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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는 일본과 관계없음을 명심할 것."

1877년 3월 20일 행정·사법·입법 3권을 아우르는 일본 최고 권력기관(정부)이었던 태정관(太政官, 1885년 내각제를 도입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첫 총리가 되기 이전까지 기능)은 지령을 통해 위와 같이 밝혔다. 일본 정부가 내무성과 지방정부(시마네현)의 질의에 독도의 영유권이 조선에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일본 정부가 독도의 영유권이 우리 민족에게 있음을 밝힌 뜻깊은 역사적 장면이다. 그러나 제국주의를 전개한 일제는 그리 머지않아 스스로의 말을 부인하고 억지를 부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분위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명한 영화 제목에 빗대 표현하자면 '일본의 역사 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다'.

오늘날 일본 정부는 "타케시마는 1905년 일본정부 각의(국무회의)에 따라 정당한 일본의 영토"라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제국주의적 우격다짐에 지나지 않는다.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에 따르면 일본 정부의 각의가 내린 뒤 1906년에 발행된 1904년 시마네현 통계서에 타케시마 지도가 포함됐다. 한 교수는 지난해 10월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와 영남대가 공동개최한 학술회의에서 "1905년 2월 각의 결정 이후 독도가 일본 영토에 편입됐다는 사실을 부각하려 한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이는 제국주의로 치달은 일본정부가 당초의 입장을 송두리째 뒤집었음을 나타내는 결정적 증거다. 시기적으로 보면 조선침략으로 태도를 싹 바꾼 일제의 만행이 일관된 흐름으로 이어졌음을 잘 알 수 있다. 독도 해역에서 러시아와 일본의 함대가 맞붙은 러일전쟁이 같은 해 9월에 일본의 승리로 끝났고, 11월 17일에 이토 히로부미가 참석한 위협적인 회의에서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됐다.

따라서 일제의 '독도 점령'을 정당하다 평가하는 일본 정부의 논리에서는, 구한 말 조선민족의 혼란을 틈타 독도를 강탈했다는 낯부끄러운 흑역사가 버젓이 드러날 따름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독도가 우리민족의 땅임은 일본 정부가 먼저 인정했고 그 증거도 뚜렷하다. 제아무리 독도를 슬쩍 시마네현으로 종속시키는 편법을 저지른들 뒤집을 수 없는 사실이다. "타케시마는 일본땅"을 외치는 일본정부의 가장 약한 고리가 바로 이 부분이다.

'독도는 일본 땅?' 한국 무시하는 미국

그렇다면 21세기, 국제사회는 독도를 어떻게 바라볼까? 우리와 국제사회간 인식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세계 1위의 검색엔진이자 미국의 대기업인 '미디어공룡' 구글은 독도를 우리의 영토로 인정하지 않는다. 구글맵은 독도를 리앙쿠르 바위섬(Liancourt Rocks)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리앙쿠르 바위섬은 1846년 독도 해역 근처를 지나던 프랑스의 리앙쿠르호의 이름을 딴 것으로 '영토분쟁지역은 중립적 명칭으로 불러야 한다'는 일본의 논리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일제 패망 뒤 52개 연합국 및 중립국은 패전국 일본의 국제지위를 새롭게 규정한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대일강화조약) 초안에 독도(리앙쿠르 바위섬)가 한국령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 간, 일본의 지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하던 협상과정에서 미국인 주일 정치고문 윌리엄 시볼드는 "독도를 일본령으로 잔류시켜야 미국이 독도에 무선이나 레이더 기지를 설치할 수 있다"며 일본을 옹호했다(정병준 목포대 교수, '독도분쟁의 시발과 윌리엄 시볼드', <역사비평> 2005년 여름호 참고).

정병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시볼드의 제안을 그대로 수용했다. 미 정부는 '독도와 파랑도(이어도)를 조약에 명시해달라'는 한국 정부의 요청에 딘 러스크 국무부 차관보 명의로 된 서한(러스크 서한)을 통해 "독도, 타케시마 혹은 리앙쿠르암으로 알려져 있는 섬은 평소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암초로서 한국의 일부로 취급되었던 적이 없으며, 1905년 이래 일본 시마네현 오키섬 관할에 속해 있었다"라고 답했다. 그 결과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 제6차 초안에 "독도는 일본령"이라는 잘못된 기술이 실렸다.

한국을 지지한 뉴질랜드와 영국을 비롯한 대다수 연합국이 항의하자 미국 측은 태도를 바꿨다. 하지만 미국 측은 초안에 담긴 내용은 정부의 본의가 아니었다며 한 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독도는 한국령'이라고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그 결과 엎치락 뒤치락 하다 최종 수정된 해당 조약의 한국 영토 조항에서 독도가 아예 사라졌다. 독도가 한국과 일본 중 어느 쪽의 영토인지 적시하지 않아 '논란의 불씨'가 남았다. 일본 정부는 이를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또 하나의 근거로 삼고 있다.

미국이라는 1개국과 조율된 내용을 부각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수법. 하지만 얄궂게도 애초 처음부터 잘못 꿰어진 일본 정부의 어긋난 논리가 국제사회에는 '먹히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1868년 메이지유신 이래 세계 열강과의 여러 협상을 거쳐 공고화된 일본의 외교력은 패권국가인 미국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공을 들여왔다. 미국이 '타케시마'를 인정하면 세계가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미 정부는 앞으로도 '한일 관계가 원만하게 풀리길 바란다'는 모호한 태도를 보이면서 사실상 일본 정부의 손을 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미국에게 한국은 끈끈한 동맹이 아니라 '봉'이며, 한반도는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의 패권을 놓치지 않기 위한 도구일 따름이라는 주장을 '너무 나갔다' 할 수 있을까. 아니,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 씁쓸하지만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무기력 대응 일관하면 우리 땅 넘어간다

지난 20일 외교부 그리고 통일부는 일부 외국 홈페이지에 독도를 리앙쿠르 바위섬이라고 기재한 구글맵을 게시하는, 해서는 안 될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시민의 의견을 받아 독도로 교체했다"는 외교부의 해명, 엄중한 영토주권 사안을 제대로 챙기지 않는 주무부처의 안일한 인식이 우려스럽다.

주먹구구식이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우리의 대응과 달리 일본의 집요한 독도 야욕은 여러 단계를 밟아 집요하게 시행돼 왔다. 1월 25일 일본 정부는 도쿄(東京) 한복판 히비야 공원에 영토·주권전시관을 열어 "우리나라(일본)의 영토권을 내외에 알리는 데 주축이 되는 시설"이라며 타케시마 홍보에 팔을 걷어붙였다. 당연히 "즉각 폐쇄하라"는 한국 정부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과 평창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한 바로 다음날이라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런 태도는 지방정부(시마네현)를 중심으로 타케시마 홍보에 나섰던 이전과는 크게 달라진 것으로, 앞으로 일본 정부 차원의 강력한 타케시마 공세가 전망된다.

일본 문부과학성(일본의 교육부)은 여기에 한 술 크게 뜨는 모습이다. 앞서 문부과학성은 초·중학교의 학습지도요령을 개정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기술을 집어넣은 바 있다. 2월 14일 발표된 법적 구속력이 있는 고등학교 학습지도요령은 이 조치의 완결판이다. 대다수 일본인들이 "타케시마는 일본 땅"을 외칠 수밖에 없는 '역사 세뇌의 시대'가 임박한 것이다.

우리의 기준에서야 일본정부가 얼토당토않게 독도 야욕을 뿜어낸다고 여긴다. 그러나 단계를 밟아 차근히 발톱을 드러내는 일본의 독도 야욕, 미국의 협력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독도가 타케시마로 물들어가고 있는 현실은 무척이나 냉혹하다. 사안이 터질 때마다 반박 성명서를 읊고 일본정부 관계자를 불러 항의해봤자 효과는 미미하다.

독도를 바라보는 미국의 눈은 일관되다. 미국은 1978년 11월 7일 한미연합사령부 창설 이래 한국 국방부의 요청에도 독도를 지금까지 리앙쿠르 바위섬으로 표기하고 있다. 영토분쟁지역인 리앙쿠르 바위섬이 '한국이 아니라 일본의 영토가 아니냐'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짙게 깔려있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노련한 외교전술을 펼치는 일본과 그렇지 못한 한국이라는 차이도 있지만 '독도 사태'의 훨씬 중요한 본질은 따로 있다.

표면적으로는 '동등한 주권국가'의 논리가 UN무대에서 일컬어지지만, 열강이 약소국을 업신여기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국제질서가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다. 그 중심에 미국과 일본의 연대가 있다. 미국은 심지어 1948년 6월 8일, 1952년 9월 15일 두 차례에 걸쳐 독도에 폭격기를 보내 최소 30~100여 명으로 추정되는 어민을 무참히 학살하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 1948년 폭격에 대해 미군정은 미 공군 극동사령부를 통해 미 제5공군 소속 B29 폭격기가 어선들을 바위로 오인해 연습폭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역사계·학계에서는 '민간인 희생사건으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독도영토주권을 침해당한 사건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일본의 타케시마 주장을 결코 한낱 망언으로 치부해서는 안 될 이유다.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만약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된다면 끊임없이 '한반도 파견'을 노리는 해상자위대의 기지가 독도에 설치될 건 불 보듯 뻔하다. 미군은 자위대의 협력을 얻어 독도를 북·중·러를 제어하는 전략거점으로 삼을 테고 독도해역에서 자위대가 위용을 떨치게 되지 않을까.

독도 해역은 강치가 제 집 삼아 기거하는 뭇 생명의 터전이자, 메탄 하이드레이트 등 막대한 해양자원이 잠재된 보고다. 언제까지 우리 땅 독도해역의 권리를 주장하는 데 조심스러워야 하는가. 미국이 일본의 편을 드는 분위기에 짓눌려 있으면서 "독도는 우리땅"을 부르짖어봤자 공허할 뿐이다. 우리땅에 대한 제 권리도 마땅히 실천하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은 몹시도 이상하다.

'실효지배를 하고 있으니 괜한 논란 만들 필요는 없다'며 미국과 일본의 눈치를 살펴 자세를 낮추는 무기력한 외교대응으로 일관한다면, 독도가 타케시마로 바뀌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는 이 점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일본의 논리를 살피고 논리를 굳게 다져 우리땅 독도를 수호하기 위한 적극행동에 돌입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주권방송>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독도, #다케시마,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 #강치, #구글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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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정세, 일본의 동향에 큰 관심을 두며 주시하고 있습니다. 적폐를 깨부수는 민중중심의 가치가 이땅의 통일, 살맛나는 세상을 가능케 하리라 굳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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