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141일 만에 고대영 전 KBS 사장이 물러나고, 고 전 사장의 잔여임기를 채울 새 사장 선임 절차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이번 KBS 사장 공모에는 총 13명이 지원했으며, 사장 임면권을 가지고 있는 KBS 이사회는 지난 20일, 1차 서류 전형을 거쳐 양승동 KBS PD, 이상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 이정옥 전 KBS 글로벌전략센터장 등 3인을 최종 후보자로 발표했다. 

이번 새 사장 선임은 촛불에서 시작된 정권 교체의 산물인 만큼, 새 사장에게는 지난 9년간 이어진 정권의 '공영방송 길들이기'를 끝내고, KBS의 개혁과 적폐 청산을 이끌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이 요구되고 있다. 그만큼 새 사장에게 거는 KBS 구성원과 국민들의 기대가 큰 상황이다.

KBS 이사회는 이 같은 국민적 관심을 반영해 이번 사장 선임 절차에 '시민자문단 평가'를 도입했다. 사장 후보자 최종 3인은 성별, 연령, 거주권역 등 인구통계학적 요인을 고려해 선정된 18세 이상 성인 150~160명 규모의 시민자문단 앞에서 KBS 경영 계획을 발표해야 한다. 시민자문단은 이들의 정책 발표를 듣고 숙의 과정을 거쳐 평가할 예정이며, 그 결과는 사장 선출에 40% 반영된다. 신고리원전 공론화위원회 방식으로, 지난 MBC 사장 공모에 도입됐던 '열린 면접'보다 더 적극적인 시민 참여형 사장 선임 절차다.

그만큼 내일(24일) 오전 11시로 예정된 정책발표회에도 관심과 기대가 모이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22일 최종 후보자 3인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 각오와 이들이 그리고 있는 큰 그림에 대해 물었다. 다만 구체적인 경영 계획이나 청사진은 정책발표회를 통해 발표될 예정인 만큼 자세히 담지 않았다. 

양승동 후보 "무거운 책임감 느낀다"

 양승동 KBS 시사교양 PD

양승동 KBS 시사교양 PD ⓒ 남소연


양승동 후보는 "이번 사장 선출은 촛불 시민들이 만들어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면서, "최종 후보 3인에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쁘다기보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141일 파업을 거치는 동안 내부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KBS를 정상화해 시민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다짐과 결의가 그 어떤 때보다 높다. 이런 다짐 속에서 사장 출마를 결정한 만큼, 잘 준비해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말했다.

양승동 후보는 1989년 KBS 시사교양국 PD로 입사해 < KBS 스페셜> <역사스페셜> <명견만리> 등 KBS의 대표 시사 교양 프로그램을 두루 연출했다. 한국PD연합회장과 KBS PD협회장, KBS 새노조의 전신인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정연주 사장 해임 반대 투쟁 당시 사내 질서를 문란하게 했다는 이유로 파면 처분을 받은 바 있으며, 재심을 통해 정직 4개월로 징계 수위가 조정됐지만 이후 2년간 비제작부서를 거친 뒤에야 현업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양 후보의 프레젠테이션은 1) 진실한 저널리즘 2) 공정한 적폐 청산 3) 창의적인 미래 전략 4) 시민의 KBS, 이렇게 네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양 후보는 "'KBS를 시민의 품으로'를 모토로 지난 10년 권력의 손에 놀아났던 KBS를 시민의 품으로 돌려놓겠다는 데 초점을 맞춰 경영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면서, "바닥으로 추락한 공영방송 KBS의 신뢰도를 어떻게 회복할지, 촛불 혁명 이후 사회 전반에 퍼진 적폐 청산 요구를 어떻게 KBS에서도 이어갈지에 대한 계획을 전했다. 그리고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안에서 KBS가 준비해야 할 구체적인 미래 전략에 대해서도 발표할 예정이다. 양승동 후보가 발표할 미래 전략 속에는 '지역 KBS 활성화 방안'도 마련될 계획이다. 또, 시민들이 KBS의 주인임을 느낄 수 있도록 방송국 경영을 투명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KBS 이사회가 이번에 도입한 '시민 자문단 제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양 후보는 "사실 (후보로서) 쉬운 일도 아니고 떨리기도 하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시민 자문단 여러분에게 다가갈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요 "KBS 수신료 2500원의 철학, 잊지 않겠다" 

 이상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

이상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 ⓒ 미디어오늘 제공


이상요 후보는 "시민 자문단 평가가 도입되는 이번 사장 선임은 그간 구호로만 외치던 '국민의 방송 KBS'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를 되새기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면서, "어떤 방식으로 KBS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드릴지, 시민들 앞에서 직접 설명하고 약속드릴 기회가 주어져 기쁘다"고 말했다.   

이상요 후보는 1985년 KBS 시사교양국 PD로 입사했으며, < KBS 스페셜> <역사스페셜> <추억 60분> 등을 연출했다. 대표작으로는 2008년 한국방송대상을 받은 <인사이트 아시아-차마고도>가 있다. 이 후보는 이명박 정부 시절 작성돼 지난해 공개된 국정원 방송장악문건에, '정연주 추종 인물'로 분류되어 '무관용 원칙으로 축출해야 한다'고 지목되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퇴직 전까지 무보직 상태로 한직에 머물렀다. 퇴직 이후에는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 교수로 재직하며 기자·PD 양성에 힘써왔다.

이상요 후보는 '신뢰 구축, KBS 재창조'를 모토로 정책발표를 준비 중이다. 이 후보는 "KBS가 다시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공정한 뉴스, 유익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법밖에 없다"면서 "심플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가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수신료 2500원의 의미와 철학'이다. KBS는 소득, 지역, 성별, 계층, 정치성향 등과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수신료 2500원을 받는다. 이 후보는 "이건 KBS가 특정 세력에 편향되지 말고, 모든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난 기간 KBS는 다수 국민의 뜻을 배제하고, 기득권을 가진 소수 세력과 지나치게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신료 2500원의 철학을 무시한 채 부끄러움도 없이 권력에 봉사한 지난 시간을 반성하고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KBS 사장은 온갖 청탁과 압박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자리"라고 말했다. 때문에 "어떤 세력이든 사장 한 사람 구워삶아 KBS의 정책 방향을 흔들 수 없도록, 사장의 독단적 결정을 최대한 지양하고 사내에 건전한 토론과 비판, 견제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취재/제작/편성 등 주요 국장 임명동의제, 월 1회 평사원회의 도입, 그간 유명무실화되었던 미디어 비평 기능 강화 등을 고려하고 있으며, "사장으로 뽑힌다면 노조 등 사내 협의체들과 협의해 더 나은 방법이 있는지 함께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이정옥 후보 "난 KBS에 30년 근무한 사람" 

 이정옥 전 KBS 글로벌센터장.

이정옥 전 KBS 글로벌센터장. ⓒ KBS


이정옥 후보는 KBS 사장 최종 3인 후보에 속한 것에 대해 '사명감'과 '부채감'을 이야기했다. 이 후보는 "나는 KBS에서 30여 년을 근무했기에 공영방송이 잘 됐으면 좋겠다"면서 "국민들을 위해 KBS가 그 역할을 다 하고 사회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사명감 내지는 부채감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 후보는 KBS 사장 공모에 지원한 13명 중 유일한 여성이다. 1979년 TBC 보도국에 입사했으나 이듬해 언론통폐합에 따라 KBS 기자가 됐다. 이후 문화부, 경제부, 파리특파원, KBS 글로벌센터장 등을 거쳤다.

이정옥 후보는 "KBS가 다섯 달 가까이 파업을 하면서 그 여파로 인해 조직이 아직 안정되지 않았다"면서 "파업 이후 조직 구성원들의 의견을 경청하며 조직의 갈등을 치유하는 것이 먼저라고 본다"고 나름의 생각을 전했다. 이 후보는 "현재 KBS만이 아니라 지상파들의 경쟁력이 많이 약화돼있다"는 문제를 지적했고 뒤이어 "매체 융합 시대에 대응해 여러 가지 콘텐츠나 플랫폼에 맞는 정책을 펴겠다"고 밝혔다. 또 사회적 약자와 소외 계층을 보호하고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이슈를 끌어내겠다고 공언했다.

이정옥 후보는 마지막으로 "공영방송의 공정성 문제는 수십 년 동안 사회적으로도 논란이 됐고 이 때문에 사내 갈등도 많았다"면서 "공정성에 초점을 맞추고 사내 구성원 사이에서 합의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단순한 진영 논리에 빠지지 않고 진영 논리를 뛰어넘는 공정성을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면서 시민 자문단 정책 발표회 역시 이러한 시각 아래 준비하고 있다고 알렸다.

한편 KBS 새 사장은 24일 서울 여의도 KBS 공개홀에서 열리는 시민자문단 평가와 26일 KBS 이사회 면접을 거친 뒤 이사들의 표결을 통해 최종 확정된다. 이후 이사회가 후보자를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하면 국회 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최종 임명한다.

신임 KBS 사장의 임기는 지난 1월 22일 해임된 고대영 전 사장의 잔여 임기인 오는 11월 23일까지다.

KBS 사장 공모 양승동 이상요 이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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