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는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셰이프 오브 워터>가 그렇다. 잔혹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시선을 빼앗는 괴이한 로맨스는 그 어떤 사랑 영화보다 강렬하다. 잔혹하나 가볍지 않고, 진부하나 진정어린 두 존재의 사랑은 '트럼프의 시대'라고 불리우는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오늘날에 제 목소리를 내는 강단 있고 아름다운 영화다.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포스터 국내 메인포스터

▲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포스터 국내 메인포스터 ⓒ 20세기폭스


미국이 기술로 소련과의 대리전쟁을 치르는 중인 냉전의 시대, 1960년대에 항공우주연구센터에서 일하는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우연히 잡혀온 괴생명체를 마주한다. 강하게 이끌린 두 존재는 사랑에 빠지지만, 보안책임자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는 신비한 생명체를 과학기술의 발전과 자신의 성과를 내기 위해 해부하려 한다. 엘라이자는 동료인 젤다(옥타비아스펜서)와 이웃 자일스(리차드 젠킨스)와 함께 생명체를 우주항공센터에서 탈환하고자 한다.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은 영화사에 흔적을 남긴 괴물들의 특징을 다양하게 차용한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고전영화 <검은 산호초의 괴물>과 자신이 연출했던 헬보이 시리즈의 캐릭터 에이브 사피엔의 외피까지 가져와 새로운 괴생명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킹콩>과 <미녀와 야수>의 서사를 가져와서 살짝 비틀기까지 했다.

'영화는 독창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훌륭하게 조합하는 것'이라는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영화의 역사에서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을 한 데 모아 사랑하고 동경하는 마음으로 빚어낸 작품이다.

소수자 차별을 '색다른 시선'으로 다루는 작품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 스틸컷 주인공 엘라이자와 괴생명체의 만남

▲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 스틸컷 주인공 엘라이자와 괴생명체의 만남 ⓒ 20세기폭스코리아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 미국이다. 당시 헐리우드에서는 뮤지컬 장르를 필두로 아름답고 낭만적인 영화들이 쏟아진 1950년대 이후, TV라는 새로운 매체에 습격을 당했다.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은 1950년대에 만들어진 낭만적인 영화의 주요 씬들을 그대로 21세기의 필름에 옮겨 놓는다. 재즈음악과 뮤지컬의 아름다운 씬들이 등장하지만, 주인공 엘라이자가 살고 있는 건물 1층에 있는 극장은 손님이 끊겼다. 사람들은 TV 앞에 몰려 있다. 흥미로운 점은 1960년대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영화들을 동경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낭만이 가득했던 1950년대 영화에 대한 사랑 고백이자, 잠시 주춤했던 영화산업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그러나 낭만을 그리워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은 영화적 배경이 되는 1960년대의 상황을 외면하지 않는다. 당시엔 우주개발 이슈로 소련과 미국이 과학기술을 이용한 냉전을 치르고 있었다. 성과주의를 위시하는 시대이니 타인의 공감과 배려, 권리에 대한 관심이 있을리 만무하다.

이 영화는 1950년대 영화에 대한 오마주이자 1960년대에 팽배해 있던 성과주의와 소수자 차별을 소거하고자 하는 염원이 담긴 영화다. 주인공인 엘라이자는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장애 여성이고, 그의 친구 젤다는 흑인 여성이다. 그의 이웃인 자일스는 노인이자 동성애자다. 하물며 영화의 등장하는 괴생명체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엄연히 인간사회에서 그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하나의 크리처일 뿐이다. 소수자들이 연대하여 당시의 시대상을 상징하는 인물 스트릭랜드와 대립하는 구도를 통해, 이 영화는 당시의 시대적 암울함을 지워내려는 마음을 힘껏 뿜어낸다.

괴생물체를 사랑하는 엘라이자, <미녀와 야수> 서사 잘 비틀었다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 스틸컷 주인공 엘라이자와 그의 직장동료 젤다

▲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 스틸컷 주인공 엘라이자와 그의 직장동료 젤다 ⓒ 20세기폭스코리아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은 캐릭터 영화로서도 제 매력을 뽐낸다. 엘라이자는 당시의 여성상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하다. 세상에 존재하긴 하지만 제 목소리를 낼 수 없고, 과학기술의 선두에 있는 우주항공개발센터에서 일하지만 그 분야와 연관 없는 청소부다. 그러나 이 캐릭터는 그런 시대적 현실을 그대로 표현하는 걸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 주체적인 여성캐릭터로서도 역할을 해낸다. 그 누구보다 타인에게 관심을 쏟으며, 자신과 다른 존재를 편견 없이 바라보기까지 한다.

그와 정면으로 대치하는 캐릭터는 마이클 섀넌이 연기하는 스트릭랜드다. 그 당시 미국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상징 그 자체로 보이기도 하는데, 스트릭랜드는 성차별적인 태도를 지닌 남성캐릭터로서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심는다. 부인과 성관계를 하면서 부인의 입을 틀어막는 장면이라든지, 흑인 여성인 젤다를 앞에 세워놓고 '너보다는 내가 하나님의 형상과 닮았다'는 장면은 그 당시에 팽배했던 '백인 남성 우월주의'를 상징한다. 현재의 위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빠른 성과 내기에 급급한, 미국 사회를 그려낸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엘라이자라는 캐릭터를 통해, 이 영화는 여성영화로서도 제 몫을 해낸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영화와 다른 매체에서 표현되는 여성은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지 못하고 늘상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존재로서 묘사됐다. 하지만 엘라이자는 다르다. 그 누구보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며 숨기지 않는다. 자위행위를 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를 향한 마음에 주저하지 않고 행동한다.

엘라이자는 사랑의 주체로서 굳건히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사랑에 빠진 대상이 물 속에서만 살 수 있는 생명체라고 해서 그에 대한 편견을 가지지 않고, 그의 본질을 볼 줄 아는 시선 또한 가진 채로 말이다. <미녀와 야수>의 서사를 마지막에 와서 비틀어 놓은 구성이 이 캐릭터를 더욱 빛나게 한다.

'사랑'으로 귀결되는 영화, '혐오 만연한 시대'에 만날 수 있어 다행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 스틸컷 두 캐릭터의 대립은 시대상을 반영하면서도 이상적인 여성상을 보인다.

▲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 스틸컷 두 캐릭터의 대립은 시대상을 반영하면서도 이상적인 여성상을 보인다. ⓒ 20세기폭스코리아


'낭만', '동경', '소거'라는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겠지만,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은 결국 '사랑'으로 귀결되는 영화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인용하자면, 사랑은 결국 자신의 언어와 사고의 한계 지점에서 멈춰서 표현된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말로 표현하기엔 부족할 '사랑'이라는 단어를 아름다운 영상으로 그려낸다. 물처럼 특정한 형태가 없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 하지만 그 어디에나 존재하여 우리를 감싸고 있는 것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구현한다. 1950년대 영화의 낭만, 차별 받고 존재 자체를 거부당하던 사람들에 대한 연민, 존재의 본질을 바라보며 강렬하게 이끌리는 두 존재에 대한 무한한 사랑까지. 이 영화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영화다.

어쩌면 이 영화는 차별과 혐오가 다시 만연해지려는 이 시대에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영화였는지 모른다. 인종-성차별의 스피커가 커져가는 듯한 요즘,  이런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응축시켜  아름다운 잔혹동화를 만들어냈다. 그는 훌륭한 영화감독이기 이전에 훌륭한 동화작가다.

영화 속 스트릭랜드를 다시 주목해 본다. 그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만족스럽지 못한 현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청록색을 미래의 색으로 생각하며 청록색의 최신형 캐딜락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두 존재인 엘라이자와 괴생물체가 사랑하는 장면을 다시 보면,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물은 청록색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사랑의 색은 그렇다. 스트릭랜드가 소변을 보고 거울을 보는 화장실조차도 사실은 청록색 벽으로 둘러싸고 있듯이, 사랑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 형태가 분명하지 않으나 서로를 강하게 원하는 두 존재가 만났을 때엔 그 형태가 뚜렷하게 보이며 그들을 포근히 감싼다. 청록색으로 둘러싸인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씬에 등장하는 빨간색으로 사랑의 본질을 더욱 부각시킨다.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 스틸컷 가장 상징적인 장면

▲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 스틸컷 가장 상징적인 장면 ⓒ 20세기폭스코리아


사랑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목소리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탄복할 외모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손을 잡고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며 춤을 추고 하나가 되어가는 것. 함께 머물던 시간과 공간을 한 데 아우르는 것. 끝내 아름다운 동화로 남는 것. 그것이 원래 '사랑'이라고 말이다. 사랑의 본질을 그려낸 이 아름다운 동화를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셰이프오브워터 영화 에리얼 기예르모델토로 동화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