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까칠하게 공연을 보고, 이야기 합니다. 때로 신랄하게 '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잘 만든 작품에게는 누구보다 따뜻하지 않을까요? 따뜻하게 대할 수 있는 작품들이 더 많이 올라오길 바라봅니다. [편집자말]
 지난 2017년 11월 28일에 개막하여 오는 5월 7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공연 사진. 동명 영화로도 유명한 이 작품은 탄광촌 소년 빌리가 발레리노를 꿈꾸며 겪는 이야기를 다뤘다. 빌리의 정체성과 꿈을 한 축으로 삼고, 탄광촌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과 갈등을 통해 노동의 가치를 역설하는 게 또 다른 축이다.

지난 2017년 11월 28일에 개막하여 오는 5월 7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공연 사진. 동명 영화로도 유명한 이 작품은 탄광촌 소년 빌리가 발레리노를 꿈꾸며 겪는 이야기를 다뤘다. 빌리의 정체성과 꿈을 한 축으로 삼고, 탄광촌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과 갈등을 통해 노동의 가치를 역설하는 게 또 다른 축이다.ⓒ 신시컴퍼니


*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 돼 있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가 7년이라는 시간을 거치고 다시 돌아왔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가 재공연한다는 소식에 연극 뮤지컬 팬덤은 환호를 보냈고 캐스팅은 긴 오디션을 통해 진행됐다. 그리고 또 길었던 연습기간 끝에 이 작품은 2017년 겨울, 서울 신도림 디큐브 아트센터에서 첫 공연을 올렸다. 작품에 대한 명성과 오랜 기다림 때문일까.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임에도 공연장은 객석을 꽉 채운 관객들로 북적였다.

렇다면 왜 그토록 많은 팬들은 <빌리 엘리어트>를 기다렸을까? 어떻게 이 작품은 그토록 커다란 명성을 얻을 수 있었을까? 단순히 동명의 영화가 있다는 것으로는 이 질문들이 해결되지는 않을 터. 필자는 이 뮤지컬의 인기요인에 대해 작품성에 근거해 풀어보고자 한다.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성장 서사

 지난 2017년 11월 28일에 개막하여 오는 5월 7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공연 사진. 동명 영화로도 유명한 이 작품은 탄광촌 소년 빌리가 발레리노를 꿈꾸며 겪는 이야기를 다뤘다. 빌리의 정체성과 꿈을 한 축으로 삼고, 탄광촌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과 갈등을 통해 노동의 가치를 역설하는 게 또 다른 축이다.

지난 2017년 11월 28일에 개막하여 오는 5월 7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공연 사진.ⓒ 신시컴퍼니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곧 빌리 엘리어트라는 소년의 자아에 대한 이야기다. 자아를 찾아가는 여행이라는 흔한 주제의 서사를 차용했지만 멋지게 보여준다. 빌리는 처음부터 춤을 추지 않았다. 빌리는 "춤은 '계집애들'이나 '게이'가 추는 것"이라는 어른들의 말에 흥미도 없는 복싱을 배워야 했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윌킨스 선생님의 수업에 참여하게 된 빌리는 점점 춤에 눈을 뜬다.

춤에 눈을 뜨는 것은 자신의 억눌렸던 욕망과 능력을 실현하는 일이었다. 이는 빌리로 하여금 커다란 욕망이나 능력뿐 아니라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에 충실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된다. 빌리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춤으로 표출한다. 1막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앵그리 댄스'가 바로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자아를 향해 나아가던 빌리는 단순히 자아를 찾았을뿐만 아니라 왕립 발레학교에 합격하는 기쁨도 누린다. 이는 한 개인의 성공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극중 첫 넘버에서부터 '별'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별은 실로 많은 의미를 담는 메타포다. 바라볼 수 있는 지향점의 맥락에서 쓰일 수도 있고, 밤을 밝히고 어둠을 조금이나마 극복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희망적으로 쓰일 수도 있다. 마을 사람들은 빌리가 마을 밖으로 나가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빛나기를 원한다. 이 점에서 극의 처음에 제시되는 별이 빌리였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텍스트 전체의 완결성이 더해지는 경우다.

자아와 결코 분리되지 않는 사회

 지난 2017년 11월 28일에 개막하여 오는 5월 7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공연 사진. 동명 영화로도 유명한 이 작품은 탄광촌 소년 빌리가 발레리노를 꿈꾸며 겪는 이야기를 다뤘다. 빌리의 정체성과 꿈을 한 축으로 삼고, 탄광촌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과 갈등을 통해 노동의 가치를 역설하는 게 또 다른 축이다.

지난 2017년 11월 28일에 개막하여 오는 5월 7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공연 사진.ⓒ 신시컴퍼니


자칫하면 <빌리 엘리어트>는 자아만을 중시하고 사회적인 부분은 외면하는, 탈정치화 서사가 될 수도 있었다. 탄광 노동자들의 파업 속에서 그들이 분열하고 부정적으로 변해가는 모습들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빌리 엘리어트>가 보여주는 것은 더 나은 정치화를 위한 일종의 성장이다.

<빌리 엘리어트>의 노동자들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결국 '진보, 운동, 혁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한다. 결국 정치는 사람들이 더 잘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파업이 지속되며 탄광 노동조합원들은 지쳤지만 빌리를 돕기로 한다. 빌리의 아버지가 빌리를 위해 변절하고, 그 변절한 아버지에게 분노하다가도 다시 그를 돕기로 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다소 동화적인 전개라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때론 그런 동화적인 일들이 현실에도 일어나지 않나.

노동조합으로부터 '배신자'라고 그토록 비난 받았던 사람이, 빌리에게 수많은 돈을 주며 빌리의 미래를 돕는 장면은 '연대'와 연결된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빌리를 응원한다는 점에서, 실패한 파업이 마냥 좌절스럽게 다가오지 않는 효과를 낳기도 했다. 한편으론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이야기한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빌리 엘리어트>는 노동 문제 소재를 부담스럽지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희망적이거나 허술하게 그리지도 않는 방법을 택했다. <빌리 엘리어트>는 그 점에서 미감적인 완성도가 높았다. 아름답게 또 재미있게 다가오는 정치적 서사는 이야기를 접하는 동안의 관객들이 자연스레 정치화 되는 시간을 마련했다.

그 속에서 어린 나이지만 스스로 동성애자라고 '정체화' 하는 마이클이 등장하는 것 또한 흥미롭다. 영화 <런던 프라이드>에서 볼 수 있었듯, 실제 영국 역사에서 노동자들의 파업과 퀴어 운동은 함께 발맞췄다. 어쩌면 미래의 마이클은 그 연대의 시발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춤추며 자유를 찾는 인물들, 그리고 젠더 의식

 지난 2017년 11월 28일에 개막하여 오는 5월 7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공연 사진. 동명 영화로도 유명한 이 작품은 탄광촌 소년 빌리가 발레리노를 꿈꾸며 겪는 이야기를 다뤘다. 빌리의 정체성과 꿈을 한 축으로 삼고, 탄광촌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과 갈등을 통해 노동의 가치를 역설하는 게 또 다른 축이다.

지난 2017년 11월 28일에 개막하여 오는 5월 7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공연 사진.ⓒ 신시컴퍼니


몸이나 감정, 욕망 등은 여성성과 맞닿아 서구 이성주의 사회에서 천시되어 왔던 영역이었다. <빌리 엘리어트>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히 춤을 통해 자유를 찾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외면 당하고 천시 당했던 것을 객석을 채운 수많은 관객들에게 꺼내 보여주는 일이다.

<빌리 엘리어트>에서 또한 인상 깊은 것은 마지막 장면이다. "모두 댄서가 될 수는 없다"는 대사와 달리 마을 사람들은 모두 춤을 춘다. 극 중에서 춤이 상징하는 것은 개인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일이다. 이는 다분히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결말이라 할 수 있다. 만약 극중 대사처럼, 빌리가 다시 마을에 돌아왔을 때 탄광이 폐광됐다 하더라도 말이다. 적어도 관객들은 '탄광이 설령 폐지가 됐더라도, 그들에게 어떤 더 나은 해결책이 주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희망을 안게 된다.

극중 명확히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는 투쟁, 혁명 같은 거대한 서사에서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들은 어떻게 터부시 되어 왔는지 알고 있다. 이는 다시금 몸과 감정, 욕망 등을 타자화 하는 주된 과정이 되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이 주로 탄광 노동자였다는 점에서 이는 곧 타자들이 자신의 어떤 부분을 또 다시 바깥으로 내몰고, 스스로 억압했던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랬던 사람들이 웃으며 춤을 추는 것, 이는 자아를 긍정하는 것 이상의 어떤 의의를 가진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중요한 점은 그들이 그토록 부정하던, 남성적이지 못한 것의 상징이던 댄스복을 입었다는 점이다. <빌리 엘리어트>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춤은 게이나 추는 것"이라는 등의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이때 '게이'는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동성애에 대한 혐오 표현 그 이상인 것으로 보인다. 극의 맥락에서, 이는 남성성이 부재한 남성을 비하하는 단어로 사용됐다. 그런 이들이 춤을 추는 빌리를 억압하지 않고, 더 나아가 스스로 빌리조차 초반에는 입기를 거부했던 발레복(주체가 되지 못한 존재, '남성성'이 드러나지 않은 존재의 상징)을 입는다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 자신을 가두던 '맨 박스'를 허무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다. 이 때 춤을 추는 이들은 행복해 보이고 자유로워 보인다.

<빌리 엘리어트>에서 '남성성'과 '마초성'은 부정된다. 노동조합의 파업을 담아내지만 그들의 마초적인 문화는 부정하는 이유다. 그들이 마초성을 덜어낼 때 빌리와 인물들은 행복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빌리 엘리어트>의 젠더 의식은 여성 관객들의 관극을 더욱 만족스럽게 이끈다. 가부장제에 대한 문제 의식이 없는 뮤지컬보다는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성을 부정적으로 보고 비판을 제기하는 뮤지컬에 더욱 애정이 간다. 또한 성장 서사에 자신을 이입하여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그러하다. 빌리는 남성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남성성을 표출하지 않는 인물이다. 빌리는 그냥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한다. 남성성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의 고뇌나 성장보다는, 빌리와 같은 인물이 훨씬 몰입하기 수월하지 않을까.

<빌리 엘리어트>의 여성 인물들

 지난 2017년 11월 28일에 개막하여 오는 5월 7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공연 사진. 동명 영화로도 유명한 이 작품은 탄광촌 소년 빌리가 발레리노를 꿈꾸며 겪는 이야기를 다뤘다. 빌리의 정체성과 꿈을 한 축으로 삼고, 탄광촌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과 갈등을 통해 노동의 가치를 역설하는 게 또 다른 축이다.

지난 2017년 11월 28일에 개막하여 오는 5월 7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공연 사진.ⓒ 신시컴퍼니


엄밀히 말했을 때 <빌리 엘리어트>는 그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빌리 엘리어트라는 영국의 한 소년이 보여주는 성장기다. 그렇기에 이야기는 모두 빌리를 향한다. 하지만 그 서사에서 여성 인물들은 분명히 어떤 위치에 각자 서 있다. 빌리가 지속적으로 그리워하는, 세상을 떠난 어머니도 춤을 통해 자유를 얘기해준 할머니도 그리고 가장 커다란 빌리의 조력자인 윌킨스 선생님도 말이다.

<빌리 엘리어트>는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데다 '젠더 감수성'까지 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리 엘리어트>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여태까지 남자들이 남성의 영역에서 금지된 것을 욕망하고, 그것을 실현하며 자아를 확장시키는 서사들은 많았다.

그렇기에 관객으로서 윌킨스 선생님의 딸이자, 빌리를 좋아하기도 했던 데비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었다. 그 어린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은 거다. <빌리 엘리어트> 내부에서가 아니더라도, 실제로 존재할 법한 어린 여자 아이의 이야기도 나왔으면 하는 것. 자아를 확립해나가고 사회적인 이야기를 하는 여성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은 현대 여성 관객의 당연한 욕망이지 않을까. 게다가 이렇게 잘 만들어진 뮤지컬을 보고 난 다음이면, 더더욱.

 지난 2017년 11월 28일에 개막하여 오는 5월 7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공연 사진. 동명 영화로도 유명한 이 작품은 탄광촌 소년 빌리가 발레리노를 꿈꾸며 겪는 이야기를 다뤘다. 빌리의 정체성과 꿈을 한 축으로 삼고, 탄광촌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과 갈등을 통해 노동의 가치를 역설하는 게 또 다른 축이다.

지난 2017년 11월 28일에 개막하여 오는 5월 7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공연 사진.ⓒ 신시컴퍼니


<빌리 엘리어트>에서 드러나는 남성중심주의는 한국 사회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에 대한 반감을 표할 때, 그들은 마가렛 대처가 '여성'이라는 점을 짚는다. 이는 여성을 대하는 아주 오래된 방식이었다. 그러나 <빌리 엘리어트>의 인물들은 빌리와 연대하면서 변화한다. 그들의 변화를 오늘날의 한국에서도 바라게 된다. 그 변화에 대한 갈망이 남성 중심의 사회 구조의 변화는 물론이고 남성 인물 중심의 서사 구조의 변화로도 이어지는 것, 이는 어찌보면 여성 관객으로의 당연한 욕망 아닐까.

<빌리 엘리어트>는 그야 말로 기적과 같은 변화의 서사다. 빌리라는 남성성으로 가득한 탄광촌에서, 자신을 가두던 맨박스에서 벗어나 춤을 추는 것도, 그런 인물을 통하여 탄광촌이 변하는 것도 말이다. 기적은 서사 밖에서도 이뤄졌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다시 못 돌아올 것 같던 이 뮤지컬이 재공연 됐다는 것 말이다. 이중 삼중의 기적과 같은 변화를 보며, 관객들은 또 다른 변화를 꿈꾸게 되지 않을까. 자신의 삶의 변화. 이는 곧 자신의 삶을 억압하는 많은 것들의 변화로, 세상의 변화기도 하다. 이젠 서사 밖으로, 극장 밖으로 그 변화가 와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빌리 엘리어트가 자유를 외치며 춤췄던 것처럼, 관객들도 '자유'를 외칠 날이 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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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까칠하게 공연을 보고, 이야기 합니다. 때로 신랄하게 '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잘 만든 작품에게는 누구보다 따뜻하지 않을까요? / 해외 관극도 함께하며, 잘 만든 서사를 기다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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