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월화 드라마 <크로스>는 후천적 '서번트 증후군'으로 인해 초인적인 시력을 갖게 된 의사 강인규(고경표 분)가 아버지를 살해한 김형범(허성태 분) 및 장기밀매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나선다는 내용이다. 강인규의 목적은 범인들을 직접 응징함으로써 개인적인 복수를 완성하는 데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이 과정에서 사법기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한계까지 스스로 만들게 됐다.

현재 8회까지 방영된 이 드라마는, 주인공 강인규가 장기밀매조직 일원들을 하나하나 찾아내고 마침내 원흉에 해당하는 핵심인물의 존재를 인지하게 된 과정, 강인규의 정체를 알아차린 살인범 김형범이 탈옥에 성공하고 반격에 나서기까지의 이야기 등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여기에 복수에 눈이 먼 강인규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쓰는 그의 양아버지이자 종합병원 장기이식센터장인 고정훈(조재현 분)과, 그 종합병원의 영리를 극대화하기 위해 탈법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이사장(장광 분)의 사연 등이 더해지면서 자칫 뻔한 복수극으로 치달을 수도 있었던 이야기 구조가 풍성해질 수 있었다.

긴장감 만들어냈던 교도소 내 의료시설의 존재

 tvN 월화 드라마 ‘크로스’

ⓒ tvN


지난 1월 29일 방송을 시작한 <크로스>는 방영 초기, 이야기의 주요 배경 중 하나가 교도소 내부 의료시설이라는 점 때문에 큰 화제를 모았다. 주인공 강인규가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을 죽이기 위해 그곳으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7회에서 문제의 범인이 탈옥했고 강인규 역시 사직서를 냈기 때문에, 앞으로는 그곳이 더 이상 이 드라마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지는 않을 듯하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교도소 내부 의료시설과 관련하여 어떤 이야기를 남겼을까?

지금까지 이 공간적 배경은 강인규와 김형범이 직접 부딪치며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장소였다. 또 사람을 죽이기 위해 의사가 됐다는 강인규의 악한 의지가 뜻하지 않게 한 무기수(유순웅 분)의 부정(父情)을 경험하게 되면서 애초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착한 의사가 되고 싶다던 그의 선한 의지와 만나 내적 갈등을 일으키게 되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또한 재소자의 외래병원 이송 절차에 대한 언급이나 외래병원에 이송된 재소자는 그곳에서도 교도소 내부 규정을 준수해야 하므로 면회가 제한된다는 상황 설명 등을 통해 해당 소재에 대한 시청자의 호기심을 일부분 충족시켜주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교도소 의무과장(유승목 분)의 근무 태도였다. 그는 무사안일주의를 신조로 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내내 의사라기보다는 복지부동하는 공무원의 전형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앞서 언급한 무기수의 딸이 응급 간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그가 보여준 부적절한 행동은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만한 일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그는 해당 무기수가 자신의 간 일부를 딸에게 주도록 돕는 일이 자신의 소관 업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교도소 의무관은 어디까지나 재소자를 상대로 의료 행위를 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다.

사실 이건 법 규정으로 따진다면 아마도 크게 문제가 없는 발언일 것이다. 하지만 의사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도리를 따진다면 비난받아 마땅한 태도다. 비록 드라마에서는 약점을 잡힌 그가 결국 자신의 고집을 꺾었지만, 시청자 입장에서 볼 때는 그런 중요한 결정이 한 사람의 융통성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 자체가 부적절해 보였다. 여기서 지난날 각종 뉴스를 통해 간간이 제기됐던 교도소 의료 과실 논란 사례들을 몇 가지 돌아보면 어떨까?

현실의 교도소 과실사례 돌아보게 만든, 교도소 의무관

 tvN 월화 드라마 ‘크로스’. 극중 의무과장 역을 맡은 배우 유승목의 모습이다.

<크로스>의 의무과장(유승목)은 의사라기보다는 복지부동하는 공무원의 전형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줬다. ⓒ tvN


2016년에는 한 장애인이 교도소 당국에 적절한 치료를 요구했지만 거부당해서 욕창이 심해졌다고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했고(2016년 9월 8일 <연합뉴스> "교도소서 건강권 침해당해" 지체장애인 국가배상청구), 지난 1월 한 청소년이 소년원 의료진의 안일한 대응 때문에 대장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돼 위중해졌다는 보도(2018년 1월 15일 < YTN > "40kg 가까이 빠졌는데 변비..." 소년원, 대장암 10대 방치 논란)도 있었다. 그리고 유난히 더웠던 2016년 여름에는 지병이 있던 재소자들이 징벌방에 갇혔다가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2017년 11월 23일 <부산일보> "부산교도소 재소자 사망 교도소 책임").

앞의 두 주장이 가리키는 쟁점은 재소자의 요구가 무시 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가지 사례 모두 의무관이나 교도소 당국의 융통성이 결과적으로 나쁘게 작용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런 점 때문에 필자는 앞에서 언급한 드라마 속 의무과장의 부적절한 태도 그리고 해당 문제의 결정 과정에서 그에게 집중돼 있던 권한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넘기기가 힘들었다.

물론 이건 본 드라마와 무관한 문제다. 이 드라마에 그런 내용에 대한 일정한 태도나 언급까지 요구한다면 그것 자체로 무리수일 뿐 아니라 아마도 이야기가 산으로 갈 공산이 크지 않을까? 다만 앞으로 교도소 내부 의료시설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 등이 다시 나오게 된다면, <크로스>가 다루었던 관련 이야기보다 한 발 더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어쨌든 <크로스>는 앞으로 강인규의 복수극이 절정으로 치닫는 과정을 주로 보여주게 될 것이다. 그 속에서 의료행위를 무분별한 영리 추구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이사장의 행보와 김형범으로 대표되는 장기밀매조직의 악행, 이 두 사안에 대한 본 드라마의 태도가 보다 극명하게 드러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두 가지를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면 여러 모로 흥미로운 관점이 형성될 수도 있을 듯하다. 필자가 기대하고 있는 감상 포인트이기도 하다.

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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