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학수 MBC PD

한학수 MBC PDⓒ 한학수 제공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를 모토로 한 < PD수첩>이 새롭게 출발했다. 한 때 < PD수첩>은 한국의 대표적인 탐사 프로그램으로 꼽혔지만 지난 9년간 이명박근혜 정권으로부터 탄압 받으며 유명무실한 프로그램으로 전락했다.

지난해 12월 최승호 사장이 취임한 후 < PD수첩>은 지난달 9일 2005년 황우석 교수의 줄기 세포 논문 조작을 밝혀낸 한학수 PD를 MC로 내세워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 있다. 한 PD가 진행을 맡고 한 달을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 지난 22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한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 PD수첩> 진행을 맡은 지 한 달이 지났는데 어떻게 보내셨어요?
"너무 바빴어요. 파업이 끝나고 나서 < PD수첩>은 바로 방송을 시작했잖아요. 파업 기간 중 시스템이 많이 붕괴되었고, 생계 때문에 취재 스태프들도 많이 떠났어요. 시스템 자체를 복구하고 새로 정비하며 방송을 해야 해서 바쁘고 힘들었어요. 이제 비로소 정비되어가는 느낌이에요."

- MC 제안을 받았을 때 어땠어요?
"조금 피하고 싶었어요. 저는 몇 년간 취재를 못했고 제작 일선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에 야전에 뛰어들어 취재하고 싶은 목마름이 있었죠. 다만, MC를 하면서 취재에 손을 놓는 건 아니고 현장에 있는 PD들과 같이 취재도 하고 아이템을 논의하고 기획도 하기 때문에 취재를 떠난 건 아니에요. 진행은 또 다른 영역이잖아요. 취재하는 것과는 달리 복잡한 내용을 매끄럽고 쉽게 전달해야 하잖아요. 제가 다섯 번 진행하니 이제 비로소 어깨에 조금 힘이 빠진 느낌이에요.

그리고 저는 두려움이 앞섰어요. MC라는 자리는 < PD수첩> 전체를 상징하는 자리라 그 무게가 무겁거든요. 혹시 제가 실수하면 프로그램 전체에 큰 누가 되기 때문에 걱정이 있었어요. 제가 해보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에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 아무래도 < PD수첩>은 MBC의 간판 프로그램 중 하나이고 기라성 같은 PD가 MC를 했기 때문에 더 부담이 있었을 것 같은데.
"정확한 지적입니다. < PD수첩> MC로 최진용 PD, 송일준 PD, 김환균 PD, 최승호 PD 등 쟁쟁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다들 작품으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에요. 그들은 취재를 잘 했을 뿐만 아니라 진행도 자연스럽게 잘 했고 나름의 색깔이 있었죠. 그래서 부담이 되긴 했어요. 저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 첫 녹화 때는 어땠나요?
"첫 아이템은 스텔라데이지호 사건이라서요. 스튜디오 촬영하기 바로 전날 인천에 가서 엄청나게 큰 화물선 위에서 녹화했어요. 그런데 너무너무 추워서 얼어 죽을 뻔했어요(웃음). 사실 저는 코트를 입고 진행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담당 PD가 날씬하고 샤프한 이미지를 원해서 코트를 벗었더니 너무너무 추웠어요. 입이 얼어서 NG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냈어요. 신고식을 혹독하게 치른 편이지요. PD들이 한 달 넘게 열심히 취재한 것을 어떤 식으로든 제가 잘 표현해야 해요. 공들여 취재한 것을 제가 망칠 순 없잖아요. 그런 부담감도 한꺼번에 느껴지더라고요."

- 프로그램 진행은 처음이잖아요. 어떤가요?
"어려워요.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 거처럼 똑같은 말도 말하는 속도나 어떤 생각을 가지고 말하느냐에 따라서 얼굴이나 말에 다 드러나는 것 같아요. 제가 전문 진행자나 연기자는 아니기 때문에 제 생각이나 감정을 속이지 못해요. 화면에 드러나는 게 그대로 다 저예요. 그런 면에서 어렵다는 생각이에요.

첫 회는 지금 제가 봐도 잘해야겠다는 강박 때문에 말도 부자연스러웠고 연극적인 느낌이 들어요. 그렇지만 다섯 번째인 '검사와 고래고기' 편을 보면 이전에 비하면 힘도 빠지고 많이 자연스러워졌죠."

- 방송이 나간 후 어떤 반응들이 있었나요?
"MBC가 달라져 간다는 것을 반가워하는 목소리가 제일 많았어요. 물론 아직 저희가 좋은 작품을 많이 보여드리지 못했기 때문에 한계는 있지만 '< PD수첩>이 저러는 걸 보니 MBC가 달라지긴 달라졌다'는 거죠. 그리고 달라졌으니 더욱더 잘하면 좋겠다고 하세요. 시청자 중에는 '기다리겠다. 마음 급하게 먹어 실수하지 말고 원칙대로 해라'라는 분들이 의외로 많았어요. 그런 부분은 고맙죠."

ⓒ 한학수


- PD저널리즘의 강점은 뭐라고 보세요?
"저는 PD저널리즘과 기자저널리즘 또는 1인저널리즘이 본질적으로 차이 없다고 생각해요. 지난번에 시작한 <스트레이트> 첫 회 보면서 취재 잘했고 더욱더 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감동했죠. PD들은 호흡이 긴 것이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죠. MBC <뉴스데스크>나 JTBC <뉴스룸>이나 저희 < PD수첩>이나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봐요.

저희는 심화해서 장기 취재한다는 면에서 차이가 있을 거고 그런 점이 강점이죠. 저희가 매일매일 방송할 수는 없지만 심화된 뭔가를 내놓지 못하면 '한 달간 너 뭐 했어?'라고 혼나야 하는 거고 그것도 시청자들이 냉정히 판단해 주는 거죠. 단지 시청률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취재 잘됐다거나 볼만했는지 여부에 대한 시청자의 평가는 냉혹해요."

-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와 비교가 많이 되는데 어떤가요?
"<그것이 알고 싶다>가 지난 몇 년간 < PD수첩>이 제 역할을 못 했을 때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알고 싶다>는 '그런데 말입니다'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추리적인 구성과 어떤 사안에 대해 궁금증을 유발해 나가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능력, 그리고 때로는 남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건이지만 사건의 이면을 되짚어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밝혀내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저희가 우직하게 돌파해서 요즘 말로 '가즈아' 하는 스타일이라면 <그것이 알고 싶다>는 그것대로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서로 이야기하는 스타일이나 소재 면에서 차이가 있어요. 각각의 맛과 차이를 시청자들이 느껴주면 고맙죠."

- 스텔라 데이지호를 첫 방송으로 내보낸 이유는 뭔가요?
"첫 아이템이 '스텔라 데이지호', 두 번째가 '국정원과 가짜 보수', 세 번째가 '사법개혁'으로 이어지는 맥락이었는데요. 첫 번째로 스텔라 데이지호를 한 것은 세월호 때 국민의 안전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 힘을 가진 기득권 집단이 이걸 은폐하거나 이것을 방기했을 때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가에 대해서 우리가 느꼈잖아요. 그래서 국민의 안전과 그와 관련된 기득권자들의 행태를 첫 편으로 해보자는 생각이 있었죠.

또 다른 한 면으로는 독립 PD인 김영미 PD가 이영광 기자님처럼 독고다이로 뛰는 사람인데 김 PD같이 외부의 좋은 독립 PD들이 취재한 내용도 < PD수첩>이 함께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전처럼 지상파의 정규 PD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시그널을 던지는 것이고 김 PD도 흔쾌하게 했죠.

그 다음 이어지는 국정원 아이템도 국가권력이 잘못되었을 때 얼마나 시민이 고통 받는지 보여주는 거죠. 시민의 안전이라든지 국정원, 사법부의 문제 등 1, 2, 3편으로 놓고 보자면 가장 상징적으로 저희가 가야 할 길을 보여준 거로 생각해요."

- 진행하면서 어디에 주안점을 두셨어요?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친구에게 말하듯이'에요. 여러 번 말하지만, 그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그렇게 어려워요(웃음). 힘을 빼지 않으면, 슬픈 장면에서 상대방이 울 준비도 안 되어 있는데 혼자 울면서 감정 과잉 하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그러면 거리감 생기고 역효과 나잖아요. 시청자들이 보며 스스로 슬프고 분노하고 즐거워서 미소를 띠게 하는 거지 제가 먼저 오버해서 분노하거나 웃는 건 아니라는 말이죠. 이제 다섯 번 했는데, 능숙하지는 못하지만 가야 할 방향은 뚜렷해요."

ⓒ 이영광


- 몸이 근질거릴 것 같아요(웃음).
"근질거리죠. 제 옆에 제보 담당 취재 작가가 앉아 있어요. 그만큼 저와 일이 많아요. 시청자들이 보내는 제보 전체를 취재 작가님과 같이 검토해요. 물론 제보 중 낙서 같은 건 취재 작가님이 선별하지만 의미 있는 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요. 때때로 PD들과 나가서 촬영도 해요. 박원순 시장, 황운하 울산지역경찰청장, 익명의 현직 판사, 텐트 농성하는 사람들 뭐 다채롭게 인터뷰를 합니다.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취재를 해나가는 것이고 더욱더 강조점을 두는 건 제보예요. 앞으로 < PD수첩>이 오래가려면 제보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고 정말 절박한 제보를 만나야죠."

-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때 제보가 JTBC와 SBS로 몰리고 MBC에는 쓸 만한 제보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던데 지금은 어떤가요?
"저는 당장의 시청률보다 좋은 제보가 늘어나는 것에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일단 양적으로 늘었어요. 질적으로도 괜찮아졌어요. 그만큼 신뢰하는 거죠.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저희 뿌리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은 제보를 많이 해주는 데 괜찮은 제보가 있어요. 점점 늘어나겠죠. 저는 올 한 해가 지나면 한국에서 가장 제보하고 싶은 프로그램 1위는 PD수첩이 되길 바라고 그게 제 꿈이에요. 전화 02-789-1587, 메일 pdnote@mbc.co.kr 꼭 기억해주세요."

- 타사의 탐사 프로그램과 경쟁해도 이길 자신 있나요?
"선의의 경쟁을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 경쟁상대는 손석희 선배의 JTBC <뉴스룸>이나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정도겠죠. 이 두 프로그램이 갖는 강점과 약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분들도 하루아침에 그렇게 된 게 아니니까요. 저희가 섭외하고 싶은 사람을 섭외할 수 있고, 또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 PD수첩>을 먼저 찾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저희가 열심히 해서 올 연말이면 제보하고 싶은 프로 1위가 되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의 꿈입니다(웃음)."

- < PD수첩>은 MBC를 넘어 한국에서 대표하는 탐사 프로그램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위치가 아니죠.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려운 주제입니다. 이를 회복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잃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잃은 건 '야성과 신뢰'라고 생각해요. 문제가 거기 있다면 해결책도 거기 있다고 보거든요.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면 처방은 당연히 나오는 거로 생각하고요.

그걸 회복하기 위해 각 개인이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고 그런 노력도 중요하지만, 또 다른 면으로는 시스템적으로 이것이 망가지지 않도록 해야죠. 이건 MBC 전체의 문제기도 하고 < PD수첩> 문제기도 한데요. 쓰러지지 않는 새로운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가 과제죠. MBC 전체 문제는 최승호 사장이 고민할 것이고요. < PD수첩> 내에서 먼저 야성이나 신뢰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이템은 어떤 제한도 없다'는 게 가장 큰 듯해요. 누구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는 결의와 그것을 실제로 만들어 내는 게 필요하거든요.

두 번째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저널리즘 기법을 체화시켜 나가는 게 중요해요. 빅 데이터가 될 수도 있고 실증적인 증거 자료를 통해 그 속에서 뭔가 의미를 끌어내기도 하죠. 많은 사건의 밑에 있는 큰 뼈대와 구조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면 거기에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기법을 저희가 체화시키는 게 맞죠.

세 번째로 생각하는 게 반론을 정확히 들어주고 팩트체크에 끝까지 공을 들이는 게 필요하다는 거예요. 물론 이제까지 저희가 반론을 안 들어준 것은 아니지만 형식적인 반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반론의 핵심을 전달하자는 거예요. 예를 들어 국정원과 가짜 보수를 취재하는데 가짜 보수를 만나 보잖아요. 이 사람이 말하는 것에 핵심은 무엇인지, 설혹 저 사람을 비판한다 하더라도 핵심을 들어주는 게 필요해요."

-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드려요.
"< PD수첩> 팀이 이제 시스템을 갖추고 본격적으로 출발합니다. 앞으로 3월, 4월, 5월이 되면  더 좋은 아이템들이 나올 거예요. 볼만한 작품이 계속 쏟아질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만족시켜드리지는 못하겠지만, 애정을 갖고 지켜봐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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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너뷰'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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