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현대 민주주의 제도가 시작된 곳이 고대 아테네라고 말하곤 한다. 아테네에서는 시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했지만 모두에게 자격이 부여된 것은 아니었다. 노예, 해방 노예, 어린이, 외국인에게는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성 또한 공적인 활동을 할 수 없었고 제한된 권리만 가질 수 있었다. 즉 아테네의 정치는 일정한 자격을 충족한 남성 시민만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공간이 바뀌었지만 한국의 현실도 비슷하다. 두 가지 면에서 그렇다. 첫째 정치는 여전히 여성의 진입장벽이 높은 곳이다. 역대 최고로 많은 여성 의원이 있다는 지금의 국회도 비율이 17%밖에 되지 않는다. 애초에 여성 출마자도 남성의 8분의 1 수준이었다.

두 번째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많은 문제들은 정치적 의제로 잘 다루어지 않는다. 그나마 몇몇 의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사안의 중대함에 비하면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다. 국회 밖을 벗어나면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성폭력·가정 폭력·임신 중절 처벌 등은 여성의 안전과 인신의 자유를 침해하는 심각한 위험이자 불균등한 성별 권력 관계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사적인 일로 치부해버린다. 입법과 교육, 행정을 망라해 공적 영역 전반에서 이전투구를 해도 해결이 요원한 일이지만 이 사회에서 공유되는 것은 오직 개인들의 '생존자구책' 뿐이다. 이 정도면 보지 못하는 게 아니라 작정하고 안 보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영화 <더 플랜>의 제작을 맡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 프로젝트 부


성폭력 문제, 무시되거나 종속되거나

물론 소위 '여성 의제'에 관한 정치의 대응에 무관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안타깝지만 남은 하나는 더 나쁘다. 바로 종속이다. 문제를 사소화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만드는 식이다. 정치인이건 운동권이건 별로 다를 게 없다. 남자들은 항상 '더 크고 중요한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 혹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일에 '해결사'를 자처한다. 가령 2002년 대선 당시, 개혁당 내에서 성폭력 사건이 터졌을 때 유시민 작가 했던 말을 떠올려 보자. 그는 '해일이 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는 발언을 해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유시민 작가에게 해일처럼 급박하고 거대하게 밀려오는 정치적 문제는 오직 선거였다. 글쎄, 만약에 그가 만연한 성적 폭력 탓에 하루하루 불안을 겪고 위험을 느끼는 위치에 있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10년도 더 넘은 사건이지만 이런 식의 행태는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왔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현재 이어지는 미투 운동에 관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의 발언이었다. 그는 자신의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미투 관련 "예언을 하겠다"고 전제한 후 이렇게 말했다.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이걸 보면 어떻게 보이냐... '첫째, 어 섹스. 좋은 소재. 주목도 높아. 둘째, 진보적 가치죠. 오케이. 그러면 피해자들을 좀 준비시켜서 진보매체를 통해서 등장시켜야 되겠다.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다.' 이렇게 그들의 사고가 돌아가는 겁니다."

말하자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성폭력 공론화를 수단으로 삼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이후 논란이 이어지자 김어준은 26일 자신이 진행하는 tbs 라디오 <뉴스공장> 방송에서 일부 매체의 모략과 달리 자신은 미투 운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것을 우려했을 뿐이며, "진보진영 내의 젠더 갈등으로 프레임이 잡히면 미투 운동이 흔들리고 진보진영 내의 분열로 끝나게 된다"고 부연했다.

남자들의 정치에 '여성'은 없다

하지만 해명을 들어도 여전히 의아하다. 공동체 내 성폭력은 '젠더 문제'이지 '젠더 갈등'이 아니다. 자신의 피해를 공론화한 당사자들은 가해자가 제대로 책임을 지고 집단 내에 더 이상 성폭력이 발생하지 않는 '해결'을 바라지 분란을 원하는 게 아니다. 예술계건 법조계건, 진보 진영 내부에서건 성폭력 문제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피해자가 등장하면 그에 따른 합당한 절차를 밟으면 그만이다. 그 사람이 무슨 계기로 발언에 나섰는지는 질문할 필요조차 없다. 오히려 '특정한 의도를 가진 피해자'가 나타날 것을 예언하고 진영의 분열을 우려하는 순간에 이 문제는 김어준의 표현처럼 갈등이 된다. 사람들이 거꾸로 피해자를 의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지금 이 순간에 그런 말을 하냐고.

그 결과 피해자의 고통과 공동체 내 성폭력 문제는 시야에서 사라진다. 남는 것은 오직 조직 보위 논리와 '누가 우리를 공격하는가'하는 질문뿐이다. 우리는 집단 내 성폭력을 적극적으로 은폐하며 오히려 대의를 위한다는 정의감을 보이는 이상한 남자들을 자주 목격해왔다. 신기할 것은 없다. 김어준의 발언처럼 생각하면 딱 그렇게 된다. 조직의 위신과 영향력만을 걱정하고 세력 다툼에 나서는 것. 공동체, 시민 사회, 국가의 차원에서 이런 양상은 지겹도록 반복되어 왔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전쟁이 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집단은 여성과 아동이다. 남자들이 추구하는 정의 아래에서 이들은 희생양이 된다.

여전히 김어준의 발언이 '최악'인 이유

 다스뵈이다 12회 김어준 미투 운동 공작 발언 유튜브 영상 갈무리

<김어준의 다스뵈이다> 12회에서 김어준은 미투 운동에 대해 "피해자들을 준비시켜서 등장시키는 공작이 있을 수 있다"고 발언했다. 해당 유튜브 영상 갈무리. ⓒ 다스뵈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 상담소는 '성폭력 피해에 공감하는 첫 사람'이라는 회원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공감'은 성폭력 피해에 대해 언급할 때 지켜야 할 절대적이고 근본적인 원칙이다. 피해자가 자신이 겪은 일을 어떻게 경험하는지,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고 나아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명확하게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성폭력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 할 때 우리는 피해자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길 수 있으며 사건의 해결에서 점점 더 멀어질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김어준의 발언은 여지없이 최악이다. 그는 자신이 한수 앞을 내다봤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작 지금 진정으로 걱정하고 우려해야 될 부분은 모조리 내치고 말았다.

공작의 사전적인 의미는 '일정한 목적을 위하여 미리 일을 꾸밈'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김어준은 영향력 있는 발언권을 가진 사람이다. 충실한 지지층이 있고 그래서 자주 여론을 좌지우지 하곤 한다. 그런 그가 미투 운동이 막 확산되는 시점에서 이런 발언을 했을 때, 사람들은 앞으로 이어지는 성폭력 사건 공론화를 어떻게 보게 될까. 특히나 진보 진영 내에서의 피해 사실이 드러났을 때는 말이다. 사건에 집중하고 피해자에게 공감과 지지를 보내는 것이 가능할까. 어쩌면 지금껏 반복되어 온 것처럼 사건 자체는 부차적인 것으로 밀리고 집단은 아무런 변화를 겪지 않을지도 모른다. 남자들의 걱정과 달리 혹은 미리 우려를 한 덕에 진영은 티끌의 영향도 받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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