 전주국제영화제와 서울국제사랑영화제, <탠저린>은 서울프라이드영화제와 무주산골영화제에 출품돼 한국 관객과 만난 바 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역시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돼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가장 빛나는 곳 앞에 누구도 돌보지 않는 홈리스들의 삶이 있다는 것, 션 베이커 감독의 영화가 오늘의 한국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 주목된다.

[둘] <온리 더 브레이브>

 영화 <온리 더 브레이브> 포스터.

영화 <온리 더 브레이브> 포스터. ⓒ (주)코리아스크린


할리우드의 내일을 짊어질 40대 젊은 감독 조셉 코신스키의 신작 <온리 더 브레이브>가 7일 개봉한다. <트론: 새로운 시작> <오블리비언>으로 액션 연출에 재능을 보인 조셉 코신스키가 이번 영화에서 다룬 건 대형 산불에 맞선 소방관들의 삶이다. 그에겐 첫 재난액션 도전으로 감독으로서 한 단계 발전하는 데 성공했을지 관심을 모은다.

화재 가운데서도 위험성이 높은 분야로 꼽히는 산불을 미국은 '핫샷'이라 불리는 전문적인 진압팀을 통해 대응한다. 대개 연방과 주 소속 핫샷팀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시 소속 소방대에서도 핫샷 자격을 취득한 팀이 일부 산불 진압에 나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는 미국 최초로 시 소속 소방대에서 핫샷 자격을 얻은 '그래닛 마운틴 핫샷 크루'의 실화를 배경으로 한다. 그중에서도 2013년 애리조나에서 발생한 초대형 산불이 영화의 주를 이룬다.

기존 할리우드 영화 가운데 화재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재난상태에 주목하거나 방화범 검거를 목적으로 내달리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화재를 다룬 영화 중에서도 명성이 높은 스티브 맥퀸 주연의 <타워링>, 론 하워드의 <분노의 역류>가 대표적이다. <온리 더 브레이브>는 이와 결을 달리해 재난상황으로부터 휴먼드라마까지 나아가 소방관들의 삶과 고충을 그려내는 데 역점을 두고 연출했다는 평이다.

소방관 국가공무원직 전환, 제천 사우나 빌딩 화재사건 등 소방관 및 화재와 관련한 이슈가 수면 위로 올라온 한국에서도 관심 갖고 지켜볼 만한 영화다. 조슈 브롤린과 <위플래쉬>에서 강렬한 연기를 펼친 마일즈 텔러가 주연한다.

[셋] <나라타주>

 영화 <나라타주> 포스터.

영화 <나라타주> 포스터. ⓒ (주)팝엔터테인먼트


이제는 몇 남지 않은 일본의 주목할 만한 영화감독 유키사다 이사오의 신작이 한국에 개봉한다. 유키사다 이사오는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 조감독 출신으로 감독 데뷔 후 <고>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 등을 연출하며 명성을 쌓았다. 일본 현지에서 신작을 개봉해 흥행을 기대할 수 있는 많지 않은 감독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한국 등 국외에도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신작 <나라타주>는 <고>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와 마찬가지로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일본 노마문예신인상 최연소 수상작가로 유명세를 탄 시마모토 리오의 동명 연애소설이 원작으로 세 남녀의 뜨거운 사랑이야기를 담았다고 전한다.

1990년대 말 아이돌 가수로 데뷔한 이래 TV버라이어티, 뮤지컬, 연극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는 일본 톱 연예인 마츠모토 준이 주연을 맡았다. 음악은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끈 <너의 이름은>의 영화음악을 담당한 노다 요지로가 맡았다. 3월 8일 개봉.

[넷] <쓰리 빌보드>

 쓰리 빌보드 포스터

영화 <쓰리 빌보드>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딸을 잃은 엄마가 범인을 충실히 추적하지 않은 경찰을 상대로 싸움에 나선다. 도로 광고판을 임대해 경찰서장을 비난하는 문구를 넣고는, 경찰서장의 광고를 내리라는 온갖 회유와 압박을 물리치는 게 그녀 나름의 저항이다. 올곧은 경찰로 평생을 살아왔다 자부하던 경찰서장도, 그의 충성스런 부하들도 딸 잃은 엄마가 낸 광고를 내리는 데 온 정신을 집중한다.

마틴 맥도나 감독이 직접 쓴 각본으로 연출한 <쓰리 빌보드>는 제74회 베니스영화제 각본상, 골든글로브 작품·각본·여우주연·남우조연상을 휩쓸며 두각을 나타낸 작품이다. 영국 연극·뮤지컬계를 평정하고 할리우드로 진출한 마틴 맥도나 감독이 자신의 이름을 영화팬들에게 각인시키는 작품이 될 것이란 평가까지 나온다. 3월 4일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조엘 코엔의 아내이자 켄 로치, 로버트 알트만, 샘 레이미 등 명장들이 선택한 출중한 연기력의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주연을 맡아 강렬한 연기를 펼친다. 깊이 있는 영화들에 출연해온 그녀의 필모그래피에서도 돋보이는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서장 역을 맡은 우디 해럴슨과 그의 충직한 부하를 연기한 샘 록웰 등도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소화했다는 평가다. 딸을 잃고 온 세상과 홀로 맞서는 한 여자의 분투를 웃프게 그려낸 <쓰리 빌보드>는 3월 15일 개봉한다.

[다섯] <7년의 밤>

 영화 <7년의 밤> 포스터.

영화 <7년의 밤>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지난해 90쇄를 돌파하며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소설 가운데 하나로 자리한 정유정 작가의 스릴러 <7년의 밤>이 영화로 다시 태어났다. 스티븐 킹이 떠오르는 짜임새 있는 이야기와 긴장감 넘치는 전개가 일품인 소설로 일찌감치 영화화가 예고된 작품이다. 이 영화의 성패에 따라 정유정이 스티븐 킹이나 히가시노 게이고와 같이 나오는 족족 영화화가 결정되는 일류 장르소설 작가로 떠오를 수도 있을 듯하다.

줄거리는 딸을 잃고 복수를 꿈꾸는 아버지와 그의 손에서 아들을 지키려는 또 다른 아버지가 모든 것을 걸고 맞붙는 이야기다. 강한 색깔의 캐릭터들이 여럿 등장해 입체감 있는 이야기가 완성됐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출은 영화 <사랑을 놓치다> <광해, 왕이 된 남자>로 유명한 추창민 감독이 맡았고 출연진엔 류승룡·장동건·송새벽·고경표 등이 이름을 올렸다. 영화의 흥행성적에 따라 원작소설의 100쇄 돌파까지 가능해 출판계에서도 주목하는 눈길이 적지 않다. 3월 28일 개봉.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온리 더 브레이브 나라타주 기대작을 소개합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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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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