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틀 포레스트> 포스터.

영화 <리틀 포레스트> 포스터. ⓒ 메가박스 플러스엠


취업난과 방향성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많았지만 같은 소재를 이렇게 푼 영화는 드물었다. 한국영화에서 흔했던 신파 역시 없다시피 하다. 등장인물들은 자연에서 나고 자란 각종 식물로 요리해먹다가 대화하고 가끔 다투고 화해한다. 영화는 그러다 잔잔하게 마무리 된다.

임순례 감독의 신작 <리틀 포레스트>는 그만큼 신선하게 다가온다. 원작이 된 동명의 일본 영화가 한국의 농촌과 만나 새롭게 태어났는데 우리 정서에 맞게 꾹꾹 눌러쓴 대사가 이 작품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배가 고팠던 이 청춘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 메가박스 플러스엠


서울에서 타지 생활을 하는 20대 청년 혜원(김태리)은 자신에게 닥친 현실의 벽에서 좌절을 거듭한다. 몸과 마음이 지친 그가 잠시 머물겠다는 생각으로 고향을 찾고 그곳에서 유년시절 친구들과 재회하며 벌어지는 아기자기 한 사건들이 영화의 중심 내용이다.

방향성을 잃은 혜원에게 고향에 온 까닭을 묻는 친구들은 저마다 중심이 있다. 이미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아버지를 따라 귀농한 재하(류준열)는 농사에 대한 각별한 마음이, 동네 은행에서 일하는 은숙(진기주)은 반대로 서울로 가고자 한다. 이런 친구들에게 혜원이 밝힌 이유는 "배가 고파서"다. 그래서 그는 기를 쓰고 삼시세끼 본인이 직접 여러 요리를 해먹는다.

배가 고프다는 말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문자 그대로 서울 자취 생활에서 제대로 된 밥을 해먹지 못한 허기를 달래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동시에 심리적으로 고갈된 허기를 채우려는 뜻 또한 있다. 몸과 마음 모두를 채울 무언가가 혜원에게 필요했던 것이다.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문소리)에 대한 기억이 살아나는 순간은 혜원이 요리할 때다. 병이 든 남편을 따라 남편의 고향에 정착한 혜원의 엄마는 딸을 홀로 키우며 자신이 깨달은 삶에 대해 때론 친구처럼 때론 친한 언니처럼 하나씩 알려준다. 특히 요리할 때 그 감성은 강해진다. 재료를 다룰 때 음식을 담을 때 혹은 농작물을 수확할 때 조곤조곤 설명하는 엄마는 혜원에겐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리틀 포레스트>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영화에서 대사의 양은 많지 않다. 있는 대사마저도 친구들과 농담 따먹기를 한다든지 요리에 얽힌 자신의 기억을 소화하는 식이다. 대신 혜원과 친구들의 내레이션이 여백을 채우고 있다. 짧지만 간결한 문장으로 처리된 내레이션엔 삶의 정수가 꾹꾹 눌러 담겨있다. 예를 들면 고향에 돌아온 혜원을 반기면서도 은근하게 집나간 엄마를 타박하는 고모를 향해 '역시 고모는 고모다'라고 생각하는 혜원의 모습, 막걸리를 빚으며 '누룩은 어른의 맛을 낸다. 여기의 최고 안주는 알싸한 추위, 그리고 막걸리를 나눠 마실 사람' 등이다.

그간 여러 영화가 힐링을 외쳤지만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리틀 포레스트>를 접하는 관객들은 그 단어를 마음으로 느끼고 언급할 것이다. 감상을 방해하는 과한 음악이나 장면들이 이 영화엔 없기에 개성 강한 오락물에 익숙한 관객에겐 심심할 수는 있다. 분명한 건 그 심심함이 결코 우리 심신에 나쁘지 않다는 사실. 조미료 빠진 이야기와 인물에 심취하다 보면 어느새 삶의 방향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한 줄 평 : 관객들도 이런 영화에 배가 고팠다
평점 : ★★★★(4/5)

영화 <리틀 포레스트> 관련 정보

원작 : 이가라시 다이스케 <리틀 포레스트>
연출 : 임순례
출연 : 김태리, 류준열, 진기주, 문소리
제작 : 영화사 수박
제공 및 배급 : 메가박스 플러스엠
크랭크인 : 2017년 1월 21일
크랭크업 : 2017년 10월 24일
러닝타임 : 103분
개봉 : 2018년 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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