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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나, 아니 윤복(허율)을 둘러싼 자영(고성희), 수진(이보영), 영신(이혜영)의 갈등은 우리 사회 모성에 대한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 tvN


아이 낳는 고통이 싫어서, 아이를 감당할 수 없어서 '모성'을 회피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이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얼마나 모성에 기대고 있었는지를 반증하는 게 아닐까. 우리 사회는 '엄마'가 되는 순간, 여성에게 자식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생기리라고 전제한다. 수많은 엄마들이 산후우울증을 호소하는데도 말이다.

모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드라마가 등장했다. tvN 수목 드라마 <마더>다. 22일 10회를 방송한 이 드라마는,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해온 모성에 대해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해외에서도 화제가 됐던 신경숙 작가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평생 자식들을 위해 희생했던 엄마의 실종사건을 통해, '엄마'란 존재로 살아온 한 여성에게도 다른 삶이 있었음을 말하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엄마였다. '엄마'가 되는 순간 많은 것을 포기하고 엄마라는 존재에 자신을 밀어넣는 삶을 살아내야 했다.

엄마들이 아이를 버렸다, 모성은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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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마더>에서 자영(고성희)은 혜나(허율)를 찾아와 다시 돌아가자고 회유한다. ⓒ tvN


<마더>가 '모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그 시작은 지금 곁에 머무는 남자에 연연하느라 자신의 아이를 쓰레기 봉투에 담아 유기하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우리 사회 아동학대 문제의 현실을 자영(고성희 분)을 통해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사랑했던 남자에게 버림 받고 아이와 함께 남겨진 자영은 아이 혜나(허율 분)를 애증의 대상처럼 여긴다.

상심한 엄마를 위해 카페라떼를 만들어 주다가 그걸 좋아하게 된 아이를 자영은 버거워했다. 그런 그녀의 감정은 학대로 나타났다. 혜나를 거둔 사람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수진(이보영 분)이었다. 모성을 상실한 자영과 그를 대신하는 수진, 상실한 모성의 빈 자리를 채운 것은 다름 아닌 '공감'이었다. <마더>는 유괴 사건 이면에 모성의 대립을 그리며 우리 사회가 신봉하는 '모성 신화'에 발을 건다.

'엄마가 곧 모성'이라는 전제를 스스로 짓밟아 버린 자영은 수진이 자신이 아이를 데리고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혜나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혜나를 마주하고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고 읍소한다. 그러나 이제 윤복이란 이름을 갖게 된 혜나는 그간 엄마라는 이름으로 자영이 자신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복기한다. 죽지 않기 위해 엄마로부터 자신을 지켜내야 했던 혜나는 윤복이 되기를 선택했고 그 말을 들은 자영은 발을 돌린다. 다시 한번 혜나를 버린 것이다.

또 다른 모성 신화도 있다. 버려진 아이 혜나를 거둔 수진처럼, 보육원에 버려졌던 수진을 제 새끼처럼 길렀던 수진의 양모 영신(이혜영 분)이다. 암으로 시한부를 선고 받은 영신은 스물다섯 살 때 홀연히 그녀의 곁을 떠나버린 수진을 애타게 찾는다. 그리고 아버지를 모르는 딸을 데리고 나타난 수진과 딸 윤복에게 열렬히 반응한다. 그러나 윤복이 자신의 친손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영신은 가장으로서 남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수진을 파양하겠다고 선언한다.

아이를 버리는 엄마? 그제야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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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마더>의 영신(이혜영)은 다른 가족들을 위해 결국 수진(이보영)을 파양하려 한다. ⓒ tvN


자영과 영신이 자신의 딸을 버리는 이 상황은 아이러니하게도 모성에 대한 배신이 아닌 성장처럼 보인다. 혜나를 늘 자신의 부속물로 생각하고 심지어 쓰레기 봉투에 담아 버렸던 자영은 처음으로 혜나를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한다. 앞서 자영은 밀어내도 자꾸 다가와 안아주는 혜나를 부담스러워 했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나는 혜나가 아니라 윤복"이라고 말하는 딸 앞에서 결국 발을 돌린다. 딸에게 상처 받은 엄마의 뒷모습이지만, 그리고 아직 깨달음보다 분노가 더 큰 상태이지만, 자영으로서는 혜나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인 첫 번째 선택이었다. 그 순간 자영은 처음으로 엄마다웠다.

영신도 마찬가지다. 영신은 의사에게 "내게 수진은 아직도 열 살일 때 그대로다"라고 고백한다. 여전히 수진을 어린 아이로 대하고, 보호자 노릇을 하려 했던 영신은 기꺼이 수진을 놓아주려 한다. "남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가장의 책임을 내세웠지만, 이는 자식을 무조건 끌어안아야 한다고 여겼던 1차원적 모성으로부터의 탈피라고도 볼 수 있다. "새처럼 훨훨 날아가라"고 말했던 마음의 연장선상에는 윤복의 엄마로 살겠다고 선언한 어른 수진의 삶에 대한 존중이 있다. 이런 자영과 영신의 모습은 앞서 딸을 살리기 위해, 살인자의 딸로 살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딸을 버렸던, 수진의 친모 홍희(남기애 분)의 모정과 닿는다. 이로서 드라마는 다시 모성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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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마더>의 수진(이보영)은 학대 받았던 혜나(허율)에게 엄마가 돼 주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 tvN


10살 배기 어린 자식을 대하는 모성과 어엿한 어른이 된 자식을 대하는 엄마의 마음은 달라야 한다. 그러나 최근 어른이 된 자식을 마치 어린 아이처럼 취급하며, 엄마가 모든 것을 대신 해주고 보호하기만 하려는 '헬리콥터 맘'(자식이 성장해 사회생활을 시작해도 헬리콥터처럼 자식의 주변을 맴돌며 과잉보호하는 엄마를 가리키는 신조어)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이의 삶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미래의 직업이나 결혼까지 지도하려고 하는 것은 과도한 집착이나 부적절한 모성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영신이 수진을 파양하는 것은 엄마가 되려는 딸을 그 자체로 존중하는 선택으로 볼 수 있다.

<마더>가 자영과 영신, 홍희를 통해 그려낸 모성은 과연 '엄마가 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 어린 자식을 보호하고 보살피는 1차원적인 모성을 지나, 성숙된 모성으로의 성장을 위해 엄마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마더>는 극단적인 설정으로 반문하고 있다.

물론 16부작 드라마 <마더>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윤복이 된 혜나 앞에서 발길을 돌린 자영은 "엄마 이전에 한 사람으로 먼저 서야 한다"는 수진의 충고가 무색하게도 분노의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또 윤복은 곤경에 빠진 수진을 위해 다시 자영에게 돌아가려 한다. 과연 앞으로도 펼쳐질 엄마들의 여정은 우리에게 또 어떤 질문을 던질까. 그 누구도 쉽게 말하지 못했던 '모성'을 그리는 <마더>에 관심이 집중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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