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추월 논란'으로 도마에 올랐던 김보름이 매스스타트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김보름은 24일 오후 9시 30분 강릉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매스스타트 결승에서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에서 한국 빙상이 따낸 첫 메달이기에 값진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김보름은 마음껏 웃지 못했다. 최근 벌어진 팀추월 논란의 여파를 반영하듯, 김보름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오히려 김보름은 경기 직후 다시 한번 눈물을 펑펑 흘리는가 하면 태극기를 들고 관중석을 향해 사죄하는 듯 큰절까지 올리기도 했다. 인터뷰에서 꺼냈던 유일한 말도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것이었다. 그간의 마음고생이 녹록지않았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관중향해 큰절하는 김보름 김보름 선수가 24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태극기를 펼쳐놓은 김보름 선수가 관중들을 향해 큰절하고 있다.

▲ 관중향해 큰절하는 김보름 김보름 선수가 24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태극기를 펼쳐놓은 김보름 선수가 관중들을 향해 큰절하고 있다. ⓒ 이희훈


김보름은 지난 19일 팀추월에서 박지우-노선영과 함께 레이스를 펼쳤다. 마지막 주자의 기록을 측정하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김보름은 뒤처진 노선영을 내버려 둔 채 박지우와 함께 달려나갔고 한국은 저조한 기록으로 준준결승에서 탈락했다. 올림픽 정신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팀워크라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던 대표팀의 모습은 곧바로 많은 의혹에 휩싸였다. 경기 후 크게 낙담하여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노선영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인터뷰에서 김보름이 보여준 냉소적인 태도와 발언도 구설에 올랐다. 이는 결국 대표팀 내 '왕따 의혹'이라는 전대미문의 후폭풍을 불러왔다.

대표팀은 여론이 심각해지자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으나 정작 '피해자'로 지목된 노선영이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하며 반쪽짜리 해명이 되고 말았다. 또한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백철기 감독은 "경기 전략은 노선영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고 대표팀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노선영은 SBS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를 반박했다. 이후 왕따 논란은 선수와 감독간 '진실공방'으로 번졌고, 사실상 대표팀 내 불화와 이견이 있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증한 모양새만 되어버렸다.

최선을 다해 보지만 19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8강전에서 한국의 박지우, 김보름이 레이스를 이끌고 노선영이 그 뒤를 쫓고 있다.

▲ 최선을 다해 보지만 19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8강전에서 한국의 박지우, 김보름이 레이스를 이끌고 노선영이 그 뒤를 쫓고 있다. ⓒ 연합뉴스


이 과정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비난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바로 김보름이었다. 애초에 이번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결정적인 계기도, 경기 자체보다 김보름의 인터뷰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김보름은 기자회견에서 "노선영을 챙기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라며 자신의 경솔한 발언에 대하여 사과하고 눈물까지 흘렸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정작 함께 레이스를 펼쳤던 노선영과 박지우가 구체적인 해명 없이 침묵만을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스포트라이트가 김보름에게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 이미 왕따 논란의 '가해자'로 낙인 찍힌 김보름은 지난 며칠간 어마어마한 비판 여론에 시달려야 했다. 김보름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 청원이 수십만 개를 넘길 정도였다. 안방에서 열린 올림픽 무대에서, 자국 선수가 자국 팬들에게 엄청난 국민적 비난을 듣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팀워크 논란' 눈물 흘리는 김보름 2018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 추월 경기에서 팀워크 논란이 제기받은 한국 김보름 선수가 20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의혹에 대해 해명하던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 '팀워크 논란' 눈물 흘리는 김보름 2018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 추월 경기에서 팀워크 논란이 제기받은 한국 김보름 선수가 20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의혹에 대해 해명하던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매스스타트 은메달 획득한 김보름 김보름 선수가 24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 매스스타트 은메달 획득한 김보름 김보름 선수가 24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 이희훈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선수들은 아직 남은 대회 일정을 모두 소화해야 했다. 21일 열린 여자 팀추월 7~8위 결정전에서는 김보름-박지우-노선영이 다시 호흡을 맞췄으나 폴란드에 패해 최하위에 그쳤다. 김보름과 박지우는 사실상 이번 대회 주 종목이었던 매스스타트에 출전했다. 이미 트라우마를 안게 된 선수들이 과연 정상적으로 경기를 치를 수 있을지 우려를 자아낸 것이 사실이다.

박지우는 준결선에서 9위에 그치며 고배를 마셨지만, 김보름은 결승전까지 올랐다. 1위를 차지한 다카기 나나에게는 불과 0.12초 차로 뒤졌다. 여러 가지 논란과 악재 속에서 경기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음에도 마지막까지 선전했다고 볼 수 있는 결과였다.

하지만 은메달이라는 성과와 거듭된 사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김보름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차갑다. 지금 이 순간도 김보름도 관련된 언론 보도마다 기다렸다는 듯 수많은 악플이 쏟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주로 "메달보다 인성이 중요하다", "피해자 코스프레하지 마라"는 식의 비난이다. 또, 노선영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가 미흡하다는 것, 대표팀 내 불화설에 대한 구체적인 해명이 없었다는 것도 지적받고 있다.

굳은 표정으로 경기장 떠나는 김보름 김보름 선수가 24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뒤 굳은 표정으로 경기장을 떠나고 있다.

▲ 굳은 표정으로 경기장 떠나는 김보름 김보름 선수가 24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뒤 굳은 표정으로 경기장을 떠나고 있다. ⓒ 이희훈


한편으로 일각에서는 김보름에 대한 동정론도 조금씩 제기되고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왕따설'이나 '불화설'은 정황상 의혹은 있지만 어쨌든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진 사실은 아니다. 그런데도 대중들의 인민재판으로 김보름에게만 일방적으로 비난이 쏟아지는 상황은 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팀추월 사태를 바라보는 노선영과 백철기 감독 측의 진술이 전혀 상반된다는 점에서도 앞으로 양측 모두에게 진실 확인이 더 필요해 보인다.

물론 이런 시각에 대해서도 '물타기'나 '가해자 미화'라고 주장하며 반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아서 한동안 이런저런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번 사태를 단순히 특정 선수의 '인성' 문제로만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지는 상황은 자칫 본질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보름이나 박지우의 처신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해도, 전후사정이 제대로 밝혀지기도 전에 여론몰이로 '죄인'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은 자칫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 수 있는 위험이 있기에 신중해야 할 부분이다.

노선영을 동정하는 이들이건, 김보름을 지지하는 이들이건 어차피 공통적으로 원하는 것은 '대체 이런 사태가 벌어진 근본적인 이유'에 대한 진실이라는 점은 마찬가지다. 올림픽이 모두 끝나더라도 풀리지 않은 의혹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 부분을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는다면 이런 사태는 앞으로 다시 반복될 것이다.

경기장 떠나는 노선영, 김보름 노선영, 김보름 선수가 21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팀추월 순위결정전을 마친 뒤 경기장을 떠나고 있다.

▲ 경기장 떠나는 노선영, 김보름 노선영, 김보름 선수가 21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팀추월 순위결정전을 마친 뒤 경기장을 떠나고 있다. ⓒ 이희훈


노선영은 그간의 논란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는 올림픽이 다 끝나고 나서 이야기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노선영은 그동안 일부 매체들을 통하여 부분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혀왔으나 정작 공식 기자회견이나 경기 후 인터뷰에는 좀처럼 응하지 않으며 궁금증을 자아냈다. 올림픽이 아직 진행 중인 상황에서 다른 선수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노선영은 어떤 내용을 거론할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대표팀 내 분위기와 동료-감독과의 관계, 빙상계의 파벌 의혹 등에 대한 폭로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팀추월 준비과정에 대한 진술이 엇갈리는 백철기 감독과의 진실공방에 따라 어느 한쪽이 거짓말이 한 사실이 드러난다면 심각한 도덕적-사회적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또한 향후 노선영의 폭로 수위에 따라 그동안 대표팀과 빙상계의 어두운 관행을 드러내는 대형 시한폭탄이 될 가능성도 있다.

팀추월 사태가 남긴 상처는 개인의 아픔인 동시에 국가대표의 비극이고 한국 빙상계의 비극이기도 하다. 노선영도 김보름도 어쩌면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잘못된 구조와 룰' 위에서 이래저래 따라갈 수밖에 장기판위의 말 신세였는지도 모른다.

올림픽만을 보고 달려온 젊은 선수들이 이토록 상처를 받게 될 동안, 과연 빙상계 선배와 어른이라는 이들은 무엇을 했는지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하여 올바른 진실을 밝혀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노선영과 김보름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보여줘야 할 모습도 젊은 선수들에게 무거운 굴레를 씌우는 것보다는, 시련을 통하여 교훈을 얻으며 한 단계 성숙해지는 계기가 될수있도록 넉넉하게 품어주는 여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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